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만화가 이야기

[만화가 이야기] 후루야 미노루 古谷実

by 대서즐라 2021. 6. 2.
728x90
반응형

후루야 미노루 古谷実

 

한 명의 만화가가 그려낸 여러 대표작들 중에 완전히 극과 극의 성향을 가진 작품들이 존재한다는 건 드문 일일 것입니다. 사실 영화감독이라면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대개의 경우 영화 제작에서 ‘장편 연재’라는 개념 자체가 없고 커리어 중 수십 작품을 만든다면 온갖 다양한 성향과 스타일의 작품들이 존재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만화가의 경우는, 특히나 인기작, 히트작을 배출한 경우라면 그런 작품들은 대부분 장기 연재를 하게 되고 대표적으로 원피스의 작가 오다 에이치로의 경우처럼 데뷔작 한편을 거의 평생에 걸쳐 연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다 정도는 아니더라도 유명하고 인기 있는 만화가의 평생 커리어의 모든 작품을 합쳐도 다섯 개도 안 되는 경우가 정말 많아요. 그만큼 만화가가 커리어 동안 다양한 성향과 스타일을 보여주는 건 어려운 일이죠.

그런데 후루야 미노루는 커리어에 정말 극과 극의 작품들을 보유한 만화가입니다. 장편 연재 경력도 있긴 하지만 그의 작품 대부분은 연재 기간이 짧은 편이었고 그러면서도 꾸준히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했기 때문에 현재 거의 두 자리수에 가까운 작품 커리어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들을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눌 경우 그야말로 작품 성향이 극과 극으로 다릅니다. 전반기의 대표작은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하고 아마도 최고 히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이나중 탁구부’입니다. 골때리는 하드코어 개그만화죠. 이 작품과 비견될 개그만화라면 ‘괴짜 가족’ 정도를 들고 와야 할 겁니다.

이나중 탁구부


후반기 작품은 대표작 하나를 꼽기가 애매한데 그래도 아마 ‘두더지’가 가장 유명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후루야 미노루가 작품 성향 변화를 보여준 첫 작품이라 그 자체로 큰 화제가 되기도 했고 그가 그린 모든 작품을 통틀어서도 가장 어두운 내용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두더지


그의 후반기 작품들은 보통은 애니메이션화가 되는 다른 히트만화들과는 달리 영화와 드라마, 즉 실사화 작품으로 많이 제작되었는데요. 그 중에서도 소노 시온 감독이 만든 ‘두더지’의 영화화 작품이 평도 좋고 굉장히 유명합니다. 소노 시온 이라는 유명한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완성도 높은 작품입니다.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젊은 배우인 소메타니 쇼타와 니카이도 후미가 배우로서 크게 도약하는 계기가 된 작품이기도 하고요.

두더지


전반기는 개그만화. 후반기는 시리어스풍의 사회드라마. 이런 극과 극의 성향을 보여주는 것이 그의 작품 커리어입니다. 다만 작품 성향의 극과 극의 변화라면 이런 방향성은 꽤 흔하기는 합니다. 밝고 가볍다가 어둡고 진지하게 변하는 건 사실 세상 모든 창작 콘텐츠를 극단적으로 이분화한다면 보편적으로 나뉘는 분류에 따른 결과거든요. 예를 들어 걸그룹이 큐티나 청순 컨셉을 하다가 섹시나 걸크러시로 전환하는 것도 비슷한 방향성의 변화라고 볼 수 있죠. 영화 감독들도 이런 케이스가 흔한데 대표적으로 이와이 슌지 감독이 그렇습니다. 영화팬들은 ‘러브레터’나 ‘하나와 앨리스’ 같은 작품을 만든 이와이를 ‘화이트 이와이’라고 부르고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나 ‘릴리슈슈의 모든 것’ 같은 작품을 만든 이와이를 ‘블랙 이와이’라고 부르죠. 물론 이와이 슌지의 경우는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변화’했다기 보다는 두 가지 성향을 오가는 작품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극과 극으로 작품 성향이 달라지더라도 결국 같은 작가가 만든 작품이라면 작품 내에서 비슷한 요소들이 공유될 수밖에 없습니다. 후루야 미노루의 후반기 시리어스 작품들에는 비극적인 사건이나 충격적인 범죄가 많이 등장하는데 이런 요소들은 그의 전반기 개그만화들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요소들이거든요. 애초에 희극과 비극은 동전의 양면 같은 관계죠. 우당탕 넘어지면서 웃기는 슬랩스틱 개그만 보더라도 그 본질은 ‘사람이 넘어진 사고’라는 비극이거든요. 그 외에도 개그에 등장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 대부분이 그 본질은 누군가에게 일어난 불행이거나 비극입니다.

개그만화들이 대부분 그렇고 후루야 미노루의 작품은 더더욱 그런데, 이 만화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추남입니다. 얼굴이 못생긴 거 자체를 ‘비극’이라고 말해버리면 외모지상주의 소리를 듣겠지만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생각해보면... 아무튼 후루야 미노루의 전반기 작품에서는 추남이 겪게 되는 상황을 개그로 그려냈고 후반기 작품에서는 비극으로 그려냈죠. 꼭 추남이 아니더라도 사회적인 ‘루저’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그들이 겪는 험난한 사회생활을 그려내는 게 후루야 미노루의 일관된 방향성입니다. 즉, 전반부의 개그만화들이나 후반부의 시리어스 작품들이나 동일하게 ‘루저의 이야기’를 담아낸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심해어


하지만 후루야 미노루는 이 안타까운 루저들을 결코 사회의 시궁창에 박아놓은 채 끝없는 절망의 나락을 굴러다니게 내버려 두지는 않습니다. 그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죠. ‘눈에 콩깍지가 씐 미녀’를 등장시켜서요.

물론 별 볼 일 없는 남자를 어떤 이유에선지 연모하게 되는 여성 캐릭터의 등장은 남성향 만화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요소입니다. 이나중 탁구부의 치요코 까지만 해도 개그 만화에 흔하게 나올만한 캐릭터였어요. 몸매도 글래머러스하고 얼굴도 예쁜(그런데 첫 등장에서는 두꺼운 안경에 엉망인 스타일링으로 추녀 취급의 캐릭터로 나옵니다. 그런데 안경 벗고 스타일 개선하면서 미녀로 거듭나는.. 이 또한 매우 흔해빠진 설정.) 치요코가 어째서인지 추남인 이자와를 사랑하게 되죠. 하지만 치요코는 말했듯이 비교적 평범하고 흔한 캐릭터예요. 애초에 진지한 내용이 별로 없는 개그만화이기도 하고 치요코가 이자와에게 점점 호감을 키우게 되는 설득력 있는 내용 전개도 있는데다 정작 사귄 이후에도 이 중학생 꼬맹이 둘이 본격적인 연애라고 할만한 걸 제대로 하지도 않거든요.(애초에 연애만화가 아닌 개그만화니까요)


그런데 또 다른 개그 만화인 ‘그린힐’에서는 결혼 못해 외로워 죽을 거 같은 주인공 오카가 자기 몰래 주위 친구들이 다들 연애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소외감(+패배감)에 거의 미쳐버린 상태가 되었을 때 뜬금없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그에게 고백하는 여성이 등장합니다. 시리어스 작품들에서도 암울한 인생을 사는 루저 주인공에게 늘 그들에게 푹 빠진 매력적인 여자 주인공이 붙어 있고 심지어 비중 높은 조연 캐릭터(역시 루저)에게도 그런 여자 캐릭터가 나타나서 열렬한 사랑 고백을 해버리죠. 

그린힐


말했듯이 남성향 만화에서 흔한 요소이긴 하지만 그것도 밝은 분위기의 개그만화나 러브코미디 장르에서의 얘기지... 후루야 미노루의 시리어스 작품들은 대부분 내용이 폭력이나 성범죄 같은 하드코어한 내용들이고 여성 캐릭터들은 언제나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거든요. 이런 하드코어한 내용의 만화에서 밝은 분위기의 남성향 만화에 나올법한 연애 요소를 우겨넣어 버리는 게 그다지 평범하지는 않죠.

어떻게 보면 무리수 같고 괴상한 고집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저는 이런 요소들이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작품의 본질적인 주제에 비교적 매끄럽게 녹아들었다고 보는 쪽이긴 합니다. 저는 후루야 미노루의 팬이에요. 그의 작품 대부분을 소장하고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다수의 평가를 보자면 확실히 호불호가 갈리는 만화가인 건 사실입니다. 특히 김기덕의 영화처럼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 때문에 아마 여성 독자들의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그런데 제 주변의 여자사람 지인들은 대부분 후루야 미노루의 작품들을 좋아하더라고요.)


처음에 말한 대로 인기 만화가는 대부분 장기 연재를 하는 편이기 때문에 후루야 미노루처럼 짧은 연재 기간으로 여러 작품들을 만드는 만화가는 팬 입장에서는 고마운 존재입니다. 앞으로도 왕성한 활동으로 꾸준히 좋은 작품들을 많이 만들어 주길 기대합니다. 

 

 

대서즐라

대중문화와 서브컬처를 즐기는 라이프

트위터 @dszlife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