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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영화사이

[소설과 영화사이] 노조키메

by 대서즐라 2021.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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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키메라는 작품에 대한 소개는 딱 두 문장이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소설 노잼. 영화는 더 노잼.

물론 하고 싶은 말은 더 있습니다. ‘영화는 더 노잼’이라고 했는데, 사실 그 정도가 아닙니다. 그냥 절망적인 수준의 망작입니다. 나쁜 의미로 ‘안 본 눈 삽니다’ 급입니다.

노조키메 영화 포스터

 

(이 글에는 본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호러영화는 원래 호불호가 심한 장르라서 포털 사이트 평점은 대체로 낮게 나오기 때문에 호러 장르에 한해서는 영화를 선택할 때 포털 평점은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 저의 평소 지론입니다. 하지만 가끔은 포털 사이트 평점을 믿는 것이 좋을 때도 있다는 걸 이번에 배웠습니다. 노조키메라는 영화를 보고 한 가지 교훈은 얻은 셈이네요.

저는 소설도 노잼이라고 했습니다. 즉 영화가 엉망인데 어느 정도 원작이 원인이기도 한 것입니다. 하지만 원작이 노잼이라는 핑계로 무마하기에는 노조키메라는 영화의 절망적인 완성도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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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인데 무서운 장면이 하나도 없고, 무섭게 만들려는 아이디어 자체가 너무 빈곤합니다. 그리고 가장 최악은 배우입니다. 전반적으로 감독의 연출도 나쁘고 연기지도가 너무 엉망인 수준인데(지나가는 단역 엑스트라의 대사 한마디 조차 어색합니다) 주연배우 이타노 토모미의 연기력은 가히 독보적인 수준이에요. 발연기가 무엇인가를 알고 싶으면 노조키메의 여주인공 연기를 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물론 이런 엉망인 연기는 감독의 무능이 원인이기도 합니다. 배우가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데 감독의 연기지도도 정말 중요하거든요. 

이타노 토모미


이타노 토모미는 원래 ABK48로 활동한 아이돌입니다. 아이돌로서는 톱 수준의 인기를 누렸다고 하더군요. 아이돌 출신으로 연기를 해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 나가는 케이스도 있지만 이렇게 아이돌로서의 재능과 연기자로서의 재능이 전혀 관련이 없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도 있습니다. 이타노 토모미는 아이돌로서는 잘나갔을지라도 연기자로서는 답이 없는 재능이었던 거죠. 연기력 뿐 아니라 외모도 아이돌로서는 매력 있게 보일지라도(특유의 오리입) 정극 연기에서는 영 어색한 느낌의 비주얼이더군요.

그런데 노조키메라는 작품은 그야말로 영화의 모든 요소가 총체적 난국인 수준이라서 주연배우 하나만 갈구는 것도 의미가 없는 짓이긴 합니다. 연기를 더 잘하는 다른 배우를 썼더라도 이 작품은 구제불능일 거예요.

소설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사실 소설을 읽으면서도 느낌이 왔습니다. 소설 내용 자체가 노잼이기도 했지만 ‘이걸 영화로 만들어도 진짜 더럽게 재미없겠다’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거든요. 작가인 미쓰다 신조가 호러·미스터리 장르로 꽤 명성이 있는데 이 작품은 왜 이리 실망스러운지.

사실 소설에는 흥미로운 면이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읽다 보면 오싹한 순간들이 있긴 해요. 다만 작가가 굉장히 비겁한 꼼수를 부렸다고 생각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노지키메 책


이 소설은 화자인 작가 본인이 노조키메 라는 저주의 전설에 대해 조사를 했고 그 저주의 실체를 실제로 경험한 사람이 직접 작성한 수기를 구해서 그 수기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독자에게 보여주는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액자식 구성입니다. 수기가 2개라서 소설은 전반부와 후반부의 내용으로 나누어집니다. 주인공(수기의 작성자)도 다르고 시대적 배경도 다릅니다. 전반부 수기는 끔찍한 저주를 겪게 되는 대학생들의 이야기이고 후반부 수기는 그보다 몇십 년 전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저주의 기원에 대해 밝히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꽤 놀라운 반전이 나오는데 이 내용은 괜찮았습니다. 이 반전의 내용이 상당히 좋았기 때문에 적어도 이 책을 읽은 것이 돈 낭비(전자책으로 구입을 했거든요), 시간 낭비였다는 생각은 안 하게 되었습니다.

작가가 부렸다는 ‘비겁한 꼼수’는 소설의 도입부에 나옵니다. 화자인 작가가 “내가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손에 넣은 이 무서운 내용의 수기를 지금부터 독자들에게 보여주려고 한다~” 운운하면서, 아주 섬뜩한 말을 덧붙이거든요. 이 수기를 공개함으로써 저주가 세상에 퍼져나갈 위험이 있고, 책을 읽는 독자들이 어느 순간 누군가가 당신을 쳐다보는 것과 같은 기묘한 감각을 느끼게 될 수 있다는 언급입니다. 즉, 당신(독자)도 이 책을 읽고 저주에 걸릴 수 있다는 유치한 협박을 독자에게 한 거예요. 정말 유치한 수법이지만 그래도 책에서 이 문장을 읽게 되면 오싹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데 호러 소설이 내용이 아닌 이런 유치한 수법으로 독자를 소름 돋게 만드는 것은 확실히 비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확실히 오싹함을 느꼈지만 작품의 평가로는 마이너스를 줄 수밖에 없는 수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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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협박(?)이 나온 이후 이제 작가가 입수했다는 수기의 내용이 본격적으로 전개됩니다. 흔한 ‘장소 저주’ 소재의 내용입니다. 어딘가에 가게 되면 저주에 걸리는 거예요.(물론 추가적인 조건들이 더 있긴 합니다) 그런데 이 저주란 것이 그다지 충격적이지도 무섭지도 않습니다. 그냥 계속 누군가가 쳐다보는 것을 느끼게 되는 건데, 소설로 읽어도 그다지 느낌이 안 오고 영화로 만들어진 장면들을 상상해봐도 역시 뭔가 어정쩡하고 시시한 거예요. 그냥 빈틈 같은 곳에서 눈동자가 번득이는 장면 정도겠죠.

이게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 과연 ‘무서운 장면’으로 나올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들었고, 실제로 영화를 보게 되니 그 생각이 딱 들어맞았습니다. 눈동자, 눈동자, 눈동자들. 진짜 하~~나도 안 무섭습니다. 어색한 CG 티만 팍팍 나고 뭐 하자는 겁니까. 사실 뜬금없는 곳에서 눈동자가 튀어나오는 장면은 샘 레이미의 ‘드래그 미 투 헬’의 케이크 장면이 유명한데, 이건 꽤 소름 끼치고 괜찮았거든요. 노조키메도 눈동자 연출에 있어서 좀 더 아이디어를 잘 구상했다면 더 나은 결과물이 나왔을지도 모릅니다. 

훔쳐보는 눈


앞에서 언급했듯 소설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들었던 건 결말의 반전입니다. 귀신과 저주가 등장하는 작품에서 굉장히 신선한 반전이었습니다. 바로 줄곧 귀신인 줄 알았던 존재가 사실은 귀신이 아니었다는 반전! 후반부 수기의 주인공(수기의 작성자)은 어떤 마을에 도착해서 기묘한 분위기의 소녀를 목격하게 됩니다. 그런데 마을의 모든 주민이 그 소녀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자기 눈에만 보이는 존재라서 주인공은 이 소녀를 귀신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상은 마을 사람들은 단지 그 소녀가 뻔히 눈앞에 있는데도 ‘보이지 않는 척’ 하며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을 해왔던 겁니다. 수기의 내용과 작가의 마지막 해석에서 그와 관련된 복잡한 사연들이 밝혀지는 거고요.

이런 반전은 사실 굉장히 흥미롭기 때문에 영화를 볼 때도 이 내용만은 정말 기대를 했습니다. 특히 실제로는 사람인데 귀신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거라면 소설의 문장보다는 영화의 시각적인 속임수가 훨씬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이걸 잘 연출하면 관객이 정말 제대로 뒤통수 맞았다고 느끼게 만들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실제 만들어진 영화는 이 부분에서 가장 큰 실망을 안겨줍니다. 사람을 귀신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연출을 제대로 못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영화에는 아예 이 반전 내용 자체가 없습니다. 소설의 내용을 꽤 각색을 했지만 가장 중요한 이 반전만을 살려야 했는데 영화는 엉뚱한 선택을 하고 만 것입니다. 

노조키메 스토리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왜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운 내용인 이 반전 내용을 없애고 단순하고 뻔한 전개(그냥 갇혀 있는 소녀를 발견하고 구해주는 내용)로 바꿔버린 걸까요. 진짜 그나마 이 반전 말고는 노조키메 라는 작품에서 재미를 느낄만한 내용이 아무것도 없는데요. 말 그대로 앙꼬 없는 찐빵, 계란 없는 계란빵이 되어버렸습니다. 

제가 볼 때 뭔가 감독이나 영화 제작위원회가 자신이 없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귀신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사람이었다- 라는 전개를 매우 설득력 있고 개연성 있게 잘 그려내는 게 그리 쉽지 않았다는 판단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까딱 잘못하면 개연성 없다고 욕먹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겠죠. 그 결과로 이렇게 밋밋하고 아무것도 없는 영화가 나와버린 겁니까... 사실 못 만든 영화들은 이런 경우가 꽤 있습니다. 괜히 잘못될까 봐 지레 겁먹고 과감한 시도를 못 하는 거죠. 

귀신 소녀


소설도 노잼이라고 했지만 반전은 확실히 재미있었고 영화를 좀 더 실력 있는 감독이 만들었다면 그럭저럭 볼만한 작품으로 나왔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들이 최선의 조건에서 최선의 선택과 결과만 나올 수는 없는 법이죠. 이런 망작을 한 번씩 봐주는 것도 필요한 일입니다. 좋은 작품의 가치가 더욱 돋보이게 되고, 앞으로 망작을 또 만나게 될 확률이 이번에 본 한 편만큼은 줄어들었다는 기분도 가지게 되니까요. 어거지 정신승리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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