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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노 타임 투 다이 – 액션 블록버스터 장르의 고오급 레스토랑

by 대서즐라 2021.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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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컬처나 인터넷 밈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제가 포스팅 제목에서 쓴 ‘고오급 레스토랑’이라는 표현이 좋은 의미가 아님을 아실 겁니다. 극장에서 ‘007 노 타임 투 다이’를 보고 나서, 뭔가 까는 내용의 리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고 얼른 생각난 포스팅의 제목이 고오급 레스토랑입니다. 확실히 제가 이 영화에 품은 불만을 적절히 반영하고 있는 표현이에요.

 

노 타임 투 다이 포스터

 

(이 글에는 007 노 타임 투 다이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오급 레스토랑이라는 표현에는 그 대상에 따라붙는 비교대상을 가리키는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자극적인 분식집’이죠. 액션 블록버스터 장르에서 007 시리즈가 고오급 레스토랑이라면, 자극적인 분식집이 되는 영화는 뭘까요? 저는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와 빈 디젤의 분노의 질주 시리즈라고 생각합니다.

 

007 시리즈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분노의 질주 시리즈 모두 매 편의 제작비가 2억 불을 오가는 초대형 액션 블록버스터입니다. 시원시원하고 거대한 액션을 보고 스트레스를 풀고 싶어 하는 관객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영화들이죠. 하지만 모두가 아는 대로 이 세 시리즈는 서로 매우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리즈가 세 개니까 고오급 레스토랑과 자극적인 분식집으로 이분화하는 분류도 적합하지는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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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체로 미션 임파서블과 분노의 질주가 007 시리즈에 비해 좀 더 가볍게 즐길만한 재미를 추구하는 건 사실입니다. 가장 가벼운 건 분노의 질주이고 미션 임파서블은 007과 분노의 질주의 중간 즈음에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가벼운 오락 영화로서의 재미도 좋기는 하지만 007의 고급스러운 분위기도 꽤 매력적입니다. 언제나 다양성은 중요한 거니까요. 현시대를 대표하는 액션 블록버스터 프랜차이즈 세 작품이 모두 비슷비슷한 게 아니라 각각 서로 다른 특징과 장점을 가지고 있으니 관객들이 더 즐겁게 이 영화들을 즐길 수 있는 거겠죠?

 

다만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이 시리즈가 이어질수록 점점 재미 면에서 아쉬워지고 있는 건 사실이에요. 최근 007 영화들을 보면 고오급스러운 분위기에 심취했지만 정작 중요한 음식 맛은 별로였던 레스토랑을 방문한 기분입니다. 스카이폴까지는 그래도 괜찮았어요. 하지만 스펙터와 노 타임 투 다이는 정말로...

 

제임스 본드

 

한 마디로, 재미가 없습니다. 스펙터와 노 타임 투 다이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재미가 없었는지는 우열을 가리기가 애매합니다. 굳이 가리는 것도 무의미하고요.

 

그런데 노 타임 투 다이가 스펙터보다 상영시간이 20분 정도 더 깁니다. 둘 다 비슷하게 재미없는데 그 재미없는 시간이 노 타임 투 다이가 스펙터보다 20분 더 길었으니 이런 식으로 비교하면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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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타임 투 다이가 재미없었던 이유를 저는 세 가지로 요약합니다. 너무 길고, 빌런이 매력이 없으며, 액션이 시시하다. 사실 첫 번째 이유는 두 번째와 세 번째가 괜찮을 경우는 별로 문제가 안 됩니다. 하지만 노 타임 투 다이처럼 두 번째와 세 번째 이유가 크게 작용하면 첫 번째 이유는 정말 치명적인 단점이 되어 버리죠.

 

제가 가장 불만이었던 건 역시 액션입니다. 이 이유는 제가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 작품 중에서 첫 작품인 ‘카지노 로얄’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와도 연결됩니다. 카지노 로얄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007 영화임과 동시에 제가 본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 중에서 최고 수준의 재미와 만족을 제공해준 영화이기도 합니다. 하나하나의 액션 장면들이 모두 엄청난 긴장과 서스펜스로 채워져 있고 관객의 아드레날린을 분출되게 만듭니다. 카지노 로얄은 정말 최고의 액션 영화입니다. 그리고 007 영화다운 고급스러움도 절정이었고요.(에바 그린의 베스퍼- 이 캐릭터 하나로 고급스러움은 끝판왕 수준입니다)

 

베스퍼와 제임스 본드

 

그 반면 노 타임 투 다이의 액션은 도대체가... 일단 주요 빌런 캐릭터들 자체가 너무 좁밥들로밖에 안보입니다. 라미 말렉이 연기한 사핀은 그렇다 쳐도 빌리 매그너슨이 연기한 로건 애시는 진짜 최악이었죠. 빌런들이 너무 좁밥들로 보이다 보니 이런 애들이랑 제임스 본드가 죽기 살기로 싸우는 모습도 뭔가 불만족스럽고 그렇다고 간단히 제압하는 건 더 어이없고 하여간 진퇴양난입니다.

 

거기에 독수리 오형제의 갤랙터 부하들 마냥 아주 일부러 빗맞추는 수준으로 엉터리 총질을 해대는 쫄따구 잡몹들은 더 어이가 없고요. 제임스 본드는 얘네들이 총 쏘는 건 아예 피할 생각도 안 합니다. 독수리 오형제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에요. 이 영화의 거의 모든 액션 장면에서 긴장감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도 그나마 괜찮았던 건 초반 카체이싱과 쿠바 장면입니다. 특히 쿠바에서 만난 미녀 CIA 요원 팔로마의 액션 장면은 이 영화의 최고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일 뿐 아니라 역대 모든 액션 영화를 통틀어도 여성 첩보원 캐릭터가 이렇게 멋지고 매력적으로 나오는 액션 시퀀스는 본 적이 없습니다. 사실 초반과 팔로마가 나오는 부분까지는 영화가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중반부터 그렇게 지루해질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 했죠.

 

팔로마

 

007의 후임 캐릭터인 노미는 왜 나왔는지도 모르겠어요. 액션이고 뭐고 제대로 보여준 게 없습니다. 그리고 메인 빌런인 사핀도 캐릭터와 드라마까지 모두 별로입니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마지막 007 영화로서 그를 퇴장시키는 방식도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습니다. 순수하게 비장함과 아련함만이 느껴져야 하는 장면에서 ‘엥? 진짜 이렇게 보내는 거야?’ 라는 찝찝함이 계속 남더라고요.

 

다만 제임스 본드의 마지막 연인인 마들렌 스완과의 관계성은 매우 좋았습니다. 이 내용은 전작인 스펙터부터 이어지는데, 의외의 순간에 본드의 딸을 등장시킨 건 정말 생각지도 못한 한 방이었습니다. 액션 블록버스터 장르라도 대부분 남자 주인공은 엄청나게 매력적이고 마찬가지로 엄청 매력적인 여주인공과의 로맨스가 전체 스토리에서 은근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 로맨스 스토리가 완성도가 높으면 작품 전체의 완성도까지 어느 정도는 캐리하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스펙터와 노 타임 투 다이까지 이어진 본드와 마들렌 스완의 로맨스 스토리는 분명 높은 점수를 줄 만합니다.

 

마들렌 스완

 

다만 저는 이런 비슷한 내용이라면 미션 임파서블의 이단 헌트와 일사 파우스트의 관계성을 더 좋아합니다. 물론 배우는 레베카 퍼거슨보다 레아 레이두를 좀 더 좋아하지만, 뭔가 캐릭터 자체가 일사 파우스트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이번 작품에서 기존 007 시리즈의 클리셰를 탈피하려는 노력이 많이 보였습니다. 제임스 본드가 죽는 엔딩부터가 뭐 아주 상징적인 클리셰 탈피의 사례로 남을 만합니다. 그래도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클리셰 탈피는 역시 팔로마입니다.

 

아나 데 아르마스가 연기한 팔로마는 기존 007 영화의 클리셰 대로라면 ‘서브 본드걸’ 캐릭터로서 제임스 본드와 섹스한 후 나중에 빌런에게 비참한 꼴로 살해당하는 역할입니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제임스 본드와 섹스는 물론 키스도 안 했고 썸 타는 분위기조차 없었죠. 그리고 전혀 험한 꼴도 당하지 않고 깔끔하게 임무 완료 후 퇴장했고요. 팔로마가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 속에서 아슬아슬한 드레스를 입은 채 데굴데굴 굴러다니면서도 끝내 어떤 험한 꼴도 당하지 않고 무대 뒤로 깔끔하게 사라지는 장면에서 제가 얼마나 안도의 숨을 내쉬었는지 모릅니다. 이런 식의 클리셰 탈피는 아주 좋습니다.

 

아나 데 아르미스

 

아무튼 팔로마 장면을 제외하면 대체로 지루한 과정 끝에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는 아름다운 로맨스와 가족애를 남기고 죽음이라는 형태로 최종적으로 퇴장했습니다. 카지노 로얄이라는 걸작을 시작으로 다섯 편의 여정을 쌓아왔는데 갈수록 아쉬워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니엘 크레이그는 정말 멋진 제임스 본드였습니다.

 

다니엘 크레이그

 

사실 저는 피어스 브로스넌의 제임스 본드부터 본 세대라서 카지노 로얄을 처음 봤을 때 새로운 제임스 본드가 너무 낯설기는 했는데 영화가 너무 걸작이라 금방 적응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다니엘 크레이그의 바통을 이어받을 새로운 제임스 본드도 카지노 로얄 수준의 걸작으로 데뷔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제임스 본드를 보여주기를 기대하며 기다리면 되겠네요. 물론 카지노 로얄 수준의 걸작이 그리 쉽게 나올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새로운 제임스 본드에 대해서는 기대감과 호기심을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단은 새로운 제임스 본드의 배우가 확정되었다는 소식부터 빨리 들려왔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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