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원작영화 리뷰
*스포일러가 포함된 리뷰입니다
온다 / 보기왕이 온다 来る / ぼぎわんが,來る
나카시마 테츠야의 ‘온다’는 일본의 호러 작가 사와무라 이치의 소설 ‘보기왕이 온다’를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제목에서 보기왕이라는 단어를 빼버린 건 한국 정식 수입판 제목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고 일본 개봉판에서도 동일합니다. 일본에서도 보기왕은 빼버리고 ‘쿠루(来る)’라는 제목으로 개봉했죠.
나카시마 테츠야는 현재 일본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한 명인데 유명한 작품들이 거의 다 소설 원작입니다. 아마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인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비롯해서 고백, 갈증 등 대표작들이 전부 소설이 원작이죠.
나카시마 테츠야가 만든 작품의 원작 소설들은 대부분 이야미스 계로 분류되는 작품들입니다. ‘이야미스’는 저도 최근에 알게 된 용어인데, 일본어 ‘이야(いや)’와 ‘미스터리’의 합성어로 그냥 읽다 보면 기분이 더러워(?)지는 장르를 의미합니다. 물론 작품이 별로라서 그렇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고요. 뭔가 어둡고 기분 나빠지게 하는 소재나 내용을 다루는 작품들인 거죠.
그런 면에서 역시 끝판왕은 ‘갈증’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머지 작품들도 만만치 않습니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경우 의외로 밝은 분위기로 만들었는데 그 밝은 분위기의 이면에 깔린 꿉꿉하고 칙칙한 정서가 상당히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죠. 그만큼 블랙 코미디 장르로서 좋은 작품이긴 하지만요.
‘온다’는 장르가 호러입니다. 물론 이야미스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모처럼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어둡고 암울한 정서를 제대로 담아낼 수 있는 장르를 만들게 되었는데 의외로 ‘온다’는 그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서 그다지 어두운 분위기의 작품은 아닙니다. 물론 호러 장르다운 표현과 연출들이 등장하긴 합니다. 귀신(비슷한 무언가)도 나오고 잔인한 장면도 많이 나와요. 하지만 귀신도 잔인한 장면도 나오지 않는 ‘고백’과 비교해도 ‘온다’가 훨씬 순한 맛으로 느껴집니다.
가장 큰 이유는 영화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겠죠. 말했듯이 나카시마 테츠야의 대표작들은 대부분 원작 소설이 있고, 이 원작 소설의 작가가 모두 다르다 보니 그런 차이들이 그의 영화에도 반영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개성은 확실히 살아 있지만 작품 마다 두드러지는 차이점은 존재하게 되는 것이죠.
온다의 원작 소설 ‘보기왕이 온다’는 호러 소설이지만 엄청나게 무섭고 암울한 작품은 아닙니다. 이야미스 적인 면이 있긴 하지만 저는 영화와 소설 모두 뭔가 오락적인 재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느꼈습니다. 호러 장르이긴 하지만 사실은 그 외에도 다양한 장르가 혼합되어 있거든요. 초자연적인 괴이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조사하고 연구하는 과정은 미스터리나 추리물의 성격이 있고, 괴이에 맞서 싸우는 내용은 퇴마물로서의 성격도 담고 있죠. 물론 등장하는 괴이가 상당히 강력하고 실제 많은 사람들이 죽기 때문에 그리 가볍게 읽을 내용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무섭다기 보다는 흥미롭고 스릴 넘치는 전개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위의 문단에 쓴 감상은 ‘보기왕이 온다’에만 국한되는 내용은 아닙니다. 2015년에 나온 ‘보기왕이 온다’는 사와무라 이치의 데뷔작이고, 그 후 작가는 꾸준히 작품 발표를 했습니다. 그 중에서 2021년 기준 한국에 정식 번역 발매된 작품은 ‘보기왕이 온다’와 ‘즈우노메 인형’입니다. 두 작품 모두 저의 리디북스 서재에 전자책으로 보관되어 있습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저는 이미 이 작가의 팬이 된 것 같습니다. 다음 작품이 빨리 번역 출간되길 간절히 기다릴 정도니까요.
다른 작품은 안 읽었지만 제가 읽은 두 작품에 대해서만 설명하자면 우선 내용은 달라도 동일한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몇몇 등장인물들은 겹치죠. 사실 단순히 겹치는 게 아니라, 이들이 작품의 중요 등장인물입니다. 주인공이라고도 할 수 있죠. 주인공이면 주인공이고 아니면 아닌 거지, ‘라고도 할 수 있다’는 건 뭐냐, 싶겠지만... 사실 주인공이면서도 주인공이 아닌 것 같은 캐릭터도 은근히 창작물에서 자주 볼 수 있으니까요.
보기왕이 온다와 즈우노메 인형에 모두 등장하는, 주인공이면서도 주인공이 아닌 것 같은, 아니 반대로 주인공이 아닌 것 같은데 주인공인 캐릭터는 바로 노자키와 마코토라는 캐릭터입니다. 이들의 작품 내 역할은 컨저링 시리즈에 등장하는 워렌 부부와 유사합니다. 일종의 퇴마사 같은 역할이죠. 물론 워렌 부부와 비교해 본다면 차이점이 매우 많습니다.
워렌 부부는 실존 인물이고 뭐 귀신이나 심령 현상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단순히 사기꾼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름 이 분야에서 권위를 가지고 있으며 세계적인(?) 명성 또한 있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컨저링 시리즈 때문에 많이 유명해졌지만 그 전에도 이런 분야의 마니아들에게는 알려진 인물들이었죠. 컨저링 시리즈 내에서도 워렌 부부는 상당한 명성과 권위를 가지고 있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모습도 등장합니다.
반면 노자키와 마코토는 퇴마사로서 이렇다 할 명성이나 권위를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노자키는 무명 오컬트 작가이고 마코토는 바에서 일하면서 생계를 유지합니다. 바에서 일하는 건 소설 기준이고 영화에서는 캬바죠로 소개가 됩니다.(일하는 모습은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워렌 부부 보다 더 대단하다고 할 만한 능력도 있습니다. 정확히는 노자키가 아닌 마코토에게 능력이 있습니다. 일종의 영능력으로, 초자연적인, 혹은 영적인 존재를 느끼고 대응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일종의 유사 과학과 오컬트 지식만으로 사태를 해결하는 워렌 부부와 달리 마코토는 실제 어느 정도의 영적인 능력을 가지고 괴이에 대응합니다.(물론 워렌 부부도 컨저링 시리즈에서는 아내인 로레인이 어느 정도 영능력 비슷한 게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마코토의 능력은 참 보잘 것 없습니다. 영능력이 있지만, 그다지 강하지 않습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거의 도움이 안 되는 수준이에요. 실제로 보기왕이 온다와 즈우노메 인형에서 모두 마코토의 능력은 사태 해결에 거의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마코토에게는 고토코라는 이름의 언니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형제 자매가 여럿 있었는데 모두 죽고 지금은 둘만 남았습니다. 대부분 영적인 괴이와 관련된 죽음이고 즈우노에 인형 까지의 내용에서는 고토코의 동생이자 마코토의 언니인 마히루의 죽음의 진상까지만 밝혀집니다.
고토코는 마코토와는 달리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진 퇴마사입니다. 따로 직업을 가지고 퇴마사 일은 거의 무보수로 하고 있는 마코토와는 달리 고토코는 전국구 유명세를 가지고 활약하고 있는 세계관 최강자 급의 퇴마사예요. 높으신 권력자들과도 연줄이 있을 정도로 상당한 힘을 가진 인물입니다.
고토코의 능력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입니다. 그 반면 마코토의 능력은 고토코를 부러워하며 스스로 노력한 끝에 후천적으로 얻게 된 것입니다. 당연히 능력은 훨씬 약하고 힘을 얻는 과정의 부작용으로 임신도 할 수 없는 몸이 되었습니다. 마히루를 비롯한 다른 형제 자매들의 죽음도 고토코의 능력과 (간접적으로)관련이 있습니다. 모든 진상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대충 그런 사정이라는 것을 작품 속에서 유추할 수 있습니다.
고토코도 마코토와 노자키 만큼 작품 속에서 중요한 인물인가 하는 부분은 조금은 애매한 구석이 있습니다. 보기왕이 온다 에서는 고토코가 결국 사태를 해결해 버리지만(후반후에 등장해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역할을 합니다) 즈우노메 인형에서는 아예 등장조차 하지 않거든요.(에필로그에 잠깐 등장하긴 합니다. 1인칭 화자인 주인공이 마코토가 누군가와 함께 있는 모습을 멀리서 보는 장면이 짧게 언급되는데 묘사를 보면 고토코인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형제 자매가 다 죽고 하나 남은 동생이 늘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도 세계관 최강자인 언니라는 사람은 제때 도와주러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너무 바빠서’. 이 세계관에서는 죽을 위기에 처한 동생을 구해주러 오지도 못할 정도로 고토코가 전국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괴이 사건들을 해결하고 다닌다는 설정입니다. 아주 그냥 귀신이나 요괴가 판을 치는 세상인가 봅니다. 헌데 그런 것 치고는 괴이나 초자연 현상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지금 우리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대체로)믿지도 않는 세계인 거죠.
아무튼 이런 세계관 최강자 급인 고토코라는 캐릭터가 존재하지만, 그래도 주인공이면서 주인공이 아닌 것 같은 핵심 캐릭터는 노자키와 마코토 입니다. 워렌 부부와 비교를 했는데, 보기왕이 온다에는 노자키와 마코토가 아직 연인 사이이지만 즈우노메 인형에서는 에필로그에서 결혼을 해서 부부가 되기 때문에 확실히 워렌 부부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노자키와 마코토는 주인공이면서 주인공이 아닌 것 같은 캐릭터고, 매 작품 마다 이야기의 핵심을 이루는 주인공 캐릭터는 따로 있습니다. 이런 점도 컨저링 시리즈와 유사하죠. 먼저 괴이에 휘말려서 고통 받는 주인공(피해자)이 등장하고, 이에 도움을 주기 위해 노자키와 마코토가 중반부부터 등장하는 형식입니다.(그런데 컨저링의 경우 시리즈가 이어질수록 점점 워렌 부부의 비중이 커지며 최근작에서는 시작부터 끝까지 확고하게 주인공 포지션으로 자리 잡더군요)
그런데 즈우노메 인형의 경우 주인공(피해자)이 마지막까지 이야기의 중심이 되어 이끌어가지만, 보기왕이 온다는 중간에 주인공이 리타이어 해버립니다. 부부가 주인공(피해자)으로 등장하는데 남편은 사망하고 아내는 정신병원에 가게 됩니다. 심지어 마코토마저 리타이어 합니다. 큰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하게 되죠. 그 후 고토코가 등장하게 되고 노자키와 함께 괴이에 대응하게 됩니다. 괴이에 잡혀가서 사라진 피해자 부부의 어린 딸을 구하기 위해 마지막 대결을 펼치게 되죠.
앞에서 말한 대로 무섭다기 보다는 상당히 스릴 있고 흥미진진한 내용입니다. 작품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는 이러한 무서운 괴이나 저주 현상들이 인간의 마음이나 관계에서 발생하는 ‘틈새’를 통해서 온다는 설정입니다. 더 익숙한 표현으로 바꾸자면 ‘균열’이죠. 마음의 균열, 관계의 균열, 가족의 균열. 하여간 뭔가 문제가 있는 가족이나 개인에게서 끔찍한 저주의 근원이 발생한다는 설정입니다. 이 스토리가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기본적으로 1인칭 화자로 작품이 서술되며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화자가 바뀌기도 합니다. 1인칭 서술 형식의 미스터리 소설이라면 필연적으로 써먹을 수 밖에 없는 서술 트릭도 당연히 등장합니다. 이런 서술 트릭에 의해 감춰졌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의 반전이 상당히 흥미롭고 이야기의 완성도를 높여 줍니다.
개인적으로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보기왕이 온다’의 영화화는 상당히 잘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소설 보다는 영화를 먼저 봤습니다. 일단 영화를 굉장히 흥미롭고 만족스럽게 보았고 그 후 당연한 수순으로 소설까지 보게 된 것인데, 소설을 읽어보니 확실히 영화가 원작의 개성과 장점을 잘 살리면서 영화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요소도 완성도 높게 잘 구현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뛰어난 감독인 건 사실입니다. 일본의 영화 감독 중에서 ‘믿고 보는 감독’ 라인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감독의 특징이자 강점이라면 역시 스타일리시한 영상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제가 이 감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언제부턴가 기교적이고 요란한 영상미를 특기로 삼는 감독들의 영화는 보기가 거북해지더군요. 특히 극장에서 볼 때는 살짝 멀미가 나기도 합니다. 나카시마 테츠야의 ‘고백’을 극장에서 볼 때 그랬습니다. 같은 이유로 할리우드의 잭 스나이더 감독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다만 스타일리스트 감독의 대명사 격인 리들리 스콧이나 데이빗 핀처의 영화는 아주 좋아하는데, 이 감독들은 단지 기교적인 영상미를 과시적으로 남발하지 않고 상당한 연출 내공을 바탕으로 차분하고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끝내주게 멋진 영상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런 역대급 감독들과 비교해볼 때 나카시마 테츠야나 잭 스나이더는... 많이 부족하죠. 뭐 그래도 정상급의 감독들이긴 하지만요.
사실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싫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잭 스나이더도 그렇고 나카시마 테츠야도, 작품 자체는 대부분 재미있게 봤거든요. 물론 제가 본 나카시마 테츠야의 영화들은 전부 원작이 따로 있습니다. 이 작품들이 재미있었던 건 원작의 힘이라는 사실도 부정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아무리 좋은 원작들만 영화화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높은 타율로 재미있는 영화를 완성하는 건 역시 감독의 능력입니다. 좋은 원작을 망쳐버리는 감독들이 세상에 넘쳐나니까요. 특히나 오리지널 시나리오의 영화보다는 원작이 있는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이 제작되는 일본 영화계에서는 더 그렇죠.
우열을 나누기가 애매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온다’는 제가 나카시마 테츠야의 영화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용도 재미있고 캐릭터도 좋은데다 제가 좋아하는 배우들이 잔뜩 나오거든요. 영화의 포스터를 보면 주요 등장인물 다섯 명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이 중에서 세 명이 제가 아주 좋아하는 배우입니다. 츠마부키 사토시, 쿠로키 하루, 고마츠 나나. 이 세 배우들 사이에서 또 누가 가장 좋은가로 굳이 우열을 나눌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일단 이 영화에만 국한하자면, 단연 고마츠 나나가 최고입니다.
고마츠 나나가 연기한 배역은 마코토 입니다. 영능력이 있는 캐릭터. 하지만 언니인 고토코에 비하면 엄청 약해서 별 도움도 안 되고, 실제로 사태 해결을 못 한 채 큰 부상을 입고 입원하며 중간에 리타이어하는 캐릭터 입니다. 원작 소설 기준으로는요. 영화판에서는 좀 더 비중이 늘어나서 후반부에도 계속 등장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도움이 안 되고 공격 당하고 고통 받는 모습만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마코토라는 캐릭터가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서브컬쳐 용어로는 ‘갭모에’ 느낌의 매력인데요. 화려한 염색에 펑키한 스타일, 짙은 화장, 밤에 일한다는 특성을 생각하면 꽤나 걸걸한 성격일 거 같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순하고 착한 캐릭터입니다. 영화판에서는 이런 갭모에 성향이 더 강해집니다. 직업도 캬바죠이고 몸 여기저기에 문신까지 하고 있죠. ‘퇴폐미’의 대명사격인 배우 고마츠 나나가 연기하니까 그런 면이 더욱 잘 살아납니다. 하지만 성격은 원작대로 착하고 순수합니다. 이런 갭모에가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구현되기 때문에 원작보다 캐릭터의 매력이 훨씬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사실 영화를 보지 않고 책을 먼저 읽었다면 마코토라는 캐릭터가 어떻게 다가왔을지 확신이 없기는 합니다. 영화에서 고마츠 나나가 연기하는 마코토가 너무 매력적이었기에 소설을 읽을 때도 고마츠 나나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소설 문장의 묘사로도 생생하게 영화 속 캐릭터가 그려지더군요. 분명 영화 속 마코토의 모습이 지배적인 인상을 남긴 때문이겠지만 그만큼 소설과 영화의 캐릭터 묘사가 거의 완벽에 가깝게 일치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감독과 배우 모두 소설을 꼼꼼히 읽고 합작하여 좋은 연기지도와 캐릭터 구현을 이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말할 것도 없이 배우 고마츠 나나가 연기한 최고의 캐릭터입니다. 사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고마츠 나나는 제가 엄청나게 좋아하는 배우는 아니었습니다. 좋아하는 배우이긴 하지만, 요즘 푹 빠져 있는 스기사키 하나나 예전부터 일본 배우 중에서 특히 좋아했던 니카이도 후미, 미야자키 아오이, 나가노 메이 같은 배우들과 비교하면 조금은 후순위였죠.
사실 고마츠 나나가 가장 인상에 남았던 배역은 나카시마 테츠야의 ‘갈증’의 주인공 카나코입니다. 그야말로 고마츠 나나의 퇴폐미와 다크 포스를 극한까지 보여준 캐릭터인데 엄청나게 인상 깊긴 하지만 역시 이 배역은 너무 막장인 악역이라는 점이 문제입니다. 이렇게 매력적인 젊은 여배우의 대표 배역으로 기억하기에는 이런 인간 쓰레기 캐릭터는 적합하지 않죠.
그 외 고마츠 나나의 출연작들을 많이 보긴 했는데 갈증의 카나코 만큼 기억에 남는 배역은 없었습니다. 물론 좋은 작품과 좋은 캐릭터는 많았습니다. 고마츠 나나의 출연작 중에서 아마 가장 평가가 좋고 국내에서도 유명한 작품은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일 것입니다. 이 영화를 본 대다수의 평가 그대로 정말 좋은 작품이고 고마츠 나나도 좋은 연기를 보여줍니다. 그 외에도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 ‘언덕길의 아폴론’, ‘근거리 연애’ 등 청춘물의 여주인공 역을 많이 했고 고마츠 나나는 꾸준히 좋은 연기와 매력적인 캐릭터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런 밝고 순수한 청춘물의 여주인공이 고마츠 나나에게 최적의 배역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퇴폐미. 그녀는 역시 퇴폐미입니다. 그래서 ‘온다’를 보기 전까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고마츠 나나의 작품은 갈증을 제외하면 ‘물에 빠진 나이프’입니다. 이 작품도 청춘 로맨스물이긴 한데 고마츠 나나가 출연한 다른 로맨스물에 비해 좀 어두운 분위기입니다. 만화 원작인데 만화도 꽤 어두워요. 강간 미수라든가 스토킹이라든가 하는 위험한 내용도 다루고요. 남자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가 스다 마사키인데 이 배우도 퇴폐미와 다크 포스라면 빠지지 않는 배우입니다. 고마츠 나나와 스다 마사키의 퇴폐미 케미가 상당히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작품들에 출연하며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준 고마츠 나나가 ‘온다’의 마코토 역으로 그 매력의 정점을 찍게 됩니다. 마코토는 그저 퇴폐미라는 그녀의 강점을 부각시키기만 한 캐릭터가 아닙니다. 비주얼은 퇴폐미인데 속은 순수하고 착한 갭모에. 고마츠 나나라는 배우를 위해 이런 완벽하게 매력적인 배역이 준비되어 있을 줄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런데 좀 충격적인 고백을 하자면 저는 처음에는 마코토를 연기한 배우가 고마츠 나나인 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제가 ‘온다’를 보게 된 계기는 물론 감독과 출연 배우들 때문이었는데, 그 출연 배우 명단을 보고도 특별히 누군가를 확실하게 각인한 게 아니라 그저 ‘대체로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 나오는 구나’ 하고 흐리멍텅한 인식을 가진 채 영화를 본 거였거든요. 영화 초반에는 츠마부키 사토시와 쿠로키 하루만 나오다 보니 그 외 출연 배우가 누가 있었는지는 멍하니 잊어버린 채 영화를 봤습니다. 그래서 영화의 중반부 즈음 마코토가 등장했을 때 그냥 어리둥절 했습니다. 분명히 낯은 익은데 배우가 누구인지 도무지 모르겠는 거예요.
그러고 한참을 봤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 영화에 고마츠 나나가 출연한다는 사실이 기억이 났습니다. 하지만 그게 마코토라는 것까지는 바로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영화 초반부에 츠마부키 사토시와 쿠로키 하루의 결혼식 장면, 그리고 좀 지난 후 집들이 장면에서 젊은 여배우들이 잔뜩 나오는데... 죄다 엑스트라 배역이라 이 중에 고마츠 나나가 있었을 리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그제서야... 설마 마코토?
그때부터 영화의 내용도 잊고 마코토의 얼굴만 뚫어져라 봤습니다. 일단 마코토가 고마츠 나나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다만 마코토의 얼굴에서 제가 기억하는 고마츠 나나의 이목구비를 확인하기 위해 집중해서 얼굴을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본 거의 모든 작품에서 고마츠 나나는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등장했습니다. 풍성한 머리숱, 이마와 눈썹까지 덮은 앞머리와 짙은 검은색의 차분히 정돈된 긴 생머리. 여기서 변화를 준다고 해도 긴 생머리에 조금 웨이브를 넣은 정도였고 대체로 비슷한 스타일을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온다에서는 화려한 핑크색 염색의 짧고 정돈되지 않은 헤어스타일로 등장합니다. 상당히 파격적인 스타일 변신이죠. 그런데 헤어스타일의 경우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들도 염색이나 컷트로 간단하게 다양한 변화를 주기 때문에 어지간하게 말도 안 되는 스타일을 하지 않는 이상은 ‘파격적인’ 이라는 수식어도 별 의미가 없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 동안 고마츠 나나가 연예인 치고는 다양한 스타일을 보여주지 않았던 게 사실이지만 단지 이 정도의 헤어스타일 변화만으로 기존과는 전혀 다른 인상이 되었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습니다.
네, 헤어스타일 말고도 핵심적인 요소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바로 눈입니다.
고마츠 나나는 독특한 눈빛을 가진 배우로 유명합니다. 뭔가 묘하게 투명하면서도 반쯤 풀려있는 눈이랄까. 청순하면서도 동시에 퇴폐적인 느낌도 주는 이중적인 느낌의 눈입니다. 눈꼬리는 아주 살짝 아래로 처진 편입니다. 이전 출연작들에서는 대체로 눈 화장을 옅게 해서 있는 그대로의 이중적인 느낌을 살린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온다’에서는 상당히 과감한 눈 화장을 했는데 처진 눈꼬리를 위로 치켜 올라가게 만들고 눈썹도 신경질적인 느낌으로 힘을 주었죠. 투명하고 때로는 흐리멍텅해 보였던 고마츠 나나의 눈이 부리부리하게 힘이 빡 들어간 마코토의 눈으로 변했습니다. 네, 이 정도면 못 알아볼 만도 합니다. 기존의 그녀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모습.
고마츠 나나의 외모 자체가 매우 이중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강한 인상을 가진 것 같으면서도 때로는 바로 눈 앞에 있는데도 흐릿하게 인상이 지워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거든요. 제 개인적인 견해로는 이런 외모는 악역에 어울립니다. 그래서 갈증의 카나코 역이 그렇게 완벽해 보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고마츠 나나는 어떤 영화에 출연하든 타이틀롤을 맡을 만한 인기와 지명도를 가진 배우이고, 당연히 악역을 연기할 기회는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카나코 같은 악역이 정말 강렬하고 인상적이긴 해도 역시 악역이라서 정이 안갑니다. 그러니 최고의 해법은 악역 처럼 보이는 비주얼인데 사실은 선역... 그런 캐릭터가 바로 마코토인 거죠.
사와무라 이치의 다른 작품들도 영화화가 되면 좋겠습니다. 작품 자체가 재미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시 고마츠 나나가 연기한 마코토 캐릭터를 계속 보고 싶은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다음 작품인 ‘즈우노메 인형’에서도 마코토가 출연하니까요. 저는 보기왕이 온다와 즈우노메 인형 밖에 안 읽었지만 사와무라 이치의 작품들이 ‘히가 자매 시리즈’로 불리며 마코토와 고토코 자매(두 사람의 성씨가 ‘히가’ 입니다)가 계속 등장한다고 하더군요. 안정적인 시리즈화를 지탱시켜 주는 것은 역시 매력적인 캐릭터의 힘입니다. 고마츠 나나의 마코토라면 시리즈의 인기를 책임지는 핵심 레귤러 등장인물로서 확실하게 제 역할을 해 줄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이 시리즈가 계속 영화화 될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즈우노메 인형도 영화화 하기에 굉장히 매력적인 내용이긴 합니다. 특히 후반부 클라이맥스 전개는 굉장히 스펙터클해요. 보기왕이 온다는 오히려 소설 후반부가 굉장히 밋밋한 편이었는데(그래서 영화판에서는 후반후가 상당히 수정되었죠) 즈우노메 인형은 점차 고조되다가 클라이맥스에서 제대로 터트려주는 스토리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문장이 굉장히 박진감이 넘치고 영화화 되었을 때 상당한 수준의 호러 스펙터클을 보여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일본 영화계의 현실을 생각하면 즈우노메 인형의 순조로운 영화화는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일본 영화 중에서는 당연히 나와야 할 것 같은 속편 영화가 나오지 않은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혹은 나오더라도 어마어마한 기다림이 필요한 경우도 많고요. 온다가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면 즈우노메 인형의 영화화가 발빠르게 진행되었을지도 모르지만... 확인해 본 바로는 온다의 극장 흥행 수입은 9억 엔으로 그다지 성공했다고는 보기 힘든 성적입니다.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 것이 영화가 별로였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특히 일본 영화 시장의 경우 흥행 성적이 순수하게 영화의 재미나 완성도로 결정되지 않으니까요.
다만 저는 언젠가 즈우노메 인형도 결국은 영화화될 거라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굉장히 영화화되기 좋은 스토리와 소재거든요. 그리고 영화화가 된다면, 온다에 출연했던 고마츠 나나와 오카다 준이치가 그대로 마코토와 노자키의 배우로 출연할 것입니다.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이 계속 메가폰을 잡을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카시마 테츠야는 한 번도 속편 영화를 감독한 적이 없습니다. 즈우노메 인형을 온다의 속편이라고 말하기는 애매하지만...
이제 영화의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일단 영화는 원작의 내용을 굉장히 충실하게 옮겨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용이 생략된 부분도 크게 없고, 캐릭터도 원작의 느낌에 최대한 가깝게 잘 살렸습니다. 포스터에 등장하는 5인이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인데, 이 중에서 노자키, 마코토, 고토코가 괴이를 퇴치하는 퇴마 진영(?)의 인물들이고 나머지 두 사람은 피해자 역할입니다. 각각 츠마부키 사토키와 쿠로키 하나가 연기하는 히데키와 카나라는 캐릭터입니다. 두 사람은 연인이었다가 작품 초반부에 결혼식을 올려 부부가 되고, 곧 치사 라는 이름의 딸이 태어나 3인 가족을 이루게 됩니다.
이 3인 가족에게 이른바 ‘보기왕’이라는 이름의 초자연적인 존재의 저주가 내려지게 됩니다. 원작에서 생략된 내용이 적은 편이지만, 보기왕의 기원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원작에 비해서는 많이 부족합니다. 물론 이런 내용들이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닙니다. 이러한 저주나 괴이 현상은 ‘틈새’를 통해 온다고 말하는 마코토의 설명 만으로도 대충 충분한 느낌입니다. 사실 작품의 본질적인 내용이 그것이기도 하고요.
원작에 나오는 상세한 배경 설명에 따르면 보기왕은 가정 불화나 잘못된 관습 등에 의해 가족에게 버려진 사람들(주로 노인이나 아이)의 원혼이 뭉쳐 탄생한 존재로, 고토코 같은 세계관 최강자 급의 영능력자도 고전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기왕이라는 이름은 재미있게도 과거에 일본에 왔던 서양인 선교사에 의해 퍼지게 된 서양 귀신의 이름 ‘부기만(부기맨)’이 변형이 된 것입니다. 물론 서양의 부기맨 전설과 보기왕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저 서양 귀신을 칭하는 부기만이라는 단어가 일본으로 유입이 되었고 그 단어가 세월을 거쳐 변형이 된 것 뿐이니까요.
보기왕과 즈우노메 인형 같은 괴이의 명칭은 사와무라 이치의 완전한 창작입니다. 다만 근본 없이 대충 지은 이름이 아니고 작품 속에서 꽤나 그럴듯한 기원을 밝혀두고 있죠. 저는 작가가 이런 부분에서 상당히 공을 들인 느낌을 받았습니다. 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 나이트 메어의 ‘프레디’, 링의 ‘사다코’ 등 괴물이나 귀신의 이름은 결국 작품 자체의 상징이 됩니다. 그 정도로 중요한 것을 대충 짓지는 않겠다, 라는 작가의 의지가 느껴진달 까요. 보기왕과 즈우노메 인형 모두 확실히 기억에 남으면서도 호러 적인 느낌도 맛깔나게 살아 있는 아주 잘 지은 이름입니다.
마코토가 설명한 대로 보기왕과 같은 괴이는 가족 간의 관계나 개인의 심리 안에서 발생한 ‘틈새’를 통해서 옵니다. 영화에서는 분명히 설명되지 않지만 보기왕이 히데키의 가정에 저주로서 오게 된 원인은 히데키의 조부모에게 있습니다. 히데키의 조부는 아내와 자녀들에게 폭압적인 가장이었고 이에 대해 조모는 참고 생활하면서도 속으로는 어마어마한 증오를 품었습니다. 작중 설명에 따르면 보기왕과 같은 강력한 저주는 그만큼 강력한 의지를 담은 의식을 통해서만 불러올 수 있다고 합니다. 히데키의 조모가 조부를 향한 강력한 증오심을 바탕으로 보기왕을 불러들인 것이죠. 그런데 이 저주가 너무 강력하다 보니 후손들에까지 피해를 주게 된 것이고요.
하지만 보기왕의 강력함과는 별개로 히데키 가족에게서 발생한 틈새가 작품 속 끔찍한 일들이 벌어진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물론 그 책임의 대부분은 히데키에게 있습니다. 카나에 대해서는 다소 의견이 갈릴 듯도 합니다. 순수한 피해자에 가깝기도 하지만 집안이 그렇게 콩가루가 되는데 완전히 책임이 없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 5인 중에서 원작과 영화의 결말이 완전히 달라져 버린 인물이 바로 카나입니다. 원작에서는 정신병원에 들어 가지만 영화에서는 히데키와 마찬가지로 보기왕에 의해 죽게 됩니다.
카나의 행적과 결말이 변경된 건 지극히 영화적인 각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가 아주 끔찍한 호러 영화의 분위기를 내기 위해서는 히데키 한 명 죽는 걸로는 좀 부족하니까요. 히데키 가족들이 피해를 당하고 영화의 후반부는 노자키와 고토코를 중심으로 한 퇴마물이 되기 때문에, 아무래도 호러 영화로서의 정체성을 확실히 남길 수 있는 전반부의 임팩트가 좀 더 필요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카나의 에피소드야 말로 영화 전체에서 가장 무서운 파트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웠던 장면을 한 장면만 꼽자면 바로 카나가 죽음을 당하는 화장실 장면입니다. 그 외 카나가 죽은 남편의 친구인 츠다와 정사를 나누는 장면도 나오는 등 대단히 영화적으로 자극적인 요소를 많이 넣은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카나 역의 배우도 무려 쿠로키 하루 입니다. 이런 지명도 높은 배우를 캐스팅 했다면 확실히 원작의 카나보다는 좀 더 임팩트를 주는 캐릭터로 각색을 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쿠로키 하루는, 그리고 카나 라는 캐릭터는 확실히 이 영화에서 원작과는 다른 임팩트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원작 소설은 1인칭 화자가 처음에는 히데키, 그 다음은 카나, 그리고 마지막에 노자키로 넘어 가는 3부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중 1부와 2부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서술 트릭이 적용되어 있습니다. 1부에서 히데키의 서술은 사랑하는 연인과 결혼하고 귀여운 딸을 낳은 후 아내와 딸에게 헌신하면서 완벽하게 행복한 가족을 만들어가는 가장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모두 거짓 행복임이 2부인 카나의 서술에서 밝혀집니다. 영화는 원작의 이 서술 트릭을 매우 흥미롭게 활용합니다.
즈우노메 인형도 그렇지만 1인칭 화자의 거짓된(혹은 왜곡된) 서술을 활용한 내용 전개의 트릭은 사와무라 이치가 독자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작법입니다. 물론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에서 굉장히 흔하게 쓰이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런 서술 트릭이 적용된 원작을 영화로 만든다면 원작과 비슷한 내용 전개를 보여주기가 힘이 듭니다. 영화에서는 일반적으로 소설과 같은 ‘화자’가 존재하지 않고 정보의 노출을 통제하는 것도 소설보다 훨씬 공을 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장기가 확실히 발휘됩니다. 현란한 편집과 섬세한 미장센으로 행복해 보이는 가정의 이면에 깔린 음울한 진실을 슬쩍 슬쩍 드러내죠. 이 부분에서 영화는 원작과는 어느 정도 다른 노선을 취한 셈입니다. 소설 원작에서는 최대한 히데키 가족의 진실을 감추고 진행합니다. 애초에 화자가 히데키라서 자신이 망쳐버린 가정의 상황을 진실되게 서술하지 않아요. 그러다가 화자가 카나로 넘어오면서 진실이 낱낱이 밝혀지고(물론 카나의 서술도 완벽하게 객관적인 진실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독자에게 충격을 주는 방식을 취합니다. 반면 영화에서는 히데키와 카나의 관계가 뭔가 불안정 하다는 암시를 꾸준히 던져줍니다. 암시를 넘어서 대놓고 상황이 심각하다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하고요. 이렇게 되면 카나의 에피소드에서 진실이 뚜렷하게 드러났을 때의 충격이 덜하기는 하지만 영화 전체의 암울한 정서에 밸런스를 맞춘다는 점에서는 분명 효과적인 선택입니다. 그리고 영화판 카나의 에피소드에서는 원작에 없는 새로운 충격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원작과 같은 효과를 포기하는 것에 대해 상쇄가 되는 셈입니다.
영화의 후반부도 원작과는 확연하게 다른 노선을 선택합니다. 다르다기보다는 매우 과감한 선택입니다. 그런데 이 후반부의 전개는 평가가 좀 갈리는 편입니다. 매우 과감하고 충격적인 전개라서 평이 갈리는 건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블로그나 유튜브에 올라온 온다의 리뷰 중에서 이 영화를 ‘일본판 곡성’이라고 소개하는 리뷰가 몇 개 있습니다. 이 영화를 곡성과 닮았다고 인식한다면 이유는 대부분 후반부 전개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대체로 곡성보다는 훨씬 못하다 라고 평가받기는 하지만 확실히 두 영화가 닮은 점은 있습니다.
온다의 후반부는 보기왕에 맞서 히데키 부부의 딸인 치사를 구하기 위한 퇴마 의식이 주된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퇴마 의식이라는 게 곡성에 나온 황정민의 굿판 장면과 매우 닮았습니다. 다만 스케일이 비교가 안 되게 커졌어요. 굉장히 과감하면서도, 황당한 연출입니다. 이 장면의 의도를 나쁘게만 본다면 곡성보다 더 대단한 걸 보여주겠다, 라는 유치한 생각으로 동일한 굿판 장면을 따와서 황당할 정도로 규모만 늘려 만들었다 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온다를 혹평하는 리뷰가 꽤 많은 편인데, 어설프게 규모만 키운 곡성 아류작 이라는 것이 혹평의 주된 관점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엄청 좋아하지만, 이런 혹평에 대해서 크게 반론할 마음은 들지 않습니다. 저 역시도 이 장면이 어느 정도는 곡성의 영향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앞에서 말했듯이 원작 소설의 후반부는 좀 임팩트가 부족한 느낌입니다. 때문에 영화가 보여준 과감한 선택은 결과적으로 영화가 혹평 받는 가장 큰 이유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확실한 임팩트는 남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후반부에 이런 과감한 내용을 넣음으로써 영화 전체의 완성도에 플러스가 된 부분도 있고 마이너스가 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이너스가 더 컸다고 생각한 사람도 많겠지만 저는 미세하게나마 플러스 점수를 더 크게 매겨 주는 쪽입니다. 다른 걸 떠나서 후반부 내용 때문에 이 영화는 매우 유니크한 퇴마 영화가 되었거든요. 퇴마가 소재로 등장하는 영화 중에 이런 엄청난 스케일의 퇴마 의식 장면이 등장한 영화는 거의 없었으니까요.
다만 세부적으로 파고 들면 완성도가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습니다. CG도 뭔가 어설프고 후반부 내용 전개가 (여러 가지 의미로)매우 질척(?)거려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저는 영화판 고토코의 캐릭터가 좀 별로였습니다.
제가 이 작품을 통해 고마츠 나나가 연기한 마코토 라는 캐릭터에 푹 빠졌다는 것은 앞에서 충분히 언급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퇴마사로서 진짜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은 마코토가 아니라 언니인 고토코입니다. 물론 마코토도 전혀 쓸모 없는 존재는 아니고 어느 정도 작품 안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으면서 고토코와 역할을 분담할 수 있는 캐릭터입니다.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사와무라 이치의 연작들은 앞에서 말했듯이 ‘히가 자매 시리즈’ 라고 명명되었습니다. 그런데 즈우노메 인형에서는 고토코가 거의 등장하지 않고 이 작품들에서 마코토와 주로 콤비를 이루는 캐릭터는 연인에서 남편이 된 노자키 입니다. 호러 프렌차이즈의 레귤러 등장인물로서 이 캐릭터 조합은 매우 독특합니다. 연인(부부) 관계이자 작품 내내 모든 행동을 함께 하고 적극적인 협조 관계인 노자키와 마코토의 조합이 기본적인 구성이지만, 혈연이자 같은 영능력자라는(능력의 차이는 매우 크지만) 좀 더 끈끈한 관계로 묶여 있는 것은 고토코와 마코토이고, 또 정작 보기왕이 온다에서 최후의 대결에 콤비를 이룬 것은 고토코와 노자키 입니다.
히가 자매 시리즈를 본격적으로 호러 프렌차이즈 무비로 기획한다면 이 캐릭터 조합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희한하게도 소설 보기왕이 온다와 즈우노메 인형에서는 3인 조합을 구성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 반면 영화판 온다에서는 병원에 입원해 리타이어 했던 마코토를 부활시켜 최후의 시퀀스에 합류시킵니다. 간단하게 고토코, 마코토, 노자키 3인 조합을 구성하는 것을 선택해 버리죠. 그렇다면 즈우노메 인형을 영화화 할 때도 원작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 고토코를 비중있게 등장시켜 3인 조합을 구성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즈우노메 인형의 내용상 고토코의 역할이 애매하긴 하지만 고토코의 캐릭터 자체가 워낙에 강렬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활용 방법을 찾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토코가 결국 노자키와 마코토와 대등한 비중으로 프렌차이즈의 핵심 레귤러 캐릭터로 자리 잡게 된다면 온다 에서 표현된 고토코의 캐릭터가 더욱 아쉽다고 느껴집니다. 원작에서 묘사된 캐릭터의 매력을 충실하게 시각화 하고 거기에 고마츠 나나 라는 배우의 개성을 극대화시켜 영화 판의 오리지널 매력까지 더했던 마코토와는 달리 고토코는 원작과 영화판의 묘사가 전혀 딴판입니다.
원작에서 묘사된 고토코의 외모는 화려한 마코토와는 정반대로 매우 수수합니다. 하지만 그 수수함 안에 비범함을 갖춘, 외유내강형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판에서 마츠 다카코가 연기한 고토코는 수수함과는 거리가 먼, 외모부터 완전히 끝판 대장 포스를 하고 나옵니다. 눈 밑에 섬뜩한 흉터도 있고 화장도 마코토와 마찬가지로 살벌하게 힘이 들어가 있죠. 딱 봐도 완전히 괴짜 느낌이 나는 강렬한 캐릭터인데 나름의 매력은 있지만 저는 역시 원작의 캐릭터를 그대로 살리는 것이 나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마코토가 워낙에 화려한 비주얼로 나오다 보니 마코토와는 정반대의 수수하고 정갈한 스타일의 미녀 캐릭터로 등장하면 그 대조적인 매력에서 오는 시너지 효과가 상당했을 거라고 보거든요.
영화판에서는 고토코가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도 나오지 않습니다. 보기왕이 너무 강력해서 퇴마 의식에 참여 했던 사람들 중에 상당한 희생자가 나왔는데 영화를 본 사람들 중에서는 결국 고토코도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더군요. 히가 자매 시리즈가 앞으로 계속 영화로 나오지 않는다면 고토코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영화의 엔딩 장면에서 노자키, 마코토, 치사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걸로 충분하죠. 하지만 이 시리즈의 영화화가 계속 된다면 결국 고토코는 살아 돌아올 수 밖에 없는 캐릭터입니다. 즈우노메 인형에서는 거의 등장이 없지만 만약 고토코가 죽었다고 할 경우에 마코토의 캐릭터 자체도 상당한 변경이 있을 수 밖에 없거든요.
정리를 하자면 나카시마 테츠야의 온다는 몇 가지 아쉬운 부분은 있지만 오랜만에 나온 상당히 재미있고 잘 만든 일본 호러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작의 매력을 충분히 잘 살렸고 영화판만의 유니크한 매력도 잘 살아 있습니다.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되었고 몇 번이나 강조해도 부족한 고마츠 나나의 마코토 캐릭터의 매력은 앞으로의 시리즈화도 기대하게 만드는 이 영화 최강의 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고마츠 나나의 마코토 캐릭터를 볼 수 있게 후속작 ‘즈우노메 인형’의 영화화도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대서즐라
대중문화와 서브컬처를 즐기는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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