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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건: 매버릭 – 사실, 이런 게 좋은 거야. 우리 모두 알고 있었잖아.

by 대서즐라 2022.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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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마어마한 찬사가 쏟아지고 있는 ‘탑건: 매버릭’에 대해 제가 특별하게 덧붙일 수 있는 말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에 대해 모두 같은 얘기를 하고 있고 저 역시 그대로 따라 할 뿐이죠. 그래서 이 영화는 우리에게 영화적 즐거움이라는 ‘진리’를 보여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진리는 늘 그 자리에 있고, 언제나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수년간, 어쩌면 수십 년간 우리는 스스로 눈을 가리고 그것이 보이지 않는 척, 알지 못하는 척 행동해왔죠.

 

탑건-영화-포스터

 

사실 그 동안은 톰 크루즈가 걸어온 우직한 길에 대중들은 그다지 적극적으로 호응해주지 않았습니다. 슈퍼스타였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브래드 피트가 다른 길로 방향을 틀어 오스카 트로피를 들어 올릴 때 언제나 가장 상업적이고, 나쁘게 말해 광대 같은 슈퍼스타의 길에 남아 우직하게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것이 톰 크루즈입니다. 하지만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등 IP 중심의 콘텐츠들은 톰 크루즈 같은 슈퍼스타가 아닌 무명이나 신인 위주의 배우들을 캐스팅하며 거대한 상업 프랜차이즈를 쌓아 올렸고 톰 크루즈의 영화들은 언제나 한끝 밀리는 흥행력으로 더 이상 상업 영화계의 ‘주역’이 아닌 슈퍼스타의 씁쓸한 현실을 보여줄 뿐이었습니다.

 

[배우 이야기] 톰 크루즈 Tom Cruise

 

[배우 이야기] 톰 크루즈 Tom Cruise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톰 크루즈(Tom Cruise)를 ‘마지막 슈퍼스타’라고 칭하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슈퍼스타’라는 표현 자체는 상당히 구식이라는 느낌인데, 최근 60이 다 된 나이에 액션

dszl.tistory.com

 

하지만 ‘탑건: 매버릭’이 결국 일을 냈습니다. 아직 2022년이 절반만 지났을 뿐이지만 현재까지 개봉한 영화 중 한해 최고 흥행작으로 우뚝 섰죠. 마블의 닥터 스트레인지를 꺾었고 하반기에 토르와 블랙 팬서가 나올 예정이지만 이 영화들도 탑건에 무릎을 꿇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연말에 개봉할 아바타 2는 탑건의 흥행을 뛰어넘을 테지만 일단 현재 상업 영화계의 정점에 있는 마블 영화들을 꺾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쥬라기 월드와 배트맨까지 꺾었습니다.

 

사실상 톰 크루즈가 2022년 세계 영화계의 승자이자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톰 크루즈는 현재 자신의 영화 인생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것도 36년 전에 나온 상업 영화의 골동품인 ‘탑건’의 후속작으로 이런 일을 해낸 것입니다.

 

탑건-매버릭-톰-크루즈

 

앞 문단에서 저는 ‘골동품’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 말은 영화에서도 최후의 전투의 주역이 된 F-14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등장합니다. 사실 대중들이 언제나 가장 원하던 건 이런 것인데 언제부턴가 그저 멋지고, 액션이 빵빵한 영화들을 낡은 것으로 취급하는 분위기가 영화계에서 생겨나기 시작했죠. 이런 현상은 몇 가지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가장 큰 원인은 CG 기술의 발전이죠. CG 스펙터클은 관객들에게 새로운 차원의 시각적 쾌감을 선사했지만 아날로그 액션 영화들이 보여주던 묵직한 매력을 상실해버린 느낌도 들었습니다. 최근 마블 영화들을 보면 느낄 수 있듯이 이런 점들은 개선이 되기는 커녕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업 영화의 텍스트가 점점 심오하고 진중해진 것도 원인 중 하나입니다.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이나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같은 영화들이 일종의 이정표 역할을 했죠. 당시에는 상업 영화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사실 이런 변화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고, 저를 비롯한 대부분의 영화팬들은 엑스맨과 스파이더맨에 열광했습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알게 모르게 우리가 잃는 것도 있다는 사실은 망각한 채로요. 정확히는 애써 보려 하지 않았죠. 변화의 흐름에 저항한다는 건 언제나 피곤한 일이거든요. 우리는 그저 일개 관객이기에.

 

생각해보면 저는 속으로는 내내 불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냥 끝내주게 멋있고, 액션 빵빵한 영화들을 보고 싶은데, 어쩌면 그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는 것인데 왜 요즘 시대의 상업 영화들은 너무 많은 것을 관객에게 떠먹이려고 하는 걸까, 라는 불만이 언제나 가슴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어요. ‘탑건: 매버릭’에 열광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걸 보면 저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런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봐야겠죠.

 

탑건-매버릭-영화-액션-장면

 

‘탑건: 매버릭’은 36년 전에 나온 ‘탑건’을 거의 판박이처럼 닮은 내용과 스타일로 만들어낸 영화입니다. 36년 전에 탑건을 만든 감독은 지금은 고인이 된 ‘토니 스콧’입니다. 형인 리들리 스콧과 함께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비주얼리스트로 꼽혔던 감독으로, 특히 CF의 한 장면 같은 폼나는 영상미가 특기인 감독입니다. ‘폼생폼사’가 토니 스콧 영화의 중요한 정체성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토니 스콧의 방향성은 마이클 베이나 잭 스나이더 같은 감독에게 계승되었습니다. 물론 이 감독들은 토니 스콧과는 차별화되는 자신만의 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이클 베이와 잭 스나이더 모두 할리우드에서 나름의 입지를 구축한 감독이지만, 마냥 잘 나가고 승승장구했다고 보기에는 언제나 엇갈리는 평가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온 감독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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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흐를수록 ‘폼생폼사’라는 방향성으로는 좋은 영화를 만들기가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폼생폼사’ 영화의 가장 큰 약점은 무게감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스토리는 단순하고, 감정선은 직선적입니다. 아주 신경 써서 폼나게 연출한 장면이 흐름을 끊어먹는다고 욕을 먹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이클 베이와 잭 스나이더가 그저 ‘시대의 흐름’ 핑계를 댈 수도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영화를 만든 적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굉장히 불리한 포지션이었죠. 그렇게 수십년간, 톰 크루즈는 광대였고 폼생폼사 영화들은 욕만 먹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싸움에서 중요한 건 포지션입니다. 차분히 모든 상황이 맞아떨어지길 기다리면, 유리한 포지션을 잡고 한방을 먹일 수 있는 기회가 옵니다. 그렇게 ‘탑건: 매버릭’이 개봉했고, 슈퍼스타 톰 크루즈는 이 훌륭한 폼생폼사 영화를 가지고 2022년 영화계의 위대한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매버릭과-영건들

 

물론 이건 그저 하나의 승리일 뿐이에요. 탑건: 매버릭이 대박이 터졌다고 해서 할리우드 상업 영화계에 큰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날 거였다면 라스트 어쩌구 하는 이상한 똥덩어리 때문에 스타워즈 프랜차이즈가 작살나버렸을 때 진작 일어났겠죠.

 

어쩌면 탑건: 매버릭은 톰 크루즈의 슈퍼스타 인생에서 유일하게 허용된 승리의 기회였을지 모릅니다. 60이 다 된 나이에(영화가 개봉한 이후 현재는 60세가 되었고요) 30년을 기다린 궁극의 폼생폼사 영화의 속편으로, 오직 이러한 방식과 포지션으로만 이룰 수 있는 승리의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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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말했듯이 이런 스타일의 폼생폼사 영화가 가지는 가장 큰 약점은 무게감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탑건: 매버릭을 본 사람들은 모두 공감할 수 있겠지만 이 영화는 최근 나온 어떤 할리우드 상업 영화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묵직한 무게감으로 꽉 채워져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화면 가득 힘 있게 채워진 톰 크루즈의 얼굴 자체가 그렇습니다. 그가 영화계에서 슈퍼스타로 우직하게 보내온 세월과, 매버릭이 별도 달지 못한 채 수십 년 전투기 파일럿으로 군 복무를 해온 세월이 그렇습니다. 제니퍼 코넬리, 발 킬머, 에드 해리스 등 8~90년대를 풍미한 오래된 배우들의 존재감이 그렇습니다. 그런 오래된 배우, 캐릭터들과 함께 새로운 시대의 주역으로 당차게 어울리는 영건들의 든든함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액션과 사운드. 몇 배의 중력을 버티는 파일럿의 극한 상황을 간접적으로나마 극장에서 관객이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리얼하게 완성된 아날로그 액션 영상과 사운드는 이 영화가 가진 가장 묵직한 무게감의 실체입니다. 이런 꽉 찬 무게감이 뒷받침이 되었을 때, 영화가 멋있어 보이려고 있는대로 폼을 잡는 그 모든 순간들이 순수하게 영화적 감동과 낭만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절대 헬맷을 쓰지 않고 달리는(폼생폼사 그 자체인) 오토바이 장면 같은 데서도 어떤 얄팍함도 가벼움도 느낄 수가 없죠.

 

페니-제니퍼-코넬리

 

그야말로 영화를 보며 극장에 앉아 있는 모든 시간을 순수한 행복과 즐거움으로 채워주는 영화. 이런 영화가 나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마지막 슈퍼스타인 톰 크루즈도 이제 60세를 넘겼습니다. 어쩌면 탑건: 매버릭의 대성공은 순수한 낭만과 폼생폼사 영화의 마지막 불꽃으로 남게 될지도 모릅니다.

 

앞에서 저는 탑건: 매버릭이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들 현재 상업 영화계의 흐름에 변화를 만들어내지는 못할 거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바라고는 있습니다. 2022년 톰 크루즈와 탑건: 매버릭의 기적 같은 승리 앞에서, 패한 쪽의 사람들이 무언가를 느꼈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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