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B. 조던 Michael B. Jordan
최근에 좋은 흑인 배우들이 할리우드에서 많이 활약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거에는 ‘흑인 배우’ 하면 지금처럼 수는 많지 않아도 그냥 딱 이름이 떠오르는 ‘거물급’ 배우들이 늘 있었는데 최근에는 그런 거물급 흑인 배우의 계보가 끊어진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모건 프리먼, 덴젤 워싱턴, 윌 스미스, 사무엘 L. 잭슨... 연기력과 지명도를 모두 갖춘 톱클래스 흑인 배우가 항상 등장했었는데 어느 시점부터는 나오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할리우드에서 흑인 배우의 영향력이 약해졌기 때문일까요? 아뇨,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오히려 과거에는 흑인 배우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소수의 흑인 배우들이 주요 작품의 배역들을 독점하다시피 해서 지명도를 쉽게 높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처음에 언급한 대로 최근에는 흑인 배우들이 굉장히 많아요. 좋은 흑인 배우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특정 소수에게 관심과 지명도가 집중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수가 많아지면 그만큼 사람들이 기억하기도 힘들어지니까요.
최근 주목받는 흑인 배우들 중에 특히 제가 관심 있게 보고 있는 배우는 마이클 B. 조던입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저는 그냥 이 배우가 멋있어서 좋습니다. 사실 흑인 배우를 보고 멋있다고 생각한 건 이 배우가 처음이에요. 물론 과거에 덴젤 워싱턴이나 윌 스미스 같은 잘생긴 흑인 배우들이 있었죠. 그런데 저는 덴젤 워싱턴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윌 스미스는 그냥 잘 생겼다고만 생각했지 멋있다고는 생각 안 했어요. 그런데 지금 제가 ‘멋있다’ 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데 이 배우들에게 느끼는 바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표현입니다. 한국어에 왜 이런 종류의 단어가 없는지 의아해요. 예컨대.. ‘배드애스(Badass)’. 네, 이거예요. 제가 덴젤 워싱턴이나 윌 스미스에게는 그다지 느끼지 못했고 마이클 B. 조던에게 느낀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배드애스(Badass)’
마이클 B. 조던이 이런 배드애스 느낌이 나는 배우라서요. 그래서 좋아합니다. 물론 그가 좋은 작품들에 출연했기 때문에 그런 작품들에서 더욱 멋지게 보이는 거겠죠.
마이클 B. 조던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라이언 쿠글러가 연출한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에 출연하면서부터입니다. 개봉 당시만 해도 인지도가 떨어지는 작은 규모의 영화였는데 지금은 굉장히 유명해졌죠. 영화 자체도 그렇고 감독인 라이언 쿠글러와 주연 배우 마이클 B. 조던까지도 당시에 비해 지금은 상당히 영향력 있는 영화인으로 성장했습니다. 그걸 넘어서서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는 미국의 영화계, 아니 미국이라는 나라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남긴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Black Lives Matter’
흑인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 운동은 수백 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있었지만 최근의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계기로 또 한 번 미국 사회를 뒤흔들어 놓은 거대한 물결로까지 번지게 됩니다. 그런데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는 이 조지 플로이드 사건과 유사한 과거의 실제 사건을 영화로 만든 작품입니다. 이런 사건들이 미국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죠.
이 영화를 찍고 영화계에 주목을 받은 라이언 쿠글러는 록키의 스핀오프인 ‘크리드’를 성공시키고 이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블랙팬서’의 감독으로 발탁됩니다. 모두가 아는 대로 블랙팬서는 역대급 대히트를 터트리죠. 북미에서 무려 7억 불이라는 어마어마한 흥행을 기록하는데 단일 히어로 영화로는 역대 최고의 흥행 기록이고 이 정도면 앞으로 꽤 오랫동안 깨지기 힘든 기록이라고 생각합니다.
블랙팬서의 말도 안 되는 흥행은.... 네, 말이 안 됩니다. 7억 불? 역사상 북미에서 블랙팬서보다 더 흥행한 작품은 세 편 밖에 안 되요.(2021년 6월 기준)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어벤져스 엔드게임’, 그리고 ‘아바타’입니다. 전부 ‘그럴만한’ 작품들이죠.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레전설 상업영화들. 그런데 블랙팬서는? 물론 좋은 작품이긴 합니다. 하지만 저런 역대급 상업영화들과 비견될만한 작품은 절대 아니죠.
블랙팬서는 MCU 프렌차이즈의 기본 브랜드 파워가 있는데다 북미에서 역대급 히트를 한 게 세계적으로도 화제가 되어서 북미 이외의 지역에서도 꽤 흥행했습니다. 한국에서도 5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고요. 하지만 북미의 흥행 순위로는 역대 4위인데 월드와이드 순위로는 12위입니다.(2021년 6월 기준) 즉 다른 나라에서도 어느 정도 잘 되긴 했지만 북미에서 유달리 엄청난 흥행을 한 상황인데 이게 영화 자체의 재미나 완성도 때문에 그런 거라고 보기는 힘들거든요. 결국 블랙팬서의 엄청난 흥행도 그동안 미국 사회에서 아주 긴 역사 동안 억압받아 온 흑인 사회의 저항 운동이 문화적 소비 활동으로 발현된 것으로 보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이것이 뭔가 하나의 맥락으로 주욱 이어지는 흐름처럼 보이는 겁니다.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라는 영화가 나오고, 그 영화로 주목받은 감독이 흑인 히어로 영화 ‘블랙팬서’를 연출해서 말도 안 되는 초대박 히트를 터트리고.. 그리고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터져서 미국 사회에 흑인 인권 운동의 거대한 파도가 몰아치는 일련의 흐름들. 물론 이런 영화계의 상황과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서 인과관계라고 할만한 건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같은 맥락으로 묶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이게 하나의 흐름처럼 보이기도 하는 거예요. 결국은 ‘Black Lives Matter’로 귀결되는.
대부분의 문화계가 그렇지만, 할리우드도 보수적 성향보다는 진보적 성향의 영향력이 좀 더 크죠. 할리우드의 여러 작품들에서 흑인(혹은 모든 유색인과 소수자들) 인권 신장 운동의 문화적 양태가 점점 발현되는 것이고, 역시 7억 불의 흥행대작 감독이 된 라이언 쿠글러가 그 중심에 있는 인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쿠글러의 영화에는 언제나 마이클 B. 조던이 함께 해왔죠.
라이언 쿠글러는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 이후 만든 록키의 스핀오프 영화 ‘크리드’에서 마이클 B. 조던을 다시 주연으로 캐스팅합니다. 이 영화가 현재 마이클 B. 조던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했듯이 록키의 스핀오프 영화입니다. 백인 이민자 남성의 아메리칸 드림을 그린 록키 시리즈가 21세기에 흑인 주인공을 내세운 크리드 시리즈로 환생한 것입니다. 마이클 B. 조던은 록키 시리즈의 또 다른 주인공이었던 아폴로 크리드의 아들 아도니스 크리드 역을 연기하는데, 늙은 록키의 지도를 받아 세계적인 복싱 선수로 성장해나가는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잘 표현해냅니다. 아폴로 크리드를 친아버지로, 록키 발보아를 정신적인 아버지로 삼은 아도니스 크리드는 모두가 인정하는 록키의 후계자이고 영화 자체도 록키 시리즈의 훌륭한 계승작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1편의 성공으로 다른 감독이 연출한 2편도 제작되었고 마찬가지로 성공을 거두어 마이클 B. 조던의 커리어에서 확고한 대표작으로 남게 됩니다.
하지만 크리드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크리드 이상으로 마이클 B. 조던의 대표작이라고 할만한 작품은 블랙팬서입니다. 주인공인 블랙팬서는 지금은 대장암으로 사망한 채드윅 보즈먼(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이 연기했지만 마이클 B. 조던이 연기한 빌런 ‘킬몽거’도 ‘주인공 보다 멋있는 악역’으로 평가 받으며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메인빌런이면서 사실상 또 다른 주인공이라고 해도 될 만큼 완성도가 높은 캐릭터였고 특히 마이클 B. 조던의 ‘배드애스’ 카리스마가 정말 일품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크리드보다 블랙팬서를 먼저 봤고 이때부터 마이클 B. 조던에게 큰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크리드도 정말 좋아하지만 블랙팬서의 킬몽거가 진짜... 짱입니다. 너무 멋있어요 정말로. 블랙팬서의 7억 불 대히트? 마이클 B. 조던의 공도 굉장히 크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채드윅 보즈먼의 블랙팬서도 정말 멋졌고 그는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나 ‘어벤져스 인피니티워’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쳤죠. 대장암으로 사망한 게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개인적으로는 마이클 B. 조던 같은 뛰어난 배우가 MCU 라는 현 세계 문화 산업계의 최대 프렌차이즈 시리즈에서 일회성 빌런으로 소모된 것이 아쉽게 느껴집니다. ‘인피니티 사가’가 막을 내리고 아이언맨이나 캡틴 아메리카 같은 거물급들이 퇴장한 뒤 현재 MCU는 차세대 어벤져스를 이끌어갈 새로운 배우들을 차곡차곡 수집해 나가는 중이거든요. 마이클 B. 조던도 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이미 일회성 빌런으로 출연하고 퇴장해 버렸으니...
그런데 블랙팬서에 출연하기 이전에 마이클 B. 조던은 이미 히어로 영화를 한 편 찍었어요. ‘고무닦이’로 유명한 판타스틱포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안 봤습니다. 진짜 재앙급의 망작이라는 평이 많아서. 그래도 언젠가 보기는 할 거 같습니다. 마이클 B. 조던의 휴먼 토치가 궁금하긴 하거든요. 그러고 보니 예전에 팀 스토리 감독이 만든 판타스틱포가 생각보다 괜찮은 작품이었던 거 같아요. 일단 캐스팅부터 장난 아니어서... 휴먼 토치가 크리스 에반스였고 수 스톰은 무려 제시카 알바...
MCU 프렌차이즈에서 일회성 빌런으로 소모된 게 안타깝긴 하지만 MCU가 아니더라도 마이클 B. 조던이 활약할 기회는 무궁무진합니다.(그런데 최근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킬몽거가 MCU에서 다시 부활할 가능성도 아주 없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재능과 매력이 넘치는 배우이기 때문에 앞으로 할리우드에서 활약할 기회는 차고 넘칠 겁니다. 개인적으로 그의 배드애스 면모를 많이 볼 수 있는 액션 영화에 많이 출연해 주면 좋겠습니다. 사실 덴젤 워싱턴이나 윌 스미스도 남성적인 액션물에 많이 출연했었죠. 마이클 B. 조던도 과거의 위대한 흑인 배우들의 계보를 이어서 오래도록 영화계에서 많이 활약해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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