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진입 장벽이 높기로 유명합니다. 다만 저는 이 게임을 그렇게 많이 해보지는 않았기 때문에 정확하게 평가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수많은 남성들이 그렇듯이 저도 인생에서 게임을 참 많이 하고 살았고 지금도 많이 하고 있는데, 콘솔이나 오락실 아케이드보다는 PC 게임만 대부분 했었거든요.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2018년에 PC 플랫폼으로도 발매된 ‘몬스터 헌터: 월드’를 통해 처음으로 직접 플레이해봤습니다. 그 전에는 어릴 때 친구가 PSP로 플레이하던 걸 옆에서 구경만 해본 게 전부였습니다. 아주 재미있어 보였는데, 당시에도 게임은 오로지 PC로만 즐겼기에 PC판으로 발매되지 않는 게임은 그냥 나랑은 인연이 없는 게임이라고 여겼죠. 그냥 게임은 PC로 하는 것이 좋았기 때문에 아주 어린 시절 이후로는 콘솔 게임기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살았어요. 심지어 PC 게임에서도 많이 쓰이는 엑박 패드도 최근에야 구입했습니다. 축구 게임하다가 키보드와 마우스 조작이 하도 어려워서 그냥 화딱지가 나서 질러버렸죠. 하지만 그렇게 많이 쓰지도 않고 여전히 대부분의 게임은 키보드+마우스입니다.
아무튼 ‘몬스터 헌터: 월드’로 처음 이 시리즈를 플레이하게 되었지만 큰 재미는 느끼지 못하고 금방 접어버렸습니다. 이 게임이 발매된 시기가 2018년이고 저도 이제는 예전과는 달리 새로운 게임에 적응하고 몰입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코에이 삼국지도 여전히 11편만 하고 있고 시간 때우기 용으로 가장 많이 플레이하는 게임도 스타크래프트 1편입니다. 몬스터 헌터도 이전 시리즈부터 해왔다면 모르겠지만 지금 시점에서 새롭게 진입하기는 힘들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는 확실히 저에게는 진입 장벽이 매우 높은 게임인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제대로 게임성을 느낄 만큼 몰입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게임의 피상적인 요소들은 충분히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몬스터들의 다양한 디자인은 확실히 눈을 사로잡더군요. 세계관 설정도 흥미로웠고요. 확실히 실사 영화로 만들어도 재미있는 작품이 나올만한 요소들을 많이 갖추고 있는 게임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실사 영화로 만들어졌죠. 감독은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의 폴 W.S. 앤더슨이고 주인공도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와 동일한 밀라 요보비치입니다. 밀라 요보비치가 폴 W.S. 앤더슨과 부부 관계이니 이 감독의 작품에 상당히 많이 출연하고 있습니다.
밀라 요보비치는 제가 참 좋아하는 배우인데 솔직히 이 배우의 행보는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습니다. 뤽 베송의 ‘제 5원소’에 나올 당시만 해도 정말 엄청난 포텐을 가진 배우로 보였는데 이후 배우로서 쌓아온 필모그래피를 보면 뛰어난 작품은 드물고 대부분 시시한 영화들에 많이 출연했습니다. 다만 그런 시시한 영화들 안에서도 밀라 요보비치는 배우로서 정말 빛납니다. 특히 액션 여전사 캐릭터를 연기할 때 매력과 포스가 엄청난 수준이에요.
솔직히 저는 역대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액션 여전사를 연기하는 여배우로서는요. 액션 연기를 잘하는 여배우도 많고 여전사 이미지로 유명한 배우들도 많지만 저는 밀라 요보비치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이 엄청 유명하거나 크게 히트한 적이 별로 없어서 과소평가되는 것뿐이죠.
영화판 몬스터 헌터에서도 사실상 볼만한 건 여전히 최고의 액션 여전사 캐릭터를 보여주는 밀라 요보비치의 활약뿐입니다. 저는 이 배우의 액션 연기를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가 어느 정도는 만족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밀라 요보비치의 액션을 제외하면 평가를 내리기가 참으로 난감한, 수준 떨어지는 싸구려 액션 영화임을 부인하기는 어렵습니다.
제작비가 고작 6천만 불입니다. 이게 ‘고작’이라는 말을 붙일 만큼의 적은 금액인지는 조금 애매하긴 합니다만. 최근에 제작비 1억 7천만 불이 들어간 ‘듄’을 보고 비교를 해보니 확실히 제작비의 차이는 이런 종류의 블록버스터 액션물에서 명확한 질의 차이로 드러납니다.
듄과 몬스터 헌터 모두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가 아닌 작품 속에서 새롭게 창조된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새로운 세계를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표현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자본과 섬세한 작업을 필요로 합니다. 사실 듄 정도의 걸작도 몇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인데(듄은 제가 최근 몇 년 동안 본 최고의 블록버스터입니다) 가끔 나오는 게임 원작 영화들의 완성도가 최고로 완벽한 수준(듄 정도의)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을 불평하는 게 참 의미가 없는 일이구나 싶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런 기대치가 늘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몬스터 헌터라는 게임을 그다지 많이 즐기지 않은 저조차도 이 게임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게임 속에 표현된 세상과 세계관이 완벽하게 영화 스크린을 통해 구현된 모습을 상상하고 기대를 하게 되거든요. 기대는 곧 독이라는 것을 많은 영화 팬들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독한 독은 아니기에 흥미로운 신작의 제작 소식에 계속 기대를 품고 또 실망하고 그러는 거예요. 그러다가 몇 년에 한 번 씩 듄 같은 영화가 나오면 그동안 쌓인 독이 다 정화가 되는 거고요.
몬스터 헌터가 저에게 큰 타격을 준 독이었던 건 아닙니다. 어느 정도 기대를 하긴 했지만 그렇게 큰 기대는 아니었고 밀라 요보비치가 여전히 최고의 여전사라는 걸 다시 확인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은 했습니다. 토니 쟈를 오랜만에 본 것도 반가웠고요.
어차피 듄 같은 영화와 비교하는 것조차 어불성설로 느껴질 만큼 감독의 역량이나 제작비 등의 제반사항은 다 알고 있었으니 큰 기대를 가지는 게 이상한 것입니다. 다만 그래도 가장 크게 실망한 부분은 영화의 내용입니다. 영화의 제작 환경적인 한계 상황과는 무관하게 이렇게 각본으로 이상한 짓을 하는 것은 솔직히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뜬금없이 현대의 군인들이 이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내용이라든지 결말은 또 뭐 이렇게 어정쩡한지? 사실 결말로 말하자면 듄도 ‘왜 이렇게 끝나??’라는 소리가 나올만한 결말이지만 분명히 더 엄청난 속편이 나올 거라는 자신감이 있으니까 그런 엔딩도 가능한 거 아니겠습니까.(물론 틀림없이 더 엄청난 속편이 나오겠죠) 하지만 몬스터 헌터는 속편이 나올 것 같지도 않고(나온다고 해도 말리고 싶네요) 영화 자체가 그다지 속편에 대한 기대치를 가지게 만들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엔딩에서 속편에서 봐용~ 하는 식으로 끝내는 건 뭔 자신감인지 모르겠어요.
폴 W.S. 앤더슨이 그렇게 수준 떨어지는 감독은 아닙니다. 사실 꽤 훌륭한 감독이에요. 필모에 좋은 작품들도 많고 무엇보다 밀라 요보비치라는 최고의 여배우와 결혼까지 한 인생의 승리자입니다. 하지만 폴 W.S. 앤더슨 보다 더 대단한 감독도 넘쳐나는 영화계에서 듄 같은 걸작 블록버스터가 몇 년에 한 편 나올까 말까 하는 상황입니다. 역시 이런 현실을 제대로 봐야 합니다. 천재 감독은 드물고(폴 W.S. 앤더슨이 수준 떨어지는 감독은 아니지만 천재는 더더욱 아니죠) 그런 천재 감독들이(드니 빌뇌브 같은) 완벽하게 좋은 조건에서 완벽한 걸작을 완성하는 일도 정말 드물게 일어난다는 것. 특히나 액션 대작 블록버스터에서는 더더욱.
이렇게 걸작이나 좋은 작품이 나올 확률이 극히 떨어지는 장르인데, 하필이면 게임 원작 영화들은 대부분 그런 쪽 장르의 작품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대를 아예 안 할 수도 없고 게임의 팬이거나 그 게임을 조금이라도 플레이해본 사람이라면 영화 제작 소식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대략적으로 스크린의 광경들이 그려져 버리거든요. 하지만 결과물은 완전히 딴판이고 그래서 실망하고...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이제 게임 원작 영화에 대해서는 거의 기대를 안 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게임 원작으로 위대한 걸작 블록버스터 영화가 나올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스타크래프트나 디아블로... 아니면 다른 유명 게임 뭐든지. 영원히 몬스터 헌터 같은 수준의 영화만 보다가 인생 끝나지는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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