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하는 말로 ‘제목 어그로 오지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제목 어그로가 오지는 건 주로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오는 게시글에서 자주 목격되는 현상입니다. 제목은 글의 ‘얼굴’이자 ‘이름’이죠. ‘여기에 글이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당신에게 유익한 일이 될 것입니다.’라는 호소가 글의 제목에는 담겨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그러한 호소에 반응해서 글을 읽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제목이 호소하는 메시지는 거짓말입니다. 많은 경우에 글을 읽었을 때 유익해지는 것은 글을 읽은 사람이 아니라 글을 쓴 사람입니다. 게시판에 올린 글이 조회수가 높고 댓글이 많이 달리면 글 쓴 사람은 만족감을 느끼죠. 물론 실제로 읽는 사람도 유익하게 되는 좋은 글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 게시판에서 그런 글을 만날 확률은 높지 않죠. 실컷 어그로 끄는 제목으로 글을 클릭하게 만들어 놓고는 막상 내용은 전혀 읽을 가치가 없는 엉터리이거나 그걸 넘어서 혐오스러운 내용(글뿐만 아니라 이미지와 동영상까지)으로 글을 클릭한 사람에게 큰 정신적 타격을 주기도 합니다.
인터넷 게시판에서야 이런 행위가 간단하게 용인이 됩니다. 물론 너무 심한 경우라면 게시판 관리자가 제재하긴 하겠지만, 대부분은 제목으로 어그로를 끄는 엉터리 글들도 그냥 내버려 두죠. 그런 글들이 워낙 많기도 하고, 이게 일종의 인터넷 게시판의 놀이 문화이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이런 게시판의 장난스러운 게시글이 아니라 영화나 소설 같이 정식으로 대중에 판매되고 있는 문화 콘텐츠 상품에서는 ‘제목으로 어그로 끄는 행위’를 쉽게 저지를 수는 없습니다. 이로 인해 피해가 발생하면 그 콘텐츠를 만든 창작자가 직접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그로를 잘 끌었을 때 게시판에서 조회수가 높거나 댓글이 많이 달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큰 이득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에, 대부분이 창작자들은 자신의 작품에 교묘하게 어그로를 끄는 제목을 붙이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정말 과감한 시도는 역시 하기가 어렵고요.
상당히 과감하게 어그로를 끄는 제목으로 큰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스미노 요루 작가의 소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입니다. 이 소설은 아예 책의 머리말에 작가가 ‘제목 어그로’에 대한 해명(?)을 늘어놓으면서 시작합니다. 물론 한국에 정식 출간된 책에만 들어간 ‘한국 독자들에게’라고 작가가 전하는 글의 형식으로 넣은 내용이라서 일본에 출간된 책에서는 어땠는지 모르지만요. 애초에 이 소설은 처음에 종이책의 형태로 공개된 것은 아니었죠. 최초에는 인터넷의 소설 투고 사이트에 올라왔는데, 이때부터 작가가 제목 어그로에 대한 해명 글을 썼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안 썼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제목으로 엄청난 어그로를 끌었는데 막상 읽은 사람들의 반응이 좋아서 정식으로 종이책으로 출간되고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네, 제목 어그로가 용인되려면 작품의 내용이 좋으면 됩니다. 가장 단순한 해답이지만 실제로 행하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영화 중에서는 생각나는 작품이 ‘가슴 배구단’입니다. 주인공이 무려 아야세 하루카인데, 사실 아야세 하루카 같은 정상급 여배우가 무슨 대단한 거장의 작품도 아닌 학원 코미디 장르의 영화에서 가슴 노출을 할 거라고는 절대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 전혀 노출이 없는 작품이지만, 확실한 정보가 없다면 혹시나 하는 생각에 영화를 볼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어그로에서 특히 야한 소재가 효과가 좋거든요.
이 포스팅에서 다루고 있는 작품도 제목 어그로가 정말 엄청납니다. ‘타인의 섹스를 비웃지 마라’라니. 섹스 라는 단어를 노골적으로 사용하는 것 자체가 대단한 용기입니다. 물론 ‘섹스 앤 더 시티’라는 드라마가 유명해진 뒤로는 이 표현을 사용하는 난이도가 급격히 하락한 것 같긴 하지만요. 그래도 섹스는 간단히 다루기는 어려운 단어입니다. 인터넷에서도 섹스가 아니라 ‘야스’라고 하잖아요. 이건 그냥 재미로 그러는 거지만.
의외로 문화 콘텐츠에서 섹스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걸 조심스러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소설이나 만화 같은 걸 봐도 섹스라고 직접적으로 말하기보다는 ‘그거’라든가 ‘그 짓’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거 알지? 그거? [섹스]’
가슴 배구단은 혹시 가슴이 나올까 하고 보게 되듯이, 제목에 섹스가 들어가면 당연히 섹스가 나오는가 싶어서 보게 되겠죠. 그런데 섹스라는 단어도 어그로가 끌리지만 이 단어가 들어가서 완성된 전체 제목의 문장 자체가 굉장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킵니다.
‘타인의 섹스를 비웃지 마라’
이런 제목을 달고 있으면 정말 무슨 내용의 작품일지 궁금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어 원제는 ‘人のセックスを笑うな’라고 쓰더군요. 일본어를 잘 모르니까 그냥 사람 인(人) 자만 써 있어서 이걸 ‘타인’이라고 번역한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요. 인터넷 일본어 사전으로 검색해보니까 사람 인(人)자만 써도 ‘타인’이나 ‘남’이라는 의미가 가능한 것 같더군요. 정확한 건 아닙니다.
영화판도 나왔는데, 국내 정식 개봉명은 ‘남의 섹스를 비웃지 마’입니다. 큰 차이는 없지만 ‘타인’이 ‘남’이 된 것으로 아주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 정도는 생긴 것 같습니다.
아무튼 저런 제목을 달고 있는 작품이 무슨 내용일 거라고는 짐작하기 쉽지 않습니다. 야할 거라는 확신조차 가질 수가 없어요. 엄청 당돌하고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도 전혀 야하지 않은 작품들도 많거든요.
‘가슴 배구단’에 가슴이 나오지 않듯이, 제목에 섹스가 들어갔지만 섹스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책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나오네요. 이거 참, 의외로 너무 평범하게 제목에서 연상된 그대로의 내용이라서 조금 당황했습니다.
앞에서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무슨 내용일지 짐작하기 어렵다고 했는데요. 그래도 정말 평범하게 제목으로부터 연상을 해보면,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나오고, 둘이서 섹스하는 내용이겠구나, 라는 생각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런 게 내용도 뭣도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남자와 여자와 섹스, 라는 단순한 구도인 것이 중요합니다. 복잡한 사연이나 우여곡절도 없고, 정말 건조하고 담백한 작품일 거라고 예상을 했거든요. 예상대로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도 야하지 않습니다. 이것도 예상대로입니다. 남녀 주인공이 섹스를 하는데, 그것도 많이 하는데, 제대로 묘사해주지 않습니다. 비웃으려고 해도 뭘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묘사를 안 해 주니 비웃을 수도 없습니다.
누군가는 섹스를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고 말하기도 하죠. 사랑이 곧 섹스이고 섹스가 곧 사랑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겁니다. 사귀기 전에 섹스부터 하고, 사귄 후에도 만나서 섹스만 해대는 연애 관계도 분명 존재합니다. 사실 많은 연애들이 이런 식입니다.
‘타인의 섹스를 비웃지 마라’도 결국 기본적인 내용은 열심히 섹스를 하는 두 주인공, ‘이소가이 미루메’와 ‘유리’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소설은 남자 주인공 이소가이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됩니다. 서로 끌려서 섹스하게 된 두 남녀의 담백한 연애 스토리인데, 사실 이 둘의 관계는 그다지 평범하지 않습니다. 이소가이는 미술 전문학교를 다니는 19살의 학생이고 유리는 39살의 미술 강사입니다. 둘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죠. 그리고 유리는 유부녀입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인데 심지어 불륜이기까지 한 연애입니다. 참으로 자극적이고 격정적인 로맨스물의 설정이지만 말했듯이 이 소설은 굉장히 담백합니다.
제가 ‘평범하지 않다’고 했지만 사실 이런 연애도 세상에는 만연해 있죠. 스무 살 이상 나이 차이가 나는 연상연하 커플도 전 세계를 본다면 수두룩하게 있을 테고 배우자가 있는 데도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게 된 사연도 지천에 널렸습니다.
결국 모든 사랑은 평범하면서 동시에 특별합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저는 작가가 굳이 20살 이상 나이 차가 있는 스승과 제자 관계의 연상 연하 커플이 벌이는 불륜 로맨스를 소재로 삼았으면서도 이 자극적인 소재를 너무도 평범하고 일상적인 풍경으로 그려내려 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비웃지 마라’라는 제목도 두 주인공의 연애가 거창한 세기의 로맨스 같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정말 별 거 없는 흔해 빠진 연애이니 (그 평범함에)실망하고 비웃지 마라 라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이소가이는 스스로 자기는 섹스를 잘하는 편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 두 사람의 연애는 섹스만 따로 놓고 봐도 자극적인 성애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볼만한 그림이 아니라는 겁니다. 애초에 두 주인공의 외모도 그다지 매력적으로 묘사되지 않고요.
저는 이 작품을 전자책으로 읽었지만 서점에 가서 종이책도 펼쳐보기는 했습니다. 전자책으로도 확실히 짧은 분량이었는데 실제로 종이책으로 보니 책이 너무 작고 얇더군요. 100페이지 조금 넘는 분량. 아마 이 책을 서점에서 그냥 서서 다 읽어 버린 사람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런 식으로 책을 읽는 사람도 꽤 있죠. 저는 책을 빨리 읽는 편이 아니고 서점에서는 집중도 잘 안돼서 한 번도 해본 적은 없지만요.
아무튼 굉장히 짧은 분량으로 그냥 남녀가 서로 끌려서 섹스를 하고, 사귄 후에 또 계속 섹스를 하다가 한쪽의 마음이 식어서 헤어지게 되는 과정을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는 작품입니다. 당연히 별로 재미있지도 않았고 큰 감흥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각각 특별한 듯하면서도 세상 모든 연애가 가지는 보편성에 대한 공감은 저의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서도 분명히 마음을 울리는 지점은 있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후 곧바로 영화를 봤습니다.
한국 포스터에 딱 두 배우의 이름이 박혀 있더군요. 마츠야마 켄이치와 아오이 유우. 이거 좀 느낌이 싸했습니다. 저는 이런 식의 ‘기만’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오이 유우가 39살 미술 학교 강사인 여주인공 ‘유리’ 역일 리는 없습니다. 아오이 유우는 지금도 그 나이가 아니고 이 영화는 일본에서 2007년에 개봉한 영화거든요. 그런데 아오이 유우가 여주인공인 것처럼 포스터에 이름이 적혀 있고 진짜 여주인공 유리 역의 배우 나가사쿠 히로미의 이름이 빠져 있어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또 한 가지 싸했던 건 이 영화에 아오이 유우가 출연한다면 분명 ‘엔 짱’이라는 캐릭터로 나올 텐데, 이 캐릭터가 소설에서는 그다지 비중이 없다는 것입니다. 두 주인공 말고 조연 캐릭터들이 몇 명 나오긴 하지만 모두 비중이 크지 않아요. 그런데 아오이 유우가 엔 짱을 연기한다면 분명 소설보다는 꽤 비중이 있겠구나라고 짐작할 수 있죠. 그렇다면 소설과는 꽤 다른 방향성의 영화라는 추측까지 이어집니다.
그리고 영화가 137분으로 꽤 깁니다. 긴 상영시간으로 영화는 엔 짱의 비중이 커지면서 소설에 없는 이런저런 내용들이 추가되겠구나 라는 예상이 가능해집니다. 이런 예상들이 다 맞아떨어졌습니다. 영화의 방향성은 그냥 2000년대에 많이 나왔던 일본 청춘 영화들의 방향성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전혀 야하지도 않아요. 섹스 장면도 안 나옵니다. 섹스 전과 섹스 후가 나올 뿐.
그런데 이 영화는 국내 상영 등급이 ‘청소년 관람불가’더군요. 15세 아니, 12세도 가능한 수위예요, 정말로. 제목에 섹스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과 영화의 상영 등급까지 그냥 짜고서 관객을 낚으려는 의도처럼 보이더군요.
영화의 전반적인 느낌은 일본 청춘 로맨스 영화로서 이 영화보다 몇 년 전에 나온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하위호환이었습니다. 야하기도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이 영화보다 훨씬 야합니다. 15세 관람가인데도 말이죠. 두 영화의 상영 등급이 바뀌어야 합니다.
영화는 담백한 걸 넘어서 시시한 청춘 로맨스가 되어 버렸고 아트시네마인 척하려는 우스꽝스러운 연출들이 더욱 영화의 정체성을 이도 저도 아니게 만듭니다. 차라리 그냥 야하게 만드는 게 나을 뻔했습니다. 물론 마츠야마 켄이치 같은 키 크고 잘생긴 배우도 쓰지 말아야 하고요. ‘가슴 배구단’에 가슴이 안 나왔다고 화를 내는 건 바보 같은 짓일 테지만 ‘남의 섹스를 비웃지 마’는 섹스가 안 나온 것이 영화의 큰 단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원작 소설의 방향성과는 동떨어졌고 주인공 이소가이(영화에서는 성이 아니라 이름인 ‘미루메’로 거의 불립니다)를 짝사랑하는 엔 짱의 귀여운 행동들로 청춘 영화의 상업적인 재미를 메꾸고 있는 수준입니다. 이렇게 어정쩡하게 상업적인 청춘 로맨스 영화의 재미를 보여주려 한 것은 이 소설을 영화화하는 방향성에는 전혀 맞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처럼 두 남녀 주인공의 이야기에만 오롯이 집중했어야 합니다. 그리고 상영시간은 더 짧고 그다지 볼만한 그림도 아닌 섹스 장면도 들어갔다면 좋았겠죠.
사실 제목을 보고 정말 야한 걸 기대하고 이 작품을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영화가 전혀 야하지 않은 것에 실망하거나 화를 내는 사람도 없을 거예요. 일본 청춘 로맨스 영화로서 큰 만족 없이 그냥저냥 보게 되는 영화입니다. 아트시네마 느낌을 제법 내고 있는데 이런 게 취향인 사람이라면 더욱 재미있게 볼 테고요.
저로서는 영화가 원작 소설의 방향성에서 상당히 어긋나 버린 게 아쉬웠고 뭔가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홍대병’ 걸린 영화를 본 느낌이라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원작 소설을 생각해 본다면 영화를 이런 식으로 만든 것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닙니다. 원작과 같은 방향성으로 영화를 잘 만들기는 쉽지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모든 소설이 영화화에 최적화된 내용일 수는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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