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 야스히사의 ‘킹덤’은 현재 연재 중인 만화 중에서 제가 가장 재미있게 보고 있는 만화입니다. 2006년부터 연재를 시작했고 벌써 16년째 연재 중인데, 지금 추이라면 이 만화도 오다 에이이치로의 ‘원피스’처럼 단행본 100권 연재를 돌파할 것 같습니다. 하라 야스히사와 오다 에이이치로는 1975년생으로 동갑인데 원피스는 이미 단행본 100권을 돌파했고 최종장 스토리가 전개 중이라 슬슬 끝이 보이고 있지만 킹덤은 16년 동안 연재하며 단행본이 현재 66권까지 나왔는데도 끝이 보이기는커녕 아직도 갈 길이 멀어서 작가가 60대는 돼야 완결을 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갈 길이 멀다’라는 사실을 독자가 알고 있는 것은 ‘킹덤’이 역사 만화라서 이후 스토리를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킹덤은 전국시대 진나라의 통일 전쟁을 다루는 내용입니다. 1화가 기원전 245년부터 시작했고 진나라가 중국 통일을 달성하는 해는 기원전 221년으로 1화 시점으로부터 무려 24년이 지난 후죠. 주인공이 10대 중반 정도의 나이에서 시작했으니 40세 전후의 나이까지 그려지는 거예요. 후속작이나 에필로그에서의 모습이 아니라 본편을 진행하면서 그 정도로 나이를 먹어가는 모습이 나오는 건 소년만화 주인공으로는 매우 드문 일입니다.
1권부터 66권까지 16년을 연재하는 동안 작품 내용상으로 11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10대였던 주인공은 20대 중반이 되었고 통일까지는 아직 13년이 남았죠. 물론 앞으로의 내용 전개가 지금까지와 완전히 동일한 페이스로 진행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아마 몇 년 정도 훅훅 건너뛰면서 진행하기도 할 거예요. 제가 작가라면 본인 나이가 60세가 되기 전에는 끝내고 싶을 것 같습니다.
킹덤은 전쟁 역사물이라는 만화 장르에서 신기원을 이룬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역사의 다양한 사건과 인물들을 소재로 수많은 만화들이 만들어졌지만 진나라의 통일 전쟁과 같은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이렇게 방대한 분량과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초장기 연재 소년 만화로 그려낸 건 킹덤이 최초라고 할 수 있죠. 창천항로를 비롯해서 삼국지를 소재로 한 대단한 만화들도 많지만 역시 연재 분량과 스케일로는 킹덤에 비견될 만화는 없는 것 같습니다.(중국이나 대만 쪽의 제가 모르는 작품 중에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요.)
킹덤이 대히트 만화가 된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캐릭터의 매력이나 진나라의 통일 전쟁이라는 서사 자체의 재미보다는 전쟁 액션 만화로서 장르적인 재미가 극대화된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물론 캐릭터도 매력 있고 내용도 재미있지만 역시 전쟁 장면의 박진감이 이 만화 최고의 강점입니다. 특히 주인공이 처음으로 진나라 정식 보병으로서 전쟁터에 나갔을 때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온몸에 소름이 좍좍 돋을 정도의 압도적인 몰입감은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이 부분 전까지는 그냥저냥 재미있게 읽다가 이때부터 미친 듯이 빠져들어 읽게 되었죠.
물론 대부분의 소년 액션 만화들이 그렇듯이 킹덤 또한 실제 역사와 실존 인물들을 다루는 작품임에도 너무나도 비현실적이고 과장된 묘사와 내용 전개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특히 장군들의 무력을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묘사해서 원피스나 나루토 같은 인간을 초월한 특수능력 배틀물을 보는 느낌이 들 정도예요. 물론 실제 역사에서 항우나 사자심왕 리처드 같은 전장에서 만부부당의 활약을 보여준 괴물 같은 장수들이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고 냉병기 시대에 수많은 전쟁터를 헤쳐 나온 최상위 베테랑 전사의 무력은 현대인의 상식과 상상 범주를 아득히 뛰어넘는 경지에 도달했을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킹덤에 나오는 전쟁 묘사가 실제 역사의 전쟁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묘사라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부분을 이 만화의 단점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과장된 묘사들 때문에 액션 만화로서의 재미와 박진감, 몰입감이 만들어지는 거니까요.
요즘 시대에 히트한 대부분의 일본 만화들이 그렇듯이 이 거대한 스케일의 전쟁 액션 만화도 결국 일본에서 실사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사실 일본의 만화 원작 실사 영화들이 평균적으로 퀄리티가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해가 갈수록 점점 완성도가 나아지고 있고 킹덤 정도의 대작이라면 충분히 기대감을 가질만했습니다. 무엇보다 정말 좋아하는 만화의 장면, 캐릭터, 대사들을 실제 배우들이 연기한 영상으로 보는 것은 그 자체로 저에게 큰 즐거움을 느끼게 만드는 일입니다. 올해에도 넷플릭스의 ‘샌드맨’을 비롯해서 이런 즐거움이 참 많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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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있습니다. 바로 만화 킹덤의 내용이 너무 방대하다는 것. 당연한 얘기지만 지금까지 연재된 모든 내용을 전부 영화로 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영화 한 편으로는 정말 어림도 없고, 길게 시리즈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절대 무리입니다. 영화는 아니지만 현재 넷플릭스에서 원피스를 실사 드라마로 만들고 있는데 이 드라마가 원피스의 내용을 어디까지 담아낼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11 시즌까지 제작된 ‘워킹 데드’나 8 시즌까지 제작된 ‘왕좌의 게임’ 등 장기간 시리즈를 이어가면 꽤 많은 내용을 담을 수 있을 것도 같지만 그래도 원작 내용이 워낙 길고 방대해서 전체를 담아내는 건 불가능해 보이거든요.
영화로 만들어지는 ‘킹덤’은 그보다 더 빡빡합니다. ‘기생수’나 ‘20세기 소년’처럼 원작 분량이 그렇게 길지 않을 경우 2부작, 3부작 기획으로 전체 내용을 영화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지만 킹덤은 3부작은커녕 5부작으로도 어림없는 분량이니까요. ‘바람의 검심’이 5부작으로 만들어졌지만 역시 킹덤보다 원작 분량이 훨씬 짧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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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앞에서 언급했듯이 어차피 킹덤의 내용은 역사라서 진나라가 통일하는 결말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에 굳이 영화로 전체 내용을 담지 않고 중간에 끊더라도 크게 문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만화의 중반까지의 전개를 보면 중간에 딱 끊기 좋은 에피소드가 존재합니다. 바로 합종군 에피소드입니다. 조, 초, 한, 연, 위라는 5개의 나라가 연합해서 진나라로 쳐들어오는 에피소드인데 그야말로 영화의 최종막에서 대미를 장식하기에 딱 좋은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행본 25권부터 32권까지 이 에피소드가 그려지는데 영화로 5부작까지 만들어진 ‘바람의 검심’이 단행본 전체 28권 분량이니 킹덤도 5부작 정도로 합종군까지 영화로 만드는 게 가능할 것입니다.
...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영화가 2편까지 진행된 전개를 보면 제 생각보다는 느리게 전개돼서 합종군까지 5부작은 무리인 것 같아요. 6부작이나 7부작까지 제작될 가능성도 있다고 봐야 할 거 같습니다.
아니면 그냥 다음 편에서 왕기 장군의 사망까지만 담아내고 영화를 끝낼 수도 있을 겁니다. 왕기 장군의 사망은 이 작품의 초반에 등장하는(단행본 16권 내용입니다) 가장 임팩트가 큰 사건이니 이걸로 영화의 대미를 장식해도 그럴듯한 분위기는 만들어질 거예요. 하지만 왕기 장군의 죽음부터 본격적으로 주인공의 성장 스토리가 시작되기 때문에 원작 팬의 입장에서는 영화 내용이 여기서 끊어지는 것은 너무 아쉬움이 클 것 같습니다. 거기에 몽념, 왕분, 왕전, 환기 같은 이 만화 스토리의 주축을 이루는 핵심 조연들도 모두 왕기가 죽은 후에 등장하기 때문에 이들이 실사 영화에 하나도 등장하지 않고 끝나는 것도 어이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실 왕기가 영화 2편에서 죽을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원작 에피소드 전개를 보면 첫 에피소드인 ‘성교의 반란’은 영화 1편에서 다루어지고 이어지는 사감평원 전투(주인공의 첫 출전)와 마양 전투(왕기 사망)가 2편에서 함께 나올 거라고 예상했었거든요. 사감평원 전투는 시작한지 불과 반나절만에 끝나버린 짧은 에피소드였으니까요. 그런데 영화에서는 사감평원 전투의 분량을 반나절에서 이틀로 늘려서 영화 한편 내용으로 채워버리더군요. 사실 2편에 새로 등장한 캐릭터인 ‘강외(이 작품의 히로인)’의 서사가 원래 원작에서는 전투와 전투 사이의 에피소드로 그려지는데 영화에서는 이걸 각색해서 전투 중간에 넣어버렸습니다. 어차피 강외가 엄청 중요한 캐릭터라서 이 서사는 무조건 담아야 하기에 영화의 전체적인 진행 리듬을 고려해서 전투 중간에 넣어버리는 선택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결국 전투뿐 아니라 주요 캐릭터들의 서사까지 고려하면 처음부터 영화 2편에서 마양 전투까지 담아내는 것은 무리였던 것이죠.
다만 그래도 제가 2편에 마양 전투까지 담아내길 기대했던 것은 영화에 몽념과 왕분이 빨리 등장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몽념과 왕분이 이 만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인기 캐릭터들인데 영화 3편까지도 등장하지 않는다면.... 그 정도가 아니라 영화가 3편까지만 만들어지고 몽념과 왕분은 아예 등장하지조차 못한다면 이 두 캐릭터를 너무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거의 좌절감까지 느끼게 될 테니까요.
뭐 이미 마양 전투는 3편으로 미뤄졌기 때문에 몽념과 왕분은 4편부터 등장하거나, 영화가 3편으로 끝나서 아예 등장도 못하게 될 수 있는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겠죠. 그래도 1편과 2편이 모두 흥행 수익 50억 엔이 넘는 대박을 터트렸으니 절대 3편으로 끝내지 않고 5부작, 길게는 7부작까지도 제작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킹덤이 최근에는 독자들에게 안 좋은 반응도 많이 나오고 있지만 합종군 편까지는 새로운 에피소드가 나올때마다 이전 에피소드를 뛰어넘는 재미를 보여주었습니다. 그야말로 매화가 ‘지금이 최고 재밌다’는 느낌을 줄 정도였어요. 다르게 말하면 합종군 편까지 가장 앞부분 내용이 가장 재미가 덜하다는 것이죠.
즉 만약 영화가 합종군까지 만들어진다면 지금까지 만들어진 1편과 2편이 영화 전체 시리즈 중에서 가장 재미가 덜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킹덤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빨리 마양 전투, 산양 전투, 합종군편을 보고 싶다는 열망에 빠졌지만 가장 초반 에피소드인 성교의 반란과 사감평원 전투는 그다지 기대를 가지지 않았습니다. 만화를 읽을 때도 5권까지는 조금 시큰둥하게 읽으면서 ‘이 만화가 왜 이렇게 인기가 있는 거지’ 하고 의아해했으니까요.(다만 ‘꼭두각시 서커스’처럼 20권이 넘어가서야 재미를 느낀 케이스도 있으니까 명성 있는 인기 만화의 실체를 초반에 성급하게 판단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당연한 얘기지만 현재까지 나온 영화 1편과 2편을 엄청 재미있게 본 건 아닙니다. 하지만 원래 미친 듯이 재미있게 본 만화 원작 일본 영화 자체가 드물기도 하고 이 정도면 충분히 상위권의 재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1편의 경우 원작에서도 그다지 재미있게 본 내용은 아니라서 기대가 거의 없었는데 그래서인지 상당히 괜찮게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2편의 경우 원작에서는 반나절에 끝나는 전투를 이틀로 분량을 늘렸기 때문에 중간에 꽤 지루해지는 부분도 있었는데 1편은 원작 5권까지의 내용을 영화 한 편 분량으로 딱 맞게 정리해서 크게 빠지거나 추가된 내용 없이 원작과 동일한 흐름으로 잘 담아냈습니다. 1편에서는 킹덤의 최고 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본격적인 대규모 전투씬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액션보다는 캐릭터를 감상하는데 좀 더 집중했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확실한 합격점을 줄만합니다.
일단 캐스팅이 매우 잘되었죠. 가장 중요한 이신 역의 야마자키 켄토는 일본 영화계에서는 만화 원작 캐릭터를 엄청 많이 연기한 결로 유명한데 특히 순정만화 남주인공 캐릭터를 많이 연기해서 이런 액션 캐릭터를 잘 소화할지 의구심이 조금 있었는데요. 그런데 막상 영화에 등장하는 이신을 보니 야마자키 켄토 이상의 완벽한 캐스팅은 없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습니다. 이신이 소년만화 주인공 스타일의 무대뽀 머슬 액션 캐릭터이긴 하지만 체구가 우락부락하지 않고 호리호리한 스타일에(처음에는 아예 어린 소년으로 등장하니까요) 제법 샤프하게 디자인된 캐릭터라서 뭔가 순정만화 재질의 외모인 야마자키 켄토가 묘하게 이신의 디자인에 찰떡같이 어울리더군요. 목소리와 발성도 남자답게 묵직한 소리가 제대로 나오고 액션 연기에서 위압감도 잘 연출했습니다. 순정만화의 나약하고 여리여리한 캐릭터부터 이렇게 겁 없이 날뛰는 강렬한 액션만화 캐릭터까지 완벽하게 소화하는 걸 보면 야마카지 켄토가 확실히 재능이 넘치는 배우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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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료초 역의 하시모토 칸나도 만화 캐릭터 연기에는 정평이 나있는 배우인데 사실 하료초라는 캐릭터의 외형 디자인을 보면 캐스팅 제의가 오기도 전부터 하시모토 칸나가 ‘이건 나다’ 하고 알아서 튀어나와야 하는 수준이었죠. 그러니까 하시모토 칸나의 대표 캐릭터인 은혼의 ‘카구라’와 똑같은 겁니다. 물론 언젠가는 칸나도 나이를 먹고 이런 포지션에서 뒤를 이을 여배우가 나오긴 할 테지만 어쨌든 지금 시대에는 하료초는 무조건 하시모토 칸나라고 정해진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딱히 평가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자기한테 딱 맞은 옷을 입은 듯이 완벽하게 하료초를 연기하는 하시모토 칸나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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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원작에서 하료초가 굉장히 어중간한 캐릭터인데 성교의 반란까지는 난장판 상황에 함께 어울리다가 신이 전쟁터로 나가고부터는 역할이 없어서 붕뜨게 되고 결국 하료초도 전쟁터로 따라가기 위해 (무력으로는 안되니까)군사가 되는 공부를 하게 되는데요. 그런데 사감평원 전투, 마양 전투, 산양 전투까지 하료초는 계속 군사 공부하느라 빠져 있고 산양 전투가 끝난 후에 군사가 돼서 전쟁터에 합류합니다. 즉, 그나마 비중이 있었던 영화 1편과 달리 영화 2편과 3편에서는 하료초의 비중이 진짜 안습이 될게 뻔히 예상되었고 실제로 2편에서 하료초가 등장하는 장면들이 정말 안습입니다. 원래는 하료초가 있을 장소도 아닌 곳에 뻘쭘하게 세워놓고 리액션 셔틀을 시키고 있더군요. 이래서 이 영화의 후속 시리즈가 빠르게 나와야 하는 거예요. 4편부터 몽념과 왕분이 등장하고 하료초도 다시 비중이 생길 테니까요. 그전까지는 뭐 눈물 나게 겉절이 역할을 하고 있는 하시모토 칸나의 모습을 볼 수밖에 없겠죠.
영정(진시황) 역에도 요시자와 료라는 잘 나가는 배우를 캐스팅했는데 사실 영정이 원작 만화에서 이신과 나란히 더블 주인공인 비중처럼 보이면서도 실제 전쟁터에 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합종군편에서는 대활약하지만) 뭔가 포지션이 애매합니다. 2편에서 사감평원 전투의 비중을 늘려서 강외의 서사를 중간에 끼워넣은 걸로 짐작할수 있듯이 영화는 계속 전쟁 위주로만 내용을 보여줄거 같은데 그러면 영정이 중심이 되는 진나라 내부 권력 암투는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애초에 영정과 여불위가 본격적으로 대등하게 권력 싸움을 벌이게 되는 건 원작에서도 합종군 이후에 전개되는 내용이거든요. 영화가 합종군 편으로 종결될 거라고 예상하면 아예 여불위와의 대립은 비중이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높고 그러면 영정의 비중도 마찬가지로 줄어드는 거겠죠. 실제로 2편 마지막 장면에 여불위 세력이 등장할때 여씨 사주 중에서 이사와 채택은 나오지도 않고 창평군과 몽무만 나오더군요.(그런데 창평군 배우가 타마키 히로시라서 이건 좀 놀랐습니다.) 아무튼 제가 볼때 요시자와 료 역시 하시모토 칸나처럼 겉절이 병풍 리액션 셔틀 역할을 하다가 마지막 합종군 편에서 큰 임팩트 하나 보여주는 걸로 끝나게 될 것 같습니다.
1편에서 또 한 명 정말 마음에 들었던 캐스팅은 역시 양단화 역의 ‘나가사와 마사미’입니다. 킹덤은 역사에 기록된 유명한 장수들 중에서 몇 명을 여자로 바꿔서 등장시켰는데 그 대표적인 캐릭터가 양단화입니다. 양단화가 여자인데도 싸움도 엄청 잘하고 정말 말도 안되는 능력치의 장수인데 캐릭터 디자인은 킹덤 최고의 미녀라고 해도 될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외모와 장수로서 강력한 포스를 동시에 보여주는 역할이라 여배우에게는 꽤 어려운 도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나가사와 마사미가 그야말로 완벽하게 해냈습니다. 1편 내용이 이후 에피소드들에 비해 별로 재미없다고 했지만 나가사와 마사미의 양단화가 비중 있게 등장한다는 사실만은 2편과 이후 나올 3편, 4편보다 더 나은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로지 나가사와 마사미 때문에 영화 2편보다 1편에 더 높은 점수를 줄 수도 있을 정도예요.
사실 2편이 1편보다 별로라는 건 좀 의외의 감상이긴 합니다. 앞에서 언급했듯 저는 원작 만화를 읽을 때도 영화 1편의 내용은 별로 재미가 없었고 영화 2편 내용부터 미친 듯이 몰입해서 읽었거든요. 확실히 내용적으로는 2편이 더 재미있긴 하지만 원작의 흐름 그대로 영화에 담아낸 1편과는 달리 2편에서는 내용을 어거지로 늘려서 매우 지루해지는 구간이 있습니다.
이게 사토 신스케 감독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인데 액션 연출은 박진감 넘치게 잘하는 감독이지만 감정적인 장면과 서사를 진행할 때는 한없이 영화가 늘어지고 지루해집니다. 이런 장면들의 연출을 너무 못해요. 사토 신스케가 현재 일본 상업영화계에서 제일 잘 나가는 감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업계의 위치에 비해서 실력은 부족한 감독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정도 수준도 안 되는 감독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사토 신스케가 일본 영화계에서 이렇게 잘 나갈 수 있는 거겠지만요.
사실 2편은 늘어지는 내용도 문제지만 제가 가장 실망한 건 히로인인 ‘강외’입니다. 2편부터 등장하는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캐릭터라서 정말 기대를 했는데 하시모토 칸나와 나가사와 마사미와는 달리 강외를 연기한 세이노 나나는 역할에 별로 어울리는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세이노 나나가 요즘 대세 여배우들 중에서도 뭔가 액션 연기를 잘하는 강단 있는 이미지라서 강외 역으로 캐스팅된 거 같은데 강외의 이미지가 그냥 단순하게 싸움 잘하는 여전사 이미지는 아니거든요. 체구도 작은 편이고 얼굴도 동글동글하게 귀여운 타입인데 눈매는 부리부리한... 아무튼 세이노 나나의 이미지와는 굉장히 동떨어진 캐릭터예요. 하료초의 비중이 줄고 양단화는 나오지도 않아서 2편에서 강외가 사실상 단독 여자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기대에 많이 미치지 못해서 2편이 전체적으로 실망스러운 느낌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도저히 못 볼 수준인 건 아니고 앞으로 3편과 4편에 계속 비중 있게 등장할 테니 세이노 나나의 강외 캐릭터에 적응하고 계속 봐야겠죠. 강외의 트레이드 마크인 머리 두건이 정말 어울리지 않던데 사실 강외가 원작에서 머리 두건을 풀고 있는 모습도 많이 나오기 때문에 너무 원작 캐릭터 디자인을 똑같이 코스프레하는데 집착하지 말고 융통성 있게 세이노 나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스타일링으로 어레인지를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왕기 장군은 원작 만화에서 엄청 멋있으면서도 뭔가 웃기는 컨셉의 캐릭터인데 영화에서 오오사와 타카오가 원작의 느낌을 굉장히 잘 살렸더군요. 1편과 2편까지는 별로 비중도 없지만 솔직히 연기하는데 제일 고생한 배우가 오오사와 타카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진짜 최강급 무력의 대장군인 왕기가 1편에는 팔뚝에 근육도 없이 물살이 출렁이는 모습으로 나와서 조금 지적이 나왔었는데 2편에서는 팔 근육이 두껍게 탄탄한 상태로 등장하더군요. 배우가 실제로 운동을 한 건지 아니면 CG나 분장 같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요.
표공 장군 역에는 일본에서 엄청 위상이 높은 대배우인 토요카와 에츠시가 등장해서 상당히 놀랐습니다. 다만 표공도 왕기 못지않게 만화적으로 굉장히 독특한 컨셉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인데 왕기만큼 원작의 느낌이 잘 표현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토요카와 에츠시라는 대배우의 포스가 기본적으로 느껴지고 원작과는 조금 달랐지만 표공이라는 대단한 장수의 임팩트가 꽤 인상 깊게 그려졌다고 생각합니다.
그 외 비신대 부대원들(비신대가 정식으로 만들어지는 건 3편에 나올 마양 전투부터지만)도 대부분 캐스팅이 잘되었습니다. 특히 미평 역의 오카야마 아마네는 하료초 역의 하시모토 칸나와 마찬가지로 ‘요즘 시대에 이런 역할이라면 딱 나다’ 하고 알아서 튀어나와야 하는 수준이죠. 사실 하료초보다도 내내 이신과 함께 전쟁터에 나가는 미평이야말로 비중이 어마어마하게 큰 캐릭터라서 오카야마 아마네라는 찰떡 배우가 캐스팅된 게 아주 흡족하게 느껴졌습니다. 미평이 킹덤의 핵심 감초 조연 캐릭터라서 2편에도 맹활약했고 이후 작품들에서도 꾸준히 좋은 활약을 보여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택계 역에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의 주인공이었던 하마츠 타카유키가 캐스팅된 것도 좋았습니다.
전반적으로 강외를 제외하면 아쉬운 캐스팅은 없다고 할 수 있고 사토 신스케 감독이 액션 연출은 잘하기 때문에 확실히 만화 원작 실사 영화 중에서는 볼만한 완성도로 나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2편의 후반에 조금 불안감이 생겼는데 이신이 마양전투까지는 보병 부대를 지휘하지만 산양전부터 천인장이 되면서 기병으로 전장을 누비게 되거든요. 2편에 나오는 사감평원 전투에서 마지막에 잠깐 말을 타고 싸우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기마 액션의 연출이 뭔가 어설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 전쟁에서 기마의 위력은 보병을 압도하지만 액션 장면의 연출에서는 아무래도 하체가 어정쩡하게 고정되어 있다 보니 땅에 발을 딛고 싸우는 상황보다 액션의 다이나믹한 역동성이 조금 떨어집니다. 물론 이신이 기병으로 전쟁에 나가게 된 후에도 윤호나 방난 같은 적과 싸울 때 말에서 내려서 싸우기는 하는데 기본적인 전장의 액션은 계속 말을 탄 상태일 테니 다음 편부터는 사토 신스케 감독이 박진감 넘치는 기마 액션을 위한 연출을 꽤나 고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 4편부터 왕분이 나오면 그 특유의 화려한 기마 창술을 어떻게 표현할지 많이 연구해야 하겠죠.
제가 이 주제의 포스팅을 쓸 때 늘 하는 얘기지만 원래부터 눈부신 완성도의 만화 원작 일본 실사 영화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고 마치 사토 신스케가 그런 어중간한 역량으로도 일본에서 가장 잘 나가는 상업영화감독으로 우뚝 선 것과 같이 킹덤 정도의 재미와 완성도면 ‘이 정도가 최선이다’라는 느낌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액션 영화를 보는 관점에서 완성도를 논한다면 분명 지적할 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일본의 만화 원작 실사 영화라는 범주에 묶어 상대적으로 평가하자면 킹덤은 분명 최상급 퀄리티의 작품입니다. 그리고 원작 내용 기준으로 1편과 2편은 애들 장난 수준이라고 할 정도로 3편부터 미친 듯이 재미있는 전개와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계속 나오기 때문에 앞으로 나올 후속작들에도 더 큰 기대감을 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1편이 성공하고 2편이 나오기까지 3년에 걸렸는데 합종군 에피소드까지 모두 영화로 만들려면 갈 길이 머니까(저는 7부작까지 예상하고 있습니다) 다음 편 제작을 서둘러 진행했으면 좋겠네요. 1편, 2편이 모두 50억 엔 이상 흥행을 했는데 머뭇거릴 이유가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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