3월과 4월의 극장가 비수기가 지나면, 5월 노동절과 어린이날 대목을 시작으로 다시 극장가가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5월부터 만들어진 흐름이 6월을 지나 연중 극장가 최대 성수기 시즌인 7월 말~8월 중순의 여름휴가철 시즌에 피크를 찍으면서 사실상 대한민국 영화산업의 연간 성과가 결정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가장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리고 그 중요한 시기의 첫 출발점이 5월 어린이날 대목입니다.
코로나 시국이 사실상 종결되었지만 너무 올라 버린 티켓값과 OTT의 영향으로 극장가의 침체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2023년 1분기에 한국 극장에 개봉한 영화들 중에서 200만 관객 이상을 동원한 영화는 두 편의 일본 애니메이션을 제외하면 없습니다. 100만 이상을 동원한 실사 영화도 한국 영화는 ‘교섭’, 외국 영화는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뿐입니다. 특히 한국영화의 상황이 너무 심각해서 이대로라면 2025년에는 극장에서 개봉하는 한국영화가 없을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때문에 5월부터 여름 최대 성수기까지 이어지는 시기가 올해는 특히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5월 말에 천만 관객을 노리는 영화 ‘범죄도시 3’가 개봉해서 든든하긴 하지만 그 전초전에 될 5월 초 어린이날 연휴 대목에서부터 큰 파도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어느 때보다도 극장가 흥행작이 절실한 이 시기에, 과연 어떤 작품들이 어린이날 대목 주간에 많은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 모을 수 있을지 그 라인업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린이날 대목 주간 흥행 왕좌를 노리는 빅3 경쟁작들
우선 이번 어린이날 대목 주간 상영작들 중에서 확실한 ‘메인이벤터’라고 할 수 있는 빅3 영화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재미있게도, 한미일 삼국 대결입니다.
원래 한국 극장가 연간 흥행의 국가 점유율을 보면 한국과 미국 영화가 양분하고(사실 거의 모든 나라의 영화 흥행은 자국 영화와 미국 영화가 양분하는 양상이 일반적입니다) 다른 나라는 비중이 거의 없는데, 올해는 현재까지 일본 애니메이션이 두 편이나 대박 흥행이 터지는 바람에 일본의 점유율이 35%로 1위입니다. 그다음이 미국, 한국이고요. 물론 이 점유율이 1년 내내 이어질 리는 없고 미국 영화와 한국 영화들이 일본을 밀어내긴 하겠지만 일단 현재까지는 기존 한국과 미국의 양분 구도에 일본이 끼어들어 삼국 대결이라는 재미있는 양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어린이날 대목 주간도 빅3 경쟁이 한미일 삼국 대결이 되었는데, 엄밀히 말하면 이 중에서 일본의 점유율을 오르게 할 영화는 없습니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일본의 닌텐도와 미국의 일루미네이션 합작 영화이지만 한국 영진위에 등록된 정보를 확인하니 ‘미국 영화’로 되어 있어서 이 영화의 흥행 성적도 미국 점유율로 들어가게 되었거든요. 그래도 뭐 일본 닌텐도가 합작한 영화이니 어거지로 ‘삼국 대결’이라고 불러 보았습니다.
아무튼 이번 어린이날 대목 주간의 빅3 영화들을 정리하면 바로 한국의 ‘드림’과 미국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그리고 미국과 일본 합작의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입니다.
모두 재미있어 보이고 기대할만한 영화들이지만, 어느 때보다 심각한 한국영화계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역시 ‘드림’이 흥행에서 힘을 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장 크게 가지게 됩니다. 사실 지금처럼 한국 영화가 침체된 상황이 아니었다면 ‘드림’이 이번 어린이날 대목 주간에 흥행 대박을 터트릴 거라고 자신 있게 예측했을 것입니다. 16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박스오피스 역대 흥행 2위에 오른 영화 ‘극한직업’을 만든 이병헌 감독의 신작이니까요. 거기에 주연 배우는 박서준과 이지은(아이유)입니다. 이 정도면 코로나 시국 이전에는 500만 이상은 기본으로 예상할만한 라인업입니다. 물론 지금이라도 영화 자체의 재미에 대한 기대도는 500만 이상 흥행할 잠재력이 충분히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드림’은 축구를 소재로 한 스포츠 코미디 영화인데, 올해 농구 소재의 스포츠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흥행 초대박이 터졌으니 굳이 좋은 의미로 엮어보자면 스포츠 영화의 흥행을 ‘드림’이 이어갈 거라고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축구는 축구인데 ‘홈리스 월드컵’이라는 매우 생소한 소재인 점은 흥행에 있어서는 조금 불안요인입니다. 저도 이 영화 때문에 ‘홈리스 월드컵’이라는 국제축구대회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거든요. 이런 전반적인 상황들로 볼 때 흥행에 대한 예상은 쉽지 않지만 영화 자체는 엄청나게 재미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병헌 감독의 능력은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는 데다 전작인 극한직업처럼 범죄나 폭력이 등장할만한 내용도 아니기 때문에 어린이날 대목 주간에 데이트 관객이나 가족 단위 관객 모두를 만족시켜 줄 최고의 선택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드림은 어린이날 주간보다 한주 앞서서 4월 26일에 개봉합니다.
닌텐도와 일루미네이션의 합작 애니메이션인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도 드림과 같은 날인 4월 26일에 개봉합니다. 이 영화는 이미 4월 초에 미국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에서 개봉을 했습니다. 한국은 3주 정도 늦게 개봉하게 된 셈인데, 할리우드 기대작 영화가 보통은 한국에서 가장 빠르게 개봉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조금은 이례적이긴 합니다. 아마 한국에서는 어린이날 대목 주간을 노린다는 의도로 이 같은 개봉 시기를 정한 것이겠죠. 이미 수많은 나라에 개봉했기에 영화의 평가가 나와 있는데요. 비평전문 사이트인 로튼토마토에서는 토마토가 썩어있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평론가들의 혹평에 대한 반동인지 팝콘지수는 엄청 높게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평론가와 관객의 반응이 갈리는 상황이라면 뭔가 완성도가 아쉬운 부분이 있어도 대중적으로는 볼만한 작품일 거라고 예상할 수 있는데요. 특히 어린이날 대목 주간의 주요 타겟 관객층이라고 할 수 있는 저연령층 관객들은 충분히 만족시킬만한 작품일 거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슈퍼 마리오’는 굉장히 오래된 캐릭터이고 아마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이 이 영화를 찾을 것이기 때문에 그런 관객들까지도 만족시킬만한 작품일지는 개봉 후의 반응을 봐야 할 것 같네요. 일루미네이션이 슈퍼배드, 미니언즈, 마이펫의 이중생활 등 한국에서 이미 흥행작이 많고 나름 마니아층이 갖춰졌기 때문에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도 관객 평가가 좋다면 상당한 흥행 성적도 노릴만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월드 흥행에서는 대박이 터지기도 했고요.
마블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는 어린이날 대목 주간을 정조준하는 날짜인 5월 3일에 개봉합니다. 사실 방학이나 명절도 아닌 5월 첫째 주가 대목 성수기라는 이미지가 생긴 것은 매년 이 시기에 마블 대작 영화들이 개봉했기 때문입니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어벤져스 2,3,4편이 전부 이 시기에 개봉했습니다. 그 외에 아이언맨 시리즈와 작년에 개봉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등 이 시기에 개봉해서 대박 흥행을 터트린 마블 영화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올해 개봉하는 가오갤3는 이 시기에 개봉하는 마블 영화로는 조금 약한 라인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가오갤 시리즈 자체가 마블 영화들 중에서는 한국에서 유독 인기가 떨어집니다. 평론가와 관객 평점이 모두 높은데도 희한하게 흥행 성적은 아쉽습니다. 이건 역시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장르 자체가 한국 대중들에게는 잘 먹히지 않는다는 분석이 맞는 것 같습니다. 가오갤 2편이 2017년 어린이날 대목 주간에 개봉했는데 273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전작이 500만 명을 넘었던 앤트맨과 블랙팬서도 최근 개봉한 신작이 한국에서 200만 명을 넘기지 못했기 때문에 가오갤3 역시 흥행 전망이 썩 좋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래도 역시 마블의 기본 이름값이 있고 대목 시즌 버프에 감독과 주연 배우가 내한 홍보까지 하니 블랙팬서와 앤트맨 보다는 나은 결과를 거둘 가능성은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1,2편과 마찬가지로 영화 자체는 엄청 재미있을 거고요. 한때 마블민국이라고 불렸던 한국이지만 최근에는 마블 영화들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이 썩 좋은 편은 아닌데 가오갤3가 훌륭한 완성도로 나와서 다시 마블 영화들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으로 이번 어린이날 대목 주간에 흥행 왕좌를 두고 대결을 벌일 메인이벤터 빅3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 세 편 외에도 ‘틈새’를 공략하는 다양한 개봉작들이 있습니다.
틈새 흥행을 노리는 다양한 개봉 영화들
이 포스팅은 어린이날을 한 달여 앞둔 시점에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극장가에서는 영화의 개봉일이 일찌감치 확정 발표되는 경우가 드뭅니다. 즉 아직 4~5월 개봉 예정 영화들 중에서 개봉일을 확정 발표하지 않은 영화들이 있어서 어린이날 대목 주간에 어떤 영화들이 극장에 상영 중일지 지금 시점에 100%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린이날 대목 시즌이 언제나 그렇지만 이번에도 애니메이션 개봉작이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일단 개봉이 확정된 애니메이션 개봉작은 앞에서 소개한 ‘슈퍼마리오 브라더스’가 있고(4월 26일 개봉), 그보다 한주 앞서서 4월 20일에 ‘아머드 사우루스: 기계공룡제국의 침략’이 개봉하고 어린이날 바로 전날인 5월 4일에는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동물소환 닌자 배꼽수비대’가 개봉합니다. 이 영화들도 메인이벤터 급은 아니더라도 어린이 관객들에게 충분히 수요가 있는 영화들이죠. 특히 짱구는 못말려의 경우 전작인 ‘수수께끼! 꽃피는 천하떡잎학교’가 한국에서 무려 83만 관객이나 동원했기 때문에(이 작품은 심지어 저도 극장에서 봤습니다) 이번 신작이 의외의 흥행 복병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역대급 명작이었던 전작에 비하면 확실히 아쉬운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기에 전작만큼의 국내 반응이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수수께끼! 꽃피는 천하 떡잎 학교 – 극장에서 만난 새로운 즐거움
5월 개봉 예정인 애니메이션으로 ‘아기공룡 둘리 : 얼음별 대모험 리마스터링’과 ‘치킨 히어로 빌리: 황금 달걀 구출 작전’이 있는데 둘 다 아직 개봉일이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어린이날 주간으로 개봉이 확정되면 이 포스팅 내용에 업데이트하겠습니다. ‘아기공룡 둘리 : 얼음별 대모험’은 저도 어릴 때 정말 재미있게 본 작품이고 한국 애니메이션 대표작이기 때문에 어린이날 주간에 개봉해서 슈퍼마리오, 짱구는 못말려와 대결하는 구도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내용 업데이트 - 아쉽게 둘리의 개봉일은 5월 24일로 결정되었네요....)
요즘 극장 개봉작들은 흥행하는 소수의 영화는 엄청 길게 상영관에 걸려있고 나머지 반응이 없는 영화들은 순식간에 상영관에서 내려가 버립니다. 그래서 4월에 개봉하는 영화들 중에 5월 첫째 주까지 이럭저럭 상영관을 유지할 영화가 무엇일지 잘 예상이 안됩니다.
일단 어린이날 전주인 4월 26일에 드림,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와 함께 양조위, 왕이보 주연의 ‘무명’이 개봉합니다. 한국에서 중국 영화가 정말 흥행이 안 되는 편이지만(얼마 전에 견자단이 내한 홍보도 했던 ‘천룡팔부: 교봉전’도 흥행이 매우 저조했죠) 그래도 어린이날까지는 상영관에 걸려 있을 것 같습니다. ‘무명’은 2차 대전 시기에 일본이 점령한 상하이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첩보 스릴러 영화입니다.
[소설과 영화사이] 천룡팔부: 교봉전 (김용 무협 소설 원작)
어린이날 2주 전에 65(4월 20일), 렌필드(4월 19일), 옥수역 귀신(4월 19일) 등이 개봉하는데요. 렌필드는 드라큘라를 원작으로 한 19금 코미디 영화고 65는 공룡이 나오는 SF 액션 영화, 옥수역 귀신은 유명한 호러 웹툰이 원작인 영화입니다. 제 생각에는 이 영화들도 어린이날까지는 일부 상영관에 걸려 있기는 할 거 같습니다.
어린이날 3주 전인 4월 12일에 일본 애니메이션 ‘거울 속의 외딴 성’과 할리우드 액션 영화 ‘존 윅 4’가 개봉하고, 이틀 뒤 14일에 한국 영화 ‘킬링 로맨스’가 개봉합니다. 이 중 ‘존 윅 4’는 북미에서 개봉 후 작년의 ‘탑건: 매버릭’ 수준으로 압도적인 호평을 받고 있어서 영화팬들 사이에서는 4월 최고 기대작으로 꼽히는데 청소년 관람불가라는 등급 때문에 한국에서 어느 정도 흥할지 예상하기 쉽지 않습니다. 탑건 정도는 아니더라도 한국에서도 어느 정도 흥행이 된다면 5월까지도 상영관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포스팅을 작성하는 시점 기준 박스오피스 TOP 5의 영화들도 5월까지 걸려 있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습니다. 바로 스즈메의 문단속, 리바운드, 에어,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 더 퍼스트 슬램덩크입니다. 모두 평이 좋은 영화들이기에 꽤 오래 걸려있을 가능성이 있지만(스즈메의 문단속과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이미 충분히 오래 걸려 있는 중이긴 하지만요) 어린이날까지 걸려 있기는 만만치 않아 보이네요
이렇게 2023년 어린이날 대목 주간에 극장에 상영할 영화들의 정보를 정리해 보았는데요. 현재 극장가가 역대 최악 수준으로 침체된 상황이긴 하지만 다가오는 어린이날 대목 주간에는 극장을 떠난 관객들을 다시 돌아오게 만들 수 있을 정도로 탄탄한 라인업이 갖추어졌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5월 어린이날 대목을 시작으로 다시 관객들이 극장으로 몰려들어 어려움에 처한 국내 영화 산업과 극장 산업에 힘을 불어넣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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