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놉 – 이제 내 마음속 넘버원 영화감독은 조동필이다

by 대서즐라 2022.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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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각자의 마음속에 넘버원이라고 생각하는 영화감독이 존재할 것입니다. 그런데 ‘넘버원 영화감독’이라는 표현의 의미는 단순하게 규정되지는 않습니다. ‘좋아하는 것’과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의 미묘한 차이가 있거든요. 예를 들어 제가 지금 지구상에서 영화를 가장 잘 만든다고 생각하는 감독은 마틴 스콜세지입니다. 그런데 스콜세지는 한국 영화팬들이 ‘옹’이라는 단어를 붙여 부를 만큼 고령이시고 그의 영화를 언제까지 볼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죠. 리들리 스콧이나 스티븐 스필버그도 마찬가지고요. 그럼 이런 위대한 감독의 신작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시기가 오면 그때는 누가 가장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후보가 너무 많아서 한 명을 꼽기가 어려워요. 이 글의 첫 문장에서 ‘누구나 마음속에 넘버원 영화감독이 있을 것이다’라고 시작했지만 딱 한 명을 꼽기가 어려운 사람도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쨌든 제 마음속에서 가장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은 현재는 마틴 스콜세지이고, 이와는 조금 다른 개념으로 ‘가장 좋아하는’ 넘버원 영화감독이 또 따로 존재합니다. 포스팅의 제목으로 이미 썼듯이 현재 그 감독은 조동필(조던 필)입니다. ‘놉’을 보고 와서 넘버원의 자리로 올라왔어요. 원래 그 자리에 다른 감독이 있었거든요.

 

놉-포스터

 

(이 글에는 영화 ‘놉’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감독’이라는 말의 의미를 풀어서 쓰면 ‘신작을 가장 보고 싶은 영화감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좋아하고 존경하는 수많은 영화감독들이 있지만 대부분은 신작이 나왔을 때 ‘나왔구나’ 하면서 보는 거지 그 감독의 정보를 주기적으로 검색하면서 요즘 뭐 하는지, 신작은 언제 나오는지, 신작은 어떤 작품인지 계속 관심 가지고 찾아보는 감독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즉 ‘신작을 오매불망 기다리게 만드는’ 감독이 제가 엄청 좋아하는 감독인 거죠.

 

아주 오랫동안 저에게 그런 감독의 넘버원은 야구치 시노부였습니다. 놉을 보기 바로 전까지 그랬어요. 이제 조동필이 넘버원이 되었지만 야구치 시노부는 넘버투로 좋아하는 감독으로 그의 신작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심정은 여전합니다. 야구치 시노부는 정말 오랫동안 제 마음속의 넘버원 감독이었는데, 때문에 놉을 보고 넘버원 감독의 교체가 일어났다는 것이 저에게는 굉장히 큰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독 이야기] 야구치 시노부 矢口史靖

 

[감독 이야기] 야구치 시노부 矢口史靖

야구치 시노부 矢口史靖 야구치 시노부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감독 중 한 명입니다. 언제나 그의 신작 제작 소식을 체크하고 신작이 나오면 빠짐없이 찾아보는 감독이죠. 제

dszl.tistory.com

 

조동필과 야구치 시노부의 신작 영화를 오매불망 기다리게 되는 것은 단순히 그들이 만드는 개별 작품들의 재미나 완성도를 넘어서는 핵심 이유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그들이 다음에 뭘 만들지 예측할 수가 없어서’입니다. 정말로 재미있고 완성도 높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이 언제나 예상을 벗어나고 기대를 뛰어넘는다면 그야말로 최고 아니겠습니까? 그저 재미있고 잘 만든 걸 넘어서서 새롭고 신선하기까지 하다는 것. 이 부분에서 오는 감흥이 정말 크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두 감독에게 명확한 차이는 있어요. 언제나 신작에서 전혀 예상도 못한 소재를 들고 오는 건 동일하지만, 야구치 시노부의 경우 소재와 제목, 시놉시스 등의 사전 정보만 보면 거의 대부분 ‘이런 게 정말 재미있을까’ 싶은 것들을 들고 옵니다. 그러니까 야구치 시노부의 신선함이란, 남들은 별로 재미없을 거 같아서(혹은 재미있게 만들 자신이 없어서) 안 건드리는 것들을 과감하게 선택하기에 나오는 것입니다. 즉 소재와 시놉시스를 보면 정말 뻔하게 재미없는 영화가 상상되는데 야구치 시노부는 그런 뻔하고 일반적인 상상을 가뿐히 뛰어넘어 어마어마하게 재미있는 영화를 들고 온단 말이죠.

 

반면 조동필의 영화는 제목과 소재, 시놉시스를 봐도 아무런 상상도 안 되는 걸 들고 옵니다. 뻔한 상상? 일반적인 상상? 그런 게 불가능해요. 그야말로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어떤 예측도 할 수 없기에 이건 무조건 예측을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걸 보는 경험이 될 수밖에 없는 거죠.

 

놉-UFO

 

이번에 본 ‘놉’은 ‘전혀 예측도 못한 어마어마한 걸 보게 된 경험’이라는 면에서는 정점을 찍었다고 생각합니다. 조동필이 지금까지 세 편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제일 처음에 만든 ‘겟아웃’이 평이 가장 좋고 그 이후로는 갈수록 별로다 라는 반응도 많이 나오고 있는데요. 저는 반대입니다. 겟아웃, 어스, 놉... 갈수록 대단해집니다. 겟아웃의 충격<<<<<어스의 충격<<<<<놉의 충격. 이렇게 갈수록 충격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정신이 얼떨떨해질 정도예요. 이런 식이면 도대체 다음은, 또 그다음은 뭐가 나올지. 이러니 야구치 시노부 감독을 내리고 넘버원에 새롭게 조동필을 올리지 않을 수 없는 거죠.

 

조동필은 영화의 마케팅에도 공을 들이는 감독이죠. 영화 자체가 이미 너무나도 새롭고 신선한데, 예고편이나 포스터 등의 홍보에서 관객이 예측할만한 건덕지를 절대 던져주지 않습니다. ‘놉’은 아예 적극적으로 속이기까지 하죠. 누가 봐도 외계 비행선 같은 물체를 예고편에서 떡하니 보여주면서 ‘놉(NOPE)’이라는 제목을 띄우며 ‘응~ 그거 아냐’ 하고 장난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면 뭔데? 절대 몰라요. 이런 상상력은 절대 예측을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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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필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도 어마어마하게 많은 상징과 메시지들이 존재합니다. 아마 영화를 보고 온 많은 사람들이 유튜브의 이동진 해설이나 나무위키의 영화 해설 항목을 찾아봤을 겁니다. 이런 관점들로 찬찬히 뜯어봐도 대단히 흥미로운 영화인 건 사실이지만 저는 그보다는 이 영화의 소재와 장르적 재미들에 초점을 맞춰보려고 합니다. 제가 이 영화에 엄청나게 매료된 것도 바로 이런 부분이거든요.

 

포스터만 봐도 하늘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고 급기야 예고편에 누가 봐도 UFO인 물체가 등장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UFO가 소재인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를 예상하고 보러 간 관객들의 뒤통수를 이 영화는 강하게 때려버립니다.

 

‘UFO 영화처럼 보이지만 사실 UFO 영화가 아니었다’는 것이 이 영화의 정확한 진상은 아닙니다. 일단 영화에서도 언급되듯이 요즘은 UFO(미확인 비행물체)가 아니라 UAP(미확인 공중 현상)라는 말을 쓰죠. 미확인 비행물체든 미확인 공중 현상이든 단어 자체의 의미를 보면 ‘놉’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진 재킷’이라고 부르는 ‘그것’을 가리키기에 완전히 틀린 표현은 아닙니다. 사실 보통 UFO라는 것은 외계인의 비행선이라는 개념으로 인식되어 있는데, 비행선을 외계 생물의 이동수단이자 공격수단이라는 기능으로서 규정한다면 이 기능 자체가 생물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경우도 UFO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진-재킷

 

대중문화에서 외계인의 비행물체가 묘사될 때 건버스터의 우주 괴수나 스타크래프트의 저그 종족같이 생물 유기체가 그 자체로 전투 비행 병기의 역할을 하는 것은 흔하게 볼 수 있는 설정입니다. 우주전쟁에 나오는 트라이포드 역시 외계인이 조종하는 기계인데도 뭔가 배설물 같은 걸 질질 흘리거나 마치 육식 동물처럼 사람을 잡아먹고 소화시키는 듯한 활동을 보여줍니다.

 

놉에 등장하는 비행물체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은 ‘생물’인데, 때문에 이 영화는 엄밀히 말하면 ‘괴수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포스터도 그렇고 스필버그의 ‘죠스’의 모티브가 강하다고 하지만 저는 영화의 배경 때문에 ‘네바다 불가사리(Tremors)’가 가장 비슷한 느낌의 작품으로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네바다 불가사리’는 영화의 규모 면에서는 ‘B급’과 ‘준 메이저급’ 사이에 애매하게 걸쳐 있는 영화이긴 하지만 사실은 어마어마한 작품입니다. ‘괴수 영화’라는 장르에서 가장 많은 마니아를 거느리고 있는 전설적인 작품 중 하나예요. 저는 어릴 때 TV에서 방영해준 이 영화를 볼 때 너무너무 재미있어서 거의 광적으로 이 영화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놉’을 볼 때 그 긴 세월을 지나서 ‘네바다 불가사리’를 처음 볼 때의 재미와 감흥이 되살아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긴 세월을 지나서’. 그렇습니다. 괴수 영화라는 장르에서 재미있고 볼만한 완성도의 영화는 살면서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허접한 완성도의 B급 영화가 대부분이고 유명 배우나 감독이 가끔 이 소재를 선택하더라도 순수하게 장르적 재미에 치중하기보다는 다른 갈래를 치는 경우가 많았죠. 뭐 그런 다양한 갈래와 층위로서 본다면 ‘놉’이야말로 그 정점의 작품이긴 하지만, 이 영화는 순수하게 괴수 영화의 장르적인 재미로도 ‘네바다 불가사리’에 필적한단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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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것만이 아닙니다. ‘진 재킷’이 하늘을 나는 거대 괴수로서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은 작품의 중반 이후입니다. 그전까지 이 작품은 UFO 미스터리 장르로서의 재미를 보여줍니다. 이 부분에서 가장 닮았다고 할만한 작품은 M. 나이트 샤말란의 ‘싸인’입니다. 어느 시점부터 샤말란 영화들이 호불호가 심하다는 평을 받고 있지만 ‘싸인’은 당시에 샤말란 감독이 연출력과 장르적 감각에서 속된 말로 ‘빨딱 선’ 상태에서 나온 대단한 작품이죠. 미스터리한 현상의 실체를 영화의 종반까지 철저히 감추면서 숨 막히는 긴장감과 스릴로 이야기 빌드업의 과정을 꽉꽉 채워 넣고 있습니다. 사실 놉이 싸인과 비슷한 느낌이긴 하지만 그 정도로 무섭거나 스릴이 넘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UFO라는 소재에 접근하는 장르적 관점은 상당히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이 영화는 중반까지는 예고편을 보고 관객이 예상하는 UFO 미스터리 장르 영화의 방향성을 따르고 있습니다. 장르적으로 따졌을 때 UFO 영화이기도 하고, 괴수 영화이기도 한 거예요. 앞에서 말했듯이 UFO와 UAP라는 단어 자체의 의미로 봤을 때도 하늘을 나는 괴수가 어느 정도는 그 의미 범주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고요.

 

놉-등장인물들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정말 새롭고 신선한 UFO 영화를 만들겠다’라는 구상이 이 영화의 출발점인 셈입니다. 물론 ‘스펙터클(구경거리)’이라는 이 영화의 핵심 테마와 그것을 둘러싼 세태에 대한 풍자라는 주제적 측면에서 봤을 때도 UFO는 거의 필연적으로 선택될만한 소재이고 조동필 감독 특유의 장난기와 장르적 상상력이 발휘될 재료로서도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합니다. UFO 영화로 정말 새롭고 놀라운 걸 보여주려면, 알고 보니 UFO가 아니었구나 라는 충격을 안겨주는 것이 가장 확실한 해법이죠.

 

이런 걸 보통 ‘장르를 비틀었다’고 표현하는데(UFO에서 괴수 장르로 전환), 저는 놉의 장르적 접근법은 ‘비틀기’보다는 ‘장르의 해부’라고 생각합니다. 놉에 등장하는 ‘진 재킷’은 영화가 마치 해부하듯이 그 실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전까지는 어떻게 봐도 우리가 익숙하게 봐온 대중문화 속 UFO의 모습 그것입니다. 인간에게 위해를 가하는 방식마저도 너무 뻔하죠. 가운데 구멍(?)으로 빨아들이는 것.

 

그런데 이 영화의 가장 충격적인 장르적 해부가 이 ‘구멍’에서부터 드러납니다. 놉은 그다지 무서운 영화가 아닙니다.(상영등급이 겨우 12세 관람가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아~ 정말 무서웠어’라고 이 영화의 감상을 말할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하지만 딱 두 가지 장면에서는 미치도록 소름 끼치는 감흥을 선사하는데, 그중 하나가 스티븐 연을 비롯한 수십 명의 인간들이 진 재킷의 ‘구멍’으로 빨려 들어간 후 벌어지는 끔찍한 참상입니다. 보통 UFO에 빨려 들어간다면 외계인의 실험대 위에 놓이거나 어디에 갇히거나 하는 상황이 상상되는데, 진 재킷은 육식 동물 같은 존재였고 정말 상상도 못 한 어마어마한 광경이 극장 스크린에서 펼쳐지죠. 최근 몇 년 동안 본 영화 중에서 가장 잊지 못할 장면이었습니다.

 

스티븐-연

 

영화의 최종 클라이맥스에서 진 재킷은 평상시의 원반 같은 모습에서 벗어나 어마어마한 하늘의 괴수 같은 형상으로 변모하는데, 이런 아이디어도 UFO라는 소재를 극한까지 해부해서 도달한 상상력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진 재킨의 형상은 성경에서 묘사된 천사의 기괴한 모습 같기도 하고 에반게리온의 사도와 비슷한 느낌도 듭니다. 이 영화에 대놓고 재패니메이션의 걸작 ‘아키라’를 오마쥬한 장면도 나왔듯이 진 재킷의 디자인 또한 에반게리온의 영향을 어느 정도는 받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저에게 이 영화는 UFO라는 장르를 ‘비틀어서’ 괴수 영화로의 변주를 보여준 것이 아니라, UFO라는 장르를 극한의 상상력으로 ‘해부해서’ 가장 기이하고 놀라운 실체(‘UFO가 아니었구나’라는 충격을 선사할만한)에 도달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장르 비틀기라는 접근법으로는 이런 어마어마한 결과물에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조동필 정도의 놀라운 상상력으로 극한까지 해부하고 파고 들어갔을 때 이런 지점에 도달할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진 재킷의 살육 장면과 함께 이 영화에서 정말 미치도록 소름 끼치는 ‘두 가지 장면’ 중 하나는 바로 침팬지 ‘고디’가 등장하는 장면이죠. 사실상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핵심 호러 시퀀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무섭기도 하고, 이 영화의 첫 장면으로 나오고 중간에도 반복해서 나올 만큼 엄청나게 중요한 장면이기도 합니다. 이 장면에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상징과 핵심 메시지가 담겨 있기도 하지만, 장르 영화 감독으로서 조동필의 탁월한 호러 연출 감각이 분명하게 드러나기도 합니다.

 

비슷한 시기에 데뷔해서 엄청난 임팩트의 호러 영화를 계속 만든다는 점 때문에 조동필과 자주 비교되는 감독이 아리 애스터인데, 아리 애스터가 철저하게 호러 장면의 ‘강도(시각적 임팩트)’로 승부를 보는 타입이라면 조동필은 관객과 탁월하게 밀당을 하는 타입입니다. 고디 장면을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반복해서 분량을 조금씩 늘려가며 보여주는 구성도 이 장면이 가지는 중요한 의미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가 가진 호러 장르적인 면모에서 조동필 특유의 센스와 장난기가 발휘된 구성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침팬지-고디

 

뛰어난 호러 감독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조동필도 영화에서 상당한 장난기가 느껴집니다. 손안에 엄청 무섭고 소름 끼치는 호러의 재료를 들고 있으면서 이걸로 슬쩍슬쩍 관객 옆구리와 겨드랑이를 찔러대며 장난을 친다는 느낌? 그 무서운 재료를 있는 그대로 관객의 뇌 속에 처박아 버리는 아리 애스터와 비교하면 확실히 전체적인 공포감은 떨어지지만(말했듯이 놉은 그다지 무서운 영화가 아닙니다) 상상력과 호러의 감각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는 호러 감독으로 조동필의 역량도 어마어마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놉을 보고 와서 반쯤은 정신이 나간 상태입니다. 일단 놉을 다시 한번 보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도 크고(그런데 극장 티켓값이 너무 비싸고... 봐야할 게 너무 쌓여서 시간도 없고...) 조동필의 다음 작품이 언제 나올지 그 기다림을 생각해도 미쳐버릴 지경입니다. 물론 방금 쓴 문장은 상당한 과장입니다. 그래도 이 포스팅에서 분명히 밝혔듯이 정말 오랫동안 유지되어 오던 저의 마음속 넘버원 영화감독 자리에서 교체가 일어났다는 것. 이것이 저에게는 너무나도 큰 사건입니다. 앞으로 제 인생에서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는. 조동필 같은 미친 상상력의 천재 감독이 20년, 30년 이내에 또 등장할 수 있을까요?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지만, 앞으로 제 마음속 넘버원 영화감독의 자리에 새롭게 오를 감독이 두 세 명 정도는 더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런 감독이 등장할 때까지는, 그저 조동필(과 야구치 시노부)의 신작 소식만 미치도록 기다리며 살아갈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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