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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이야기

[캐릭터 이야기] 미스터 사탄 (드래곤볼)

by 대서즐라 2021.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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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사탄 (드래곤볼)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를 한 명 꼽으라면 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드래곤볼의 캐릭터 ‘미스터 사탄’을 꼽습니다. 그저 제 취향에 맞아서 좋아하는 캐릭터일 뿐만 아니라(물론 그렇기도 합니다) 어느 정도 객관적인 관점(어차피 완벽한 ‘객관’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이지요)으로 평가를 해보더라도 미스터 사탄 만큼 완성도 높고 의미 있는 캐릭터는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가 미스터 사탄에 대해 평가하는 기준은 어디까지나 드래곤볼의 코믹스 본편 내용에만 국한됩니다. 모두가 아는 대로 드래곤볼은 하나의 작품을 넘어서 문화가 되었고 작품 연재가 끝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수많은 미디어믹스와 파생 콘텐츠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미디어믹스와 파생 콘텐츠에 등장하는 미스터 사탄의 모습은 다소 실망스럽습니다. 사실 미스터 사탄 뿐 아니라 드래곤볼의 대부분의 미디어믹스와 파생 콘텐츠들의 내용과 퀄리티는 실망스럽지 않은 경우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이 파생 콘텐츠들의 대부분은 본편 작가인 토리야마 아키라가 직접 쓰거나 감수한 내용인데 그럼에도 이 정도로 퀄리티가 떨어진다는 것은.... 애초에 만화 사상 역대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 받는 ‘드래곤볼’의 본편 완성도도 순전히 토리야마 아키라의 능력이라기 보다는 당시의 점프 편집부나 그 밖의 외부적인 개입의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애초에 일본의 만화 연재작들의 경우 작가와 편집자가 함께 만들어 간다는 개념이 강하니까요. 이런 사실들은 ‘바쿠만’이나 ‘증쇄를 찍자’ 같은 만화 업계를 다루는 작품들을 통해 대중에 많이 알려지게 되었죠. 

아무튼 드래곤볼 본편에서의 미스터 사탄은 정말 완성도가 높은 캐릭터입니다. 사실 미스터 사탄은 드래곤볼에서 주인공도 아닐 뿐더러 비중 있는 조연 조차도 아닙니다. 드래곤볼의 최전성기였던 나메크성 에피소드까지도 등장조차 하지 않았고 인조인간 편을 지나 셀 편의 막바지에 가서야 겨우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완전 비호감의 찌질한 악역이죠. 허풍쟁이에 착각대마왕이고 게다가 못생겼습니다. 어느 누가 이런 캐릭터를 사랑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런 비호감 첫 등장과는 전혀 다른 엄청난 반전을 이 캐릭터는 결국 이루어 냅니다. 마인부우 편에서 그 반전 매력이 확실하게 완성이 되지만 사실 셀 편에서도 어느 정도 싹수를 보여주었죠.


우주급의 파괴력을 자랑하는 드래곤볼의 주요 캐릭터들과 비교해서 초라해 보이는 것이지, 미스터 사탄이 원래부터 대단한 인물인 건 사실입니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셀 게임에 당당히 참가한 것도 격투기 챔피언이라는 확실한 실력이 있기 때문이고(물론 셀과 비교하면 파리만도 못한 실력이지만), 언론을 대동하는 등 명성과 그에 따른 이득을 확실히 챙기려는 목적이 있긴 했어도 일단은 지구를 구하기 위해 싸움에 나선 것도 사실이죠. 물론 딱히 자기 목숨이 위험하다는 생각은 안 했을 겁니다. 셀이 보여준 파괴력을 전부 속임수로 착각하고 있었고 자기 실력으로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결국 진실을 금방 알게 되었고 그는 보통 사람이라면 당연히 품게 될 공포를 느끼게 됩니다. 그럼에도 그 공포를 숨기고 카메라 앞에서 계속 허세를 부리죠. 

하지만 점점 셀과 Z전사의 싸움이 격렬해지고 미스터 사탄도 결국은 허세를 유지하지 못합니다. 대놓고 겁에 질려 멘붕 상태가 되어버리죠. 하지만 그렇게 겁에 질린 상황에서도 결국 그는 셀과의 승리에서 결정적이라고 할만한 활약을 해냅니다. 물론 결과가 엄청나긴 했어도(손오반의 각성) 그가 한 행동 자체가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닙니다. 인조인간 16호의 머리를 멀리서 손오반을 향해 던진 것 뿐이니까요. 때문에 이 정도 활약만으로 그의 이미지가 크게 반전되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셀이 죽고 Z전사들이 떠난 후 거짓말로 셀을 처치한 공을 가로챔으로써 더욱 비호감 캐릭터로 이미지가 박혀 버렸죠. 


사실 미스터 사탄이 최후반부에 극적인 반전을 이루어낼 인물로 처음부터 설계된 캐릭터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만화가 그렇지만 특히나 점프에 연재하는 소년 만화라면 개그 요소가 필수적으로 필요한 법이고 셀 편 즈음에 그 역할을 해줄 캐릭터가 없어서 급히 투입된 느낌이 강하거든요. 확실히 셀 편에서 미스터 사탄은 개그 캐릭터로서 자기 몫을 해냈고 마인부우 편 초반의 무술대회 에피소드에서는 드래곤볼 연재 사상 최고의 개그 장면들을 여러 개 만들어 냅니다. 그러다가 마인부우를 잡겠다고 허세를 부리며 다시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얘가 또 무슨 웃긴 장면을 보여주려고 이러나...’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하지만 그 때부터 놀라운 반전이 시작되죠.

물론 사탄이 마인부우와의 첫 만남에서 바로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전혀 뜻밖이 아닌 당연한 전개입니다. 다만 그 방법은 조금 신기하고 흥미롭습니다. 철저한 비굴함으로 마인부우의 하인을 자처하며 그의 뒷바라지를 해주는 방식으로 목숨을 건집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방법으로 목숨을 건진 것 뿐 아니라 마인부우의 측근이 되어 그와 우호 관계를 쌓았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마인부우는 그 시점까지는 악당이었고 사탄이 하는 짓이라곤 악당의 꾸붕 노릇을 하는 것 뿐이었죠. 그런데 여기서 정말 충격적인 반전이 일어납니다. 마인부우의 하인이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탄은 마인부우가 악행을 더 이상 하지 못하도록 설득하는데 성공해 버립니다. 내내 악당을 힘으로 쓰러뜨려왔던 드래곤볼에서 가장 충격적인 내용 전개였죠.


이로써 미스터 사탄은 ‘힘으로 악을 제압한다’는 드래곤볼의(그리고 소년 배틀물 만화의) 기본 전개 원칙의 완벽한 안티테제로서 우뚝 서 버립니다. 그의 이런 활약은 Z전사의 핵심 인물 중 하나이자 과거에 신이었던 피콜로에게 공식적으로 인정받기에 이릅니다. ‘자랑스러운 세계 챔피언’이라고. 여기서 세계 챔피언이란 격투기 대회 우승자를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진짜 세계를 구한 영웅이라는 의미죠. 과거에 손오공이 이룩했던 업적과 완전히 동일한 것입니다. 

물론 이 뒤로 마인부우 편은 좀 더 전개가 됩니다. 하지만 이 후의 전개는 사탄이 얼마나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냈는지를 반복해서 확인시켜주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사탄은 드래곤볼 세계에서 정말 놀랍고 유니크한 존재가 되어버리죠. 모든 지구인을 다 죽여버리는 마인부우가 도무지 사탄만은 죽이지 못합니다. 이 만화 최후의 결전에서 그 많은 Z전사들 중 손오공, 베지터와 함께 하는 마지막 전사는 미스터 사탄이었습니다. 아무 힘도 없는 그가 최후의 결전에서 종횡무진 활약 합니다. 물론 그는 절대 싸움을 하지 않습니다. 주먹을 휘두르거나 자기 나름의 싸움 기술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마인부우에게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하기 때문에 그가 하는 행동은 결코 싸움도, 폭력도 아닙니다. 소년 배틀만화의 최후의 결전에서 폭력 없이 가장 빛나는 존재로 우뚝 서버린 것입니다. 손오공은 마인부우에게 최후의 일격을 날리며 사탄의 이름을 외칩니다. “사탄! 너야말로 진정한 세계의 구세주다!”


그렇습니다. 미스터 사탄은 세계의 구세주이자 드래곤볼이라는 만화 자체의 구세주이며 드래곤볼이 만화 업계에 남긴 영향력을 생각해보면 만화라는 매체 자체의 구세주이기도 할 것입니다. 물론 미스터 사탄이 등장하기 전에도 드래곤볼은 이미 역대급 명작 만화였고 미스터 사탄 없이 셀 편과 마인부우 편이 전개되었더라도 드래곤볼의 위상은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드래곤볼이라는 만화가 이렇게 위대한 작품으로 훌륭하게 완성될 수 있었던 데 미스터 사탄이라는 캐릭터가 가지는 역할과 의미가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사실 어떤 면에서 미스터 사탄은 굉장히 기능적인 캐릭터이기 때문에 마인부우 편의 활약 이후에 만화 내용을 더 전개시키더라도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앞에서 드래곤볼 파생 작품들에서 보여주는 미스터 사탄의 모습이 실망스럽다고 언급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다지 온당한 평가는 아닌 것 같습니다. 미스터 사탄의 캐릭터성은 드래곤볼 본편에서 완성이 되었고 그 완벽함은 더 이상 뭔가를 빼지도 보태지도 못할 정도라서 이후 다른 작품에서 등장하는 그의 모습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죠.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드래곤볼이라는 작품 자체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드래곤볼 슈퍼’는 무지막지한 대박을 터트리고 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되는 콘텐츠라면 만들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드래곤볼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만화 중 하나입니다. 주인공 손오공은 가장 유명한 캐릭터 중 하나이고 드래곤볼 관련 산업은 지금도 엄청난 부가가치들을 창출해낼 만큼 압도적인 문화 콘텐츠로서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런 위대한 작품에서, 주인공도 아니고 비중 있는 조연도 아니었지만 너무도 중요하고 강렬한 역할을 해낸 캐릭터가 바로 미스터 사탄입니다. 그야말로 만화사에 다시 없을 불세출의 캐릭터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대서즐라

대중문화와 서브컬처를 즐기는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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