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가디슈 Review후기
모가디슈 – 오랜만에 극장에서 만난 대작 한국영화
극장가에 한국영화의 흥행 소식이 끊긴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나고 있습니다. 2021년 상반기에 개봉한 한국영화 중에서 단 편도 100만 관객 돌파를 하지 못했습니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극장에 관객의 발길이 상당히 줄어버린 것이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그런 상황에 맞물려서 큰 흥행을 노리는 국산 메이저급 상업영화들이 대거 개봉을 포기하거나 연기해버린 상황도 한국영화의 흥행 가뭄 현상을 더욱 가속화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 블랙위도우 같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극장에 정상 개봉하기 시작했고 코로나 시대 이전 같은 폭발적인 흥행은 아니지만 조금씩 극장 관객수가 회복하는 추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오랜만에 한국영화 대작도 드디어 극장에 개봉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입니다.
매년 여름 휴가철 시즌은 천만관객 영화가 가장 자주 나오는 한국 극장가의 최대 성수기 시즌입니다. 이런 시기에는 항상 대작급 한국영화가 개봉했었고 이 시기에 개봉하는 한국영화는 늘 ‘천만관객 기대작’으로 꼽혔습니다. 하지만 현 코로나 시국에는 천만은 고사하고 500만 조차 구름 위의 목표가 된 상황이며 모가디슈를 비롯한 이번 여름 시즌 한국영화 대작 라인업들도 예전 성수기 대작 라인업에 비해 큰 흥행의 기대나 대중적인 관심을 못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거기에 영화 자체를 놓고 봐도 코로나 시국이 아니었더라도 천만관객 예상급의 대작으로 보기에는 다소 부족해보이는 면이 있습니다.
사실 코로나 시국이 아니었더라면 모가디슈가 여름 시즌 개봉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무더운 여름에 아프리카 내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정말 어울리지 않으니까요. 거기에 높은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이고 총격전 등 액션 장면이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모가디슈는 오락용 액션영화라고 보기는 힘든 작품입니다. 그보다는 블러디 선데이나 아르고 같은 영화들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이 영화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아르고의 영향을 상당히 받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거기에 블랙호크다운도 당연히 참고가 되었을 것입니다. 영화의 시나리오만 읽어봐도 감독으로서는 참고를 위해 아르고와 블랙호크다운을 보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아르고와 블랙호크다운 정도로 유명한 영화를 영화감독인 류승완이 보지 않았을 가능성은 애초에 없다고 볼 수 있겠지만요.
블랙호크다운과 아르고는 영화사에 남을 만한 걸작들입니다. 모가디슈는 시나리오 상 이런 걸작들을 반드시 참고할 수 밖에 없는 영화이고 걸작을 참고하고 따라한다고 반드시 걸작이 나오는 법은 없지만 이 영화들을 잘 참고하는 것이 영화의 완성도에 큰 도움이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완성된 모가디슈의 완성도는 실제 어느 정도 수준일까요?
당연한 얘기지만 블랙호크다운이나 아르고에 비견될 걸작이 나오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좋은 소재와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상당히 볼만한 상업영화로 잘 완성해냈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르고와 매우 유사한 내용의 탈출극입니다. 아르고는 정말 끝내주게 재미있는 영화인데, 탈출 상황의 긴박함과 서스펜스를 거의 영화 교과서에 실릴만한 완벽하고 빈틈없는 연출로 완성해냈기 때문입니다. 배우 벤 애플렉이 감독으로서도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음을 이 영화로 완벽하게 증명해냈죠.(물론 아르고 전에 ‘곤 베이비 곤’과 ‘타운’으로 이미 연출 실력을 보여주긴 했지만요)
모가디슈는 아르고와 내용이 거의 동일합니다. 정치적 혼란 상황이 심각한 국가에 근무 중인 외교관들이 급박한 정치 상황의 악화로 인해 발생한 소요 사태 속에서 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목숨을 건 탈출극을 벌인다는 내용이에요. 탈출 과정에서 다른 나라의 외교관들과 협력하게 된다는 내용도 동일합니다. 아르고에서는 미국과 캐나다의 협력이 그려지고 모가디슈에서는 남한과 북한의 협력이 그려지죠.
물론 세부적인 내용에서는 차이가 있습니다. 아르고에서 위기에 처한 미국 외교관들은 정확히 본인들의 신분 때문에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애초에 미국 대사관과 그곳에 근무하는 직원들을 목표로 한 공격이 있었고 대다수 직원들이 인질로 잡힌 가운데 6명만이 탈출에 성공해 캐나다 관저로 피신하게 된 상황이에요. 그리고 이들을 구하기 위해 CIA 요원이 파견되어 이들을 대사관 직원이 아닌 영화 촬영 사전 조사를 위해 이란에 입국한 영화사 직원들로 위장시켜 탈출을 도모한다는 것이 아르고의 기본 줄거리입니다. 물론 실화이고요.
반면 모가디슈는 내전의 발발로 인해 도시의 치안과 시스템이 붕괴돼버린 위기 속에 가능한 소통 채널을 총동원해 출국 루트를 확보하고 탈출해야 하는 상황을 그립니다. 같은 탈출극이라도 아르고가 신분을 위장한 첩보물이라면 모가디슈는 격렬한 내전 상황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전쟁 생존물이 가깝습니다. 이래서 아르고와 블랙호크다운을 반반씩 섞어 놓은 작품으로 볼 수 있는 거죠.
모가디슈에는 아르고와 같이 적을 속여야만 하는 상황의 긴장된 서스펜스는 없습니다. 하지만 무기도 없고 아이와 여자까지 포함된 민간인 십여명이 책과 모래포대 등 급조한 방어대책만으로 보호한 승용차 4대에 나눠타고 안전한 장소(이탈리아 대사관)까지 탈출하는 여정은 아르고 정도는 아니어도 상당한 긴박감과 서스펜스를 느끼게 하는 흥미로운 내용과 장면이었습니다. 대작 영화라는 느낌이 잘 살아나도록 뛰어난 기술적 완성도와 연출의 우수함을 잘 보여준 상당히 완성도 높은 시퀀스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가디슈에는 아르고와 블랙호크다운에는 없는 또 한 가지의 흥미로운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남한과 북한이 협력한다는 내용입니다. 긴박감 넘치는 탈출극이나 생존극이라는 내용보다는 어쩌면 이 내용이 원래 이 영화의 핵심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모가디슈의 제작 및 기획 아이디어는 몇 년 전에 구상되었을 텐데, 그 시기에 한창 남북 정상회담이니 뭐니 하면서 남과 북의 분위기가 좋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요 몇 년 사이에 분위기가 상당히 달라져 버렸고 그런 변화된 분위기에 맞게 영화의 방향성에 수정이 가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신빙성을 얻고 있습니다.
모가디슈는 모두가 아는 대로 실제 있었던 사건을 영화화한 작품인데요. 이 실제 사건에 대한 기사를 읽어보니 영화가 의도적으로 남과 북의 긍정적인 관계성에 대해 배제하는 방향으로 실화의 내용을 각색한 것이 보이더군요. 실화의 내용을 정리한 기사를 읽어보니 목숨이 위험한 위기 상황 속에서 남과 북의 이념적 갈등은 희석되고 같은 인간으로서 서로 돕고 의지하며 함께 생존을 도모했다는 것이 이 사건의 본질을 전하는 기본적인 논조였습니다. 실제 사건의 주인공인 강신성 당시 대사의 인터뷰를 봐도 함께 협력했던 북한 대사관 직원들에 대한 인간적인 정이 행간에서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아마 영화의 최초 기획 의도는 남과 북의 대사관 직원들이 처음에는 이념 차이와 정치 상황으로 갈등 혹은 어색한 분위기를 겪다가 함께 협력하여 위기 상황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서로 진정으로 신뢰하고 결국 끈끈한 정을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는 방향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런 방향이 그동안 남과 북이 함께 등장하는 한국 상업영화들이 보여준 뻔한 공식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실제로 완성된 모가디슈는 그런 방향성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작품으로 나왔습니다. 남한과 북한 직원들이 생존을 위해 협력하는 내용이지만 서로 깊은 신뢰를 가지거나 인간적인 정을 나누는 장면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신파가 없고 담백한 느낌의 영화로 완성이 된 것이죠. 이 점에서 모가디슈는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대체로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사실 근거 없는 추측이기는 하지만 저는 역시 모가디슈가 이런 방향으로 완성된 것은 처음의 영화 기획 시점의 방향성에서 수정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판단하는 쪽입니다. 지난 몇 년간 북한과의 관계가 급변한 것이 하나의 근거일 수 있지만, 이런 외부적인 근거보다는 영화 자체에서 ‘방향성이 수정된 정황’이 어느 정도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영화에서 군데군데 비어 있는 부분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모가디슈가 ‘어느 정도’ 재미있는 영화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큰 재미를 느끼기에는 조금은 부족한 작품입니다. 분명히 재미있는 영화이고 못 만든 영화는 절대로 아닌데, 그냥 단순히 뭔가의 ‘결핍’으로 인해 어딘가 아쉬운 느낌이 남게 됩니다.
역시 핵심은 남과 북의 관계입니다. 저는 결국은 남한과 북한 사람들이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상황에서 서로 협력하고 교류하게 되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더욱 흥미롭고 몰입되게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상황과 장면들이 많을 텐데 영화는 뭔가 계속 그런 지점들에서 브레이크가 걸리는 느낌이에요. 신파는 안돼! 억지 감동은 안돼! 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정말 억지스러운 신파라면 평가가 나쁠 테지만 이 영화의 소재가 된 실제 사건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기사 내용만 읽어봐도 함께 어려움을 극복한 남한과 북한 직원들 간의 인간적인 교류와 관계성이 부각되고 있거든요. 억지 신파 느낌이 없이 자연스럽게 감동이 밀려오는 방향으로 이런 내용들을 잘 연출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류승완 감독의 실력이라면.
그런데 영화는 감동보다는 남과 북의 냉혹한 정치적 현실을 보여주면서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엔딩을 선택했습니다. 물론 이런 선택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고 보니 더 재미있는 영화가 될 수 있었던 소재가 결국 지나치게 담백하고 재미 면에서는 다소 아쉬운 작품으로 완성되어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결국 모가디슈는 탈출 상황의 긴박감과 서스펜스로 재미를 만들어내는 데는 성공했으나, 목숨을 건 위기 상황에서의 남과 북의 협력이라는 소재로는 이렇다 할 영화적 재미를 만들어내는 데는 실패...까지는 아니고 다소 아쉬운 결과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전혀 재미가 없는 건 아닌데 뭔가 재미있다는 느낌을 받으려는 순간에 덜컥 덜컥 브레이크가 걸리는 느낌이 계속 생기는 겁니다. 뭔가 ‘억지 신파라고 혹평받는 상황을 지나치게 겁낸 결과’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아쉬운 점이 있지만 모가디슈는 오랜만에 극장에서 보는 한국 대작 영화로서 확실히 훌륭한 완성도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급박하게 악화하는 소말리아 내전 상황의 숨 막히는 긴장감도 잘 살렸고 김윤석, 허준호, 조인성 등 명배우들이 연기한 개성 있는 캐릭터들은 영화 속 다양한 갈등과 위기 상황에 생생한 생동감을 부여합니다. 솔직히 조인성이 연기한 깡패 같은 공무원 캐릭터는 너무 때와 장소를 안 가리는 한국영화의 전형적인 캐릭터라서 좀 아쉽긴 했는데 그래도 조인성이 연기를 잘해서 비교적 자연스럽게 상황에 녹아들더군요. 그 외에 다른 배우들도 다 좋았고 다양한 역할로 출연한 외국인 배우들도 인상 깊었습니다.
코로나 시국으로 한국 영화가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그동안 극장 개봉을 포기하거나 미루기만 했던 대작 한국영화들이 모가디슈를 시작으로 다시 극장가 관객몰이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지만 모가디슈 같이 좋은 완성도의 작품들이 꾸준히 개봉해 관객들에게 입소문이 계속 퍼진다면 생각보다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많은 관객들이 극장으로 몰리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어려운 코로나 시국에서 앞으로 개봉할 한국 영화들의 건투를 기원합니다.
대서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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