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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와 영화사이

[만화와 영화 사이] 내 이야기!! (카와하라 카즈네/ 아루코 원작 실사화 작품 리뷰)

by 대서즐라 2021.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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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의 연애를 소재로 다루는 만화는 장르의 분류가 애매할 때가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딱히 안 그런 거 같은데 만화와 같은 서브컬처에서는 희한하게 여성향/남성향이라는 구분이 꽤나 명확하게 내려져 있더군요. 연애를 메인 소재로 다루는 만화 중에서 여성향 작품의 장르는 ‘순정만화’라고 합니다. 남성향인 작품은 연애 만화 혹은 로맨틱 코미디(로코) 장르로 분류하고요.

 

내이야기-영화-포스터

 

저는 처음에 ‘내 이야기!!’라는 만화를 보고 순정만화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봐도 남자 주인공의 비주얼이 개그 만화라서, 그냥 개그 만화 아니면 로맨틱 코미디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따지고 보면 순정만화 중에서 엄청 웃긴 만화들도 있기는 하거든요. 심지어 연애 내용이 거의 없는 만화도 있습니다. 순정만화라는 장르는 굉장히 넓은 작품 성향의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이야기-남자주인공-타케오

 

아무튼 순정만화지만 별로 순정만화 같지 않은 ‘내 이야기!!’라는 작품을 저는 푹 빠져서 읽었습니다. 개그 만화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사실 남주인공의 비주얼이 보여준 개그의 포텐에 비하면 만화 자체가 그렇게 웃기지는 않습니다. 그냥 이 만화는 읽으면 훈훈해집니다. 심각한 갈등도 없고, 고구마 전개도 없습니다. 세 명의 주요 캐릭터들이 다 너무 매력적이고, 내용도 재미있어요.

 

이 만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 별다른 우여곡절이 없이 만화의 극초반에 두 남녀 주인공이 연인으로 맺어집니다. 그러고는 둘이 꽁냥거리며 연애하는 내용이 뒤로 계속 이어집니다. 사실 이런 전개를 보여주는 순정만화나 연애만화는 제법 있습니다. 그런데 보통은 남녀 주인공이 바로 사귀지 않고 서로 가까워지는 빌드업의 과정들을 보여주는 전개가 사귄 후의 스토리보다 더 재미있습니다. 처음부터 사귀고 시작하는 만화는 길게 빌드업 과정을 보여주는 만화들에 비해 재미가 다소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내 이야기!!’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두 주인공이 굉장히 개성이 있고 매력이 넘치기 때문에 그냥 둘이 연애하는 모습만 봐도 훈훈하고 행복해집니다.

 

내이야기-타케오와-야마토

 

그리고 결정적으로 제3의 주요 등장인물, 남자 주인공 타케오의 절친인 스나카와. 이 캐릭터가 정말 진국입니다. 주인공 타케오는 정말 부러운 놈입니다. 야마토라는 예쁜 여자 친구를 사귀는 것도 부럽지만 그보다 스나카와라는 멋진 녀석을 베스트 프렌드로 둔 것이 더욱 부럽습니다.

 

순정만화나 연애만화는 일반적으로.... ‘이상적인 연인상’인 캐릭터를 보여주려고 노력하죠. 그런데 ‘내 이야기!!’에는 이상적인 연인상이 아닌 ‘이상적인 친구상’의 캐릭터가 등장하고 그게 바로 스나카와입니다. 물론 사람 그 자체로도 훌륭하긴 하지만 친구로서 이보다 멋진 녀석은 ‘뜨거운 우정’이 중요 테마로 등장하는 수많은 소년 만화에서도 본 적이 없습니다.

 

내이야기-절친-스나카와

 

개성 있고 매력적인 두 남녀 주인공과 ‘이상적인 친구상’을 보여주는 남주의 절친 캐릭터까지. 이 3인 조합으로 그냥 끝인 겁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정말 재미있고 훈훈하고 행복해집니다.

 

다만 영화는... 딱 하나의 아쉬운 점 때문에 매우 실망스러운 작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딱 하나의 아쉬운 점인데... 그 딱 하나가 너무 결정적입니다.

 

영화는 원작 만화와 아주 결정적으로 다른 선택을 하고 맙니다. 원작 만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었던 두 남녀 주인공이 작품의 극초반에 맺어진다는 설정을 바꾼 것입니다. 그냥 평범한 로맨스물처럼 중반까지 서로의 마음을 모르고 애태우다가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야 맺어지게 만든 것입니다.

 

타케오와-야마토-배우들

 

좀 과장하자면 저는 이 내용을 보고 절망해버렸습니다. 왜 절망을 했냐 하면... 앞에서 말한 대로 저는 원작 만화를 굉장히 좋아하고, 만화 속 세 명의 주요 캐릭터들도 너무 좋아합니다. 그리고 영화에서도 이 캐릭터들의 매력이 원작만큼 잘 표현이 되었어요. 배우들 싱크로도 높고, 캐릭터의 성격이나 여러 특징들도 원작 캐릭터와 동일하게 잘 구현했습니다. 내용만 원작 그대로 했다면 이 영화는 제가 너무너무 사랑하는 영화가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내용을 바꿔버리는 바람에... 원래대로라면 평생 소장하고 두고두고 반복해서 봤을 영화가.. 한번 보고는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영화가 돼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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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여전히 제 하드에 소장 중이긴 합니다. 네이버 영화에서 개별 유료 결제로 구입한 영화거든요. 이렇게 개별 유료 결제로 구입한 영화는 돈 아까워서라도 계속 소장하게 되더군요. 이래서 영화가 별로였을 경우는 더욱 큰 절망감에 빠지게 됩니다. 또 보고 싶지는 않은데 돈 아까워서 지우지는 않으니... 그야말로 하드 용량만 낭비하는 꼴인 거죠.

 

아니 정말 최고의 영화가 될 수도 있었던 작품이 단 하나의 결정적 선택 미스로 ‘하드 용량 낭비’ 운운해야 할 영화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안타깝게도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영화가 원작과 다른 길을 선택한 것은 정말 치명적인 실수입니다. 그 변화 하나로 영화의 전체 내용이 원작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가지게 되었거든요.

 

영화의-주요-등장인물-3인방

 

그런데 이렇게 결정적인 변화를 주었음에도 정작 영화에서 일어나는 주요 사건과 내용 전개들은 원작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따라갑니다. 그저 두 주인공이 사귀는 사이인지 아닌지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차이 하나로 인해 같은 내용이라도 그 느낌이 완전히 달라져 버립니다. 작품 내용의 재미 자체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에요. 다만 같은 사건과 내용들이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거기서 두 주인공이 서로를 좋아하는 마음을 알고 있느냐 모르고 있느냐로 분위기가 너무 많이 달라져 버립니다. 겉으로는 원작과 같은 상황과 같은 대사들이 등장하지만.. 장면에서 전해지는 분위기는 완전히 딴판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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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앞에서 이 영화를 보지도 않는데 지우지도 못하는, ‘하드 용량만 낭비하는’ 영화라고 했었는데요. 사실은... 가끔 봅니다. 영화 자체의 재미 때문이 아니라 여주인공 역의 배우 나가노 메이 때문입니다. 나가노 메이가 출연한 영화와 드라마를 여러 편 봤는데요. 이 영화에서 나가노 메이의 비주얼이 최고입니다. 남자라면 반할 수밖에 없는 여신 같은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나가노 메이가 이 영화를 찍었을 때가 아직 배우로서는 신인인 시절이었는데, 이 영화에서의 모습이 너무 매력적이라 이후 배우로서 라이징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나가노-메이-여신

 

아무튼 참 아쉬운 작품입니다. 모든 것이 완벽했는데 단 하나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이 작품은 일본 영화계의 꽉 막힌 경직성을 보여주는 예시가 될 수 있을듯합니다. 하이틴 로맨스 영화는 당연히 남녀 주인공이 처음 만나고 차츰 가까워지다가 여러 우여곡절을 겪고 마지막에 가서야 맺어지는 내용이어야 한다...라는 꽉 막힌 고정관념이 작용한 결과물. 원작 만화가 확실히 그 틀을 깨부수었는데도 불구하고 왜 영화는 다시 그 틀 안으로 쏙 하고 숨어버린 건지. 진취성과 과감한 도전 정신이 없으면 문화 산업을 발전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경직성을 깨지 않고서는 일본 영화의 발전은 요원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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