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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영화사이

[역사와 영화사이] 미드웨이 (2차대전/ 태평양전쟁)

by 대서즐라 2021.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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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재영화 리뷰

미드웨이 Midway

2019년에 개봉한 롤랜드 에머리히의 ‘미드웨이’는 18년 전에 마이클 베이가 만들었던 영화 ‘진주만’의 후속편 격인 영화입니다. 당연히 공식적인 속편은 아닙니다. 하지만 두 영화를 모두 본 사람이라면, 그 중에서도 영화 팬이자 역사광인 사람이라면, 이 두 작품을 자연스럽게 전작과 후속작의 관계로 연결 지을 것입니다.

일단 실제 역사의 연결성이 그렇습니다. 진주만과 미드웨이. 선제골과 동점골. 기습공격과 그에 대한 복수. 전쟁의 양상이 길고 긴 하나의 플롯이라고 할 수 있지만 진주만 공습과 미드웨이 해전은 아주 직접적인 인과 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사건입니다. 

진주만

 

[역사와 영화사이] 진주만 (2차대전/ 태평양전쟁)

역사소재영화 리뷰 진주만 Pearl Harbor 2차 대전은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고, 이에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시작됩니다. 말 그대로 ‘세계 대전’

dszl.tistory.com


물론 ‘복수’라는 행위 동기를 적용할만한 상황은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미군이 대승을 하면서 진주만 공습에 대한 복수를 한 셈이 되었지만(진주만 공습에 동원되었던 일본 항공모함 6척 중 4척이 미드웨이 해전에서 격침됩니다) 애초에 미드웨이 해전 자체도 일본의 공세로 시작된 전투였으니까요.

미드웨이 해전은 식상한 표현이지만 ‘각본 없는 드라마’ 같은 전투입니다. 진주만이 완벽하게 성공한 기습 선제공격으로 일방적인 양상으로 끝난 전투였다면, 미드웨이 전투는 일본과 미국 양군이 치열하게 정보전을 벌이며 서로의 동향을 파악하고, 예상과 선택, 실수와 우연이 겹치면서 극적인 전개 양상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영화로 만든다면 끝내주게 재미있을 만한 전개! 그러면 미드웨이 해전을 소재로 엄청 재미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은 과연 쉬운 일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일단 미드웨이 해전의 양상이 정말 각본 없는 드라마 처럼 흥미진진하고 예측 불허의 전개를 보여주지만, 이런 내용들에 모든 사람들이 재미와 흥미를 느끼는 건 아니거든요. 역사광이나 밀덕이 아니라면 아무리 유명하고 극적인 실제 역사 속 전투의 묘사라도 큰 재미를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으음... 사실은. 밀덕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놓고 말하겠습니다. 전쟁의 서사라는 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재미가 없습니다.

A 군대와 B 군대의 전투가 벌어졌다, A 군대가 B 군대의 위치를 파악했다, 기습 공격을 감행했지만 사실 B 군대의 위치 정보는 A 군대를 끌어들이기 위한 함정이었다.... 이런 식으로 실제 전쟁의 양상들이 전개됩니다. 전황이 쉴새 없이 바뀌고 반전에 반전이 계속 이어집니다. 문제는 실제 역사는 창작물과는 다르게 리듬감도 없고 페이스 조절도 없다는 점입니다. 어떤 반전이나 상황 전개도 창작자의 전지적 관점으로 일어나는 게 아니니까요. 전황이 바뀌는 극적인 순간들이 적재적소에서 벌어지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흐름도, 리듬감도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상황 전개를 보고 흥미를 느끼기 보단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겁니다.

사실 인류 역사에 있었던 유명한 전투들의 대부분이 이렇습니다. 하나하나의 상황 전개와 디테일을 파고들면 들수록 흥미보다는 지루함이 더 커지죠. 물론 그렇게 일반인들은 지루해할 만한 것에 빠져드는 사람들을 ‘밀덕’이라고 칭하는 것 아니냐,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요. 하지만 밀덕들이 이런 분야에서 흥미를 느끼는 관점은 창작물의 플롯을 보는 관점과는 달라요. 순전히 플롯이나 스토리텔링으로서 인식한다면 밀덕이라 해도 지루함을 느낄 겁니다.


물론 미드웨이 해전이 엄청 지루한 전투인 건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상당히 흥미진진한 전투에 속하죠. 일단 전투가 굉장히 단기간에 끝났습니다. 전투 전의 치열한 정보전이나 막바지 수습 과정까지 다 더하면 좀 더 길어지지만, 실질적인 전투는 단 하루 만에 끝났습니다. 그 하루의 전투 동안 여러 가지 상황 변화와 반전이 벌어지긴 했지만 그래봐야 하루 동안 다 일어난 일입니다. 중요 전황의 변화에만 국한하면 하루도 아니고 반나절 정도예요.(일본군 항공모함 4척 중 3척이 미군 폭격기의 공격으로 리타이어 한 건 불과 5분 만에 일어난 일입니다.)

하지만 그 반나절의 전황도 디테일하게 파고들면 지루해집니다. 미드웨이 해전을 소재로 창작물을 만들게 되면 바로 이 부분에서 고민할 요소가 생겨나고 맙니다.

차라리 엄청나게 길고 방대한 내용의 전투라면 애초에 영화 한 편에 담는 것은 무리이기 때문에 가장 임팩트 있는 중요 순간들만 취사선택해서 묘사할 수가 있죠.(예를 들어 스탈린그라드나 과달카날 전투) 하지만 미드웨이 전투를 영화로 만든다면 전투의 시작부터 끝까지 전부 넣을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미드웨이의 모든 전개 양상을 영화에 집어넣되 디테일의 조절에 공을 들여야 하는 거죠. 이 디테일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최고로 재미있는 영화가 나올 수도 있고, 최악으로 지루한 영화가 나올 수도 있는 겁니다. 

롤랜드 에머리히의 ‘미드웨이’는 결과적으로 어떤 작품이 되었는가? 최고도 아니고 최악도 아닙니다. 하지만 명백히 최악 보다는 최고 쪽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잘 만들었어요. 좋은 작품입니다.

하지만 흥행에는 실패했습니다. 제작비가 1억 불인 영화인데 최종 월드와이드 흥행 스코어는 1억 2천만 불 정도입니다. 한국에도 연말연시 성수기에 개봉했지만 최종 100만 관객을 넘지 못했습니다.

이 영화를 만든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은 한때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나가는 블록버스터 상업 영화 전문 감독이었습니다. ‘인디펜던스 데이’라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역사에 남을 만한 걸출한 대작을 만들었고 스타게이트, 고질라 등의 작품들도 유명합니다. 투모로우, 2012 같은 재난 블록버스터는 한국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인디펜던스 데이


잘나가던 시절 기준으로 진주만의 감독 마이클 베이와 종종 비교가 되던 감독입니다. 두 감독의 행보가 비슷하죠. 더록과 인디펜던스 데이가 비슷한 시기에 나왔고 아마겟돈과 고질라도 비슷한 시기에 나왔습니다. 대중적인 오락성에서는 어느 정도 인정 받았지만 평론가들로부터 작품성은 혹평받는 편이었고 결국 21세기 들어 피터 잭슨, 샘 레이미, 크리스토퍼 놀란 등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갖춘 감독들에게 점점 밀려나게 된 상황도 동일합니다. 물론 마이클 베이가 롤랜드 에미리히 보다 확실히 우위이긴 했습니다. 마이클 베이가 트랜스포머 시리즈로 블록버스터 영화계에서 존재감을 보다 오래 유지한 편이었으니까요. 물론 바로 그 트랜스포머 시리즈가 몰락하며 마이클 베이도 함께 몰락하고 말았지만요.

마이클 베이 vs 롤랜드 에머리히의 대결 떡밥은 영화 팬들 사이에서 종종 거론되어 온 주제입니다. 물론 그렇게 뜨거운 관심을 일으키는 주제는 아닙니다. 21세기 이후 두 감독의 인기는 지속적으로 하락해 왔고 이제는 이 두 감독의 열광적인 팬을 자처하는 영화 팬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예요. 하지만 여기서 굳이 얘기를 꺼내자면 저는 롤랜드 에머리히의 손을 들어주는 쪽입니다. 물론 롤랜드 에머리히의 작품 중에서 제가 마이클 베이의 더록과 아마겟돈 정도로 좋아하는 작품은 없습니다. 하지만 두 감독의 ‘못 만든 작품’을 비교했을 때는 마이클 베이에게 더 실망감과 아쉬움을 느끼게 됩니다. 롤랜드 에머리히가 못 만든 영화들은 그저 뭔가 ‘부족한’ 느낌이라면 마이클 베이가 못 만든 영화들(특히 트랜스포머 3편 이후의 영화들)은 그냥 영화 자체가 뭔가 뒤틀려 있는 느낌이거든요.

마이클 베이와 롤랜드 에머리히


그리고 롤랜드 에머리히의 가장 최근작이 바로 ‘미드웨이’입니다. 저는 이 작품을 정말 만족스럽게 봤기 때문에 아무래도 롤랜드 에머리히를 결국은 ‘좋은 감독’으로 인정해줄 수 밖에 없는 입장으로 가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미드웨이는 평론가들의 평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닙니다. 전투 묘사에 치중하다보니 인물들의 서사가 부실하다는 것이 이 영화에 대한 가장 흔한 비판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대로 미드웨이 해전을 소재로 재미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롤랜드 에머리히의 ‘미드웨이’는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그 ‘재미있다’는 것이 정말 잘 만든 상업 영화 수작이나 걸작이 보여주는 뛰어난 완성도에서 오는 재미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냥 뭔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다가 가까스로 ‘재미’의 기준치를 통과한 정도의 느낌이에요. 어려운 과제를 가까스로 완수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평론가들이 지적한 대로 미드웨이의 인물 서사는 부실한 편입니다. 서사가 부실할 뿐더러 전반적으로 영화에 깊이가 없습니다. 원래 롤랜드 에미리히가 연출 내공의 깊이로 유명한 감독은 아니죠.

‘미드웨이’라는 영화의 방향성에 대해서 고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이클 베이가 만든 ‘진주만’과는 명백히 다릅니다. 진주만은 큰 역사적 사건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개인의 드라마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타이타닉’이었지만(이 두 영화들 처럼 진주만도 상영시간만은 3시간에 달하는 대작입니다) ‘마이클 베이의 능력’ 이라는 현실은 그야말로 시궁창이었죠. 물론 시궁창은 좀 심한 표현이지만, 진주만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 타이타닉의 발 끝도 따라가지 못할 영화라는 점은 명백합니다.

진주만

롤랜드 에머리히의 미드웨이는 당연히 마이클 베이의 진주만과 같은 방향성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감독의 역량이나 성향의 문제라기 보다는, 이제는 그런 방향성이 좀 낡은 트렌드로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역사물이나 실화 바탕의 작품들은 점점 드라이하고 쿨한 방향성을 추구하는 게 대세가 되고 있죠. 전쟁 영화라면 뜨거운 갬-성(애국주의 또는 민족주의) 적인 감흥을 추구하는 방향이 예전에는 당연했는데, 이제는 그런 창작 성향은 점점 주류 트렌드에서 밀려나고 있습니다.

미드웨이는 상당히 드라이한 전쟁 영화입니다. 물론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전우애, 애국심, 가족애를 중심으로 한 신파적인 장면들도 꽤 등장하긴 하거든요. 하지만 그런 갬-성 적인 요소들에 그다지 집중하는 영화는 아니에요. 그냥 ‘있구나’ 하는 정도의 수준입니다. 

영화가 다루는 내용 자체는 상당히 방대합니다. 크레딧을 제외하면 상영시간이 2시간 10분 정도인데, 진주만 공습만을 다루면서 3시간의 상영시간을 찍어 버린 마이클 베이의 진주만과 굳이 비교할 필요는 없지만, 진주만 공습부터 미드웨이 까지의 과정을 모두 담은 영화 치고는 결코 상영 시간이 긴 편이 아니죠. 그럼에도 이 애매한 상영시간 안에 필요한 내용은 모두 담았습니다. 거의 모두.


진주만 공습과 미드웨이 해전은 당연히 주요 장면으로 담아내고, 둘리틀 특공대 역시 비중 있게 그립니다. 거기에 별로 인지도가 없는 마셜-길버트 공습이나 산호해 해전도 빠짐없이 나옵니다.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디테일한 상황 전개들을 영화는 거의 대부분 놓치지 않고 묘사해 냅니다. 예컨대 산호해 해전에서 항모 ‘요크타운’이 큰 손상을 입어 3개월의 수리 기간이 필요하다는 판정을 받았으나 단 3일 만에 고쳐내라는 니미츠의 엄명에 공돌이들을 3일 밤낮으로 갈아 넣어 결국 요크다운을 부활시키고 미드웨이에 참전하게 된 상황이라든지, 둘리틀이 중국에 불시착한 후의 행보라든지 하는 당시의 중요 국면과 상황 전개들을 영화에서 거의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담아내고 있어요. 

심지어 일본군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군사 회의에서 육군과 해군이 대립하는 모습이나 미드웨이 개전 전 가상 워게임 훈련 장면 같은 당시의 일본군 상황을 드러내는 에피소드들이 영화에 많이 등장합니다. 


이 정도면 거의 역사 교육 자료 수준입니다. 그런데 교육 자료로서 본다면 퀄리티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수준이죠. 제작비 1억 불이 들어간 블록버스터이고 감독은 롤랜드 에머리히, 거기에 유명한 배우들까지 잔뜩 출연합니다.

가상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던 진주만이나 타이타닉 같은 영화와는 달리 이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모두 실존인물 입니다. 항모를 하루에 두 척이나 명중시킨 전설적인 파일럿 딕 베스트를 비롯해서 웨이드 맥클러스키 등 미드웨이 해전에서 맹활약한 파일럿들, 거기에 체스터 니미츠와 윌리엄 홀시 같은 태평양 전쟁의 승리를 이끌었던 거물급 사령관과 제독, 미드웨이 해전의 승패를 결정한 핵심 요인이었던 ‘정보전’의 승리를 이끈 에드윈 레이튼 등 당시의 실제인물들이 영화의 주요 인물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 인물들을 대부분 상당한 인지도를 가진 유명한 배우들이 연기합니다. 주인공 딕 베스트를 연기한 에드 스크레인은 다소 인지도가 떨어지는 편이지만 그외 다른 배역들의 경우 일단 니미츠 역의 우디 해럴슨은 최고로 호평을 받은 캐스팅이고요. 에드윈 레이튼 역의 패트릭 윌슨도 사실상 에드 스크레인과 함께 영화의 투톱 주연의 비중으로서 뛰어난 연기력으로 영화를 이끌어 갑니다. 그 외 둘리틀 역의 아론 에크하트, 맥클러스키 역의 루크 에반스, 홀시 역의 데니스 퀘이드 등 쟁쟁한 유명 배우들이 다수 출연하고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 하이틴 스타로 유명했던 맨디 무어의 출연도 반가웠고요.


일본군의 주요 장성들도 비중있게 등장합니다. 진주만과 미드웨이 해전까지의 전개라면 일본군 장성 중 유명한 3인방이 있죠. 당연히 가장 중요한 인물로 일본 해군 총사령관이었던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있고, 미드웨이 해전에서 절대로 빠져서는 안 되는 인물인 나구모 주이치, 그리고 나구모의 대척점으로 미드웨이 해전에서 또 다른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인물인 야마구치 다몬까지.

이 3인방을 연기한 일본 배우들의 면면도 대단합니다. 야마모토 역은 토요카와 에츠시, 나구모 역은 쿠니무라 준, 야마구치 역은 아사노 타다노부 입니다. 세 명 모두 일본은 물론이거니와 세계적으로도 인지도를 가진 대단한 배우들입니다. 


사실 할리우드에서 제작한 태평양 전쟁 영화를 보면 적으로 등장하는 일본군 역으로 유명한 일본 배우가 출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진주만 전투 정도를 제외하면 태평양 전쟁의 유명한 전투들이 대부분 일본군의 비참한 패배로 그려지기 때문에 일본 배우 입장에서는 출연이 꺼려질 만도 한데 기꺼이 유명 배우들이 이런 작품에 출연하는 모습은 다소 의외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일본에서는 2차 대전 일본의 비참한 패배가 창작물에서 묘사되는 것을 전혀 거북해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단순하죠. 일본이 당시 세계정세에서 ‘가해자’ 이자 ‘침략자’였다는 이미지를 희석시키기 위함입니다. 일본이 2차 대전에 그런 비참한 꼴이 된 것은 전부 인과응보인 건데 일본에서는 오로지 미국에게 호되게 당한 면만 부각시키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할리우드 작품에서도 이런 전략은 유효하게 작동합니다. 일본의 저런 개념 없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미국이 도와준다? 사실 전후 역사에서 일본이 버블 경제 시절의 급부상으로 잠깐 미국에 ‘경제대국’으로서 위협을 준 때를 제외하면 두 나라는 언제나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해 왔고 미국 정제계에 일본 자본이나 로비가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할리우드가 미국의 관점에서 태평양 전쟁 관련 영화를 만들면서 굳이 일본의 피해자 코스프레를 도울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태평양 전쟁에 한해서는 과달카날 전역 이후로 거의 일방적으로 일본이 미국에게 쥐어 터진 게 사실이기 때문에 일본의 가해자, 침략자로서의 면모가 그다지 부각 되어 그려지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드라마 ‘퍼시픽’에서 오키나와 전투의 묘사(원주민에게 행한 일본군의 잔학 행위)나 안젤리나 졸리가 감독한 ‘언브로큰’ 같은 작품에서 일본의 포로 학대 등의 묘사가 나왔고 특히 언브로큰에 대해서는 일본 내 우익세력의 강한 반발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언브로큰에서 일분군의 학대 묘사는 그리 심하지도 않습니다. ‘일본군’이라기 보다는 와타나베 라는 성질 더러운 일본인 개인의 악행으로 보일 뿐입니다. 그래도 일본 내 우익들이 이 영화를 계속 비난했고 감독인 안젤리나 졸리에 대해서도 한국의 사주를 받아 영화를 만든 거라고 욕을 해댔죠. 뭐 졸리가 입양 자녀인 매덕스를 한국의 연세대학교에 유학시킬 만큼 친한파인 건 사실이지만.

언브로큰


아무튼 할리우드에서 만든 태평양 전쟁 영화인데도 이런 쟁쟁한 일본 배우들이 주요 배역으로 참여를 한 것입니다. 사실 이 주요 배역 3인방 중에서 나구모 주이치를 제외하고 나머지 둘은 일본 내에서 대체로 이미지가 괜찮은 인물들이거든요. 태평양 전쟁의 주요 일본군 장성들 중에서 현대 일본인의 평가로 그저 무능한 패장 이미지로 욕먹는 인물도 있지만 창작물 등에서 멋진 이미지로 그려진 인물도 많습니다. 특히 해군 장성들이 그런 케이스가 많죠. 이는 점령지의 민간인 학살이나 약탈 같은 악랄한 전쟁 범죄들이 대부분 육군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선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고 야마구치 다몬도 이미지가 좋습니다. 둘 다 일본이 본격적으로 험한 꼴을 보기 이전에 사망했다는 공통점이 있죠. 야마구치 다몬의 경우는 바로 미드웨이 해전이 생을 마감하게 된 전장이었고요. 전투의 여파로 사망한 게 아니라 패전의 책임을 지고 침몰하는 배에 남아 스스로 최후를 맞은 것이지만. 물론 그런 최후였기에 더 이미지가 좋은 것이고요. 


미드웨이에서도 이 세 인물이 좋은 이미지로 그려집니다. 나구모의 경우는 일본의 창작물에서조차 미드웨이 패전의 원흉으로 그려질 정도로 이미지가 별로인 인물인데 이 영화에서는 그렇게 노답인 인물로는 그려지지 않습니다. 사실 미드웨이의 작전 개요 자체가 두 가지 목표(미드웨이의 미군 기지 공격, 미 항공모함 공격) 사이에서 전략적 갈등이 필히 발생하게 되어 있기에 이 상황을 지휘하는 나구모는 그냥 조금 무능하고 우유부단한 모습 외에는 크게 깎아 내리거나 노답 지휘관으로 묘사할 이유가 없기도 합니다.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원래 미국과의 전쟁에 반대했던 인물이고 이 영화에서는 처음부터 주인공인 에드윈 레이튼과 친분 관계가 있는 것으로 묘사되죠. 야마구치 다몬이야 패배 후 장렬한 최후를 맞는 장면을 사실 그대로 그리기만 해도 이미지가 상당히 좋을 수밖에 없고요.

앞에서 말한 대로 이 영화에서의 미드웨이 해전의 상황 묘사는 역사 교육 자료로 써도 될 정도입니다. 영화적인 과장이나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에 있어서의 생략이 있긴 하지만 미드웨이 해전의 주요 국면을 거의 대부분 놓치지 않고 완벽에 가깝게 묘사를 했으니까요.

그렇다면 실제 미드웨이 해전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어 최종적으로 미군이 극적인 승리를 거두게 된 것인지, 그 과정들이 영화에서 어떤 식으로 묘사가 되는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미드웨이 전투의 핵심은 바로 정보전입니다. 정확히는 정보를 바탕으로 한 ‘올바튼 판단’이죠. 진주만의 참패 이후 미군의 전력 열세가 압도적인 상황에서 당연히 다음 공격의 키를 쥔 건 일본이었습니다. 일본의 다음 작전은 계속 하와이를 공략해서 아예 하와이의 미군을 완전 철수시키고 미 서부 해안까지 전선을 밀어버리는 것과 미국의 남태평양 동맹인 호주와 뉴질랜드를 공략하는 것 중 선택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중일 전쟁을 끝내는 것이 급한 상황이었고 처음부터 미군과의 전쟁은 미군의 석유 수출 제한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일어난 것이기에 진주만 공습 이후 전개된 남방작전으로 아시아 지역의 자원 확보에 성공한 시점에서는 미국과의 전쟁에 더 이상 큰 전력을 투입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대세인 의견이었습니다. 특히 중일 전쟁 쪽 상황 개선이 시급했던 일본 육군이 이런 입장이었죠.

그러니 하와이 점령이나 호주 점령 같은 큰 목표보다는 미국 본토와 호주의 연결선을 차단하는 정도로 충분하다는 의견 쪽으로 기울어졌고 실제 미드웨이 해전 이후 미국과 일본의 큰 전투는 바로 호주 방면의 과달카날 섬에서 벌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무려 6개월 동안 이어진 과달카날 전역이고 여기서 일본이 패배함으로써 일본은 이후 몰락의 길을 걷게 되죠.

과달카날


아무튼 이 과달카날 전역이 있기 전에 먼저 벌어진 호주 방면의 전투가 바로 산호해 해전인데 전투 결과 미군 항모 한 척이 격침되고 한 척(요크타운)은 큰 손상을 입는 등 피해는 미군이 더 컸지만 이런 피해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을 퇴각하게 만들면서 일본군의 일차적인 목표는 일단 저지하게 됩니다. 


이 공격이 막히자 일본군은 다시 하와이 방면 공략을 검토하게 되고 그 일차적인 목표로 미드웨이를 선택합니다. 미드웨이 공략에는 두 가지 목표가 있는데 미드웨이를 비롯한 하와이 주변의 섬들을 점령하여 본격적인 하와이 상륙을 위한 교두보로 삼는 것이 첫 번째 목표이고 두 번째는 하와이를 기지로 둔 미 항모 기동부대를 격멸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진주만 공습이 일본군의 대승리이긴 하지만 미군 전함 부대에 많은 피해를 준 반면 항공모함 부대에는 피해를 주지 못했기 때문에 반쪽짜리 성공이라고 평가받기도 합니다. 일본 영화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를 보면 야쿠쇼 코지가 연기한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진주만 공습의 결과를 보고 받은 후 미군 항모 피해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대놓고 ‘(진주만 공습은)실패했다’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실제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야마모토는 미군 항모 기동부대가 멀쩡히 살아 있는 한 결코 미군에 결정적 타격은 준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둘리틀 특공대의 공습 이후로는 더욱 그 생각이 굳어졌죠. 해군 사령관으로서 야마모토는 진주만 공습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던 결정적인 타격을 미군에 입혀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이 하와이 방면으로의 공격 주장으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미국 입장에서는 전력이 열세인 상황에서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일본의 다음 수를 정확하게 읽어내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남태평양 아니면 하와이 였지만 이 둘 중 하나를 정확하게 맞추는 게 중요했죠. 영화에서도 이런 상황이 꽤 비중 있게 그려지는데 워싱턴의 전문가는 남태평양 쪽으로 일본의 공격이 집중될 것이라는 관측을 하였고 실제 그럴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에 나오듯 정보장교 레이튼은 하와이 방면일 거라고 예상을 했죠.


당시 미군은 일본 군의 통신을 감청하고는 있었지만 암호화된 문장들이라 명확하게 내용을 파악하지는 못했습니다. 일본 군의 다음 목표가 ‘AF’라는 것은 알아냈지만 AF가 어딘지를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죠. 영화에 묘사되듯 여러 정보들을 분석한 결과 미드웨이일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게 되었고 유명한 연막 작전이 실시됩니다. 미군은 미드웨이의 담수 장치가 고장 나서 식수가 부족하다는 거짓 교신을 날렸고 이 교신을 감청한 일본군은 ‘AF에 식수 부족’ 이라는 무전을 날리게 됩니다. 이로써 일본군의 다음 목표인 AF가 미드웨이 라는 사실이 정확하게 파악되었죠. 영화에 이 상황이 그대로 묘사됩니다.


1942년 6월 4일 새벽. 미드웨이를 향한 일본군의 공격이 시작됩니다. 나구모 주이치를 지휘관으로 아카기, 카가, 소류, 히류의 네 척의 항공모함 기동부대가 미드웨이의 미군 기지 공격과 미군 항모 부대 격멸을 목표로 작전을 개시합니다. 

목표가 두 개라는 것. 이것이 일본군이 이번 작전에서 가진 근본적인 문제점이었습니다. 미드웨이의 미군 기지는 당연히 있어야 할 자리에 그대로 있습니다. 하지만 미군 항모 기동부대는 언제 어디에 있을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일차적인 예상은 ‘항모 부대는 없다’라는 사실입니다. 하와이에 주둔하고 있거나 다른 지역에서 훈련이나 작전 중이고 일본군이 미드웨이를 공격한 사실을 알고 반격하기 위해 오더라도 제 시간에 도착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었죠. 이 경우는 그냥 미드웨이를 점령하고 작전 종료입니다. 미군 항모 부대가 미드웨이 점령 이후에 온다면 그때 가서 상대하면 되는 것이고요. 


문제는 미드웨이를 공략하는 도중에 미군 항모 부대가 도착하는 것. 여기에 대한 대비를 해야 했어요. 가능성은 두 가지가 있죠. 첫 째는 미군이 미드웨이 공격을 예상하고 이미 항모 기동부대가 미드웨이 인근에서 대기하고 있을 경우. 두 번째는 미드웨이 공격이 시작된 이후에 뒤늦게 항모 기동부대가 미드웨이로 지원을 하러 오는 경우. 

앞서 예측했던 항모 기동부대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총 세 가지 경우의 수입니다. 일본 군 지휘부는 항모가 나타날 가능성 중에 첫 번째 가능성, 즉 미드웨이 공격을 미국이 미리 예측하고 이미 근처에 대기 중일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고 봤습니다. 총사령관 야마모토의 판단도 그랬고 현장 지휘관인 나구모는 더욱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죠. 영화에도 나구모가 이런 발언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나구모는 항모 기동부대가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고 설령 나타나더라도 뒤늦게 이미 미드웨이 공습이 끝난 뒤에 나타날 거라 보았습니다. 이렇게 예상을 한다면 복잡해 보이는 미드웨이 공략 작전도 아주 단순해집니다. 처음에는 닥치고 미드웨이 공습에만 집중한다, 미드웨이를 완전히 무력화 시킨 후 (올지 안 올지 모르는)미군 항모 기동부대를 요격하기 위한 태세로 전환한다.

‘전환’

핵심이 바로 이것이죠. 똑같은 항모 운용이라도 목적에 따라서 방식과 절차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지상기지를 공격하는 것과 항공모함과 싸우는 것은 명백히 다른 방식의 전투입니다. 그러니 지상기지 공략용 항모 전투태세를 항공모함과 싸우기 위한 전투태세로 전환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게 됩니다. 함재기의 무장부터가 달라지게 되는데 이 부분이 특히 시간 소요가 많이 되죠.


미드웨이 공습이 완료된 다음에 미군 항모 기동부대가 오는 것이라면 상황은 단순하지만... 문제는 한창 미드웨이를 공격하는 와중에 미군 항모 기동부대가 나타나는 경우입니다. 야마모토도 나구모도 이 가능성은 낮다고 보았지만.. 현실은...

네, 미군은 모든 것을 예상하고 있었고 만반의 태세를 갖춘 채 미드웨이 인근 바다에서 일본군의 미드웨이 공격이 시작되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낙관적인 예상을 하고 있던 일본군을 기다리는 악몽 같은 현실이었죠.

아침 6시가 지나자 미드웨이를 공격하기 위한 일본군 폭격기와 공격기들이 항공모함에서 출격합니다. 본격적인 미드웨이 공략이 시작되었고 우선은 미드웨이 기지에 있던 비행대가 출격하여 반격에 나섭니다. 하지만 이 미군 공격대들은 일본군에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한 채 격퇴당합니다.

7시 이후 미 항공모함의 공격기들이 출격하기 시작합니다. 항공모함은 모두 세 척. 엔터프라이즈와 호넷, 그리고 산호해 해전에서 큰 손상을 입어 수리에 3개월은 필요하다는 판정을 받았으나 미국 공돌이들의 혼신의 ‘수리 신공’으로 3일 만에 뚝딱 고쳐낸 요크타운 입니다. 이 요크타운이 기적적으로 수리를 완료하고 해상에 나타나자 주인공 딕 베스트를 비롯한 엔터프라이즈의 장병들이 기뻐하며 환호성을 지르는 장면도 영화에서 제대로 묘사가 되죠.


아무튼 세 척의 항공모함에서 기동부대들이 출격을 하는데 문제는 일본군이 미군 항공모함의 위치를 예측하기 어려웠던 것 만큼이나 미군 또한 일본군 항공모함의 정확한 위치는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항공모함에서 출격한 미군 기동부대는 여러 부대로 나뉘어 일본군 항공모함의 위치 수색에 나섰습니다. 

미드웨이 해전은 정보전에서 완벽하게 미군의 승리로 시작된 전투입니다. 미군은 일본군이 미드웨이를 공격할 것을 정확하게 예상했고 일본군의 대략적인 위치와 예상 공격 시간도 큰 오차가 없이 맞추는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시대는 아니었습니다. 대략적인 위치를 알았다고 해도 끝도 없이 넓은 바다에서 비행 공격대가 적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여 공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미군이 입을 쩍 벌리고 있는 함정 안으로 일본군이 덜컥 들어와 버린 상황이었지만 그걸 잘근잘근 씹어 삼키는 것은 결코 녹록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실전 경험 부족으로 항모 전술 운용에도 미숙한 점이 많았고 폭격기로 항모를 명중 시키는 자체도 상당한 실력을 가진 베테랑 파일럿이라도 성공률이 그다지 높지 않았어요.


전투의 사전 준비에서는 완벽하게 우세를 점했지만 진정한 승패를 결정짓는 것은 역시 상당한 운과 실전 파일럿들의 목숨을 건 작전 수행이 뒤따라주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미드웨이 해전이 시작되고 미군 항공기들이 지속적으로 일본 항모 기동부대에 공격을 가했지만 좀처럼 성과가 나지 않았습니다. 최초에 공격했던 미드웨이 기지의 공격대들이 격퇴 당하고 항모에서 출격한 기동부대들이 부대를 나뉘어 수색을 벌이고 먼저 일본군을 발견한 부대부터 공격을 시작했지만 계속 실패하고 격퇴당하는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아예 일본군을 발견하지 못하고 연료가 떨어져 그대로 퇴각한 부대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공격 실패의 전황들이 영화에서도 디테일하게 묘사됩니다. 특히 실패한 공격 부대 중에서는 꽤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바로 호넷에서 출격한 제 8 뇌격기 대대의 유일한 생존자인 조지 게이 소위의 일화입니다. 

제 8 뇌격기 대대는 미군 항공모함에서 출격한 공격대 중에서 처음으로 일본군을 발견한 부대입니다. 항공기 15대로 이루어진 부대였는데 결국 성과를 올리는데 실패하고 모두 전멸하고 맙니다. 이 부대에서 비상 탈출에 성공한 조지 게이 소위만이 생존했는데 그는 무려 30시간이나 바다를 표류하다 기적적으로 구조가 됩니다. 그런데 바다에 떠 있는 시간 동안 이후 벌어진 미드웨이 해전의 모든 국면을 직접 목격하게 되는데 즉, 그는 30시간을 표류하다가 구조된 ‘생존자’로서도 유명하지만 미드웨이 해전의 모든 상황을 바다에 떠다니는 상태로 모두 목격하게 된 ‘목격자’로서도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영화에서도 당연히 등장하는 인물이고 그가 바다에 떠 있는 상태로 일본 항공모함이 미군 공격대의 공격을 받아 불길에 휩싸이는 광경을 목격하는 장면이 디테일하게 묘사됩니다.


아무튼 제 8 뇌격기 대대의 뒤를 이어 엔터프라이즈에서 출격한 제 6 뇌격기 대대와 요크타운에서 출격한 제 3 뇌격기 대대가 일본군을 발견하고 공격을 시작했는데 마찬가지로 모두 실패합니다. 정확한 일본군 위치 정보를 바탕으로 이 세 부대가 동시에 공격했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았을 테지만 따로 나뉘어서 각자 수색을 벌이고 각각 일본군을 발견한 시점에 바로 공격에 돌입하다 보니 세 부대가 의도치 않게 이른바 ‘축차공격’을 하는 상황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모두 각개격파 당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고 만 것입니다.

정보전에서 완벽한 우위로 시작한 전투였지만 미군은 그 우위를 살린 결정적인 공격의 성공을 전혀 거두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미드웨이 전투를 ‘미군의 대승’으로만 알고 있고 디테일한 상황 전개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이 부분에서 좀 당혹감을 느낄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그냥 계속 미군이 패배하고 피해만 커지고 있는 상황이 이어지니까요.


그래서 미드웨이 해전을 각본 없는 드라마 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미드웨이 전투의 승패를 완전히 결정지은 순간을 흔히 ‘운명의 5분’이라고 표현합니다. 바로 영화의 주인공 딕 베스트 대위가 소속된 제 6 급강하 폭격기 대대와 제 3 급강하 폭격기 대대의 공격입니다.

말했듯이 미군 항공모함에서 출격한 기동부대들은 여러 부대로 나뉘어 일본 항모 전단을 찾아나섰습니다. 그 과정에 결국 일본군을 발견하지 못하고 연료 문제로 그냥 돌아와야 했던 부대도 있습니다. 딕 베스트가 소속된 제 6 급강하 폭격기 대대는 앞선 세 번의 축차 공격이 모두 격퇴당한 후에 도착하게 되는데(정확히는 세 번째 공격 부대였던 제 3 뇌격기 대대의 공격은 아직 진행 중인 상황이었습니다) 이렇게 늦은 타이밍에 도착한 건 그들도 연료 문제로 복귀하게 될 수도 있을 만큼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기적적으로 일본군을 발견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도 그냥 날아다니다가 우연히 일본 항모 전단을 바로 발견하게 된 것도 아닙니다. 몇 가지 우연적인 상황이 겹치면서 상황이 전개되는데 이 과정이 제법 흥미롭습니다. 영화에서도 당연히 매우 자세하게 묘사되고요.

일단 당시 태평양에서 작전 수행 중이던 미군 잠수함 ‘노틸러스’가 우연히 일본군 항모 전단을 발견하게 됩니다. 노틸러스는 일본군 전함에 어뢰 2발을 발사하는 등 나름 공격을 시도했으나 한발이 불발되고 한발은 비켜 가는 등 직접적인 타격을 주는 데는 실패합니다. 하지만 꾸준히 뭐라도 하기 위해 일본 함대 주위를 알짱(?)거렸고 이 귀찮은 잠수함 한 대를 처리하기 위해 일본군도 상당한 주의력을 소모하게 됩니다. 


결국 일본 함대의 호위 구축함 중 하나였던 ‘아라시’가 노틸러스를 격침시키기 위해 함대에서 이탈해 본격적인 추격을 시작합니다. 노틸러스는 아라시의 폭뢰 공격을 피해 잠수하지만 아라시는 끈질기게 해당 구역에 머물면서 노틸러스의 행적을 추적합니다. 이러는 동안 일본군 본대는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고 아라시는 일본군 본대와 떨어지게 되죠.

결국 노틸러스를 잡는데 실패한 아라시는 다시 일본군 본대로 합류하기 위해 이동하게 되는데... 바로 이 아라시의 이동 항적을 제 6 급강하 폭격기 대대가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연료 문제로 슬슬 복귀 시점을 고민하던 타이밍에 기적같이 적의 위치를 알 수 있는 실마리를 잡게 된 것이죠.


아라시의 항적을 쫓아간 제 6 급강하 폭격기 대대는 결국 일본군 함대를 발견하게 되고... 바로 모든 것을 결정지은 ‘운명의 5분’ 공격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영화에서 이 모든 과정들이 매우 상세하고 흥미롭게 그려집니다. 전투의 승패를 결정지은 운명적인 순간을 빠짐없이 디테일하게 묘사해 냈죠. 당연히 이 부분부터 영화는 가장 재미있는 하이라이트 파트로 돌입합니다.

영화 ‘미드웨이’가 밀덕들에게 가장 호평을 받은 요소는 바로 ‘급강하 폭격’의 묘사입니다. 그야말로 이 영화에서 가장 공을 들인 장면이고 영화 내내 대놓고 ‘급강하 폭격’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자 하이라이트라는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엄청난 스펙터클입니다. 이 영화의 제작비는 1억 불로 기본 2억 부터 시작하는 요즘 A급 이상의 블록버스터 영화들과 비교하면 딱히 블록버스터 급도 아닌 영화이지만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급강하 폭격 장면만은 어떤 대작 블록버스터의 스펙터클한 빅씬과 비교해도 꿇리지 않을 정도입니다. 밀덕과 역덕은 극장에서 이 장면을 본다면 그야말로 행복사할 지경일 겁니다.

당연히 고증도 매우 잘 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래도 역시 상업 영화이기에 어느 정도 영화적인 과장과 비현실적인 묘사들도 들어 있긴 합니다. 마치 현실 도돈파치를 보는 듯한 압도적인 탄막의 불꽃 지옥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이 급강하 하는 장면은 분명히 상당한 과장이 들어간 비현실적인 연출입니다. 하지만 관객에게 극한의 스릴을 만끽하게 만들어준, 장르 영화로서는 최고의 연출이라고 할 수 있죠. 

도돈파치


거기에 전쟁 영웅을 기린다는 목적에서도 이런 연출은 상당한 효과를 발휘합니다. 실제로 미드웨이 해전으로 200명 정도의 미군 파일럿이 사망하였고 당시 참전했던 파일럿들이(뭐 2차 대전 모든 전장의 파일럿이 다 동일하겠지만) 목숨을 걸고 지옥 같은 전장을 누빈 것이 엄연한 사실이라 다소 영화적인 과장이 들어가더라도 ‘진짜 지옥이구나’ 라는 느낌이 들도록 폭격 장면을 연출한 것은 매우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만큼 이 파일럿들이 정말 위대한 영웅들로 보이게 만드는 거니까요.

이런 장면들을 한국인이라면 더욱 각별하게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이 일제로부터 독립을 이루게 된 것은 미국이 전쟁으로 일본을 박살 내주었기 때문이니까요. 태평양 전쟁을 승리로 이끈 미군 영웅들은 우리 입장에서는 독립 유공자나 다름없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운명의 5분’의 하이라이트 장면이 지나가도 영화는 끝나지 않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언급한 대로 실제 역사에는 창작 스토리와 같은 리듬감이나 완급 조절 같은 게 없습니다. 정말 결정적인 하이라이트 장면이 지나가고도 어정쩡하게 뒷 내용이 더 남아 있는 겁니다. 이 각본 누가 썼어? 하고 누구에게 불평할 수도 없고 말이죠.

‘운명의 5분’ 공격으로 일본군 항모 4척 중 3척이 격침됩니다.(물론 완전히 침몰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렸지만) 지휘관인 나구모 주이치는 침몰하는 항모에서 탈출하게 되고 남은 한 척의 항모인 히류에 타고 있던 야마구치 다몬은 미군 항모를 향한 반격 작전에 나섭니다. 이미 패색이 짙은 전투였지만 어떻게든 미군 항모에 타격을 주기 위해 히류의 함재기들을 출격시키죠.


이 반격 작전으로 결국 미군 항공모함 중 한대를 격침시키는데 성공합니다. 바로 산호해 해전에서 큰 손상을 입고도 3일 만에 뚝딱 수리를 끝내고 전투에 합류했던 요크타운입니다. 정확히는 히류에서 발진한 기동부대의 공격만으로 요크타운이 침몰한 건 아니고 큰 피해를 입은 상태에서 근처의 일본군 잠수함이 쏜 어뢰로 막타를 먹고 침몰한 것입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이 내용은 그냥 생략하고 넘어갔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이런 내용들을 너무 디테일하게 다루면 지루해지거든요. 더군다나 최대 하이라이트 장면이 지나가고 영화를 마무리해야 하는 단계라 더욱 선택과 집중을 해야만 하죠.

결국 남아 있는 일본군 항모 히류를 잡기 위해 미군 공격대들이 재발진 합니다. 이미 지옥 같은 임무를 간신히 완수하고 살아 돌아온 상황에서 다시 공격에 나서야만 하는 가혹한 상황. 영화에서는 이 순간을 굉장히 비장미 넘치게 연출하죠. 결국 재발진한 공격대에 의해 히류마저 격침. 일장기 가운데에 폭탄을 내려 꽂는 짜릿한 연출이 영화에 등장합니다. 영화의 내용상 필히 등장해야만 할 것 같은 대사도 여기서 등장하죠. “진주만의 복수다!(This is for Pearl)”


이렇게 일본군 항모 4척을 침몰시키는 대전과를 올리며 미군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승리합니다. 전투 이후 상황으로 야마구치가 침몰하는 히류에 남아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 패배를 인정하고 퇴각을 결심하는 비통한 얼굴의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모습, 그리고 승리의 환호를 지르는 미군 지휘 본부의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마무리 됩니다. 주요 인물들의 후일담도 자막과 실제 인물의 사진을 띄우며 보여주고요.


이렇게 미드웨이 전투의 전체 전개 양상을 이 영화를 통해 거의 교육 자료 수준으로 상세하게 보고 느낄 수가 있습니다. 밀덕와 역덕이라면 이런 영화를 보면 단연 행복사! 하지만 처음에 말한 대로 모든 사람이 그런 행복과 재미를 느낄 수는 없을 겁니다. 교육 자료 수준이라고 했지만 미드웨이 해전에 대해 따로 알아보지 않고 정말 이 영화만을 보고 전투의 주요 전개 양상을 완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영화가 왜곡을 하거나 제대로 상황들을 전달하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사실 한 번 보고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는 특별히 ‘내용이 어렵다’고 소문난 영화(크리스토퍼 놀란의 ‘테넷’같은)가 아니더라도 굉장히 흔하고 일반적이거든요. 

이 영화는 등장인물이 너무 많은데다 전투의 상황 변화도 너무 많죠. 전투기들이 항모를 공격하다가 실패하는 장면들이 반복되어서 아까 상황과 지금 상황이 뭐가 다른지 이해가 안될 테고, 후반부에는 공격에 성공하는 장면들이 또 반복됩니다. 등장인물도 헷갈리고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 수 없는 상황들이 이어지죠. 거의 교육 자료 수준의 묘사라고 했지만 이 모든 상황들을 마치 강의하듯이 하나하나 꼼꼼히 목차까지 소개하면서 설명해주는 영화는 아니거든요. 원래 영화의 본질은 그런 게 아니죠. 


그런데 ‘미드웨이’는 사실 일반관객 평가도 상당히 좋은 영화입니다. 앞에서 평론가들의 평가는 별로다 라고 했는데 사실 (원래 평론가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감독인)롤랜드 에머리히의 영화 치고는 그렇게 나쁜 편도 아닙니다. 전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뭔가 잘 안풀리던 국면이 주인공 딕 베스트가 소속된 공격대의 목숨을 건 대활약으로 극적인 대승리로 반전되었다는 것은 확실히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 최강의 무기인 급강하 폭격 장면의 스릴! 밀덕들이야 이미 천당으로 갔고 일반 관객들과 평론가들도 이 장면만은 어떤 불평도 할 수 없을 겁니다. 이런 완벽한 장점을 한 가지라도 갖춘 영화라면 전반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을 확률은 매우 높아집니다. 

롤랜드 에머리히의 ‘미드웨이’는 확실히 좋은 영화입니다. 미드웨이 해전을 소재로 다룬 영화로서 아쉬운 점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원래 롤랜드 에머리히 라는 감독이 가진 역량을 생각했을 때 충분히 기대한 수준 이상을 뽑아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니, 굳이 감독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이 정도로 완성도 높은 항모 해전 영화, 전쟁 영화는 보기 드뭅니다. 블록버스터 영화로서 볼거리의 재미도 충분하고, 목숨을 걸고 싸웠던 전쟁 영웅들의 숭고한 희생의 가치도 감동적으로 잘 그려졌습니다. 18년 전에 나왔던 마이클 베이의 ‘진주만’의 속편 격인 영화로서 진주만의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해준 느낌도 듭니다. 


전쟁 영화가 아주 대중적이거나 메이저한 장르는 아니지만 이렇게 이름 있는 감독과 좋은 배우들이 참여한 훌륭한 완성도의 전쟁 영화가 꾸준히 제작되는 것은 수 많은 밀덕과 역덕들을 매우 행복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물론 영화 마니아들에게도 매우 좋은 일이고요. 최근에 나온 덩케르크, 미드웨이, 그레이하운드 같은 전쟁 영화들을 보면 하나하나가 개성적이고 점점 이 장르 자체가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도 듭니다. 이 장르가 더 발전해서 앞으로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블랙 호크 다운의 뒤를 잇는 전쟁 영화의 역대급 걸작이 또 다시 나와 주면 좋겠습니다.


대서즐라
대중문화와 서브컬처를 즐기는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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