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한국 극장가에서 기대 이상의 흥행을 터트리며 결국 200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한국에서 200만 관객 이상 동원한 것은 이번이 다섯 번째입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이전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너의 이름은, 그리고 가장 최근에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이 200만 이상의 흥행 기록을 세웠습니다. TV 애니메이션의 극장판 중에서는 역대 두 번째 기록입니다. 귀멸의 칼날 최종 흥행 성적이 218만 명이기 때문에 슬램덩크가 이 기록을 넘어 역대 TVA 극장판 최고 기록을 세우는 것은 기정사실화된 상황입니다.
그런데 슬램덩크의 흥행에 관한 보도에서 묘한 현상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슬램덩크는 한국에 개봉한 역대 일본 애니메이션 흥행 성적 중 TOP 3는 확정된 상황이고, 그 위의 기록에는 두 편이 있는데 바로 ‘너의 이름은’과 ‘하울의 움직이는 성’입니다. ‘너의 이름은’의 한국 관객수 기록은 379만 명입니다. 슬램덩크가 이 기록을 넘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런데 역대 2위인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한국 관객수는 현재 관련 기사에서 대부분 261만 명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슬램덩크가 지금 추이라면 이 기록을 넘어 역대 2위를 달성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한국 관객수는 261만 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2017년에 ‘너의 이름은’이 300만 관객을 돌파했을 당시에 나온 기사들을 보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한국 관객수 기록이 301만 명이고 너의 이름은이 이 기록을 넘어서 역대 일본 애니메이션 한국 흥행 최고 기록을 세웠다고 보도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17년에는 기사에서 301만 명이라고 했던 하울의 기록이 왜 지금은 261만 명이라고 보도되고 있는 것일까요? 301만 명? 261만 명? 어느 쪽이 맞는 것일까요?
일단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301만 명이 맞습니다. 지금 슬램덩크 흥행 관련 보도 기사에서 하울의 기록이 잘못 인용되고 있는 것이죠.
한국에 개봉한 영화의 관객수 기록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인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의 기록을 근거로 합니다. 이 사이트에 들어가면 가장 처음에 뜨는 것이 하루 전 날짜의 박스오피스 일일 관객수 기록과 순위입니다. 첫 페이지에는 하루치 관객수만 뜨지만 박스오피스 세부 메뉴로 들어가면 누적 관객수까지 다 뜹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들은 여기서 바로 누적 관객수 기록을 확인할 수 있죠.
예전 영화들의 경우 사이트 상단의 검색창에 제목을 입력하면 됩니다. 그러면 검색 결과가 뜨는데 검색해서 나온 영화 제목을 클릭하면 개별 영화들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두 번째 탭인 ‘통계정보’를 누르면 흥행 기록을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이 ‘통계정보’에서 최종 관객수 기록이 두 가지 버전으로 뜹니다. 바로 ‘공식통계’와 ‘KOBIS(발권)통계’입니다. 대부분의 영화들은 이 두 가지 통계의 숫자가 다릅니다.
그러면 영화마다 흥행 기록이 2개인 셈인데, 이 중 어느 쪽이 맞는 것이냐 라는 의문이 당연히 생깁니다. 이것도 좀 복잡한 게, 어느 쪽이 맞는 흥행인지는 ‘영화에 따라’ 달라집니다. 정확히는, ‘언제 개봉한 영화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위의 이미지는 2007년에 개봉한 영화 ‘스파이더맨 3’의 개봉 첫날 흥행 성적을 보도한 기사를 포털 사이트에서 캡쳐한 것입니다. 개봉 첫날 50만 관객으로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기사 내용을 보면 이 기록은 통합전산망 사이트를 근거로 한 것이 아니라 ‘수입배급사인 소니 픽쳐스 릴리징 브에나비스타 측이 밝혔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때도 통합전산망 사이트는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통합전산망이 아니라 배급사에서 발표한 수치를 영화 흥행의 공식 기록으로 보도했습니다. 왜냐하면 통합전산망이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 정확한 전국 관객수 측정이 되지 않는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사라졌는데 예전에는 통합전산망 사이트 첫 화면에 ‘극장 가입률’이 나와 있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이 극장 가입률이 2007년에는 90% 초반 정도였습니다. 실제로 스파이더맨3의 개봉일인 2007년 5월 1일의 통합전산망 수치를 조회해 보면 스파이더맨3가 45만 명의 관객을 기록한 것으로 나옵니다. 배급사 집계는 50만이었으니 대략 90%의 관객수만 통합전산망에서 집계된 것이죠.
그리고 2008년 정도가 되어서야 98~99% 정도까지 가입률이 채워졌고 그때부터 배급사 집계가 아닌 통합전산망 수치를 영화의 공식 흥행 기록으로 보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2007년 이전에 개봉한 영화의 경우 통합전산망에 찍히는 기록은 관객수가 상당히 누락된 수치이고, 때문에 별도로 배급사 집계 기록을 공식 흥행 기록으로 통계를 냈다는 것입니다.
통합전산망 사이트에서 공식통계에 대한 설명을 보니 ‘한국영화연감(1971~2010) 통계를 기준으로 정리한 것이며, 2011년부터는 통합전산망을 기준으로 일정한 주기(매월, 매년)로 마감처리하여 산출되는 통계정보’라고 되어 있네요. 여기서는 2011년부터라고 되어있지만 실질적으로 2008~2009년 정도부터 배급사 집계를 인용하는 보도는 거의 사라졌었습니다. 한국영화연감(1971~2010)에 기록된 통계들도 2008년 이후 영화들은 아마 전산망 기록이 그대로 들어갔을 걸로 추정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2007년 이전 영화들인데 이 영화들은 통합전산망 기록이 명백히 관객수가 엄청나게 누락된 기록이라서 무조건 배급사 기록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즉 2007년 이전에 개봉한 영화들의 흥행 성적은 배급사 집계가 공식 흥행 기록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재개봉’입니다. 재개봉으로 추가되는 관객수는 ‘발권 통계’에서는 집계가 되지만, 2007년 이전 영화들의 배급사 집계 공식 통계에는 더해지지 않습니다. 2017년에 개봉한 ‘너의 이름은’의 경우를 보면, 현재 공식통계는 367만 명으로 되어 있고 발권통계는 379만 명으로 되어 있습니다. 발권 통계는 실시간으로 매겨지는 수치이고 공식통계는 별도의 통계마감 주기가 있기 때문에 그냥 실시간인 발권통계만 보면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너의 이름은’의 경우는 공식통계와 발권통계 중에서 발권통계 기록인 379만 명이 공식 흥행 기록입니다.
하지만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공식통계가 301만 명, 발권통계가 261만 명인데 애초에 2004년에 개봉한 영화라서 발권통계의 수치가 엄청나게 누락이 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서 재개봉 관객수가 발권통계로 더해진다고 하더라도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재개봉을 여러 번 반복해서 하고 관객수가 계속 더해져서 결국 공식통계인 301만 명을 넘게 되면 그때는 또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지금처럼 301만 명에 현저히 미치지 못하는 누락된 수치로 존재하는 한 이 발권통계는 그냥 무시해야 하는 것이죠. 즉, 발권통계를 공식 기록으로 보는 2017년 영화 ‘너의 이름은’과는 반대로, 2004년에 개봉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공식통계의 수치를 공식 기록으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보다 더 예전 영화들을 보면 왜 이런 영화들의 발권통계는 그냥 무시해야 하는지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천만관객 영화 1호와 2호인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의 경우를 봅시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천만관객 영화’인 이 두 영화의 통합전산망 발권통계를 보면 실미도는 고작 171만 명, 태극기 휘날리며는 고작 255만 명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공식통계에는 배급사 집계 기록을 바탕으로 제대로 된 흥행 성적(1108만 명, 1174만 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2007년 이전에 개봉한 영화들은 통합전산망 시스템이 만들어지기 전 혹은 만들어진 이후라도 극장 가입률이 떨어지는 시기였기에 ‘발권통계’ 기록은 상당히 누락되어 있어서 그냥 무시해야 하고, ‘공식통계’ 기록을 흥행 성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흥행 기록은 현재 언론에서도 인용되고 있는 261만 명이 아니라 301만 명이 맞습니다.
배급사 집계로 통계를 내던 시절과 전산망 집계로 통계를 내던 시절의 자료가 제대로 통합되어 깔끔하게 하나의 통계 기록으로 정리되지 않다 보니 예전 영화들의 흥행 성적에 대한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들이 계속 벌어지는 것 같습니다. 거기에 배급사 집계가 공식 기록인 2007년 이전 영화들은 통계가 별도로 분리되어 있어서 재개봉을 해도 관객수가 추가되는 게 전혀 반영이 안 되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냥 배급사 집계 기록을 2011년 1월 1일 기준 발권 통계로 통합해서 그 이후 재개봉 기록이 더해지도록 한다던가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텐데 계속 이렇게 분리된 통계로 방치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박스오피스 흥행 기록은 영화 산업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자료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박스오피스 통합 기록 시스템이 하루빨리 갖추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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