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동물이 등장하는 영화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물론 귀여운 영화가 아니라 무서운 영화요. ‘동물 습격 재난 영화’라고 포스팅 제목에 썼는데, 이게 딱 맞아떨어지는 장르의 명칭이라기에는 좀 애매한 듯하네요.
생각보다 이 장르에서 좋은 영화들이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지금 시대에는 메이저 급 상업영화의 소재로는 거의 선택되지 못하고 있죠. 사실 이 장르는 제작비가 제법 들어가야 그럴듯한 때깔이 나오는데, 히어로 장르나 SF, 액션 대작 쪽으로 상업 영화 자본이 몰리다 보니 이런 마이너한 장르는 너무 살아남기 힘들게 된 것 같습니다. 그나마 20세기에는 이 장르에서도 유명 배우가 출연하는 메이저 급 상업 영화가 종종 나왔었거든요. 1975년에 나온 스필버그의 ‘죠스’의 영향력이 80년대와 90년대 중반까지는 계속 미치고 있었으니까요. 이 순위에 포함된 영화들도 20세기에 나온 영화가 많습니다. 특히 최상위권에 올린 영화들은 대부분 20세기 작품입니다.
이 포스팅에서 저의 주관적인 기준으로 가장 재미있게 본 동물 습격 재난 영화의 추천 순위를 20위까지 매겼습니다. 그런데 ‘동물’이라는 범주가 조금 애매하긴 한데요. 공룡이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괴생물체가 등장하는 크리쳐 영화들은 당연히 제외했습니다. 현실에 존재하는 동물과 외형은 유사하지만 실제로는 영화에서 만들어진 가상의 종이거나, 유전자 변형 등의 픽션적인 사유로 비현실적인 능력을 가지게 된 동물이 등장하는 경우는.... 그 비현실성이 너무 과하지 않다면 순위에 포함시켰습니다. 원래 영화의 재미를 위해 어느 정도 비현실적인 과장은 필요하니까요.
20위 버닝 브라이트 (Burning Bright, 2010)
지구에 존재하는 동물 중에서 인간이 실제로 마주쳤을 때 가장 위험하고 두려운 동물은 무엇일까요? 역시 육상에 사는 육식동물 중에서도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호랑이나 사자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인간에게 가장 두려운 동물이라고 할 수 있는 호랑이가 의외로 동물 재난 영화의 소재로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단순한 이유로는 대부분 아시아 지역에 분포된 호랑이의 서식지 때문이겠죠. 할리우드나 서구권 영화에서 호랑이가 등장한다면 야생이 아니라 동물원이나 서커스단에서 인간에 의해 사육된 개체가 등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버닝 브라이트’도 동물원을 만들기 위해 사들인 호랑이가 집안에 풀려나면서 벌어지는 재난을 다룹니다. 솔직히 썩 잘 만든 영화는 아니지만 호랑이가 등장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점수를 줄 수 있습니다. CG도 조악하고 전체적으로 호랑이의 느낌이 아주 사실적이지는 않아서 가장 중요한 호랑이에게 공격받는다는 공포심과 위압감이 크게 느껴지지는 않아요. ‘며칠 동안 굶주린 호랑이’라는 설정도 공포보다는 힘없이 비실비실한 상태의 호랑이라는 느낌을 주고요. 그래도 좁은 집에서 호랑이와 숨바꼭질을 벌이는 상황 자체의 서스펜스는 확실히 살아 있고 예상 못한 반전이 있어서 내용도 나름 흥미롭습니다. 아주 재미있지는 않아도 순위권에 턱걸이로 넣을 수는 있는 영화입니다.
19위 브리드 (The Breed, 2006)
‘13일의 금요일’같이 젊은 남녀 무리가 등장하는 휴양지 호러에 동물 재난 장르를 접목시킨 영화입니다. 어떤 연구소에서 실험 재료로 쓰이다 미쳐버린 들개 무리들이 근처의 별장에 놀러 온 젊은 남녀 무리를 공격하는 내용입니다. 메이저 급 상업 영화는 아니지만 ‘미셸 로드리게즈’라는 유명한 배우도 나오고 나름대로 장르영화로서 괜찮은 때깔을 보여줍니다. 내용 전개도 이런 장르의 정석적인 전개를 충실히 따르며 굉장히 무난하게 볼만한 수준으로 완성된 영화예요. 들개 무리들이 호랑이나 곰 같은 덩치 큰 동물들에 비하면 확실히 위압감은 약한 편인데 그래도 몇몇 장면에서는 꽤나 공포스럽게 연출을 잘했더라고요.
18위 대호 (The Tiger, 2015)
호랑이가 등장해서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장면이 나오지만 사실 이 영화는 동물 습격 재난 장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영화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호랑이가 사람들에게 심한 피해를 주는 재난이라서 제거하려는 게 아니라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해수구제 사업의 일환으로 제거의 대상이 된 거라서요. 사람이 죽는 장면이 나와도 전혀 무섭지 않은 영화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쟁 영화들이 그렇죠. 이 영화도 호랑이가 자기를 사냥하러 온 군인과 포수들을 몰살시키는 장면은 그냥 전쟁 영화의 전투씬을 연상케 합니다. 특히 일본군을 쓸어버리는 장면은 전쟁 영웅의 활약으로까지 보일 정도죠. 다만 그래도 CG로 잘 구현된 거대 호랑이의 모습 자체는 위압감과 공포가 느껴지고, 사람을 물어뜯어 죽이는 장면들은 확실히 동물 습격 영화다운 느낌을 보여줍니다. 한국영화로는 상당한 제작비가 투입된 메이저 상업 영화라서 영상 때깔이 좋고 호랑이의 비주얼도 굉장히 사실적이라서 이런 시각적인 측면은 높은 점수를 줄 만합니다. 동물 재난 영화라는 장르적인 재미는 확실히 부족하지만 그냥 영화 자체로는 충분히 재미있고 볼만한 작품입니다.
17위 블랙 워터 (Black Water, 2007)
악어의 모습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악어 영화입니다. 제목으로 알 수 있듯이 수면 아래가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운 습지가 배경인데 오히려 그래서 동물 습격 장르이면서 동시에 공포 영화스러운 분위기까지도 강하게 풍기는 영화입니다. 배를 타고 습지대를 관광하다가 악어의 공격을 받아 배가 전복되고 간신히 나무 위에 올라 생존을 위해 버틴다는 내용의 조난물입니다. 상영 시간도 짧고 굉장히 단순한 내용이지만 그만큼 상당히 밀도 높은 서스펜서를 보여줍니다. 등장인물도 적고 장소도 제한적인 데다 악어의 모습도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에 제작비가 상당히 저렴했을 것 같습니다. 저예산으로 효율 좋게 완성해낸 장르영화의 수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6위 차우 (Chaw, 2009)
할리우드도 마찬가지지만 한국 영화에서도 동물 습격 재난 영화는 거의 보기 힘든 장르입니다. 차우가 개봉했을 때도 한국 영화로는 굉장히 이례적이고 파격적인 장르와 소재라고 화제가 되었었죠. 영화의 반응은 호불호가 갈린 편이었고 흥행도 성공적이지는 않았지만, 저는 원래 좋아하는 장르라서 꽤 재미있게 봤습니다. 동물 습격 장르인데도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너무 가볍고 코믹하다는 게 호불호가 갈린 가장 큰 이유였는데요. 저는 코믹한 장면들에는 큰 불만이 없지만 영화의 수위가 좀 더 셌다면 괜찮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은 들었습니다. 영화의 코믹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살인 멧돼지의 공포와 위압감은 확실히 괜찮았거든요. 그런데 이런 무시무시한 동물을 등장시켰음에도 기대보다 사람이 많이 죽지도 않고 잔인한 장면도 별로 없어서 조금 맥이 빠졌습니다. 그래도 한국 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소재로 이 정도 완성도를 보여준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만족은 했습니다.
15위 플래시드 (Lake Placid, 1999)
A급 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메이저 급이라고 할 수 있는 악어 영화입니다. 메이저 급이기에 영화 자체도 꽤 유명하고 이후 속편도 계속 제작되어서 5편까지 나왔습니다. 물론 2편부터는 메이저 급 근처도 못 가는 허접한 영화들이지만요. 하지만 1편은 확실히 메이저 영화라고 할 수 있는 게 감독도 스티브 마이너 라는 나름 호러 장르에서 이름 있는 감독이고 주연 배우는 빌 풀먼입니다. 그 외 브리짓 폰다, 올리버 플랫 같은 나름 유명한 배우들이 출연했고요. 영화 자체의 완성도도 높고 재미도 있습니다. 플롯이 굉장히 뻔하고 정석적이지만 그만큼 탄탄하고 안정적인 장르 영화의 재미를 보여줍니다. 호수에서 의문의 사망 사고가 발생하고 원인을 조사하다가 거대 악어의 존재를 알게 되어 수사 책임자와 악어 전문가 등 여러 캐릭터들이 연합해서 악어 사냥에 나선다는... 아주 정석적인 동물 재난 영화의 플롯이죠. 엄청난 명작까지는 아니고 식인 악어를 소재로 무난한 메이저 영화의 퀄리티로 완성된 작품입니다.
14위 47미터 (47 Meters Down, 2017)
동물 습격 재난 영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물이 상어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듯 동물 재난 영화가 그다지 많이 제작되는 장르가 아닌데 상어 영화만은 엄청 많이 제작되더군요. 그중에는 ‘메가로돈’ 같은 블록버스터 급의 영화도 있고요. 다만 메가로돈은 너무 비현실적인 괴수 수준의 상어가 나와서 이 순위에는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요하네스 로버츠 감독의 ‘47미터’는 제가 본 수많은 상어 영화 중에서 가장 독특한 공포를 맛보게 해 준 영화입니다. 사실 상어 영화라도 대부분 인간은 물 밖의 공간에서 상어와 사투를 벌이는데 이 영화는 내내 물속에서 내용이 진행됩니다. 상어도 무섭지만 산소통 하나에 의지한 채 물 속에 갇혀버린 상황의 공포도 매우 아찔합니다. 사실 상어보다도 오히려 이쪽의 공포가 메인이에요. 그런데 후반부에 겨우겨우 물 밖으로 탈출을 시도하는 상황이 되면 본격적으로 상어들이 활약하기 시작합니다. 조명탄을 켰을 때 주위가 온통 상어에 둘러싸여 있던 장면의 공포는 정말이지... 이 영화도 나름 메이저 급에 가까운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독도 나름 호러 장르에서 주목받는 감독이고 주연 배우도 과거에 하이틴 스타로 잘 나갔던 맨디 무어라서 확실히 메이저 영화스러운 때깔을 보여줍니다.
13위 쿠조 (Cujo, 1983)
스티븐 킹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최근에 극장에서 본 ‘고스트 버스터즈 라이즈’라는 영화에서 이 영화를 학교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비디오로 보여주는 장면이 나오더군요. 그만큼 고전 호러 명작으로 유명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굉장히 독특하고 재미있습니다. 박쥐에 물려서 광견병에 걸린 대형견(세인트 버나드)이 등장하는데 옛날 영화라서 CG 없이 실제 개를 분장시켜서 촬영했기에 영화의 장면들이 굉장히 사실적입니다. 개가 연기도 아주 잘하고요. 광견병에 걸려서 고름과 타액을 질질 흘리며 점점 좀비처럼 망가져 가는 개의 비주얼이 굉장히 섬뜩합니다. 그런데 세인트 버나드가 원래 험상궂게 생긴 개는 아니라서 마냥 무섭다기보다는 조금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1992년에 나온 ‘베토벤’이라는 영화에서는 세인트 버나드가 엄청 착하고 사랑스러운 이미지로 등장했죠. 쿠조에서는 한 여성과 그녀의 어린 아들이 고장 난 자동차 안에 갇힌 채 광견병에 걸린 세인트 버나드의 공격을 받습니다. 아들을 지키기 위한 엄마의 처절한 사투가 흥미롭게 그려집니다. 확실히 명작이라 할 만큼 재미있고 잘 만든 작품이지만 앞에서 언급했듯 개가 좀 불쌍하게 생겨서 조금은 공포감이 희석되기도 합니다. 사실 개의 사정을 본다면 원래 착하고 순한 개인데 병에 걸려 미치게 된 것뿐이니까요.
12위 새 (The Birds, 1963)
1963년에 나온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입니다. 이 순위에 포함된 영화 중에서 가장 ‘옛날’에 나온 영화입니다. 정말 너무 옛날 영화다 보니 확실히 지금 기준으로 봐서는 크게 재미있는 영화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히치콕이 워낙에 서스펜스 연출의 대가이다 보니 옛날 영화인데도 번득이는 연출들이 자주 등장하고 소재와 내용 자체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아무 이유도 설명도 없이 갑자기 새들이 인간을 공격하는 불가해한 상황의 공포가 매우 잘 그려졌습니다.
11위 스네이크 온 어 플레인 (Snakes on a Plane, 2006)
동물 재난 영화들 중 메이저 급 영화는 별로 없고 대부분 B급 저예산 영화인데 이 영화는 사무엘 L. 잭슨 같은 유명 배우가 출연하고 어느 정도 메이저 급의 규모로 제작되었는데 뭔가 묘하게 ‘B급 재난 영화’의 대명사로 꼽히고 있습니다. 사실 타란티노 영화처럼 영화 자체의 규모나 퀄리티 보다는 스타일 자체가 B급 갬-성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내용은 제목 그대로 비행기 안에 독사 무리들이 풀려나면서 벌어지는 재난을 다룹니다. B급 갬성이 충만한 끔찍한 난장판이 벌어지는데 상당히 완성도 높고 재미있습니다. 사고가 터지면 그 자체로 끔찍한 재난의 상황이 되는 비행기라는 공간이 배경이기에 더욱 긴장감이 넘치고요. 동물 재난 영화로서도, 항공 사고 재난 영화로서도 기본 이상의 재미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10위 아라크네의 비밀 (Arachnophobia, 1990)
이 영화를 순위에 포함시킬지 말지 고민했습니다. ‘동물이 아니라 곤충이잖아!’ 라는 지적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요. 그런데 곤충도 동물의 범주에 들어가긴 합니다. 오히려 곤충의 범주를 매우 좁게 육각류로 한정하면 거미는 곤충이 아니라 그냥 절지동물로 분류해버릴 수도 있죠. 그런데 확실히 이 영화는 순위에 포함된 다른 영화들과 비교해서 조금 튀는 영화입니다. 이런 절지동물류.... 우리가 편하게 ‘벌레’라고 부르는 생물이 등장하는 재난 영화는 동물 재난 영화 중에서도 특히 드물거든요. 있다고 하더라도 뭔가 실험이나 방사능 유출 등의 사태로 덩치가 커진 벌레들이 등장하는 영화들이 대부분입니다. 거대 개미가 등장하는 ‘THEM!’과 ‘개미왕국’, 거대 바퀴벌레가 등장하는 ‘공포의 촉수’, 거대 거미가 등장하는 ‘프릭스’ 같은 영화들이 유명합니다. 이런 비현실적인 생물이 등장하는 영화는 이 순위에서는 제외했습니다. 그런데 ‘아라크네의 비밀’도 마지막에 상당히 큰 사이즈의 거미가 등장하긴 합니다. 하지만 프릭스 같은 인간 크기의 괴수 거미가 아니라 적당히 현실적으로 큰 사이즈인 데다 그나마도 마지막에 잠깐 나올 뿐입니다. 영화의 대부분의 장면에서 나오는 거미는 우리가 실생활에서 흔히 보는 사이즈이고 단지 강력한 독이 위협적일 뿐이에요. 분명 조금 튀는 영화이긴 하지만 결국 순위에 포함시킨 이유는 그냥 영화가 너무너무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동물 재난 영화 중에서 이 정도로 재미있고 잘 만든 영화가 정말 흔치 않거든요.
9위 더 그레이 (The Grey, 2011)
비행기 추락 사고를 다루는 조난 서바이벌 영화입니다. 서바이벌 영화에서 은근히 동물에게 습격당하는 내용이 많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영화의 전체 내용 중에서 일부 에피소드로 등장할 뿐 영화의 메인 내용이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더 그레이’는 비행기 추락 사고의 생존자들이 늑대 무리의 공격을 받는 것이 상당히 본격적인 내용으로 그려집니다. 조 카나한 감독에 리암 니슨 주연으로 국내 극장에도 정식 개봉한 메이저 영화입니다. 영화는 굉장히 완성도가 높고 사실적입니다. 너무 사실적으로 절망적인 상황들을 그려내기 때문에 보기가 좀 괴로운 영화이기도 해요. 늑대 무리도 엄청 무섭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봤는데 관객이 거의 없이 썰렁한 상영관 환경이라서 더욱 영화에서 묘사되는 추위와 늑대 무리의 공포가 피부로 살벌하게 와닿더군요. 영화를 보면서 온몸에 소름이 좍좍 돋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사실 동물 재난 영화는 무섭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오락 영화적인 재미도 만끽할 수 있는 장르인데 이 영화는 정말 공포와 절망뿐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공포와 절망 때문에 동물 재난 영화이자 조난 서바이벌 영화로서 상당히 훌륭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8위 로그 (Rogue, 2007)
앞에서 동물 재난 영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물이 ‘상어’라고 언급했는데요. 그런데 이 순위에 가장 많이 포함된 영화는 상어 영화가 아니라 악어 영화입니다. 악어가 등장하는 영화가 상어 영화만큼은 아니지만 그다음으로 많이 제작되었고, 제가 재미있게 본 영화는 악어 영화가 좀 더 많습니다. ‘로그’도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악어 영화입니다. 그렉 맥린이라는 호주 감독이 만들었는데 이 감독이 호러나 스릴러 장르에서 실력이 굉장히 뛰어납니다. 로그 말고도 이 감독의 대표작 중 ‘울프 크릭’이라는 호러 영화도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로그의 내용 자체는 ‘블랙워터’와 비슷합니다. 다만 사람이 좀 더 많이 등장해요. 휴양지에서 보트 관광을 하던 관광객들이 악어의 공격을 받고 살아남기 위해 탈출하는 내용입니다. 영화의 내용이 굉장히 짧고 단순하게 느껴지는데 감독이 연출을 잘해서 서스펜스는 상당합니다. 연출만 봐도 확실히 퀄리티가 높고 라다 미첼, 샘 워싱턴, 미아 바시코프스카 같은 네임드 배우들도 출연해서 거의 메이저 급이라고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단순한 플롯이지만 뛰어난 연출로 승부하는 정공법의 장르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7위 피라냐 (Piranha 3D, 2010)
성공한 호러 영화는 시리즈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물 재난 영화도 호러와 근접한 장르라서 성공하면 속편 시리즈가 곧잘 나옵니다. 대부분 1편이 가장 훌륭하지만 속편들도 재미있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순위에서는 여러 편의 시리즈가 나오고 그 시리즈가 전부 재미있는 영화라도 시리즈 중에서 한편만을 선정했습니다. 물론 대부분 1편이고요. ‘피라냐’도 여러 편의 시리즈가 나온 영화입니다. 전부 이어지는 시리즈는 아니고 리메이크나 리부트 작업으로 여러 편이 나왔습니다. 이 순위에서 제가 선정한 영화는 2010년에 나온 알렉상드르 아야 감독의 ‘피라냐’입니다. 영어 원제로는 ‘Piranha 3D’라는 제목으로 개봉한 영화죠. 극장에서 엄청 재미있게 봤습니다. 굉장히 자극적인 영화예요. 이 순위권에 있는 영화 중에서 가장 잔인하고 가장 야한 영화입니다. 그런데 20세기에 나온 피라냐 영화들도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감독들도 엄청 네임드예요. 1편은 조 단테이고 2편은 무려 제임스 카메론입니다. 제임스 카메론의 데뷔작인데, 여러 가지 사정들로 인해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 치고는 상당히 허접한 완성도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영화도 재미있게 봤어요. 물론 조 단테의 1편보다는 확실히 못합니다. 조 단테의 ‘피라냐’가 상당히 괜찮아서 이 순위에서 어떤 작품을 선정할지 고민을 좀 했는데요. 역시 20세기 영화들 보다는 21세기 영화가 이 장르에서는 좀 더 희소성이 있어서 2010년작 피라냐를 선정했습니다. 물론 조 단테의 피라냐 못지않게 재미있기도 하고요. 엄청 잔인하기는 하지만 B급 갬-성으로 아주 유쾌하게 만들었기에 킬링타임용으로 즐기면서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6위 아나콘다 (Anaconda, 1997)
이 순위에 포함된 영화 중에서 제가 가장 오래전에 극장에서 본 영화입니다. 1997년작으로 제가 이 시기부터 영화에 빠져서 극장에 많이 다니게 되었거든요. 그전에 나온 영화들은 대부분 비디오로 빌려보거나 TV에 방영되는 걸 봤었죠. ‘아나콘다’는 제니퍼 로페즈, 아이스 큐브, 존 보이트 같은 유명 배우들이 출연한 메이저 영화입니다. 그러니 제가 극장까지 가서 보게 된 거겠죠. 어린 시절이었는데 정말 너무너무 재미있게 봤습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아나콘다의 위용이 어린 시절의 관점으로는 거대 괴수 수준이었기에 극장에서 엄청 압도당하는 기분이었습니다. 뭔가 엄청 큰 스케일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어요. 확실히 CG도 훌륭했고 아나콘다의 위압감과 공포가 정말 대단했습니다. 동물 재난 영화를 극장에서 본 게 몇 편 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짜릿한 극장 관람 경험을 하게 해 준 영화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5위 엘리게이터 (Alligator, 1980)
엘리게이터는 악어 영화의 고전이자 정점에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1편과 2편이 있는데 1편을 TV에서 방영해주는 걸 보고 나서는 이후 비디오 가게에서 엄청 많이 빌려봤습니다. 1편과 2편 모두 정말 많이 봤어요. 일반적으로 평가는 1편이 더 좋지만 저는 1편과 2편이 동급이라고 생각합니다. 2편이 유일하게 아쉬운 점은 악어의 최후가 1편보다 조금 허무하다는 정도? 그래도 두 영화 모두 너무 재미있어요. 동물 습격 영화 중에서 대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대도시 하수구의 악어 전설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라서 당연히 영화의 배경도 대도시입니다. 원래 도시는 사람을 죽이는 야생 동물의 위협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인데 이 영화에서는 도시의 일반 가정집과 골목길, 파티장, 유원지 등에서 거대 악어가 나타나 소동을 부리니 그것만으로도 엄청 흥미진진합니다. 엘리게이터를 보고 악어 영화에 푹 빠져서 비디오 가게에서 악어가 등장할 것 같은 제목의 영화들을 샅샅이 뒤져서 빌려보곤 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허접한 3류 영화였고 심지어 제목만 보고 ‘크로커다일 던디’를 빌려봤다가 전혀 기대한 내용이 아니라서 당황했던 적도 있습니다. 이 영화가 사실 엘리게이터보다 더 유명한 영화라는 걸 나중에 알았죠. 동물 재난 영화가 아니라 코미디 영화였지만.
4위 딥 블루 씨 (Deep Blue Sea, 1999)
1999년 작이고 레니 할린이라는 네임드 감독에 사무엘 L. 잭슨, 토머스 제인 같은 배우들이 출연한 메이저 급 퀄리티의 상어 영화입니다. 당연히 극장에 개봉했고 저도 극장에서 봤습니다. 사실 긴 설명이 필요치도 않은 상어 영화의 명작입니다. 동물 습격 영화나 상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안 본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레니 할린은 90년대까지만 해도 최정상급의 감독이었습니다. 다이하드2, 클리프행어 등 블록버스터 급 명작 액션 영화를 많이 만들었죠. 클리프행어는 단언컨대 90년대에 나온 최고의 액션 영화 중 하나예요. 그렇게 엄청 잘 나가는 감독이었는데 ‘컷스로트 아일랜드’라는 블록버스터 영화 한 편을 완전히 말아먹는 바람에 이후 하락세를 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하락세 와중에 또 딥 블루 씨라는 명작을 만들어서 이때 레니 할린이 부활했다 라는 소리도 나왔었죠. 물론 끝내 예전과 같은 정상급 감독의 위상을 회복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확실히 딥 블루 씨 만큼은 레니 할린이 만든 최고의 영화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기준에서는 레니 할린의 영화 중 ‘클리프행어’가 넘사벽 원톱이고 딥 블루 씨를 2위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딥 블루 씨가 특히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은 파격적인 클리셰 탈피의 전개를 많이 보여주었던 점입니다. 장르 영화의 클리셰로는 무조건 죽겠다 싶은 캐릭터가 끝까지 살아남고, 안 죽을 거 같은 캐릭터를 가차 없이 죽여버립니다. 정말 ‘허를 찌르는 전개’가 계속 나오는 영화이고, 그래서 당연히 엄청나게 재미있습니다. 상어들도 엄청 무서워요. 단순히 생김새나 피지컬이 아니라 ‘뛰어난 지능’을 가진 육식동물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일 수 있는지를 너무도 잘 보여준 영화입니다. 명작을 넘어서 걸작이라는 칭호까지도 가능한 최고의 상어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3위 백컨트리: 야생곰의 습격 (Backcountry, 2014)
동물 습격 재난 영화라는 포스팅을 작성하게 된 이유가 어쩌면 이 영화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 영화를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런 게 아니라, 그보다 근본적으로 제가 동물 재난 영화라는 장르에 빠지게 된 이유가 이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앞 순위에 등장한 영화들 중 대부분은 이 영화를 보기 전에 봤었고 예전부터 이 장르를 좋아하긴 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 한동안 완전히 이 장르에 미쳐버려서 옛날 영화, 최근 영화, 이미 본 영화, 안 본 영화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찾아서 봤거든요. 그렇게 본 영화들을 대충 머릿속에 리스트로 정리해 놓고 있다가 이번에 포스팅으로 순위 글을 써보게 된 거예요. 그러니 실질적으로 백컨트리라는 영화 때문에 이 포스팅이 탄생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위라는 높은 순위이고 이 영화 때문에 비슷한 장르의 영화를 미친 듯이 찾아봤다고 언급했으니, 저에게 이 영화가 얼마나 마음에 들었는지 짐작이 될 것입니다.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영화입니다. 감독도 배우도 거의 무명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경험은 정말 흔하지 않습니다. 그다지 기대할 요소가 없는 영화인데, 막상 보고 나니 이렇게 역대급으로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영화가 될 줄이야. 한 커플이 캠핑을 갔다가 곰에게 공격받게 되는 내용입니다. 등장인물도 적고, 플롯이 지극히 단순합니다. 굉장히 소품 느낌이 나는 영화예요. 하지만 이런 단순한 플롯과 소품 느낌이 오히려 영화의 사실성을 극대화시킵니다. 등장하는 곰도 덩치가 별로 크지도 않습니다. 곰이 등장하는 또 다른 동물 재난 영화인 ‘그리즐리’나 ‘메이즈 헌터’ 같은 작품에서는 그야말로 집채만 한 곰이 등장하거든요. 백컨트리는 이런 과장이 없이 지극히 사실적인 상황 연출로 인해 더욱 공포감이 극대화됩니다. 무서워요. 정말 무섭습니다. 단언컨대 제가 영화에서 본 동물이 사람을 잡아먹는 장면 중 이 영화의 장면이 가장 무서웠습니다. 그야말로 산 채로 곰에게 뜯어 먹히는 상황을 간접 체험하는 수준이었어요. 이런 영화를 더 보고 싶어서 열심히 비슷한 내용의 영화들을 찾아봤지만, 이 정도로 재미있고 잘 만든 영화는 찾을 수가 없더군요. 아직 제가 찾지 못한 영화나, 미래에 나올 영화 중에서 꼭 백컨트리 같은 영화를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위 고스트 앤 다크니스 (The Ghost and the Darkness, 1996)
최강의 육상 육식 동물은 호랑이와 사자인데, 주로 아시아 권에 서식하는 호랑이와는 달리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사자는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종종 소재로 등장합니다. 역시 동물 재난 영화 최상위권 순위에 호랑이나 사자가 등장하는 영화가 한 편 정도는 있어야죠. 다행히 사자가 소재로 등장하는 엄청 잘 만든 영화가 있습니다. 1996년에 나온 ‘고스트 앤 다크니스’ 라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의 내용은 실화입니다. ‘고스트’와 ‘다크니스’라는 이름이 붙은 두 마리의 사자가 등장합니다. 엄청 무서운 사자들이라서 이름도 무시무시한 걸로 붙인 거겠죠. 이 두 마리의 사자에게 죽은 사람의 수가 무려 135명이라고 합니다. 이 사자들은 현재 미국 시카고의 박물관에 박제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영화는 발 킬머와 마이클 더글라스 라는 유명 배우가 출연해 메이저 급 상업 영화로 제작되었습니다. 감독은 스티븐 홉킨스인데 아주 유명한 감독은 아니지만 나름 괜찮은 영화들을 여러 편 만든 감독이에요. 고스트 앤 다크니스는 제가 이 순위에서 2위로 선정한 걸로 알 수 있듯이 정말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인간 입장에서는 가장 위험하고 두려운 육상 동물인 사자의 위압감과 공포를 정말 잘 살렸습니다. 영화의 플롯과 내용 전개가 아주 탄탄한데, 처음에는 평화로운 분위기로 시작했다가 서서히 공포가 다가오고 점점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까지 번지는 빌드업이 일품입니다. 내용 전개가 너무 흥미진진하고 중요한 국면에서 세게 임팩트를 주는 강렬한 장면들도 잘 배치했습니다. 사자를 트랩에 가두는 데 성공했지만 악마와도 같은 무시무시한 사자의 위압감에 사냥꾼들이 멘붕해서 총을 한 발도 명중시키지 못하는 장면이나,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병원 대학살 장면 같은 동물 재난 장르의 역사에 남을 만한 명장면들이 많습니다. ‘백수의 왕’이라고 불리는 사자의 위엄과 공포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영화입니다.
1위 죠스 (Jaws, 1975)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는 동물 습격 재난 영화 중에서 부동의 원톱이라고 할 수 있는 최고의 걸작 영화입니다. 감독부터가 레전드이고 영화의 흥행 성적도 엄청납니다. 단순한 메이저 급 상업 영화 수준이 아니라 영화 역사상 ‘최초의 블록버스터’라고 불리기도 하는 작품입니다. 죠스의 어마어마한 성공은 영화 산업의 패러다임까지 바꾸는 수준이었죠. 그만큼 위대한 영화이고, 동물 재난 영화로서도 엄청나게 재미있습니다. 상어 소재의 재난 영화는 21세기 이후에도 꾸준히 많이 제작되는 편인데, 최근 작품들보다 오히려 1975년에 만들어진 죠스에 등장하는 상어가 더욱 사실적으로 느껴집니다. CG 기술이 없던 시대라서 상어 모양으로 턱과 머리가 움직이는 로봇(이라기보다는 기계)을 만들어서 촬영했는데 몸 전체의 움직임은 확실히 부자연스럽지만 물 밖으로 머리를 불쑥불쑥 내밀 때의 느낌은 CG로 만들어진 요즘 상어 영화들보다 훨씬 공포스럽습니다. 또한 몇몇 장면들은 실제 야생 상어를 촬영하기도 했다더군요. 영화 역사상 최고의 감독 중 하나인 스필버그의 작품이라 주요 장면의 연출들이 놀라운 수준입니다. 영화감독 지망생들이 교과서 내지는 바이블로 삼아야 할 명장면들이 수도 없이 나옵니다. 존 윌리엄스의 음악도 엄청 좋고요. 정말 몇 번을 반복해서 봐도 감탄이 나오는 영화입니다. 엄청 성공한 영화답게 속편 시리즈도 여러 편 나왔는데요. 저는 2편과 3편을 봤는데 1편 정도로 걸작은 아니지만 모두 재미있게 봤습니다. 상어 소재의 영화는 21세기에도 꾸준히 많이 제작되고 있는데 완성도 높은 영화는 별로 없어서 너무 아쉽습니다. 죠스 정도의 걸작은 영영 기대할 수 없겠지만 딥 블루 씨 정도의 영화라도 다시 나와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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