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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야기

[배우 이야기] 심은경

by 대서즐라 2021.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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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경

심은경은 놀라운 배우입니다. 놀라운 배우들이야 많이 있지만 심은경은 그 중에서도 더욱 특별하게 놀랍습니다. 최근에 그녀가 출연한 일본 영화 두 편을 봤습니다. ‘신문기자’와 ‘블루 아워’. 정말 심은경에겐 감탄 밖에 나오지가 않습니다. 이런 과감한 해외 진출 행보. 물론 한국 연예인의 일본 진출 시도는 과거부터 꾸준히 있어 왔습니다. 케이팝 아이돌이야 일본 진출을 안 하면 이상한 거고, 개그맨이나 배우, 감독들도 일본 시장에 꾸준히 도전해 왔었죠. 하지만 심은경 정도로 단기간에 이 정도로 눈에 띄는 성과를 낸 케이스가(아이돌 제외하고) 있을까요? 찾아보면 있기야 하겠지만 거의 드물죠. 특히 배우 중에서는 더더욱 드물 겁니다.


심은경은 2017년부터 일본어 공부를 하며 일본 진출 준비를 시작했고 2018년에 ‘신문기자’의 여주인공으로 캐스팅 되면서 첫 일본 영화에 출연합니다. 그리고 이 작품으로 그녀는 2020년 일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작품인 ‘블루 아워’(‘신문기자’와 마찬가지로 2019년 개봉작입니다) 또한 다카사키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일본 영화계에서 활동을 시작하자마자 상당히 눈에 띄는 성과들을 내고 있습니다.


심은경의 일본 진출은 꽤나 본격적인 행보입니다. 정확히는 본격적이 ‘되었다’고 할까요. 물론 단기간에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마스터를 할 정도로(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노력을 했으니 처음부터 어느 정도는 본격적인 활동의 계획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첫 작품부터 일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고 그 후 좋은 기회들이 계속 생기고 있으니 이제 아예 연기의 주 활동 무대를 일본으로 옮겨도 괜찮을 상황이 되어 버렸죠. 물론 일본 진출을 한 이후에도 한국 드라마에 출연하는 등 한국 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지만, 아카데미 수상 이후로 일본에서 섭외가 계속 들어오고 있어 당분간 일본을 주력으로 활동한다고 밝힌 상황입니다.

처음에 저는 심은경을 ‘놀라운 배우’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단지 한국 배우로서 해외 시장에 진출해서 성공을 거둔 것만을 두고 한 얘기는 아닙니다. 심은경의 일본 진출은 단순한 ‘해외 진출’의 의미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뭐 거창한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 그녀의 커리어 행보에 대한 것인데요. 

심은경은 아역 배우 시절부터 이미 유명했습니다. 2003년에 대장금으로 첫 데뷔를 했고 이후 다양한 작품들에서 아역 배우로 활약해 왔습니다. 특히 ‘헥토파스칼킥’으로 유명한 ‘단팥빵’이 그녀의 아역 시절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죠. 헨젤과 그레텔, 불신지옥 등 영화에서도 활약하다가 첫 영화 주연작이었던 ‘써니’가 초대박이 터지면서 일약 한국영화 계의 핫한 여배우로 주목받게 됩니다. 그리고 2014년에 개봉한 ‘수상한 그녀’에서 신들린 듯한 코미디 연기를 선보여 그야말로 한국 영화계에서 대체 불가능의 여배우라는 평가까지 받으며 영화배우로서 인기의 전성기를 누리게 됩니다.

헥토파스칼킥 (단팥빵)


써니와 수상한 그녀가 심은경의 한국영화 대표작이죠. 써니는 700만 이상의 흥행을 했고 수상한 그녀는 800만 이상의 흥행을 했습니다. 이 두 작품은 한국영화계에서 굉장히 이례적인 히트작입니다. 제작비가 많이 들어간 블록버스터도 아닌데다 선 굵은 남성 영화가 주류인 한국영화계에서 여배우를 중심으로 내세워 히트를 한 케이스니까요. 그리고 그 주인공은 심은경이죠.

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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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작품에서 무엇보다 주목받은 것은 심은경의 연기력입니다. 사실 심은경은 기존에 시대를 풍미했던 여배우들의 강점, 즉 미모가 뛰어난 배우는 아닙니다. 동글동글 귀엽게 매력 있는 타입이지만 정석적인 미녀 스타일은 아니죠. 물론 외모가 특출나지 않은 배우는 그 반대급부로 연기력이 뛰어날 것이란 생각도 일종의 편견이긴 합니다. 하지만 심은경은 확실히 외모보다는 연기력으로 주목을 받은 케이스입니다. 사실 언제가부터 한국영화계에서 예쁜 외모를 강점으로 내세우는 배우가 점점 줄어드는 추세죠. 외모보다는 연기와 개성이 더 중시되는 상황은 물론 바람직한 변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수상한 그녀


아무튼 이 두 작품의 성공으로 심은경은 최고의 대세 여배우가 되는데, 안타깝게도 이 대세 행보를 오래 이어가지는 못합니다. 결정적인 건 일본 만화 ‘노다메 칸다빌레’를 한국에서 실사 드라마화한 ‘내일도 칸타빌레’의 주연으로 캐스팅된 일입니다. 노다메 칸다빌레는 만화 원작도 유명하지만 우에노 주리가 열연을 펼친 일본의 실사 드라마판이 더 유명하죠. 고쿠센, 꽃보다 남자와 함께 일드 입문작 중 하나로 꼽힐 만큼 한국에서도 유명한 드라마입니다. 이 작품이 한국 드라마로 제작된다는 발표가 났을 때 한국 인터넷이 떠들썩했죠. 당연히 캐스팅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았고 여러 배우들이 거론되는 가운데 역시 심은경에 대한 지지가 상당히 높았습니다. 그리고 실제 심은경이 캐스팅되었고요.

일본 작품을 한국에서 리메이크 하면 항상 우려하는 목소리가 큽니다. 꽃보다 남자 같은 성공 사례도 있지만(물론 이 드라마도 인기는 끌었지만 완성도 자체는 많이 부족했죠) 망하는 경우가 더 많았고 한국 작품과 일본 작품의 근본적인 성향 차이는 늘 극복하기 어려운 숙제였거든요. 노다메 칸타빌레는 만화가 원작인 작품이니 일본 드라마판을 꼭 참고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대히트한 드라마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죠. 애초에 일본 드라마가 대히트를 하지 않았다면 한국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질 수도 없었을 테니까요. 이건 사실상 일본 드라마의 리메이크인 셈입니다.(실제로 대부분 그렇게 알고 있고요.) 하지만 일본판 노다메 칸타빌레 드라마는 한국에서 따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온갖 만화적이고 과장된 연출들이 난무하는데 한국 드라마에서는 보기 힘든 요소들입니다.

내일도 칸타빌레


이런 경우를 흔히 하는 말로 ‘한국 정서에 맞지 않다’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말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노다메 칸타빌레는 만화도 드라마도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작품 성향 자체에 국민의 정서 차이 운운할 요소는 없다고 보거든요. 정서에 맞지 않다기 보다는 공중파 드라마의 주 시청층의 취향에 맞지 않는다가 더 정확한 진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드라마는 시기적으로 너무 빨리 제작된 셈입니다. 케이블 드라마가 활성화된 요즘 시대에 케이블 드라마로 제작되었다면 더 나은 결과물이 나왔을지도 모르거든요. 그런데 비교적 최근작인 ‘리갈하이’의 경우가 있어서 이것도 확신은 못하겠네요.

아무튼 그렇게 제작된 ‘내일도 칸타빌레’는 여배우 심은경의 최악의 커리어이자 흑역사가 되고 맙니다. 주연을 맡은 심은경의 책임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냥 드라마 자체가 총체적 난국입니다. 캐릭터가 제대로 잡혀 있지 않고 연기 지도가 오락가락이니 아무리 좋은 배우라도 이런 상황에선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죠. 실제로 이 드라마가 망하면서 심은경이 크게 욕을 먹은 건 아니에요. 하지만 배우로서 상당한 타격을 입은 것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내일도 칸타빌레


이후 심은경은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지만 이렇다 할 큰 결과를 내지는 못합니다. 이대로 대세 여배우 심은경의 전성기는 끝난 건가 싶었는데... 

잘 나가던 연예인이 이런 상황에 처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죠. 자주 있다기보다는 달이 찼다가 기우는 것처럼 거의 필연이라 해도 될 정도로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인간은 영원한 존재가 아니니까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예인이나 예술가라도 언젠가는 은퇴를 하고 수명이 다하여 죽게 됩니다. 은퇴가 아니더라도 점점 인기가 떨어지고 언젠가 사람들에게 잊혀지는 건 모든 연예인들에게 정해진 숙명입니다. 다만 그 시기가 이르냐 늦냐의 차이일 뿐이죠.

하지만 아직 앞날이 창창한 젊은 연예인이 그렇게 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젊어서 대세 연예인이 되었다가 금세 사그라들어 버린 케이스가 너무너무너무너무 많습니다. 특히 한번 기세가 꺾였을 때 그것을 다시 반전시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죠. 

그런데 심은경은 놀라운 방법으로 반전을 이루어냅니다. 과감한 일본 진출 시도! 쉽게 와닿지 않지만 이 행보는 꼼꼼히 따져보면 정말 놀라운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은 가까운 나라이고 문화 콘텐츠 시장의 규모가 어마어마합니다. 정치적으로는 심한 갈등을 빚고 있지만 민간 교류는 활발하고 특히 한류는 이제는 일본에서 일상의 한 부분이 되다시피 한 상황입니다. 케이팝 아이돌은 일본 시장으로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죠. 내수시장이 작은 한국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기회의 땅이 바로 옆나라 일본인 것입니다. 

신문기자


하지만 무궁무진한 기회가 있더라도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시장은 아닙니다. 노래하고 춤추는 아이돌의 경우는 일본어를 잘하지 못하더라도 일본 진출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일본의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해 일본어로 연기를 하려면? 당연히 일본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마스터를 해야만 하죠. 물론 언어가 유창하지 않더라도 대사만 완벽하게 외우는 방식으로 부족한 외국어 연기를 별로 어색하지 않게 해내는 경우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진짜 좋은 연기를 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 시장에 기회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일본어 공부를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입니다. 그렇게 일본 진출을 하더라도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고 외국어를 마스터 하는 것 자체가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거든요. 무엇보다 심은경 같은 케이스는 기존에 선례가 없기 때문에 더욱 큰 모험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심은경의 케이스는 정말 놀라운 소식이라 할만 합니다. 한국에서 한때 엄청 대세였던 젊은 여배우가 언제가부터 지지부진하고 소식이 뜸하더니 난데없이 일본 영화에 출연해 일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놀랍고 신기하고, 특히 이런 경우가 과거에 없었기 때문에 거의 충격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신문기자


그리고 작품을 보면 더 놀라게 됩니다. 신문기자와 블루아워. 두 영화를 보면 일본인 배우들 속에서 전혀 어색함이 없이 유창하게 일본어를 구사하며 여전히 최고의 연기를 펼쳐 보이는 명배우 심은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일본 아카데미상을 석권한 신문기자도 좋은 작품이지만 저는 블루아워를 더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사실 신문기자는 일본에서는 이례적인 작품이지만 한국에서는 워낙 흔하게 제작되는 소재나 장르이다 보니 일본 영화보다는 한국 영화 같이 느껴졌고 심은경도 그냥 한국 배우가 한국 영화에서 흔히 보는 캐릭터를 연기한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블루아워는 확실히 일본 색체가 강하기 때문에 한국 영화에서 보던 심은경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 나 새로웠습니다. 그리고 작품 자체도 블루아워가 더 좋았습니다. 내용이나 주제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걸어도 걸어도’와 유사합니다. 걸어도 걸어도의 여성감독 버전이랄까요. 하코타 유코 라는 여성 감독의 데뷔작입니다. 블루아워가 굉장히 흥미로웠기 때문에 감독의 차기작도 기대가 되고, 앞으로도 계속 이런 느낌으로 고레에다의 여성 버전 같은 영화를 만들지 궁금하네요. 

블루아워


심은경이 블루아워에서 보여준 모습은 앞으로 그녀가 보여줄 일본 활동에 대해 더 큰 기대를 가지게 만듭니다. 물론 저는 드라마나 영화의 퀄리티가 일본보다 한국이 우세하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하지만 일본 작품들은 한국 작품에서는 보기 힘든 개성과 다양성이 있는데 심은경이 그런 부분에서 앞으로 흥미로운 캐릭터와 표현을 보여줄 것 같아 정말 기대가 됩니다. 

또 반복하지만, 심은경은 정말 놀라운 배우입니다. 언젠가 그녀가 한국과 일본을 넘어 할리우드까지 진출해서(미국 유학 경험이 있어 영어도 유창하기에) 세계적인 여배우로 활약할 수 있기를 조심스럽게 기대해 보겠습니다.


대서즐라
대중문화와 서브컬처를 즐기는 라이프

트위터 @dsz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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