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라사와 나오키 浦沢直樹
당연한 얘기지만 여러 편의 히트작을 배출한 유명 인기 만화가들은 대부분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유명한 만화가들에 대해 굉장하다, 놀랍다, 위대하다 는 평가를 구태여 더해봐야 별 의미도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듭니다만, 우라사와 나오키에 대해서는... 굉장하고, 놀랍고, 위대하고.... 이 정도가 아니라. 뭔가 더 엄청난 표현까지도 써야할 것만 같네요. 그 정도로 놀라운 만화들을 그려낸 엄청난 만화가니까요.
역대급으로 평가받을 뛰어난 걸작 만화들을 한두 작품도 아니고 두 자리 수에 가깝게 그려냈다는 점도 우라사와 나오키의 위대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양과 질,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압도적인 성과를 이룩했다고 볼 수 있겠죠. 마스터 키튼, 해피, 몬스터, 20세기 소년, 플루토.. 이런 걸작들을 하나만 만들어도 만화가로서 엄청난 명성을 쌓을 수 있는데 그는 커리어 내내 이런 작품들을 끊임없이 만들어 냅니다. 한편 한편의 분량이 짧은 것도 아니에요. 대부분 단행본 20권 정도는 되는 장편 연재작들입니다. 그야말로 커리어 내내 쉴 틈 없이 작품 활동을 해온 만화가입니다.
만화가가 쉬지 않고 연재를 계속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전에 뛰어난 히트작을 그려낸 만화가라도 새로운 작품을 연재했을 때 이전 만큼 히트한다는 보장은 결코 없거든요. 히트는 고사하고 아예 콘티 단계에서 커트 당해서 신작을 연재조차 해보지 못하는 경우가 매우 흔해요. 히트작을 그려낸 인기 만화가라 하더라도 말이죠. 하지만 우라사와 나오키에게는 전혀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게 정말 놀라운 일인 겁니다. 당연하다는 듯이 그리는 작품마다 다 히트를 친다는 게... 하지만 우라사와 나오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일. 어떤 소재와 내용의 작품을 그려도 엄청나게 재미있는 걸작으로 완성하니 본인 의지로 쉬지만 않는다면 언제나 작품 연재를 하고 있을 수 밖에 없는거죠. 고맙게도 그는 거의 쉬지 않고 계속 만화를 그렸습니다. 그래서 저렇게 많은 엄청난 걸작들을 남길 수 있었던 거고요.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들은 재미있습니다. 어떤 특별한 강점 한 가지 또는 몇 가지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만화 라는 매체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재미의 요소를 빠짐없이 다 갖추고 있습니다. 육각 그래프로 평가하자면 거의 완전에 가까운 육각형 그림이 나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라사와 나오키는 다양한 소재의 작품을 그렸습니다. 일단 히트 만화의 왕도라고 할 수 있는 스포츠 열혈 만화를 그렸고요. ‘야와라’와 ‘해피’ 모두 스포츠 만화에서 손꼽히는 명작입니다. ‘몬스터’라는 스릴러 장르의 걸작도 만들었죠. 영화나 소설이라면 모를까, 장편 연재 만화에서 이런 스릴러 장르의 걸작이 나오는 건 드문 일입니다. 20세기 소년이나 플루토 같은 SF 장르의 작품도 만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우라사와 나오키의 최고작이자 대표작을 꼽자면 ‘20세기 소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외 마스터 키튼이나 몬스터도 후보로 거론되는데 저 개인적으로는 역시 ‘20세기 소년’이 최고라고 생각해요. 가장 큰 이유는 이런 종류의 만화가 정말 드물다는 사실입니다. 스릴러와 SF 아포칼립스가 결합된 독특한 장르이고 이야기의 스케일도 정말 크죠.
창작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재능은 역시 뛰어난 상상력입니다. 하지만 그 상상력이 완전한 ‘무’에서 나오지는 않습니다. 창작을 하는 창작자는 자기 인생의 경험과 본인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창작의 재료를 끄집어 냅니다. ‘20세기 소년’이 특히 높이 평가받아야 할 이유는 작가가 스스로 본인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진정성이 느껴지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해피’의 테니스 천재 소녀나 ‘몬스터’의 천재 뇌외과의 같은 주인공 보다는 ‘20세기 소년’의 켄지같은 주인공이 작가의 진정성이 좀 더 느껴지고 독자들도 더욱 몰입할 수 있는 스타일의 주인공이죠. 켄지도 물론 비범한 인물이긴 합니다. 20세기 소년에서 일어난 그 엄청난 사건들이 결국 켄지로부터 시작되었고 켄지에 의해 정리되었으니까요. 하지만 피의 그믐날 사건이 터지기 전 켄지의 삶의 족적을 보면 밴드를 하다가 크게 성공을 못하고 결국 가업인 술가게를 이어받아 운영하다가 시대의 변화에 맞게 술가게를 편의점으로 바꾸는 등 그야말로 평범한 일반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죠. 그렇게 평범한 삶을 살던 켄지가 벽장에 박아두었던 기타를 꺼내 들고 흐물흐물해진 손끝의 고통을 참으며 미친 듯이 밤새도록 기타 연주를 해댄 후 “내가 지구를 구하는 것인가” 하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장면은 우라사와 나오키 만화의 최고 명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켄지와 작가 본인을 강렬하게 일체화 시켜주는 요소는 작중 켄지가 작곡한 노래인 ‘밥 레논’입니다. 20세기 소년에서 켄지가 밥 레논을 처음 연주하는 장면에 가사와 함께 곡의 코드가 모두 삽입되어 있습니다. 음악을 소재로 하더라도 만화는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매체이기 때문에 작중 등장하는 오리지널 곡을 직접 작곡하는 케이스는 별로 없습니다.(차후 애니메이션 화가 되면 또 얘기가 달라지지만요) 하지만 20세기 소년에서 정말 중요한 요소인 켄지의 자작곡 ‘밥 레논’은 우라사와 나오키가 모두 직접 작곡을 했고 그 코드를 고스란히 가사와 함께 만화책 지면에 넣어버렸죠. 이 곡이 정말 중요한 곡이기 때문에 우라사와 나오키는 직접 곡을 연주하고 노래를 불렀고 그 녹음본을 단행본 초회 한정판에 넣어서 독자가 들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켄지가 작사 작곡하고 부른 노래를 작가가 직접 작사 작곡을 하고 부르기까지 했으니 이 만큼 주인공과 작가의 일체감을 끌어올리는 작품 속 아이템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라사와 나오키는 훌륭한 스토리 뿐 아니라 뛰어난 작화력과 표현력으로도 최고의 평가를 받는 작가입니다. 일단 그림체가 매우 개성적입니다. 카이지의 작가 후쿠모토 노부유키처럼 한 컷의 그림만 봐도 작가가 누군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죠. 다만 작화력 자체는 후쿠모토 노부유키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간결하고 날렵한 그림체인데 모작도 쉽지 않을 정도로 작가 만의 독특한 감각이 살아 있습니다. 액션이나 스포츠 장면에서의 박진감 넘치는 연출도 일품이고요. 말했듯이 육각형 그래프의 완전체 만화가이니... 만화가의 가장 기본 자질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림 실력 역시 최상인 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죠.
왕성한 활동을 하며 최고의 작품들을 많이 그려낸 우라사와 나오키 이지만 그 만큼 많은 세월이 흘렀고 이제 그도 60대의 원로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는 최근에 ‘아사도라’라는 제목의 신작을 그렸는데 어째서인지 8화 만에 종결을 해버렸고 이게 완결이 아니라 ‘1부 종료’라는 형태로 애매하게 끝났습니다. 그렇게 1부를 종결한 후 2년이 지나도록 연재 재개는 되지 않고 있습니다. 보통 직장인이라면 슬슬 은퇴를 준비할 나이이고 만화가 라는 직업 자체가 자기 몸 갉아먹는 일이기에 사실 60이 넘는 만화가에서 왕성한 활동을 기대하는 건 역시 무리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걸작을 만들어준 것만으로도 우라사와 나오키는 자기 할 일을 넘치게 해낸 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저를 포함한 모든 만화 팬들은 언제나 그의 신작 소식에 대한 관심을 끊지 않을 것입니다.
대서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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