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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 – 박찬욱의 대중성은 미결 사건

by 대서즐라 2022.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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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이 칸 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감독상을 받으며 화제가 되었던 신작 ‘헤어질 결심’이 국내 개봉 후 흥행에서 다소 부진한 상황이 최근 영화계에서 이슈가 되는 것 같더군요. 당장 영화를 만든 제작진 측에서 흥미로운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무대인사 후기를 보니 출연 배우인 김신영이 ‘이 영화는 상업 영화입니다. 많이 입소문 내주세요.’ 라고 말했다고 하고요. 감독인 박찬욱 또한 대중적인 영화라고 하며 이 영화의 대중적인 재미를 어필했습니다.

 

영화-헤어질-결심-포스터

 

그런데 저는 포스팅의 제목으로 썼듯이 이 영화가 어필하고 있는 대중성은 미결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확히는 박찬욱의 대중성이겠죠.

 

얼마 전에 범죄도시 2가 천만 관객을 돌파한 스무 번째 한국 영화가 되었습니다. 스무 편이나 되는 천만 관객 영화가 나온 한국 영화계에서 필모그래피의 최고 흥행작이 600만 명을 넘지 못하는 감독이 대중적인 감독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박찬욱이 홍상수나 김기덕처럼 영화제에서 상은 받아도 흥행은 전혀 안 되는 영화들만 감독한 건 아니죠.

 

그의 최고 흥행작인 공동경비구역 JSA는 579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당시 기준 초대박 흥행을 했고 올드보이나 친절한 금자씨 같은 잔혹한 19금 영화들도 모두 300만 이상의 흥행을 했습니다. 아가씨는 19금 ‘야한 영화’로 분류될만한 영화들 중에서 역대 최고 성적인 428만 명의 흥행을 했고요.

 

한국 박스오피스 19금 야한 영화 역대 흥행 순위 20

 

한국 박스오피스 19금 야한 영화 역대 흥행 순위 20

최근에 극장에서 19금 ‘야한 영화’인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보고 갈수록 이런 영화를 극장에서 보기는 어려워질 거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극장이 야한 영화를 보기에 그다지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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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그의 영화는 세계 영화제에서 엄청나게 많은 상을 받았습니다. 결국 헤어질 결심으로는 박찬욱 본인이 처음으로 칸 영화제 감독상까지 받았고요. 사실상 봉준호와 함께 대한민국 영화계의 투톱 감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필모에 천만 관객 영화를 1~2편씩 보유하고 있는 한국 영화계의 대표적인 상업 영화 감독들과 박찬욱의 성향은 상당히 다릅니다. 이런 감독들이 말하는 대중성에 익숙해진 관객들은 박찬욱이 ‘헤어질 결심’에서 추구하려고 한 대중성이 꽤나 낯설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박찬욱-칸영화제-감독상-수상

 

저는 이번 박찬욱의 신작에 대해 생각을 하면서, 처음에는 단순하게 제목만 봐도 대중적인 영화가 아니잖아!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헤어질 결심’이라는 제목이 정말 상업영화스럽지 않다고 느꼈거든요. 그런데 곰곰 다시 생각해보니 사실은 이 제목도 충분히 대중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영화 포스터에 박힌 ‘헤어질 결심’이라는 텍스트 위에 레이첼 맥아덤스 같은 배우가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면 아주 흥미진진한 로맨스 영화의 제목으로 느껴졌을 거예요. 헤어지는 상황을 ‘결심’까지 한다고 하니 뭔가 이별의 상황을 유쾌하게 풀어낸 로맨틱 코미디 같은 느낌도 나죠.

 

네, ‘헤어질 결심’은 분명히 로맨스 영화에 어울리는 제목입니다. 그리고 로맨스는 가장 대중적인 영화 장르 중 하나고요. 유쾌한 로맨틱 코미디는 아니지만 ‘헤어질 결심’은 아주 잘 만든 로맨스 영화가 맞고, 코미디도 있습니다. 사실 영화를 보다 보면 유쾌하게 느껴지는 순간들도 꽤 있어요.

 

하지만 온전하게 대중적인 ‘유쾌한 로맨틱 코미디’의 느낌에는 도달하지 못하는 영화입니다. 그래서 저는 미결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네요. 이 영화에서 ‘미결 사건’이 중요한 키워드이기에 일부러 쓴 표현이긴 하지만요.

 

이 영화가 처음 공개되고 가장 크게 화제가 되었던 점은 상영 등급이 19금이 아니고, 야하거나 잔인한 장면도 없다는 사실이었죠. 박찬욱이 뭔가 필요 이상으로 항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영화는 대중 영화다’라는 호소가 이런 부분에서부터 잘 와닿기는 합니다. 이 영화의 비중 있는 조연으로 코미디언인 김신영을 캐스팅한 것도 비슷한 취지의 선택으로 읽히고요.

 

김신영

 

김신영을 비롯해서 영화 곳곳에 박찬욱의 익살스러움이 드러나는 요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진짜로 대중들에게 익숙한 대중성에는 이르지 못하는 미결로 남고 맙니다.

 

박찬욱 영화에 김신영이 나온다고 해서 이걸 대중적인 요소라고 느낄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관객들은 뭔가 심상치 않다, 독특한 캐스팅이다 정도로 받아들일 겁니다. 최근에 화제가 되고 있는 19금 일본 스릴러 영화인 가타야마 신조의 ‘실종’에 코믹한 이미지로 유명한 배우 사토 지로가 출연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에요. 사토 지로가 나온다고 해서 이 영화가 웃길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외에도 코미디언이나 코미디 연기로 대표되던 배우가 심각한 분위기의 영화에서 범상치 않은 연기를 보여준 적은 아주 많습니다. 폭스 캐쳐의 스티브 카렐이 대표적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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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박찬욱 나름의 대중적이고 익살스러운 요소들이 관객에게 평범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거예요. 엄밀히 말해 이건 감독의 ‘기존 이미지’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결국 영화 외적인 요소가 작용한 결과이니 조금은 억울할 만도 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대중 영화다, 라는 호소를 감독도 배우도 뒤늦게나마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영화 자체도 말했듯이 미결의 대중성을 보여줍니다. 저는 이 영화가 굉장히 잘 만든 로맨스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마음의 감흥은 약한 편이었어요. 어찌 보면 굉장히 슬픈 영화이기도 해서, 영화를 보고 꽤 심하게 먹먹한 감정이 요동쳐야 했거든요. 물론 이 영화를 최고의 영화로 꼽는 사람도 많고 그런 사람들은 영화의 엔딩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감흥을 느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단 저는 안 그랬습니다. 내용만 놓고 보면 뭔가 빡 하고 와야 하는데... 그것도 탕웨이가 연기하고 표현한 ‘서래’의 캐릭터와 감정에 충분히 감탄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만조의 파도처럼 크고 거친 뭔가가 확 하고 와야하는데 말이죠. 없었어요.

 

탕웨이와-박해일

 

그래서 저에게 이 영화는 미결입니다. 저는 이 영화의 내용이 좋습니다. 캐릭터도 좋습니다. 다시 보고 싶을 만큼 마음에 들었던 장면과 연출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좋은 영화를 봤을 때 느꼈던 그 압도적인 감흥이 저에게 도달하지는 못했습니다. 도대체 어디 간 거지? 이건, 미결이라고 밖에 말할 수가 없죠.

 

그런데 이 영화가 19금이 아니고, 야하지도 잔인하지도 않다고 했지만 그런 요소들이 전혀 없는 영화는 아닙니다. 박해일의 등판만 보여주는 수준이었지만 베드신도 있고, 범인이 형사를 흉기로 여러 차례 찌르는 장면도 있죠. 물론 그 흉기란 게 흔히 19금 조폭 영화에서 나오는 살벌한 회칼이 아니라 미용실 가위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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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박찬욱은 이런 19금스러운 요소를 잘 활용해서 대중적인 코드를 효과적으로 공략해온 감독이에요. 2000년대 초반 이후로 한국 영화가 해외에서 유명해지기 시작할 때 해외의 한국 영화 마니아들은 한국 영화의 거침없고 생생한 표현들에 매료되었습니다. 그 대표 주자가 올드보이를 만든 박찬욱이었고요. 공동경비구역 JSA도 굉장히 대중적인 영화인데, 하이라이트 시퀀스가 필요 이상으로 잔인합니다. 그런 잔인함과 생생한 표현이 한국 영화로서의 대중성을 오히려 올려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마동석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듯이 회칼로 배빵을 수십 번 놓는 장면이 나오는 영화가 한국 박스오피스 역대 1위에 오른 적도 있습니다.(2001년에 개봉한 영화 ‘친구’) 홍상수나 김기덕과는 달리 박찬욱의 영화가 어느 정도 흥행이 잘 되었던 이유도 원래부터 한국 관객들에게 먹힐만한 대중성이 그의 작품들에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배우 이야기] 마동석 Don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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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작 19금이 아닌 ‘헤어질 결심’의 대중성은 관객에게 그다지 먹히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미결’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이게 완전히 먹히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아슬아슬하게 대박 흥행을 할만한 반응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을 뿐 사실 대부분의 관객은 재미있다고 느낄만한 영화입니다. 범죄도시 2가 천만 관객을 동원하긴 했지만 6월 주요 기대작들이 줄줄이 흥행에서 고배를 마신 것만 봐도 아직은 코로나 시국이 극장가에서 완전히 종식되지는 않았고, 기후, 경제, 국제 정치의 위기 등 인류가 멸망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의 혼란스러운 시대적 상황이 이 영화의 흥행에도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이런 시대에는 관객들은 되도록이면 쉬운 영화만을 찾게 되니까요. 헤어질 결심의 흥행 부진이 순전히 영화의 탓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겁니다.

 

서래와-해준의-데이트

 

이런 외적인 악재는 사실 19금의 자극적인 이슈가 뚫어내기 쉽습니다. 헤어질 결심이 19금 영화였고 ‘박해일과 탕웨이의 파격적인 정사’ 같은 자극적인 이슈 요소가 있었다면 지금보다는 흥행 상황이 나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그런 종류의 자극성은 이 영화가 추구하는 방향성과는 확실히 맞지 않습니다. 영화의 완성도를 위해서 분명히 옳은 선택을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내에서 큰 흥행이 어려운 상황이긴 하지만 이 결과로 박찬욱 감독이나 배우들에게 큰 타격이 있지는 않을 거예요. 이미 해외 판매 실적도 꽤 있는 걸로 알고 있고 티켓값이 비싼 극장 흥행에서는 고전하더라도 OTT로 풀리면 나름 인기를 끌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수익적인 면뿐 아니라 칸 영화제 감독상을 시작으로 여러 영화제와 시상식에서 수상 실적도 많이 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저는 2022년 연말과 2023년 연초까지 이어지는 미국 어워드 시즌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헤어질 결심은 미국에서 10월에 개봉할 예정인데, 아마 흥행은 어려울 테지만 평론가들은 좋은 점수를 줄 테고, 내년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후보에는 충분히 도전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박찬욱이 감독상 후보에, 탕웨이가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것도 기대해볼 수 있겠죠.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탕웨이의 캐릭터와 연기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아카데미나 다른 큰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타는 모습을 꼭 보고 싶습니다. 수상까지는 욕심이더라도 아카데미 레드카펫에 서는 모습 정도는 보고 싶어요.

 

여배우-탕웨이

 

헤어질 결심은 로맨스 영화로서 충분히 재미있고 잘 만든 작품입니다. 저는 내내 저의 감흥이 미결이라고 했지만 이 영화를 2~3번 더 보면 미결이 아닌 온전한 만족감에 도달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요즘 영화 티켓값이 너무 비싸서... 극장에 또 갈 수는 없고 이 영화를 다시 보려면 더 기다려야 할 테지만요.

 

이 포스팅에서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건 탕웨이가 역시 너무 훌륭하고 매력적인 여배우라는 것입니다. 제 예상과는 달리 탕웨이가 한국인 감독과 결혼을 했음에도 아직 한국어를 전혀 못해서(역시 한국어와 중국어의 어순이나 구조가 너무 달라서 30세 이상의 나이에 새로 배우는 게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이 영화에서 한국어 대사를 그냥 외워서 연기를 했는데, 탕웨이가 앞으로 한국 작품 위주로 활동할 수 있을지 조금 걱정이 되긴 하네요. 요즘 국제 정세도 그렇고 중국 문화 예술계 상황도 말이 아니라서 탕웨이가 계속 한국 작품 위주로만 활동해주면 좋겠는데요. 통째로 외우는 방식의 어색한 한국어 연기로는 헤어질 결심처럼 한국에 사는 중국인 캐릭터 연기밖에 할 수가 없어 활동에 분명히 한계가 있을 테지만... 그렇다고 그 한계가 지나치게 좁은 건 아니라서 어떻게든 다양한 한국 작품들에 출연하려면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남편인 김태용 감독의 ‘원더랜드’에도 출연해서 하반기에 개봉할 예정이고, 앞으로 탕웨이가 출연하는 한국 작품들을 더 많이 계속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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