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게임과 영화사이

[게임과 영화 사이] 모탈 컴뱃

by 대서즐라 2021. 12. 13.
728x90
반응형

저는 콘솔이나 오락실 파가 아니라 PC 게임 파였기 때문에 게임의 장르 중에서는 격투 게임 쪽의 경험이 가장 빈약합니다. 최근에는 드디어 철권이 PC-스팀으로도 발매되어서 세일할 때 냉큼 구입했는데 이제 와서 본격적으로 배워보려니 너무 벅차더군요. 스틱도 없고 엑박 패드뿐이라서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기도 하고요.

 

제가 살면서 몰입해서 즐겼던 격투 게임은 대부분 PC 게임입니다. 혹은 콘솔이나 아케이드 게임 중에서도 발 빠르게 PC로 이식이 이루어진 게임이죠. 유일하게 오락실에서만 몰입해서 즐겼던 격투 게임은 ‘천외마경’입니다. 이마저도 그렇게 오래한 건 아니었고요.

 

PC로 가장 많이 즐겼던 격투 게임은 ‘삼국지 무장쟁패’입니다. 무장쟁패 2편은 정품을 구입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밖에 모탈 컴뱃, 브루탈, OMF 같은 격투 게임도 재미있게 즐겼죠. ‘리얼 파이터’라는 국산 3D 격투 게임을 구입한 적도 있습니다. 이 게임은 당시에 사양이 너무 높아서 제 컴퓨터에서 돌아가지 않아 친구 집에 가서 플레이했습니다.

 

제가 가장 많이 플레이 한 격투 게임의 양대 산맥을 꼽자면 역시 ‘무장쟁패’와 ‘모탈 컴뱃’입니다. 사실 무장쟁패가 넘사벽 원톱이고 모탈 컴뱃은 무장쟁패만큼 좋아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모탈 컴뱃이 무장쟁패에 비해서 조작이 상당히 어려운 게임이었기 때문입니다.

 

모탈-컴뱃-영화-포스터

 

물론 요즘 나오는 게임들에 비하면 모탈 컴뱃 1편의 기술 커맨드는 결코 어려운 수준은 아닙니다. 하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히 어려웠고 실제로 저는 특히 조작이 어려운 몇몇 캐릭터의 기술 커맨드는 거의 제대로 구사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이건 제가 오락실이나 콘솔 게임보다는 PC 게임 위주로만 파다 보니 격투나 액션 게임 쪽의 재능(?)이 발달하지 못한 것도 한 원인이긴 할 겁니다. 그런데 당시에 제 친구들도 대부분 모탈 컴뱃은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기술 커맨드가 너무 단순한 무장쟁패와 비교하면 객관적으로 모탈 컴뱃이 훨씬 어려운 게임인 게 사실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게이머들이 모탈 컴뱃이라는 게임을 즐기는 핵심 이유이자 목적은 바로 ‘페이탈리티’를 보기 위함입니다. 모탈 컴뱃은 격투 게임 중에서도 특히 잔인한 연출로 유명했고, 지금도 유명합니다. 패배한 상대를 잔인하게 죽여버리는 ‘페이탈리티’라는 연출은 거의 이 게임의 정체성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당시에도 친구들 사이에서 ‘모탈 컴뱃’이라는 이름보다는 그냥 ‘척추 뽑기 게임’ 혹은 ‘심장 뽑기 게임’으로 불릴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페이탈리티의 입력 커맨드가 너무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페이탈리티가 이 게임의 정체성이나 다름이 없는데 정작 이 게임을 계속 플레이해도 이걸 제대로 보기가 힘들었습니다. 저는 서브제로 말고는 페이탈리티를 제대로 성공시킨 캐릭터가 없습니다. 서브제로는 다른 일반 기술들도 그렇고 페이탈리티의 커맨드도 다른 캐릭터들에 비하면 쉬운 편이었어요. 그런데도 페이탈리티 자체는 엄청 임팩트 있는 연출인 ‘척추 뽑기’였죠. 가장 쉬워서 자주 볼 수 있는 페이탈리티인데 잔인한 임팩트도 상당해서 ‘모탈 컴뱃’ 하면 서브 제로의 ‘척추 뽑기’를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로 떠올릴 정도였습니다.

 

서브제로-페이탈리티-척추-뽑기

 

모탈 컴뱃은 현재까지도 계속 시리즈가 나오고 있고 가장 최근에 아마 11편이 나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딱히 구입해서 플레이하지는 않지만 유튜브를 통해서 플레이 영상은 몇 번 봤습니다. 무슨 로보캅이나 터미네이터, 에일리언 같은 캐릭터도 나오고 페이탈리티는 발전된 CG 그래픽으로 엄청난 잔인성을 보여주더군요. 이런 걸 보면 역시 직접 플레이하고 싶은 마음도 들어서 구입할까 말까 고민 중이긴 한데 역시 격투 게임에는 그다지 재능이 없다는 저 자신의 한계 때문에(스틱도 없고) 망설이게 됩니다.

 

아무튼 스트리트 파이터나 철권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 초창기 아케이드 시대를 풍미했었고 현재까지도 시리즈가 나오고 있는 성공한 격투 게임이 모탈 컴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인기와 명성에 힘입어 영화로까지 제작되었습니다.

 

게임 원작의 실사 영화가 제대로 된 A급 상업 영화의 퀄리티로 제작된 적은 많지 않습니다. 특히 격투 게임 장르는 더 그렇습니다. 장 클로드 반담이 출연했던 스트리트 파이터는 렌탈 시장용 B급 영화 수준이고(나름 재미는 있습니다) 철권은 그냥 없는 셈 쳐야 할 정도의 괴작이 실사 영화로 나왔었죠.

 

그런데 모탈 컴뱃만은 비교적 제대로 된 퀄리티의 상업 영화로 제작되었습니다. 그것도 두 번이나. 1990년대에 폴 W.S. 앤더슨 감독이 만든 영화가 있고 2021년에 뉴라인 시네마에서 제작한 영화가 있습니다. 1990년대에 나온 모탈 컴뱃의 실사 영화는 제가 보지는 않았지만 감독부터가 네임드이고 흥행도 성공했기에 충분히 볼만한 퀄리티의 영화일 거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평도 괜찮은 편이고요.

 

1995년작-폴ws앤더슨-영화-모탈컴뱃

 

그리고 2021년에 나온 뉴라인 시네마 제작의 ‘모탈 컴뱃’은 제가 극장에 가서 봤고 확실히 만족스럽게 관람했습니다. 이 작품도 전반적으로 평이 괜찮은 편이고 코로나의 영향으로 극장 흥행은 저조했지만 HBO Max의 스트리밍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둬 속편 제작도 유력하다고 합니다.

 

2021년 판 모탈 컴뱃 영화가 특히 만족스러웠던 점은 게임에서 느꼈던 재미를 실사로 너무 잘 구현했다는 것입니다. 게임과 영화는 근본적으로 다른 매체이기 때문에 게임에서 나오는 장면이나 연출, 상황 등을 실사 영화에서 그대로 표현한다면 매우 비현실적이고 유치하게 느껴질 수가 있습니다. 격투 게임이라면 특히 더 그렇죠. 그런데 조금이라도 비현실적인 걸 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변형을 하거나 새로운 걸 덧붙이게 되면 원작 게임의 느낌은 그냥 사라지고 이도 저도 아닌 괴상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결과가 나올 바에야 비현실적이고 유치한 느낌은 그냥 감수하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모탈 컴뱃이 바로 그런 선택을 한 것이고요.

 

리우캉과-쿵라오

 

다만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가 누가 봐도 재미있고 만족스럽게 볼만한 영화는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시 가장 큰 문제는 스토리입니다. 사실 격투 게임의 배경 스토리는 정말 부실합니다. 제가 어릴 때 이 게임을 할 때도 내용 같은 건 전혀 몰랐고 다른 격투 게임들도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삼국지 무장쟁패처럼 훌륭한 원작 텍스트가 있는 경우라면 모를까 격투 게임의 자체 오리지널 스토리가 그리 대단한 수준으로 나오기는 어려웠죠. 대단한 스토리가 필요하지도 않고요.

 

원작에서 가져와야 하는 건 그저 선택받은 전사들이 목숨을 건 대결을 벌이게 되는 비현실적인 세계관뿐입니다. 이런 걸 영화에서 진지한 스토리로 그려낸다면 역시 너무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그다지 몰입이 안 됩니다. 아니면 이런 비현실적인 세계관의 경우 거대한 자본을 쏟아부어서 관객에게 눈뽕 체험이라도 시켜주면 되는데 폭넓은 관객 타겟층을 가지지 못한 격투 게임 원작 실사 영화에 그 정도의 자본을 투입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결국 휑한 연극 무대 같은 배경 세계관이 그려졌습니다.

 

반응형

 

승부해야 하는 건 스토리가 아니라 캐릭터와 게임 기술의 표현입니다. 이 부분은 영화가 상당히 공을 들였습니다. 격투 게임답게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원작 게임에서 가장 인기가 많고 유명한 서브제로와 스콜피온을 메인으로 삼은 것은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특히 메인 빌런으로 등장하는 서브제로의 포스가 정말 엄청났습니다. 서브제로가 모탈 컴뱃의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해도 될 정도로 인기 있고 유명한 캐릭터라서 마치 스타워즈의 다스 베이더 같은 느낌으로 압도적인 악역 포스를 보여준 것은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서브제로의-얼음능력

 

게임의 유명한 기술들이 멋지게 실사로 구현된 점도 좋았습니다. 그냥 팬 서비스로 보여주는 차원이 아니라 스토리 상의 중요한 국면에 멋지게 기술들이 등장하며 임팩트 있는 연출을 보여주더군요. 페이탈리티도 많이 등장하는데 이 때문에 영화가 굉장히 잔인합니다. 사실 모탈 컴뱃의 실사 영화라면 잔인하게 나와야 하는 게 당연하긴 하죠. 그런데 1990년대에 나온 폴 W.S. 앤드슨 감독의 영화는 흥행을 위해서 PG-13 등급으로 제작되어 잔인한 장면을 거의 넣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모탈 컴뱃을 영화로 만들면 2021년 판처럼 무조건 잔인한 장면이 나와야 합니다. 그게 이 작품의 정체성이나 다름이 없으니까요.

 

영화에 나온 페이탈리티 중에서 역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쿵 라오의 페이탈리티입니다. 칼날 달린 삿갓을 땅에 박아 놓고 테이블 전기톱처럼 니타라를 세로로 갈라 버렸죠. 확실히 이런 장면이 나와줘야지 역시 모탈 컴뱃이구나 라는 느낌이 드는 겁니다.

 

리우 캉의 페이탈리티는 다른 의미로 감동적이었습니다. 리우 캉은 게임 2편에서 용으로 변해 상대를 먹어버리는 페이탈리티가 유명한데 저는 당시에 2편을 열심히 플레이했지만 이 페이탈리티는 결국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냥 친구들에게 듣기만 했어요. 그런데 어릴 때 애들끼리 워낙 허풍스러운 이야기나 거짓말도 많이 하다 보니까 리우 캉이 용으로 변해서 상대를 먹어버린다는 얘기를 곧이듣지 못했습니다. 결국 실제로 보지도 못하고 세월이 흐르면서 ‘그건 거짓말이었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단계까지 가버렸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통해서 그것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확인한 것입니다. 물론 영화에서는 용으로 변한 게 아니라 불로 용의 형상을 만들어낸 것에 가까웠지만... 그 후 유튜브에서 게임에 등장하는 용 페이탈리티도 직접 확인했습니다.

 

리우캉의-드래곤-페이탈리티

 

확실히 원작 게임을 즐겼던 팬으로서 영화도 만족스럽게 관람할 수 있었지만 분명 아쉽게 느껴지는 점들도 많아서 앞으로 후속작이 나온다고 해도 크게 기대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만약 자본이 더 투입되어 스케일이 커지고 게임의 최신 시리즈에서 처럼 로보캅이나 에일리언 같은 다른 작품들의 콜라보 캐릭터까지 등장해서 엄청나게 잔인한 살육 액션이 펼쳐진다면 아주 흥미진진할 테지만요. 하지만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건 무리겠죠.

 

728x90

 

격투 게임의 실사 영화 라면 이 정도 퀄리티가 거의 한계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거대 자본이 투입되어 네임드 감독과 배우들로 제대로 된 퀄리티로 철권이나 스트리트 파이터를 영화로 만든다면 훨씬 대단한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지만, 그런 기획이 지금까지 실현되지 못한 건 역시 현실적인 여러 한계들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격투 게임들은 아무리 멋진 캐릭터와 액션 기술들이 있어도 세계관이 너무 비현실적이고 배경 스토리가 너무 부실합니다. 이래서는 마니아 층을 넘어선 대중적인 히트 영화를 만들 재료로서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2021년 판 모탈 컴뱃 영화는 극장 흥행은 저조했지만 스트리밍 시청률로는 상당한 성과를 냈습니다. 스트리밍 시장이 커지면서 기존 극장용 영화들과는 조금 성격이나 스타일이 다른 영화나 영상 콘텐츠들이 점점 많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모탈 컴뱃의 시리즈가 계속 나오고 성공이 이어진다면 슬슬 영화 제작자들이 스트리밍용 영화로 철권과 스트리트 파이터의 실사 영화 제작에 관심을 보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언젠가 다른 유명한 격투 게임 원작의 실사 영화도 볼 수 있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donaricano-btn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