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만화와 영화사이

[만화와 영화 사이] 각오는 됐나, 거기 여자 (시아바 나나 원작)

by 대서즐라 2022. 2. 21.
728x90
반응형

 

이구치 노보루 감독의 2018년 하이틴 로맨스 영화 ‘각오는 됐나, 거기 여자’는 시아바 나나의 동명 만화를 실사화한 작품입니다. 나카가와 타이시가 주인공 후루야 토와 역을, 카라타 에리카가 여주인공 미와 미소노 역을 맡았습니다.

 

각오는-됐나-거기-여자-영화

 

원작 만화는 한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입니다. 일단 정식 번역 출간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는 거의 읽은 사람이 없을 테고 일본에서도 인기 있는 만화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만화의 인기 척도 중 하나인 ‘연재기간’이 이 만화는 굉장히 짧습니다. 2014년 2월부터 2014년 7월까지 대략 5개월 연재하고 종결되었습니다. 당연히 전체 내용의 분량도 극히 짧아서 단행본으로 2권, 연재분으로는 불과 12화 분량입니다.

 

물론 순정만화는 소년만화에 비해서 인기를 끈 만화라 해도 연재기간이 짧은 경우가 많습니다. 잘 나가는 순정만화 작가 중에서는 장기 연재보다는 짧은 분량으로 여러 편을 다작하는 스타일이 꽤 있습니다. ‘각오는 됐나, 거기 여자’의 작가 시이바 나나도 대체로 짧은 분량으로 여러 편을 다작하는 스타일 같더군요.

 

그래도 이 작가가 실제로 일본의 순정만화계에서 어느 정도의 입지인지, 영화화까지 된 ‘각오는 됐나, 거기 여자’가 어느 정도로 인기를 끈 만화인지는 파악하기가 좀 어렵네요. 일단 제가 이 만화를 읽은 감상으로는, 특별히 재미있지도 않고 영 못 볼 수준도 아닌 그냥저냥 평범한 순정만화라는 것입니다. 물론 내용이 너무 짧은 것은 그 자체로 단점이기도 해서, 별로 내용에 몰입이 되지 않았고 다 읽은 후 그다지 기억에 남는 것도 없었습니다.

 

각오는-됐나-거기-여자-원작-만화

 

하이틴 순정만화는 대부분 뻔한 전개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설정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너에게 닿기를’의 여주인공 사와코의 특징인 귀신 분위기의 음침녀 속성 같은 것들요. ‘각오는 됐나, 거기 여자’에는 남자 주인공에게 특이한 설정이 붙었는데, 바로 ‘관상용 남자’라는 속성입니다. 잘생겼는데 남자 친구 삼기는 망설여지는, 그냥 눈요기용 남자라는 거죠. 그래서 엄청 잘생기고 매력 있는데도 모솔이라는 설정입니다.

 

저는 이게 좀 무리수라고 생각합니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말이 안 되잖아요. 잘생겨도 성격이 무뚝뚝하거나 여자에 관심이 없어서 모솔이다, 이런 건 말도 되고 실제로 있음직 한데, 이 만화의 주인공 후루야는 여자에게 관심도 많고 성격도 괜찮은 편이란 말이죠. 사실 이런 만화는 워낙 가볍게 읽는 거라도 좀 말이 안 된다 싶은 설정도 개그 느낌으로 대충 받아들일 수는 있는데요. 그래도 뭔가 현실성이 떨어지고 너무 지어낸 이야기, 꾸며낸 캐릭터라는 느낌이 읽다 보면 계속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런 점은 실사 영화에서 더 크게 부각이 되죠. 만화 원작 실사 영화는 당연히 현실성 없는 장면이나 과장된 연기 같은 것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그래도 지면에서 그림으로 보던 캐릭터들이 실제 인간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장면을 봄으로써 느끼게 되는 리얼함이란 게 있습니다. 대사나 상황, 연기에서 비현실적 요소가 많더라도 캐릭터의 설정 자체는 비교적 현실에 가깝게 짜여 있으면 보는 사람이 스스로 최면을 걸어서라도 리얼한 실제 이야기라는 느낌을 유지한 채 작품에 몰입할 수 있거든요. 그만큼 실사 배우가 연기하는 힘은 큰 것입니다.

 

후루야-나카가와-타이시

 

그런데 이 작품의 설정은 현실성이 너무 약하다고 느껴지다 보니 정말 배우들이 꾸며진 캐릭터를 연기하는 모습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설정의 문제는 남자 주인공에게 있는데, 저는 영화에서 여자 주인공이 더 별로였습니다. 남자 주인공의 경우 원작의 캐릭터 설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면, 여자 주인공은? 배우가 문제였습니다.

 

여주인공 미소노 역을 연기한 배우는 1997년생 카라타 에리카입니다. 몇 년 전에 일본 연예계에서 꽤나 시끄러운 논란을 일으킨 배우입니다. 지금은 성인이지만 몇 년 전 미성년자이던 시절부터 유부남인 히가시데 마사히로와 불륜 관계였다는 스캔들이 터진 것입니다. 상대 남자도 엄청 인기 있는 스타 배우이고 카라타 에리카 본인도 거장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의 2018년작 ‘아사코’에 출연한 이후 상당히 잘 나가던 시기였기에 스캔들의 임팩트는 꽤 컸습니다. 결국 스캔들 이후 한동안 자숙하다가 2022년부터 활동을 재개하는 모양이지만, 여전히 부정적인 반응은 남아 있는 상황입니다.

 

728x90

 

그런데 설령 불륜 스캔들이 없었다고 한들 카라타 에리카가 일본에서 최정상급의 대세 여배우까지 성장할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아사코’에 주인공으로 출연함으로써 상당히 주목받게 되었지만, 저는 이런 평판에 어느 정도 거품이 껴 있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아사코가 좋은 작품이긴 하지만 여주인공 캐릭터는 오히려 비호감에 가까웠고, 카라타 에리카가 아사코 역으로 특별히 눈에 띄는 재능이나 매력을 보여준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냥 훌륭한 작품의 후광 효과(?)로 배우의 위상이 높아져 보이는 착시 비슷한 것이 생겼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제 활동을 재개한 카라타 에리카가 불륜 스캔들의 여파를 극복하고 본인의 역량으로 다시 잘 나가는 대세 배우의 지위를 회복한다면 저의 판단이 틀린 것일 테지만, 일단 현재로서는 미래가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미소노-카라타-에리카

 

‘각오는 됐나, 거기 여자’에서의 카라타 에리카가 연기한 미소노는... 좀 심하게 혹평을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제가 본 하이틴 로맨스 영화의 여주인공 중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매력 없게 느껴졌습니다. 솔직히 아사코를 볼 때는 캐릭터가 조금 이해가 안 되고 비호감이긴 해도 어느 정도는 예쁘고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각오는 됐나, 거기 여자’에서는 뭔가 연기도 엉성하고 표정이나 행동, 대사 하나하나가 너무 감흥이 없는 거예요.

 

방향성이 잘못된 건 아닙니다. 원작을 읽을 때 별 문제를 못 느꼈듯이 여주인공의 캐릭터 자체는 딱히 잘못된 부분이 없습니다. 남자 주인공에게 무뚝뚝하고 거칠게 대하는 츤데레 계열 여주인공으로서 그렇게 별난 캐릭터도 아니에요. 그런데 영화에서는 모든 대사와 연기들이 밍밍하고 느낌이 살지 않아요. 전형적인 ‘텐션 조절’에 실패한 연기였습니다. 물론 이건 배우의 책임도 있지만 감독의 연기 지도도 문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 이구치 노보루는 1990년대부터 활동한 오래된 경력의 감독인데, 예전 필모의 대부분은 B급 영화나 공포 영화더군요. 특히 제가 살면서 본 최악의 망작 중 하나인 ‘토미에 언리미티드’가 이 감독의 작품입니다. 확실히 연출력으로 기대를 할 게 없는 감독이라, ‘각오는 됐나, 거기 여자’ 또한 굉장히 아쉬운 완성도로 나오고 말았습니다.

 

나카가와-타이시-카라타-에리카

 

하지만 하이틴 로맨스물의 여주인공이 이 정도로 매력 없어 보이는 건 확실히 배우에게 큰 책임이 있습니다. 사실 카라타 에리카라는 배우 자체가 하이틴 로맨스라는 장르에는 맞지 않는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외모만 보면 올망똘망한(?) 귀염상이라 이런 장르에 잘 어울릴 것도 같은데, 막상 연기해보니 너무 느낌이 안 살더군요.

 

제가 생각하기에 핵심적인 요인 하나는 이 배우 ‘목소리’입니다. 아사코 때는 거의 느끼지 못했는데, ‘각오는 됐나, 거기 여자’에서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으아, 깬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저 얼굴에 이런 목소리가? 라는 당혹감. 전체적으로 외모와 목소리, 분위기가 밸런스가 맞지 않는 느낌이었습니다. 거기에 캐릭터까지 무뚝뚝한 츤데레였으니... 하나하나 따로 놓고 보면 별 문제는 없는데, 이 모든 요인들이 다 결합하니 너무도 매력 없는 여자 주인공 캐릭터가 탄생해버린 것이죠.

 

반응형

 

반면 설정이 무리수였던 남자 주인공은 배우인 나카가와 타이시가 원래 이런 나사 빠진 미남 캐릭터 연기를 잘하는 데다(드라마 ‘감옥학원’의 키요시 역할이 정말 최고였습니다) 다소 비현실적인 설정을 개그 캐릭터 느낌으로 잘 소화해서 꽤 만족스러웠습니다. 사실 두 주연 배우가 함께 있을 때의 케미는 그런대로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둘 다 미남 미녀 배우라서 그림은 확실히 보기 좋으니까요.

 

내용은 원작 만화가 워낙 짧은 분량이라 거의 각색된 부분도 없어서 원작 내용 그대로 무난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특별히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미소노를 협박하는 사채업자 역할로 후덕하고 코믹한 인상의 배우인 ‘아라카와 요시요시’가 출연한 것입니다. 사실 사채업자가 등장하는 내용은 원작에서도 분위기가 조금 어둡고 살벌해지는 편인데 영화에서 아라카와 요시요시가 무슨 야쿠자 코스프레 같은 꼴을 하고는 허허 거리며 등장해서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전혀 깨지 않았죠. 특히 이 사채업자 캐릭터가 후반부에 반전으로 훈훈한 역할까지 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캐릭터였습니다.

 

 

일본에서는 만화 원작의 실사 영화가 워낙에 많이 제작되다 보니 이런 실사화 작품들을 선택하는 기준이 뭔지 이제는 파악도 되지 않습니다. 그냥 라이징 하는 젊은 배우(주로 여배우)가 등장하면 일단 무슨 작품이든 순정만화 원작 하이틴 로맨스는 찍고 보자~ 라는 식으로 아무 순정만화나 뺑뺑이 돌려서 대충 고른 다음에 무턱대고 제작해버리는 느낌입니다. 만화 원작 일본 실사 영화가 그런 기획성만을 바탕으로 대충 만든 케이스가 워낙 많아서 ‘각오는 됐나, 거기 여자’가 특별히 수준 떨어지는 작품이라고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다만 저로서는 이 장르의 가장 핵심이 ‘여주인공의 매력’이라서 이 작품에는 높은 점수를 주기가 어렵습니다. 그래도 카라타 에리카라는 배우가 가진 언밸런스한 느낌은 여전히 흥미로운데, 활동 재개 후 앞으로 출연하는 작품을 보며 이 배우에 대해 좀 더 탐구해보고 싶은 생각은 가지게 되었습니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