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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이야기

[만화가 이야기] 후지타 카즈히로 藤田和日郎

by 대서즐라 2021.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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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타 카즈히로(藤田和日郎)는 소년 만화의 액션-배틀물 장르에서 가장 개성 있는 작품을 그리는 만화가입니다. 드래곤볼이 단단하게 기반을 다져놓은 후 원나블 시대를 거치면서 소년 만화 배틀물 장르가 본격적인 대세를 타게 되었는데, 워낙에 이 장르가 성행하고 수많은 작품들이 쏟아지다 보니 다른 작품들과의 차별화를 이루기 위해 작가들의 고심이 깊어졌죠. 하지만 그렇게 차별화를 위해 노력함에도 대부분 참신함보다는 억지스러움이 느껴지는 괴상한 설정들 뿐이고 전부 비슷비슷한 아류작들로 보이는 상황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후지타 카즈히로의 작품은 그 많은 배틀 만화들 중에서도 확실히 차별화되는 독보적인 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원나블 시대 이전부터 그는 자기만의 배틀 장르 세계를 확실하게 구축하고 있었죠. 그의 대표작인 ‘요괴소년 호야’는 드래곤볼의 후반부와 동 시기에 연재된 작품입니다.

 

요괴소년 호야

 

이번 포스팅에서는 요괴소년 호야, 꼭두각시 서커스, 쌍망정은 부숴야 한다 등 여러 편의 명작 배틀 만화를 그린 만화가 후지타 카즈히로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작품들이 가진 유니크한 개성은 어떤 것이며 독자들을 사로잡는 매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강렬’함을 넘어선 ‘격렬’한 작화 스타일

 

만화가의 개성이 가장 뚜렷하게 표출될 수 있는 요소는 당연히 작화입니다. 후지타 카즈히로의 작화는 매우 개성적입니다. 단순히 만화가로서도 그렇지만, 소년 배틀물 만화라는 장르에 국한하자면 더욱 그 개성이 눈에 띕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조금은 호불호가 갈리는 스타일이에요. 작화에 대한 호불호는 그대로 그의 작품 자체에 대한 호불호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의 대표작인 ‘요괴소년 호야’와 ‘꼭두각시 서커스’는 분명 ‘히트작’이라고 부를 만한 작품이고 특히 흥행 여부와 무관하게 작품성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역대급 명작’의 반열에도 자주 들고 있지만, 뭔가 일반적인 소년 만화의 히트작과는 결이 다른 느낌입니다. 대중적으로 크게 선호된다기보다는 열렬한 마니아 층의 지지가 강한 작품이랄까요. 그런 면에서는 ‘죠죠의 기묘한 모험’과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원피스 같은 대중적인 히트작과 죠죠의 기묘한 모험 같은 마니아적인 작품의 중간 정도가 후지타 카즈히로의 대표작들의 위치인 것 같습니다.

 

꼭두각시 서커스

 

호불호가 갈리는 개성적인 작화 스타일의 만화가는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 후지타 카즈히로의 작화는 처음 접했을 때는 조금은 거부감을 느낄 수 있지만 꽤 빠르게 적응이 되는 작화입니다. 일반적인 소년 만화의 작화 스타일 트렌드에서 벗어나 있기에 낯설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지, 막상 집중해서 읽어보면 배틀물이라는 장르에도 잘 어울리고 멋짐, 섹시함(여자 캐릭터), 유머 등 소년 만화의 필수적인 요소들도 잘 살아 있는 작화거든요.

 

후지타 카즈히로의 작화 스타일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격렬함’입니다. 차분하게 정리되지 않고 작화가 미쳐 날뛰는 듯한 느낌이 들죠. 그래서 때로는 장면 장면들이 난잡하게 느껴질 때도 있는데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격렬한 작화 스타일을 통해 얻게 되는 핵심적인 장점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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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장점이 세 가지라고 생각하는데요. 첫 번째는 말할 것도 없이 액션 장면에서의 박진감입니다. 만화는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와는 달리 움직임이 없는 고정된 이미지를 보여주기 때문에 이런 고정된 이미지로 동적인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표현 기술이 발달해 왔습니다. 후지타 카즈히로의 작화와 표현 기술은 흔히 말하는 대로 ‘캐릭터가 지면을 뚫고 나오는 듯한’ 박진감과 생동감을 느끼게 만듭니다. 특히 격렬한 배틀 장면에서의 타격감이 일품이고 이런 장점들이 특히 그의 만화가 배틀 장르에서의 강점을 가질 수 있는 핵심적인 이유가 됩니다.

 

두 번째 장점은 감정표현입니다. 아마 후지타 카즈히로의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최고의 명장면’은 꼭두각시 서커스에서 시로가네(엘레오놀)가 가토와의 사랑에 기쁨을 느끼며 ‘너무너무 좋아’라고 활짝 웃는 장면일 겁니다.

 

꼭두각시 서커스 명장면

 

이렇게 마음을 울리는 감정의 요소는 소년 만화 뿐 아니라 모든 장르의 만화, 아니 모든 종류의 창작 콘텐츠에서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후지타 카즈히로는 심도 깊은 스토리 빌드업으로 차근차근 감정선을 구축해나가다가 클리아막스에서 임팩트 있는 한 방을 터트리는 전개를 매우 잘합니다. 이렇게 구축된 감정선이 최고의 효과를 발휘하게 만드는 것이 그의 격렬한 작화입니다. 배틀도 격렬하게. 감정 표현도 격렬하게. 이런 개성은 만화계 전체에서도 굉장히 드문 것입니다.

 

세 번째 장점은 후지타 카즈히로가 선택하는 소재와 아이디어의 특징과 관련이 있습니다. 소년 배틀물 장르이긴 하지만 그의 작품은 묘하게 호러 요소도 담고 있는데요. 꽤나 살벌하고 무서운 아이디어나 내용 전개들이 종종 등장하죠. 거칠고 절제되지 않은 작화 표현은 살발한 소재와 내용을 표현하는데도 상당히 궁합이 잘 맞습니다. 사실 같은 소재라도 다른 만화가와 달리 후지타 카즈히로가 그리면 묘하게 공포스러운 느낌이 생기는 것 같아요. 이런 공포스러운 느낌이 그의 작품을 다른 소년 배틀물 만화와는 차별화되는 색다른 개성을 부여해주는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입니다.

 

호러 느낌 작화

 

확실히 호불호가 갈리고 장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원래 작화야말로 모든 작가들의 가장 핵심적인 개성이자 정체성이고 특히 후지타 카즈히로에게는 더 그렇습니다. 그의 독특한 작화 스타일은 작품의 내용과 장르, 심지어 대중적인 히트의 정도까지 결정지은 핵심적인 요인이 되었거든요. 그리고 수많은 만화 팬들이 그의 작품을 ‘특별하게’ 느끼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할 것입니다.

 

 

 

유니크하고 완성도 높은 세계관과 설정

 

소년 배틀물 만화로서 후지타 카즈히로의 작품은 단순히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된 정도를 넘어서서 매우 유니크하다고 생각합니다. 원나블 이후 다양한 배틀 만화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온갖 다채로운 세계관과 배틀 요소의 아이디어, 개념들이 등장했지만 특별하고 참신하다고 느껴지는 것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기존 아이디어의 재탕 내지는 티 나게 변형된 아류이거나, 조금 독특하다 싶은 것들은 너무 억지스러운 설정이거나 내용상 앞뒤가 맞지 않는 오류 설정이 많았죠.(가장 유명한 원피스의 ‘패기’ 설정부터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후지타 카즈히로의 배틀 만화는 아주 독특하고 참신하면서도 빈틈이 거의 없는 탄탄한 설정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의 첫 번째 히트작인 ‘요괴소년 호야’는 딱히 아이디어가 참신한 건 아닙니다. 요괴 배틀은 서유기나 봉신연의 같은 수백 년 전 고전문학에도 등장할 만큼 오래된 소재니까요. 하지만 요괴와 현대 문명이 공존하는 흥미로운 세계관을 후지타 카즈히로만의 방식으로 완성도 높고 탄탄하게 구축한 것은 높게 평가할만합니다. 특히 인간과 요괴 사회의 다양한 집단과 공적 기관, 민간 기관의 관계성을 나름의 현실성을 바탕으로 흥미롭게 설정한 부분은 감탄이 나올 정도입니다. 이런 초자연적인 세계관에 현실적인 공적 기관의 관계성 설정을 접목시키는 방식은 후지타 카즈히로 작품의 가장 독특한 설정상의 개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괴소년 호야 애니메이션

 

‘꼭두각시 서커스’의 서커스 인형 배틀도 소재 자체만 놓고 보면 놀랍도록 참신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확실히 배틀 만화에서는 드문 소재이고 무엇보다 인형 배틀 자체가 배틀 만화에서 효과적으로 표현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소재입니다. 그리고 인형 배틀 소재가 아주 참신하지는 않더라도 이 소재를 둘러싼 배경 스토리의 완성도는 엄청난 수준입니다. 조나한 병, 부드러운 돌, 생명의 물 등 연금술을 바탕으로 한 신묘한 아이디어의 기본 설정들은 꼭두각시 서커스의 전체 스토리에 경이로운 완성도를 부여합니다. 단행본 20권이 넘어가고 본격적으로 배경 스토리와 설정들이 드러나는 시점부터 그야말로 숨 막히는 몰입감을 선사하는 압도적인 전개가 끝없이 이어지죠.

 

물론 이 작품은 20권을 못 넘기고 하차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꼭두각시 서커스는 초반을 넘기기가 버겁기로 유명한 작품인데, 눈 딱 감고 단행본 10권까지만 버텨라... 라는 조언이 일반적으로 나오고는 있지만 저는 이 작품의 진가가 선명히 드러나는 것은 30권까지 읽은 이후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이 정도까지 되면 작품의 진가가 내용이 한참 진행된 후에야 겨우 드러나는 것이 그 자체로 작품의 큰 단점이라고 해도 할 말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긴 과정을 통과하고 나면 소년 배틀 만화 장르에서는 가히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는 엄청난 작품성과 감동적인 스토리를 볼 수 있게 됩니다. 누가 뭐래도 이 작품은 걸작입니다.

 

꼭두각시 서커스 애니메이션

 

월광조례는 제가 보지 않은 작품이라서 넘어가고, 가장 최근작인 ‘쌍망정은 부숴야 한다’의 경우 소재 자체의 아이디어가 굉장히 놀랍습니다. ‘외계인 침공’도 창작물에서 꾸준히 시도되고 연구되어 온 소재인데 ‘쌍망정은 부숴야 한다’에서 코즈믹 호러적인 발상을 소년 배틀 만화에 매끄럽게 접목시킨 스토리는 매우 참신한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 이 작품은 단순한 외계인 침공물이 아니라 헌티드 하우스 풍의 퇴마물과 사이코 드라마적인 요소도 갖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꼭두각시 서커스’와는 달리 초반부터 몰입이 굉장히 잘 됩니다. 이 작품의 초반부 진행에서 작가 스스로가 자신의 대표작인 꼭두각시 서커스의 단점과 한계를 극복하려 노력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쌍망정은 부숴야 한다

 

이렇듯 후지타 카즈히로의 작품들은 소재 자체만 놓고 보면 아주 참신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소재들을 배틀 만화라는 장르에 매끄럽게 접목시켜 탄탄하고 완성도 높은 세계관과 설정을 구축해내는 방식은 매우 참신하고 유니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런 소재들의 활용 방식에서는 기발함과 참신함만이 핵심적인 열쇠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그런 방향에 집중하다간 정말 억지스럽고 현실성이 없는 내용과 설정이 나올 수가 있어요. 후지타 카즈히로는 그보다는 오류가 없고 독자가 설득력 있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정과 세계관 자체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집중했습니다. 이러한 방향성으로 완성된 유니크함은 그의 작품들이 단지 다른 작품들과의 차별화뿐만 아니라 압도적인 재미와 몰입도를 가지는 걸작이 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소년 배틀 만화계의 러브크래프트

 

앞에서 살짝 언급했던 내용인데 후지타 카즈히로의 작품은 배틀 장르이면서도 호러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으며, 특히 거대한 규모의 서스펜스와 미스터리 내용을 다루는 H.P. 러브크래프트의 작품들과 닮은 면이 있습니다. 사실 러브크래프트는 호러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에 영감을 준 작가입니다. 미국 코믹스의 히어로물 등 액션 배틀 장르의 작품들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죠.

 

사실 배틀 만화에서 벌어지는 파괴하고 죽이는 행위와 현상들은 평범한 인간의 관점에서는 매우 공포스러운 상황입니다. 그것도 러브크래프트 적인 코즈믹 호러의 상황들이죠.

 

후지타 카즈히로의 작품에서 가장 러브크래프트적이라고 느껴지는 내용은 역시 ‘요괴소년 호야’에 등장하는 최종보스 캐릭터인 ‘백면인’입니다. 백면인은 모든 창작물에 등장하는 최종보스 캐릭터 중에서도 그 포스와 공포감이 거의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 캐릭터입니다. 이 정도로 코즈믹 호러적인 공포의 존재를 완성도 높게 표현해낸 작품은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특히 요괴소년 호야가 단행본 34권 분량의 긴 내용으로 백면인의 배경 스토리와 설정이 탄탄하게 빌드업이 되어 있기에 최후반부에 드디어 백면인이 눈을 뜨고 최종보스로서 그 무시무시한 실체를 드러내는 장면의 공포스러운 포스는 마땅한 비교대상 조차도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수준입니다. 이런 코즈믹 호러적인 표현을 소년 만화에서 그려냈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백면인

 

그리고 후지타 카즈히로의 가장 최근작인 ‘쌍망정은 부숴야 한다’는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우주에서 온 색체’와 내용이 상당히 유사합니다. ‘우주에서 온 색체’에서 러브크래프트가 우주에서 온 공포스러운 존재를 ‘색’으로 표현한 것은 굉장히 참신하고 인상적인 발상이었는데요. ‘쌍망정은 부숴야 한다’에서 사이코 천재 화가가 등장해 액체 형상으로 된 외계의 물질(지구를 침공하러 온 외계인 그 자체인)에서 자기의 그림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색’을 발견하여 그것을 재료로 삼아 그림을 완성하고 그 그림을 통해 공포스러운 일들이 벌어진다는 전개는 분명 러브크래프트의 발상의 확장된 내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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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타 카즈히로가 실제로 ‘우주에서 온 색체’로부터 영향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러브크래프트가 호러 소설의 전설적인 작가이긴 하지만 의외로 그렇게 폭넓은 독자층을 가진 작가는 아니거든요. ‘우주에서 온 색체’가 러브크래프트의 걸작 중 하나이긴 하지만 후지타 카즈히로 같은 만화가가 당연히 읽었을 거라고 생각될 정도로 널리 알려진 작품은 아닙니다. 다만 그가 만약 이 소설을 읽었다면 색으로 표현된 공포스러운 존재라는 발상으로부터 그 색을 그림의 재료로 활용한 사이코 천재 화가의 등장과 그가 그린 그림을 통해 진정한 코즈믹 호러스러운 재난이 닥치게 된다는 전개를 만들어낸 것은 매우 후지타 카즈히로 답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독특하고 신선한 소재로부터 탄탄한 설정과 방대한 세계관을 쌓아 올리는 스토리 작법은 만화가 후지타 카즈히로의 최고의 장기입니다.

 

사이코 천재화자 데이도

 

 

 

후지타 카즈히로가 다른 유명한 소년 배틀물 만화의 작가들과 차별화되는 점은 연재를 지나치게 오래 끌지 않고 이야기를 깔끔하게 끝내는 법을 알며(그의 만화들이 작품성으로 높게 평가 받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이로 인해 대표작이라고 할만한 작품을 여러 편 남겼다는 사실입니다. 장기 연재된 유명한 배틀물 만화의 작가들은 결국 그 한 작품 외에 이렇다 할 다른 작품을 남기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특히 후지타 카즈히로는 모든 작품에서 천재적인 발상과 아이디어, 놀라운 세계관을 보여준 작가이기에 지금까지 공개된 작품들 말고도 앞으로 또 새로운 작품을 기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만화 팬들에게는 큰 기쁨으로 다가옵니다. 물론 후지타 카즈히로도 어느덧 60을 바라보는 나이이니 ‘쌍망정은 부숴야 한다’가 마지막 작품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부디 그가 건강하게 무병장수해서 은퇴할 때까지 소년 배틀물 만화의 걸작을 한 작품이라도 더 남겨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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