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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영화사이

[역사와 영화사이] 스파이의 아내 (2차대전/ 731부대)

by 대서즐라 2021.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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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재영화 리뷰

*스포일러가 포함된 리뷰입니다

스파이의 아내 スパイの妻

구로사와 기요시의 ‘스파이의 아내’는 2차 대전 시기의 일본을 배경으로 한 첩보영화입니다. 하지만 정석적인 장르 영화는 아닙니다. 영화의 주인공도 스스로 ‘나는 스파이가 아니다’ 라고 말할 정도니까요. ‘스파이’라는 단어를 인터넷 사전에 검색해 보니 다음의 두 가지 의미가 나오더군요.

1. 한 국가나 단체의 비밀이나 상황을 몰래 알아내어 경쟁 또는 대립 관계에 있는 국가나 단체에 제공하는 사람.
2. 대적하고 있는 쌍방이 서로 간첩을 보내어 상대편의 정보를 탐지하는 일.

1번의 의미가 2번의 의미보다 더 넓은 범주를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는 스파이 장르라고 하면 2번의 의미가 적용되는 스파이들이 등장하는 작품들입니다. 가장 유명한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가 그렇고 비교적 최근 작품으로 이 장르에서 유명했던 제니퍼 로렌스 주연의 ‘레드 스패로’도 여기에 해당되죠. 

레드 스패로


일반적으로 대중문화나 서브컬쳐 작품 속 스파이들은 거대 세력이나 조직에 속해 있습니다. 보통은 국가 기관이고요. 냉전 시대 배경이라면 소련 대 미국(과 범 서방세계)의 대립 구도 속에 각 국가의 스파이들이 치열한 첩보전을 벌이는 내용이 전개 됩니다.

‘스파이의 아내’는 2차 대전이 배경이고 주인공은 일본인입니다. 일본인이 주인공인 2차 대전의 스파이물 이라면 이거 또 노답 우익영화 한 편 나온 거 아닌가 싶겠지만 실상은 정반대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유사쿠는 자국인 일본을 배신하는 인물입니다. 즉 일본이라는 국가가 악역으로 설정된 영화예요.


2차 대전에서 일본은 독일, 이탈리아와 손을 잡고 추축국 동맹의 한 축이 되었습니다. 이탈리아는 쩌리이고 독일과 일본이 2차 대전 추축국의 핵심 몸통이죠. 그리고 이런 추축국에 대항하는 연합국 측의 핵심 국가는 미국, 영국, 소련, 중국 이었고요. 일본은 주로 미국(태평양 전쟁), 중국(중일 전쟁)과 싸웠죠.

유사쿠는 일본을 배신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유사쿠가 일본과 싸웠던 연합국 측의 스파이인 것은 아닙니다. 물론 유사쿠는 사업가로서 해외의 기업인들과 교류를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친분 관계를 쌓아둔 인물입니다. 일본을 배신하기로 결심한 이후로는 그런 인맥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게 되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유사쿠는 본질적으로 일본의 적대 세력(국가)에 소속된 스파이는 아닙니다. 유사쿠에게는 ‘세력’이 없습니다.

유사쿠는 스스로를 ‘코스모폴리탄’이라고 말합니다. 요즘은 잘 안 쓰는 단어인데 굳이 잘 와닿는 단어로 바꾸자면 ‘세계시민’ 정도로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겠네요. 자신의 ‘소속’을 국가보다 더 큰 범주로 잡은 것이죠. 그것은 ‘인류’입니다. 내가 속한 ‘국가’가 ‘인류’를 배신하는 행위를 한다면 코스모폴리탄 적 관점에서는 그런 국가는 버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국가 위에 인류가 있기 때문에 국가가 인류를 배신하는 행위를 했을 때 거기에 동조하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조한다면 자신 또한 인류에 대한 배신자가 되는 셈이니까요.


그러므로 첩보물 주인공으로서 유사쿠의 캐릭터는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 정의 중에서 첫 번째 정의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영화에서 유사쿠가 하는 행동은 바로 이 첫 번째 정의에 거의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만주에서 벌어지는 일본군 731 부대의 반인륜적 잔학 행위에 대한 자료를 모아서 연합국 측에 전달하고 이러한 행위들의 실체를 세상에 폭로하는 것. 영화에서 유사쿠가 하려는 행동이 바로 이것이에요.

그런데 이 영화의 제목은 ‘스파이의 아내’입니다. 유사쿠도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지만 더 비중이 큰 진짜 주인공은 유사쿠의 아내인 사토코입니다. 사토코는 유사쿠와 같은 코스모폴리탄은 아닙니다. 그저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탈 없이 행복하게 살고 싶어하는 평범한 아내일 뿐입니다. 하지만 격동하는 시대 상황에서 평범하게 산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어려운 도전입니다. 남편이 국가를 배신하는 스파이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사토코는 ‘남편과 함께 하는 평범한 행복’을 얻기 위해 손톱이 뽑히는 고문을 당하거나 최악의 경우 죽게 될지도 모르는 위험천만한 상황들에 스스로 뛰어들어야만 입장에 놓이게 됩니다. 그 상황들을 무사히 넘겨야만 사토코가 바라는 행복을 얻을 수 있거든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그다지 대중적인 스타일의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아닙니다. 그런데 ‘스파이의 아내’가 그가 만든 가장 대중적인 영화라는 평론이 있더군요. 영화를 본 감상으로는 이 영화도 그다지 대중적이지는 않은데 말이죠. 하지만 역시 이 감독의 다른 작품들이 어땠나를 비교해 보면 이 영화가 가장 대중적이다 라는 말도 나올만 한 것 같습니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었지만 그 중에서도 호러 작품들이 유명합니다. 특히 ‘절망 3부작’이라고 불리는 세 작품이 유명하죠. 큐어, 회로, 절규. 모두 인상적인 작품이었지만 역시 저는 최고의 작품은 큐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다른 두 작품도 비등비등하게 훌륭하긴 하지만요. 

큐어


그런데 큐어나 회로가 훌륭한 호러 영화이긴 하지만 엄청나게 무서운 영화는 아니에요.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에는 점프스캐어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소재나 아이디어는 좋은데 그걸 대중적으로 흥미진진하게 풀어내는 데는 관심이 없는 감독이에요. 하지만 은근히 호러 영화 팬들 중에서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저도 거기에 해당되고요. 

이 감독의 영화는 호러 장르로서 매우 유니크 하다고 생각합니다. 점프스캐어 같이 간 떨어지게 만드는 아찔한 공포는 없지만 영화의 전체 분위기가 정말 압권이죠. 암울하고 불안하고 절망적이고. 그런 분위기가 보기에 괴로우면서도 은근히 중독적이라 구로사와 기요시의 호러 영화에 매료되는 영화 팬들이 많아요.

이러한 구로사와 기요시의 유니크한 성향은 호러 장르 뿐 아니라 다른 장르의 영화에도 적용됩니다. ‘스파이의 아내’는 구로사와 기요시만이 만들 수 있는 매우 유니크한 첩보물이죠. 하지만 이 영화가 구로사와 기요시 영화 중에서 상당히 대중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첩보 장르의 영화로서 쫄깃한(?) 긴장감을 의외로 굉장히 잘 살렸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 ‘12세 관람가’ 등급을 받았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기 전에 상영 등급을 보고 의아했습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2차 대전 배경 첩보 영화인데 12세 관람가인 건 뭔가 이상했어요. 영화를 보고 확실히 상영 등급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영화가 12세 관람가라니. 어린 애들 보다가 기겁할 영화예요.

이 영화에는 손톱을 뽑는 고문 장면이 등장합니다. 거기에 화질이 엉망인 그 시대 기록 필름 장면이긴 해도 731 부대의 실험 장면 같은 것도 잠깐 나오고요. 청소년 관람불가를 받을 정도로 센 영화는 아니지만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에요. 손톱 뽑는 장면도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끔찍한 비명 소리가 들리고, 피투성이인 뽑힌 손톱도 등장합니다. 뽑아낸 손톱을 보여주는 건 협박 용도인데 이게 관객에게까지 잘 통해요. 

이런 긴장감의 밑밥을 잘 깔아놓아서 후반부의 탈출 시퀀스가 상당히 쫄깃합니다. 저는 약간 벤 애플렉의 ‘아르고’가 생각나더군요. 아슬아슬 위태위태한 상황의 전개. 하지만 연출 스타일은 정반대죠. 화면 전체가 관객의 심장처럼 쿵쾅쿵쾅 요동치는 느낌이었던 아르고 와는 달리 스파이의 아내는 고요하지만 숨 막히게 만드는 압박감을 줍니다. 

아르고


상황 전개도 아르고와는 정반대죠. 결국 탈출에 성공하는 아르고와는 달리 사토코는 탈출에 실패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끔찍한 손톱 뽑기 고문... 하지만 그 뒤에 영화는 굉장히 의외의 전개를 보여줍니다. 상영 등급이 12세 관람가 라는 게 어떤 면에서는 스포일러 이기도 한 것 같네요. 사토코가 정말 손톱 뽑기 고문을 당한다면 12세 관람가 등급은 말도 안 되는 거니까요. 뭐 그냥 이대로도 12세 관람가 등급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하지만요.

사토코는 영화의 주인공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또 다른 주인공 유사쿠의 관찰자로만 머무르는 역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관찰자로서 관객에게 명확한 해답을 제시해주지는 못합니다. 결말이 상당히 독특한데, 열린 결말로 보이면서도 단순히 불친절하게 느껴지기도 하거든요. 첩보 영화가 원래 불친절한 장르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뭔가 시원스레 진상이 밝혀지지가 않아서 보고 나서도 영 뒷맛이 찝찝해요. 네, 이런 찝찝한 뒷맛은 구로사와 기요시 영화의 공통된 특성이기도 하죠.


배우들의 앙상블이 좋은 영화입니다. 주인공 사토코를 연기한 아오이 유우가 영화의 정서적인 중심을 굉장히 잘 잡아 줍니다. 그녀가 실성한 듯 웃으며 ‘대단해!’를 외치는 장면은 2021년 제가 현재까지 본 모든 영화 중에서 가장 강렬하게 인상에 남은 장면입니다. 이제는 아오이 유우도 ‘노련한’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배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외모는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아오이 유우의 영화는 ‘훌라걸스’인데 그녀가 스무 살 즈음에 찍은 이 영화의 모습과 ‘스파이의 아내’에서의 모습도 그다지 큰 차이가 없어 보이네요.

훌라걸스


아오이 유우가 한때 한국 네티즌들에게 ‘우익배우’라는 낙인이 찍혔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녀를 우익배우라 부르며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이런 낙인이 찍힌 이유는 그녀가 ‘남자들의 야마토’, ‘내일에의 유언’ 같은 소위 말하는 ‘우익 영화’에 출연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남자들의 야마토를 봤고 이 영화도 포스팅을 할 예정이긴 합니다. 짧은 감상을 말씀드리면 우익은 둘째 치고 뭔가 웃기는 영화더군요. 의도 자체는 군국주의 미화가 맞겠지만(최소한 그런 방향이겠지만) 한국인이 본다면 그냥 웃을 수 밖에 없는 영화예요. 

아오이 유우가 이런 우익 영화(군국주의 미화)에 출연한 사실에 대해 인터뷰를 한 내용이 있기는 한데 분명한 그녀의 속내를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사실 이런 우익 영화의 속성이 대본만 보고 분명하게 파악되지 않는 것이기도 하거든요. 예를 들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만 하더라도 내용 자체는 ‘남자들의 야마토’와 비슷합니다. 두 영화 모두 일본군의 비참한 패배를 다루는 내용입니다. 항복하지 않고 부대가 전멸할 때까지 싸우다가 결국 전멸하는 내용이죠.(물론 생존자도 일부 있지만) 하지만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가 우익 영화로 욕을 먹지는 않습니다. 이스트우드 감독도 우익 감독으로 불리지 않고요. 다만 확실히 한국에서는 거부감이 좀 있었던 영화죠. 거장 이스트우드 감독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작품임에도 국내에 정식 개봉도 못할 정도였으니까요.

남자들의 야마토


중요한 것은 영화의 태도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입니다. 대체로 군국주의 미화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면 빼도 박도 못할 우익 영화입니다. 남자들의 야마토는 확실히 그런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앞에서 말했지만 이 영화는 그냥 웃기는 영화예요. 그런 메시지가 너무 노골적이라 일부러 풍자하려고 하는 건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한국에 우익 영화로 알려진 또 한 편의 유명한 영화가 바로 ‘영원의 제로’입니다. 이 영화도 사실 우익 영화라고 할만한 혐의는 분명히 있지만 군국주의 미화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건 오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남자들의 야마토 같은 바보 영화가 오히려 예외적인 것이지, 2차 대전 배경의 일본 영화는 대부분 당시의 군국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합니다. 일본의 재무장 야욕 등 현실 정치의 우익 세력들이 과거의 군국주의를 미화하는 시도를 꾸준히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와 별개로 일본의 문화 콘텐츠에서 그리는 일반적인 인식은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군국주의가 결국은 일본 국민들을 고통에 빠뜨리고 나라를 망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기본으로 삼습니다. ‘영원의 제로’는 카미카제 조종사들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기본적으로 카미카제 전술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인 입장을 취합니다. 남자들의 야마토는 아무 의미 없는 야마토 승무원들의 개죽음을 말도 안 되게 숭고하게 그리지만 영원의 제로에서는 카미카제 조종사의 희생을 그저 ‘미친짓’으로 규정할 뿐입니다. 

영원의 제로


2차 대전 배경의 일본 창작물이 가장 흔하게 보여주는 우익적 태도는 이런 군국주의 미화의 측면이 아니라 일본의 일반 국민을 군국주의로부터 분리시킨 후 2차 대전 이라는 비극의 희생자로 그리는 것입니다. 2차 대전에서 일본이 가지는 침략자이자 가해자라는 입장을 교묘하게 희석시키는 것이죠. 그저 ‘일본의 폭주하는 군국주의가 전쟁이라는 비극을 초래했다’라고 뭉뚱그리는 것인데, 여기에 가해자 입장의 반성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군국주의를 비판하고 당시의 일본의 폭주를 매우 비판하는 내용이라도 본질은 결국 가해자의 반성을 교묘히 피해가는 것입니다. ‘영원의 제로’도 그렇고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반딧불이의 묘’ 역시 그런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작품입니다.

반딧불이의 묘


이런 일본 창작물들의 우익적 태도는 현재 일본의 우익 정치 세력의 태도와는 미묘하게 다른 것이라 오해와 혼동을 부르기 쉽습니다. 우익 세력이야 맛탱이가 갔다고 보면 되지만, 일반 대중들이 얼토당토 않을 걸 받아들이기는 어렵거든요. 카미카제는 어떤 논리로도 포장할 수 없는 미친 짓거리. 그리고 731 부대 같은 광기는 인류사에 있어서는 안되는 최악의 반인륜 행위인 거고요.

‘스파이의 아내’는 731 부대가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731 부대의 만행을 고발하는 것이 이 작품의 목적인 것은 전혀 아닙니다. 그냥 시대극 배경으로 첩보 영화를 찍으려던 것이고 일본을 ‘배신’하는 행위의 가장 설득력 있는 명분으로 삼을만한 역사적 사건 중 하나가 731 부대의 만행인 것이죠.


731 부대의 만행에 대해 일본 우익 세력은 기본적으로는 부정하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빼도 박도 못할 증거들이 많이 있고 일본 창작물에서도 주요 소재로 상당히 자주 등장합니다. 당연히 매우 비판적으로 그려지고 731 부대를 모티브로 한 악의 조직이나 부대장인 이시이 시로를 모티브로 한 악당 캐릭터가 여러 창작물에서 등장합니다. ‘피안도’나 ‘쓰르라미 울적에’ 등 전쟁을 위한 반인륜적 생체 실험에 의해 끔찍한 비극이 발생한다는 내용의 작품들은 대부분 731 부대를 모티브로 따온 것입니다. 

쓰르라미 울적에


2차 대전 일본의 군국주의를 미화하려는 우익 세력과는 달리 일본 창작물에서 그려지는 2차 대전의 일본은 말 그대로 ‘흑역사’입니다. 비참한 패배, 그리고 카미카제나 731 부대와 같은 빼도 박도 못할 막장 행각들. 2차 대전 당시에 일본이 막장이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어요. 이런 일반적인 인식은 머리가 빈 우익 세력들의 인식과 확실히 분리되는 것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우리 같은 일본의 주변국(피해국)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당시 일본의 막장 국가적인 상황에 대한 인식을 넘어서 가해국으로서의 진지한 반성까지도 나아가려는 인식이겠죠. 그런 인식을 눈곱만큼 보여주는 작품들이 있긴 합니다. 애니메이션 ‘이 세상의 한 구석에’에 등장하는 태극기 장면이 대표적이죠.(그런데 이 작품의 실사 드라마 판에서는 태극기 장면을 빼버렸습니다)

이 세상의 한 구석에


그런데 ‘스파이의 아내’는 이런 측면을 진지하게 논할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주인공이 코스모폴리탄인데다가 영화 자체가 매우 비정치적입니다. 2차 대전 소재의 스파이 영화라고 해서 대단히 정치적인 내용을 다룰 것 같지만, 막상 보니 구로사와 기요시 식의 기묘하고 흥미로운 장르 영화였습니다. 물론 감독의 이름을 알고 본다면 예상 밖의 것이 나왔다고 놀랄 일은 없겠지만요. 


대서즐라
대중문화와 서브컬처를 즐기는 라이프

트위터 @dsz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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