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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과 영화사이

[게임과 영화 사이] 화이트데이: 부서진 결계

by 대서즐라 2021.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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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전산망 집계를 보니 ‘화이트데이: 부서진 결계’의 개봉 첫날 관객 수는 1800명 대입니다. 어째 요새 코로나 일일 확진자 수와 비슷한 숫자가 나왔네요. 영화가 정말 망작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코로나 감염 정도는 아니더라도 저 1800여 명이 어쨌든 ‘안 좋은 일’을 겪은 것만은 동일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화이트데이 영화 포스터

 

그런데 저는 솔직히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코로나 걸려 죽을 정도로 힘들 줄 알았는데 무증상이나 가벼운 발열 정도로 끝난 느낌이랄까요.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고 애초에 단단히 각오를 했기 때문에 극장에 앉아 있던 시간이 그렇게 끔찍하지는 않았습니다.

 

화이트데이 전문가 평점

 

전문가 평점을 완전히 믿는 건 아니지만 ‘화이트데이: 부서진 결계’의 씨네21 평점 정도라면 어느 정도는 확신을 심어줍니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건 무조건 돈 낭비, 시간 낭비가 될 거라고. 그런 확신의 메시지를 전달받았음에도 저는 굳이 이런 영화를 극장에 보러 갔습니다. 재미없을 거라고 확신이 되어 누가 공짜로 보여준 데도 망설일 영화를 굳이 내 돈 내고 극장에 보러 가는 것은 일종의 ‘기행’입니다. 일부러 재미없는 영화를 찾아본다는 건 확실히 기행이죠. 하지만 제가 이 영화를 극장에 보러 간 건 굳이 재미없는 영화를 찾아보겠다는 기행적인 목적은 아닙니다. 이렇게 포스팅을 쓰려는 목적도 있고 영화의 원작인 화이트데이라는 게임이 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기도 하거니와 그 외 정상으로 참작해줄 만한 몇 가지 이유들이 더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그런저런 이유들로 이 영화를 봤고, 감상은 앞에서 말한 대로 그렇게 끔찍하지는 않았다... 는 것입니다. 정말 쓰레기 같은 영화를 보면서 너무 괴로웠던 경험이 제 인생에 몇 번은 있었습니다.(많지는 않고요) ‘화이트데이: 부서진 결계’는 그런 경험에 비견될만한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망작인 건 사실이고요.

 

 

 

고전 게임 ‘화이트데이’의 추억

 

‘화이트데이: 부서진 결계’는 손노리의 고전 호러 게임 ‘화이트데이: 학교라는 이름의 미궁’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부제가 달라졌는데 그냥 게임 원작의 부제를 그대로 썼어도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사실 ‘부서진 결계’라는 부제 이전에 ‘귀멸의 퇴마학교’라는 누가 봐도 ‘귀멸의 칼날’ 코인을 타겠다는 의도가 뻔히 보이는 부제가 먼저 있었습니다. 당연히 논란이 되었고 이 논란을 적당히 영화 홍보로 써먹은(?) 후 결국 부제를 부서진 결계로 바꿨죠.

 

화이트데이 게임 포스터

 

아무튼 영화의 원작인 게임은 국산 호러 게임의 명작으로 꼽히는 작품입니다. ‘국산 호러 게임의 명작’이라는 게 사실 굉장한 표현입니다. 이런 명칭을 듣는 게임이 한국 게임 역사상 거의 없거든요. 실제로 훌륭한 게임인 것도 사실이고 충분히 명작 소리를 들을 만합니다.

 

저는 이 게임을 정품 패키지로 구입해서 즐겼습니다. 사실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이후로 저에게 손노리는 최고의 국산 게임 개발사였습니다. 한국은 손노리, 해외는 블리자드. 어린 시절의 저에게 있어서 최고의 양대 게임 개발사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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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데이 외에도 손노리 게임 중 포가튼 사가, 악튜러스도 정품 패키지를 구입했습니다.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는 친구한테 암호표를 빌려서 했는데, 그래도 나중에 국산 휴대용 게임기인 GP32 버전으로 나온 어스토니시아 스토리R은 정품 구매를 했습니다.

 

손노리 게임에는 실망했던 적이 없습니다. 포가튼 사가가 초반에 버그 때문에 아예 진행이 안되어서 당황했던 경우를 제외하면요. 화이트데이도 엄청 재미있게 플레이했는데, 아마 그게 제 인생의 첫 호러게임이었을 겁니다. 적어도 게임을 하면서 그렇게 엄청난 공포를 느낀 경험은 제 인생에서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특히 게임을 주로 밤에 했기 때문에 불 꺼진 방에서 혼자 이 게임을 하면서 느꼈던 공포는 정말 엄청났습니다.

 

화이트데이 그래픽

 

게임성 자체에서 공포스러운 요소가 많기도 하지만 한밤 중의 학교라는 공간 그 자체가 정말 엄청나게 무서웠습니다. 그저 모니터로 보는 게임 속 가상의 공간이고 지금 기준으로는 그래픽도 엄청 허접했는데 그래도 사람이 없는 한밤 중 학교라는 공간의 공포스러운 분위기는 온전히 전달되었습니다.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공포스러운 장면의 연출도 완성도가 높았고 배경음악이나 사운드도 일품이었죠. 특히 최고의 공포 요소는 귀신 들린 수위 아저씨와 숨바꼭질입니다. 일정 패턴으로 학교 건물을 수색하며 돌아다니는 수위 아저씨를 피해서 여러 단서들을 찾아가며 게임을 진행하는 것은 플레이어에게 엄청난 긴장과 몰입감을 선사했습니다. 도망치기 힘든 상황이 되어 교실 안에 숨어있는 동안 수위 아저씨가 열쇠 더미 소리를 짤랑짤랑 울리며 복도를 지나갈 때의 그 긴장감이란!!

 

수위 아저씨

 

게임의 스토리도 완성도가 높았습니다. 사실 이 게임을 한두 번 클리어한 정도로 전체 내용을 파악하기는 어려운데요. 그래도 학교를 수색하며 여러 단서들이 발견되고 조금씩 숨겨진 사연이 드러날 때마다 뭔가 스토리의 심오함(?)에 굉장히 감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꽤 놀라운 반전도 있었고요.

 

이렇게 훌륭한 명작 공포 게임이라서 학교 배경의 호러 영화가 꽤 제작되었던 한국 영화계에서 진작에 영화화가 되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사실 게임의 스토리가 꽤 복잡해서 잘 정리되지 않는 측면이 있고 영화로 만든다면 은근히 스케일 큰 장면도 많아서 제작비 부담도 있을 것이기에 영화화에 어려움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결국 이번에 나온 ‘화이트데이: 부서진 결계’도 여러 한계와 부족한 점을 그대로 안고 제작된 작품이 되었고요.

 

 

 

영화판 감상 –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

 

의외로 나쁘지 않은 스토리

 

사실 원작의 스토리가 좋기 때문에 영화의 스토리에 대해서는 그리 나쁘지 않을 거라는 예상은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워낙 망작이라는 악평이 자자해서 보나 마나 원작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엉터리 스토리겠구나 하고 멋대로 단정 지어 버렸습니다. 이 예상이 빗나간 것이 영화에 대한 실망감을 크게 줄여준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습니다.

 

물론 원작 스토리와 다른 부분도 많고 추가되거나 삭제된 내용 및 캐릭터, 설정들도 많았지만 전반적으로 원작 게임의 스토리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습니다.

 

희민과 지민

 

배우 장광이 연기한 전설적인 퇴마사(?) ‘무영’이나 주인공 이희민이 무영의 손자로 설정되어 있는 등 원작에 없는 내용들 때문에 원작과 달리 유치한 퇴마물이 돼버린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가장 컸는데요. 생각보다 무영의 비중은 크지 않았고 퇴마보다는 원작 스토리대로 성아와 나영의 숨겨진 사연을 밝히는 내용에 초점을 맞춘 것이 상당히 괜찮았습니다.

 

사실 원작 스토리에서 밝혀지지 않은 내용이 많은데 그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성아가 어떻게 화재로 죽게 되었느냐 하는 것이죠. 이 내용이 원작에서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는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었는데, 영화판 내용이 아주 훌륭하지는 않아도 그런대로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나름대로 괜찮은 내용이었습니다.

 

성아

 

사실 매우 열악한 규모로 제작된 영화이기에 원작 게임처럼 스케일 큰 장면들이 나올만한 내용을 배제하고 깔끔하게 후반부 내용을 종결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각본을 썼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확실히 원작 스토리에 비해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애초에 원작과 완전히 동떨어진 쓰레기 같은 내용까지도 각오하고 본 거라서 실제 영화판의 내용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안심)되더라고요.

 

 

연출과 종합적인 완성도는 확실히 망작 수준

 

어쨌든 이 영화는 망작입니다. 누구도 부정할 수는 없을 거예요. 그런데 망작이긴 해도 뭔가 ‘감독이 영화를 발로 만들었구나’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정말 능력도 재능도 부족하구나’라는 느낌보다는 그냥 영화를 ‘열악하게’ 만들었다는 느낌이 더 강했습니다.

 

말했듯이 스토리는 의외로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 자체의 방향성은 꽤 잘 잡았다는 느낌도 받았거든요. 의도와 방향성부터가 틀려먹은 케이스가 아니라 결과가 의도대로 따라주지 못한 실패작인 느낌인 거죠.

 

무영

 

물론 감독의 연출 감각 자체가 너무 떨어지거나 명백히 잘못된 선택이 이루어진 장면과 영화적 요소들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역량 부족의 문제보다는 제작 환경적인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들에 좀 더 눈길이 가더라고요. 그냥 ‘어떻게든 영화를 완성해야겠다’라는 안일하면서도 동시에 절박함이 느껴지는 장면들이 많았습니다.

 

충분한 자본투자를 받고 제대로 된 제작진들이 만들었다면 같은 각본으로도 좋은 작품이 나왔을지도 모릅니다. 말했듯이 원작 게임 자체가 워낙 명작이고 스토리도 재미있거든요. 사바하와 비슷한 소재의 작품이기 때문에 만약 장재현 감독이 만들었다면 정말 훌륭한 작품이 나왔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감독 이야기] 장재현

 

[감독 이야기] 장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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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은 안쓰러웠습니다. 이 영화의 대사와 상황 연출들이 워낙에 엉망이라 배우들이 아무리 열연을 해도 도무지 장면 장면의 어색함은 수습이 안됩니다. 이 영화를 보고 발연기의 향연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저는 배우들 탓은 하고 싶지 않아요. 사실 망작이고 열악하게 제작된 영화인 것 치고는 나름 지명도 있는 배우들이 많이 나옵니다. 특히 한소영 역의 박유나는 최근 꽤 핫한 젊은 배우죠.

 

박유나

 

이 영화가 전체적으로 망작 수준의 완성도를 보여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저는 이보다 더 보기 괴로운 영화들도 많이 봤습니다. 저도 영화를 보기 전에 충분히 각오를 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보기 덜 괴로워서(?) 비교적 산뜻한 기분으로 극장을 나설 수 있었습니다. 망작이긴 하지만 수용 가능한(?) 수준의 망작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네요.

 

 

호러 영화로서의 재미는?

 

유치뽕짝 퇴마물이 아니라 호러 영화로서 방향성을 잡은 것이 제가 이 영화를 보고 가장 안도하게 된 부분입니다. 장광이 센터에서 똥폼 잡고 있는 포스터를 보면 영락없이 유치한 퇴마물의 방향성으로 보였는데 예상이 빗나가서 정말 다행이었죠.

 

하지만 완성도가 워낙에 부실하다 보니 당연히 호러 영화로서의 재미도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제가 본 상영관에서 관객이 저 포함 세 명이었고 저만 앞자리에 뚝 떨어져 앉았기에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만든 호러 영화를 보게 되면 그 공포감이 엄청납니다. 그런데 화이트데이는 호러 영화의 모양새로 만들기는 했는데 무서운 순간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무서울 뻔한(?) 장면이 하나 정도 있었을까.

 

호러영화

 

무서운 장면이나 연출의 대부분을 CG로 때웠는데 CG 퀄리티가 너무 떨어져서 그 허접함에 그냥 웃음만 나왔습니다. 사실 CG 시대가 된 이후로 아날로그 식 분장이 주는 묘미가 호러 영화에서 많이 사라진 것을 아쉬워하는 호러 팬들이 많습니다. CG를 잘 처리하면 그나마 괜찮은데 이렇게 퀄리티가 허접할 때는 차라리 그냥 아날로그 분장을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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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던 게 수위 아저씨 장면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듯 원작 게임에서는 수위 아저씨가 가장 큰 공포의 요소입니다. 영화에서도 게임과 동일하게 수위 아저씨와의 숨바꼭질 장면이 등장하는데 당연히 게임을 하면서 느꼈던 그 살 떨리는 긴장감과 공포는 없습니다. 이 부분만은 전적으로 감독의 연출 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화이트데이의 수위 아저씨 하면 멀리서 짤랑짤랑 들려오는 열쇠 더미 소리가 가장 중요한 상징적 장치거든요. 영화에서 이런 부분을 제대로 살리는 건 별로 대단한 연출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열쇠 소리가 나기는 하는데 멀리서 조금씩 다가오는 공포라는 느낌을 조금도 살리지 않았어요. 그냥 다짜고짜 수위 아저씨가 모습을 드러내고 열쇠 소리는 무의미하게 집어넣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귀신이 씐 수위 아저씨 얼굴은 어설픈 CG로 공포 효과를 주었는데 전혀 무섭지도 않고 그냥 웃길 뿐입니다. CG가 아니라 가장 기초적인 아날로그 호러 분장만 했어도 이보다는 훨씬 나았을 겁니다.

 

영화 속 수위 아저씨

 

사실 이 영화에 장광이 출연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수위 아저씨 역할이 아닐까 하고 추측했었죠. 게임의 수위 아저씨 외모가 장광과 은근히 닮았거든요. 사실 캐스팅과 분장에 조금만 신경을 썼다면 영화에서도 원작 게임과 비슷한 느낌의 수위 아저씨를 표현하는 것이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이 부분이 정말 아쉽습니다. 애초에 전혀 기대를 안 한 데다 예상 밖으로 스토리도 나쁘지 않았고 여기에 수위 아저씨 장면만 원작과 비슷하게 살렸어도 이 영화를 생각보다 후하게 평가했을지도 모릅니다.

 

 

 

국산 호러 게임의 명작 화이트데이의 실사 영화판은 이렇게 안타까운 망작으로 제작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역시 원작의 스토리가 정말 괜찮다는 사실과 원작 자체가 가진 잠재력은 이런 망작 실사 영화에서도 확실히 드러났습니다. 화이트데이가 호러 실사 콘텐츠를 위한 아주 좋은 재료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 굳이 극장용이 아니더라도 OTT 플랫폼의 영화나 드라마로라도 언젠가 다시 한번 실사화 작품이 제작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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