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원작영화 리뷰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 Prince Of Persia: The Sands Of Time
2000년대 초반에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스파이더맨 등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쏟아부은 대작 블록버스터 프렌차이즈 영화들이 줄줄이 대성공을 거두며 할리우드 영화 산업의 규모가 급격히 성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할리우드 대작 프렌차이즈 영화들은 대부분 오리지널 작품이 아닙니다. 소설이나 만화 등 다른 문화 산업의 성공작을 영화화하여 제작한 작품들이 대부분이죠.
사실 영화 산업이야말로 모든 문화 산업 콘텐츠의 궁극의 종착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콘텐츠 아이디어의 최종 도착점인 셈이죠.
그런데 소설이나 만화 원작의 영화가 할리우드 대작 프렌차이즈로 대성공을 이어가자,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게임 원작의 영화도 할리우드 대작 프렌차이즈로 제작될 수 있겠다는 기대를 품게 됩니다. 소설이나 만화 처럼 게임도 좋은 아이디어들이 많이 발생하는 산업 분야거든요.
그런데 결국 이런 기대는 오래도록 실현되지 못합니다. 2000년대는 시도조차 없었고, 2010년대에 몇 작품 시도가 이루어 졌지만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그 실패 사례 중 하나가 바로 ‘페르시아의 왕자’입니다.
페르시아의 왕자는 1989년에 첫 작품이 나온 이후 오래도록 게이머들에게 사랑받아온 액션 어드벤쳐 게임 시리즈입니다. 초기 시리즈는 2D 플랫폼 게임이고 3D 그래픽이 등장한 이후는 액션 어드벤쳐 장르로 새롭게 탄생했죠. 본격적으로 액션 어드벤쳐 장르의 모습을 갖추게 된 첫 작품이 2003년에 나온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 입니다. 전체 시리즈에서는 네 번째 작품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작품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 영화화가 됩니다. 개봉 연도는 2010년 이고요.
많은 기대를 모은 작품이에요. 레지던트 이블 이외에는 게임 원작으로 규모 있는 상업영화가 나온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 레지던트 이블 조차도 블록버스터라 하기에는 제작 규모가 작은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는 제작비가 무려 2억 불이었습니다. 할리우드의 최정상급 블록버스터 영화들에 투입되는 수준의 제작비죠.
월트 디즈니가 투자, 배급하고 제작사는 제리 브룩하이머 필름입니다. 감독은 마이크 뉴웰에 주연은 제이크 질렌할, 여주인공은 젬마 아터튼 입니다. 정상급 라이업이라기엔 살짝 부족한 느낌이 없지는 않은데 그래도 이 정도면 확실히 할리우드의 A급 블록버스터의 면모는 갖춘 셈입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스펙터클, 즉 볼거리입니다. 관객들의 시각적인 기대를 만족시켜주는 거대하고 시원시원한 스펙터클을 짱짱하게 갖추어야 진정한 블록버스터의 자격이 있는 것이죠. 엄청난 제작비도 바로 이것을 위해 필요한 것이고요.
페르시아의 왕자는 액션 어드벤쳐 게임입니다. 캐릭터를 조작해서 벽을 넘고 트랩을 돌파하며 아슬아슬한 상황들을 스릴 있게 극복해 나가는 게임이죠. 위기를 돌파하는 주인공의 아크로바틱한 액션 동작들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볼거리가 됩니다. 그리고 배경과 트랩의 규모를 키운다면 거대한 액션 시퀀스도 연출 가능하고요.
사실 과거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 중 비슷한 컨셉의 작품이 있었죠. 바로 미이라 시리즈와 그보다 더 오래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입니다. 둘 다 큰 성공을 거둔 시리즈인데 특히 시원시원한 볼거리 면에 있어서는 옛날 영화인데도 상당한 수준을 보여줍니다. 이 두 시리즈가 보여준 스펙터클을 모티브로 삼아 페르시아의 왕자는 좀 더 업그레이드된 스펙터클을 보여주면 되는 것이었죠. 그런 방향으로 잘 제작되었다면 충분히 큰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있는 프로젝트였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이미 결말을 밝혔지만 영화판 페르시아의 왕자는 실패했습니다. 최종흥행성적이 월드와이드 3억 3천만 불입니다. 2차 시장 수익까지 더해 어찌어찌 손익분기는 넘겼다고 하는데, 보통 2억 불 제작비를 쏟아부은 블록버스터가 이 정도 성과를 기대하고 제작되는 건 아니거든요.
네, 명백한 실패예요. 여전히 게임 원작 영화 프렌차이즈 제왕의 자리는 레지던트 이블이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레지던트 이블이 엄청난 대작이거나 인기 시리즈인 것도 아닌데, 다른 게임 원작 영화들이 도무지 성공을 거두지를 못해서 뜻밖의 장기집권이 이루어지는 상황인 거죠.
영화판 페르시아의 왕자가 실패한 원인은 무엇일까요? 사실 영화가 실패하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일반적이고 당연한 이유는 영화가 재미없고 못 만들었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페르시아의 왕자에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에요. 이 영화는 꽤 잘 만들었습니다. 상업영화로 즐기기에 내용도 충분히 재미있고 블록버스터로서 볼거리도 충분합니다.
그리고 ‘게임의 영화화’라는 목적에도 충실했어요. 페르시아의 왕자는 액션 어드벤쳐 게임으로서 확실한 개성을 가진 게임입니다. 벽 타고 뛰어 넘고 매달리고... 바로 중세식 파쿠루 액션입니다. 이런 특성은 영화로 살리기도 좋습니다. 맨몸 아크로바틱 파쿠르 액션이 영화 속에서 잘 구현되면 시원시원하고 재미있는 볼거리가 되거든요. 상업영화 프렌차이즈가 이런 개성적인 볼거리를 잘 갖춘다면 그 자체로 작품의 정체성이 될 수 있고 장기 시리즈화 하기에도 유리합니다.
잘했어요, 모든 걸 잘했습니다. 내용 각색도 잘 되었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고 액션도 볼만 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뭡니까... 바로 소비자의 수요. 즉 ‘소비자가 보고 싶어 하는 것’이죠.
재미있고 잘 만든 영화라고 소문이 나도 사람들이 보러 가지 않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페르시아의 왕자는 블록버스터 프렌차이즈로서 충분히 가능성을 가진 프로젝트였습니다. 적어도 제작하는 쪽에서는 그렇게 생각했죠. 하지만 막상 시장에 공개하니 평가는 괜찮은데도 관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지 않았어요. 관객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영화가 아니었던 거죠.
페르시아의 왕자는 고전게임의 명작입니다. ‘게임의 고전’으로서 이 게임이 가지는 위상은 어마어마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1989년에 나온 시리즈의 첫 작품에 해당되는 얘기입니다. 그 후로 이어지는 작품들을 종합한 시리즈 전체로서의 위상은 게임계에서 그렇게 높지는 않습니다. 문학 쪽에서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같은 작품과 비교될만한 위상은 전혀 아니죠.
사실 게임이라는 문화는 지금은 많이 대중화 되었지만 여전히 서브컬쳐 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아무리 유명하고 인기 있는 게임이라도 문학 쪽의 세계적인 작품의 위상과 비교하면 초라해질 뿐입니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처럼 단지 영화화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수요가 보장될 수 있는 게임은 아마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대중의 수요와 취향이라는 것은 언제나 고정 불변인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어벤져스 같은 경우를 봅시다. 한국에서 원래 슈퍼히어로 영화는 별로 흥행이 안되었고 특히 마블 코믹스는 대중적인 인지도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야말로 마블 공화국 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어마어마한 인기와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없던 수요를 스스로 만들어낸 셈이죠.
페르시아의 왕자도 영화를 좀 더 잘 만들었다면 그렇게 될 수도 있었을까요? 잘 만든 영화이긴 하지만 아쉬운 부분이 없는 건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 컨셉이 비슷한 미이라 시리즈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 비해 유머가 좀 부족한 편입니다. 제이크 질렌할의 왕자 캐릭터가 인디아나 존스 만큼 매력적이지는 않았죠. 젬마 아터튼도 미이라 시리즈의 레이첼 와이즈에 비하면 매력이 떨어지는 편이고요. 그리고 영화가 2억 불 블록버스터 치고는 그렇게 스케일이 크다는 느낌이 안 듭니다.
하지만 이 모든 점들을 보완한다고 하더라도 역시 한계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모든 분야의 업적이 그렇듯이 최정상 급의 성공을 이루는 것은 원래가 힘든 일이기 때문입니다.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캐리비안의 해적,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까지... 할리우드의 어마어마한 초대형 히트 프렌차이즈 영화들이 있지만 이보다 수십 배는 많은 것이 이런 대형 프렌차이즈 블록버스터 기획의 실패 사례들이니까요.
이런 대형 프로젝트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완성도는 기본으로 갖추되 그 이상의 특별한 무언가가 있어야 합니다. ‘페르시아의 왕자’는 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원작 게임의 위상도, 영화의 재미도.
대서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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