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사랑받고 차고 차이고’, 속칭 ‘사사차차’는 사키사카 이오의 인기 순정 만화를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사키사카 이오의 만화를 영화화한 작품을 본 건 이 작품이 세 번째 입니다. 그 전에 ‘스트롭에지’와 ‘아오하라이드’라는 작품도 봤었죠. 두 작품 모두 원작 만화와 영화까지 다 봤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그다지 기억에 남았던 작품들이 아닙니다. 만화와 영화 모두요. 작품이 아주 나쁜 건 아닌데, 그다지 몰입이 되거나 흥미가 가는 내용이 없었어요. 특히 영화는 배우 보는 재미라도 있었지만 만화는... 까놓고 말해서 노잼이었습니다. 이 작가와 저는 궁합이 정말 안 맞는 게 분명합니다.
이전에도 다른 순정만화 원작 영화에 대한 포스팅에서 언급했었는데, 저는 순정만화를 꽤 보는 편이지만 인기 있고 히트한 순정만화 중에서 정말 취향이 아닌 작품들이 상당수 있었습니다. 확실히 저에게 여성향 만화가 안 받는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재미가 없다 보니 스트롭에지와 아오하라이드는 좀 대충 읽기도 했고...
그래도 좀 의아하긴 하잖아요. 사키사카 이오의 만화가 계속 히트를 하고 애니메이션과 실사 영화로도 만들어지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그런데 그게 뭔지 도무지 모르겠는 거예요. 제가 또 다른 순정만화 역대급 히트작인 꽃보다 남자, 너에게 닿기를, 그 남자 그 여자(카레카노), 나나 같은 작품을 읽을 때는 전혀 어떤 의구심도 들지 않았거든요. 이렇게 재미있으니 대박날 만 하네- 이런 감상이었죠. 그런데 사키사카 이오의 만화와 그 밖에 제가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한 유명 순정만화들은 정말 이 의문이 사라지지가 않습니다. 도대체 이게 뭐가 재미있다는 거지...
그래도 이번에 오랜만에 나온 히트 순정만화 실사화 작품인 ‘사랑하고 사랑받고 차고 차이고’를 안 볼 수는 없잖아요. 요즘 가장 핫한 여배우인 하마베 미나미가 나오기도 하고...
그래서 이번에는 일단 원작 만화 부터 각 잡고 읽었습니다. 단행본 12권 분량으로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은 적절한 분량이네요. 각 잡고 읽기 시작했는데... 역시나 노잼.
이 작가의 모든 작품들이 다 그런데, 너무 밋밋하고 밍밍합니다. 뭔가 자극적이거나 확~ 몰입이 되는 전개가 없어요. 물론 그렇다고 제가 정말 자극적이고 막장스러운 내용의 순정만화만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잔잔하고 큰 자극이 없는데도 은근히 캐릭터에 끌리고 내용에 감정이입이 잘 되는 순정만화들도 많았거든요. 그런데 사키사카 이오의 작품은 그런 것도 없어요.
심지어 그림체까지 밋밋합니다. 캐릭터 디자인이 죄다 비슷비슷하고 별 특색이 없어요. 작화 자체도 굉장히 간결하게 그리는 편이고요. 내용과 캐릭터, 작화까지 밋밋하다보니 정말 하품이 나오는 맹탕의 연속입니다.
다만 그래도 끝까지 다 읽고 나서 뭔가를 찾기는 했습니다. 일단 12권 분량의 단행본으로 길게 접하다 보니 어느 정도는 캐릭터들에게 정이 들었고 후반부에 대충 스토리가 마무리 되는 시점에서는 조금은 내용에 몰입이 되기는 했습니다. 무난한 해피엔딩은 꽤 만족스러웠고요.
그리고 이 작품에 나오는 두 남자 주인공. 여성 독자들에게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겠구나- 란 생각도 들긴 했습니다. 사실 순정만화는 타겟이 여성 독자다 보니 여자 캐릭터 보다는 남자 캐릭터에 공을 들이는 편이고 여러 순정만화에 등장하는 남자 캐릭터들의 매력도 상당히 다채로운 편입니다. 그 중에서는 제가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느낀 남자 캐릭터도 꽤 있습니다. ‘너에게 닿기를’의 카제하야도 아주 괜찮았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순정만화 남자 주인공은 ‘러브 콤플렉스’의 오오타니입니다.
사사차차의 두 남주인공, 리오와 카즈의 경우는 저는 큰 매력은 못 느꼈지만 확실히 여자들은 좋아하겠구나- 라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리오 같은 남주인공은 사실 순정만화에서 꽤 흔하게 볼 수 있는 스타일인데, 확실히 이런 캐릭터가 저에게는 좀 장벽인 것 같아요. 뭔가 인간미나 현실성이 떨어진달까. 반면 카즈는 그래도 좀 낫죠. 영화를 좋아한다는 부분에서 조금 공감대가 있기도 하고.
아무튼 역시 참 재미없는 만화였습니다만, 그래도 끝까지 읽으니 캐릭터에 정도 들고 내용에 몰입이 되기도 하고 ‘여자들이 좋아하는 순정만화’란 것에 대략적인 윤곽이 그려진 느낌은 들었습니다. 어느 정도 수확은 있는 셈이네요.
그리고 영화를 봤는데요. 생각보다 영화는 굉장히 좋았습니다. 늘 그렇지만 만화 원작 실사 영화를 만들 때 정말 중요한 것! 캐스팅만 잘해도 반은 먹고 들어간다~ 라는 것입니다. 이 작품의 경우는 반이 뭐야, 한 7~80% 정도는 캐스팅으로 다 먹고 들어간 느낌이에요.
네 명의 주요 캐릭터 캐스팅이 그야말로 베스트입니다. 사실 포스터와 예고편만 봤을 때는, 아카리 역의 하마베 미나미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원작 만화 이미지와 좀 안 맞지 않나... 라는 생각을 했는데요. 특히 리오 역의 키타무라 타쿠미는 저에게 평소 이미지가 화사한 꽃미남 보다는 좀 다크 계열(?)의 배우라서 차라리 카즈 역할이 맞지 않나 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영화를 보니 모든 배우들이 다 잘 어울리더라고요. 캐릭터의 이미지나 성격적인 면도 그렇고 심지어 비주얼 싱크로까지!
앞에서 말했듯 사키사카 이오의 작화가 그다지 캐릭터 디자인에 특색있게 힘을 주는 편이 아니라서 처음부터 배우의 외모나 이미지는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었는지도 모릅니다. 어떤 외모의 배우가 연기하든 작가가 설정된 캐릭터의 성격을 행동과 대사로 잘 표현하면 그걸로 원작과 싱크로는 급상승하는 거예요.
아무리 히트한 만화라도 실사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는 경우도 꽤 있는데요. 사키사카 이오의 만화가 이렇게 많이 실사 영화로 제작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이 작가의 작품이 실사 영화로 만들기에 좋은 특성이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오히려 작품의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밋밋한 작화도 영화화하기 좋은 특성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보통 만화 원작 실사 영화를 만들 때 배우를 어떤 기준으로 고를까요? 사실 원작 캐릭터의 이미지나 싱크로는 큰 고려 대상이 못 될 겁니다. 그보다는 배우의 흥행성과 지명도와 그 밖의 연예계 ‘어른들의 사정’으로 배우가 캐스팅이 되겠죠. 그래서 원작 만화의 캐릭터 디자인이 강렬하고 눈에 띄는 특성이 강한 편이라면, 배우가 그 이미지에 맞추지 못했을 때 상당히 원작의 느낌과 동떨어진 작품이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키사카 이오 처럼 작화가 대체로 밋밋한 편이라면 어떤 배우를 써도 배우의 이미지나 외모보다는 대사와 행동으로 원작 캐릭터의 느낌을 온전히 살릴 수가 있는 것이죠.
그리고 단지 작화가 밋밋한 것이 다가 아닙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건 원작의 캐릭터와 대사들이 생각보다 굉장히 섬세하게 짜여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다지 자극이 없고 밋밋하다고 느꼈지만 알고 보니 굉장히 세밀하게 구상된 캐릭터와 대사들이었어요. 원작 만화를 읽을 때도 뒤로 갈수록 점점 몰입이 되고 캐릭터들에게 공감하게 되는데 이런 부분이 확실히 작가의 뛰어난 역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죠. 계속 히트작을 내놓는 작가는 분명히 그럴만한 이유(재능)가 있는 겁니다.
모든 배우가 다 좋았다고 했지만 그래도 역시 최고는 하마베 미나미입니다. 역시 엄청나게 예쁘고 아카리라는 캐릭터에 딱 맞는 배우입니다. 아카리는 정말 교과서적으로 매력적인 순정만화 여주인공입니다. 그다지 제가 선호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매력이 있다는 것만은 원작 만화를 읽으면서도 확실히 느낄 수 있었고, 영화에서 하마베 미나미가 연기한 아카리는 교과서적인 순정만화 여주인공의 매력을 최대치까지 보여줍니다.
유나 역의 후쿠모토 리코도 좋았습니다. 사실 이런 캐릭터가 실사로 표현하기 가장 어려운 캐릭터거든요. 우물쭈물 꾸물꾸물 거리는 아싸 기질의 귀요미 여주인공. 이런 캐릭터에 한해서는 배우의 외모도 중요한데 저는 솔직히 이런 유형의 캐릭터에는 너무 예쁜 배우를 쓰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그런데 순정만화 여주인공을 안 예쁜 배우를 쓰는 경우는 거의 없죠. 그러니 엄청 예쁜 배우가 아싸처럼 보이는 연기를 해야 하는데 대부분 굉장히 어색해요. 그런데 후쿠모토 리코는 꽤 잘했습니다. 엄청 예쁜데 주눅 들고 소극적인 연기가 크게 어색하지 않더군요. 그런 우물쭈물 거리는 연기를 하면서도 한 번씩 하마베 미나미에 필적하는 아찔한 미모를 보여주는 장면들도 있고요. 두 배우의 미모 케미가 정말 최고였습니다.
남주인공 두 명도 역시 좋았습니다. 키타무라 타쿠미는 원래 좋아하는 배우이기도 하고 원작 만화에서 제가 리오에게 느꼈던 그 ‘(교과서적인 순정만화 남주인공 특유의)밥맛없음’이 거의 느껴지지 않더군요. 카즈는 원작 만화에서부터 꽤 마음에 들었던 캐릭터인데 아카소 에이지가 찰떡같이 어울렸고 원작에서 느꼈던 이 캐릭터의 매력이 더욱 극대화된 느낌이었습니다.
영화의 영상미도 참 좋습니다. 사실 잔잔한 스타일의 일본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별 내용이나 자극 없이 그저 분위기나 영상미를 즐기는 케이스가 많거든요. 뭐 대체로 진짜 별 내용이 없는 슬로우 라이프나 힐링 무비 종류의 영화들이지만, 순정만화 원작의 하이틴 로맨스 영화들 중에서도 대체로 내용이 밋밋한 영화들을 그런 방향으로 즐기게 되기도 합니다. 이 작품도 별로 자극이 없고 밋밋한 내용이지만 배우들이 하나같이 선남선녀들이고 영상미도 아름답다 보니 그냥 그것만으로도 보는 재미는 충분하게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역시 내용이 밋밋하다 보니 2시간 짜리 영화의 말미에 가서는 지루함이 느껴집니다. 만화와는 정반대네요. 만화는 최후반부에 가서야 캐릭터와 내용에 몰입이 되면서 슬슬 재미있다고 느꼈는데요. 영화는 초중반까지는 배우들 구경, 영상미 구경에 그냥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다가 뒤로 갈수록 점점 지루해지더군요. 뭐 어차피 원작을 읽어서 다 아는 내용이고 영화와 만화를 즐기는 포인트 자체가 달라서 그런 거라고 할 수 있겠죠.
그래도 종합적으로 평가하면 상당히 만족스럽게 본 영화입니다. 배우들이 너무 좋고 특히 하마베 미나미가 숨막힐 정도로 예쁩니다! 지난 번에 쓴 이 배우에 대한 포스팅에서 ‘엄청 좋아하는 배우는 아니다’ 라고 했었지만 어째 점점 이 배우에게 빠져드는 느낌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들에서 매력적인 모습을 꾸준히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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