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영화계에 (좀 낡은 표현이긴 하지만)‘혜성처럼 등장한’ 천재 영화감독 하마구치 류스케의 걸작 ‘드라이브 마이 카’가 미국의 소위 ‘오스카 레이스’라 불리는 어워드 시즌에서 상당한 돌풍을 일으키며 최종 아카데미 시상식의 수상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매우 변방으로 취급받는 ‘아시아 영화’라는 공통된 카테고리로 묶자면 현재 드라이브 마이 카의 미국 어워드 선전은 2년 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의 행보를 떠올리게 합니다. 현재 분위기로는 드라이 마이 카도 기생충처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후보는 물론이거니와 수상 작품으로 호명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일단 거의 확실시되는 수상 부문은 국제영화상(기존 외국어영화상)입니다. 예상대로 드라이브 마이 카가 국제영화상을 받게 된다면 일본 영화로는 2009년의 ‘굿바이’(타키타 요지로 감독) 이후 13년 만입니다. 동아시아 영화로는 기생충 이후 2년 만이고요.
그런데 아카데미 국제영화상(외국어영화상)이야 매년 (미국 영화계 기준)변방 국가 영화들이 한 편씩 반드시 받고 있으니 엄청나게 대단한 업적까지는 아니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미 과거에 수많은 아시아 영화들이 이 상을 받았고 기생충으로 한국 영화가 처음 받은 것도 다소 늦은 느낌이었죠.
그런데 기생충은 국제영화상뿐 아니라 무려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이라는 시상식의 주요 부문도 수상하며 총 4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명실상부한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드라이브 마이 카가 같은 동아시아 영화로서 이런 기생충의 업적을 뒤이을 수 있을까요?
2021년 연말부터 현재까지 계속 미국에서는 수많은 어워드들이 열리는 ‘어워드 시즌’이 진행 중입니다. 이 수많은 시상식에서 드라이브 마이 카는 분명히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국제영화상 부문에서 큰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작품상과 감독상 같은 주요 부문에서도 수상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2022년 1월 19일 기준) 드라이브 마이 카가 작품상을 수상한 미국 비평가 협회상은 총 6개입니다. 바로 뉴욕, LA, 보스턴, 시애틀, 토론토, 전미 비평가 협회상입니다. 이 중 뉴욕, LA와 전미 비평가 협회상은 전체 비평가 협회상 중에서도 대장급에 해당하는 매우 큰 상입니다. 여기서 작품상 수상을 했다는 것은 아카데미에서도 후보로 오르거나 수상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예상하자면 드라이브 마이 카가 기생충처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영화상 외에 주요 부문에서 수상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드라이브 마이 카가 앞에서 언급한 여러 비평가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타기는 했지만 그보다 몇 배는 많은 작품상 트로피를 들어 올린 강력한 경쟁 영화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제인 캠피온 감독이 만든 넷플릭스 영화 ‘파워 오브 도그’입니다. 제가 이 포스팅의 제목에 드라이브 마이 카가 미국 시상식을 ‘휩쓴다’는 표현을 썼는데 사실 진짜 이번 미국 어워드를 휩쓸고 있는 영화는 ‘파워 오브 도그’입니다. 작품상뿐 아니라 감독상도 제인 캠피온이 대부분 석권하고 있습니다.
두 영화를 모두 본 입장에서, 저는 개인적으로 파워 오브 도그 보다는 드라이브 마이 카를 더 좋아합니다. 하지만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에 어울리는 건 역시 파워 오브 도그와 제인 캠피온이라고 생각합니다. 드라이브 마이 카를 좋아하고 정말 재미있게 봤지만 파워 오브 도그는... 뭐랄까, 정말 ‘개쩌는 영화’예요. 매년 아카데미 작품상이 유력한 영화들을 보면 그전에 작품상을 받았던 영화들의 평균적인 수준과 비교를 해보곤 하는데, 파워 오브 도그는 기존의 어떤 뛰어난 작품상 수상작들과 비교를 해도 그다지 꿇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파워 오브 도그 뿐 아니라 케네스 브래너의 ‘벨파스트’, 폴 토마스 앤더스의 ‘리코리쉬 피자’, 스티븐 스필버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션 헤이더의 ‘코다’, 드니 빌뇌브의 ‘듄’ 등 쟁쟁한 영화들이 많습니다. 물론 이 영화들보다 드라이브 마이 카가 이번 미국 어워드 시즌에 들어 올린 작품상 트로피의 개수가 더 많기는 합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대부분의 아카데미 시상식 예측에서 드라이브 마이 카는 작품상 후보에 오를 가능성 조차도 저 영화들에 밀리고 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약점은 바로 드라이브 마이 카의 북미 배급사입니다. 아카데미 시즌이 되면 물론 여러 어워드들의 결과도 중요하지만 아카데미에서 후보로 오르거나 수상을 하기 위해서 각 배급사에서 벌이는 소위 말하는 ‘아카데미 캠페인’이란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심지어 아카데미 같은 영화 시상식과는 가장 거리가 멀 것 같은 마블 히어로 영화들까지 적극적으로 아카데미 캠페인을 벌입니다. 이런 캠페인은 큰 자본이 밀어주는 대형 상업영화들이 유리할 수 있지만 사실 미국은 유명한 인디 배급사들도 아카데미 캠페인에 대한 시스템과 노하우가 잘 갖춰져 있고 2년 전 기생충만 해도 북미 배급사인 ‘NEON’이 아카데미 캠페인을 상당히 잘해서 결과적으로 4개 부문 수상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드라이브 마이 카의 북미 배급사 ‘Janus Films’은 상당히 오래된 미국의 해외 아트하우스 영화 배급사이긴 하지만 아카데미와 같은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무대의 주역이 되는 아트하우스 영화와는 방향성이 다소 다른, 말 그대로 미국 내에서 ‘진성 비주류’에 해당하는 영화들을 주로 배급하기에 아카데미와는 그다지 인연이 없는 배급사입니다. 실제로 이 배급사는 드라이브 마이 카의 아카데미 캠페인을 거의 하지 않고 있습니다. 반면 넷플릭스는 자사 첫 아카데미 작품상을 위해 ‘파워 오브 도그’의 캠페인을 아주 활발히 벌이고 있고요.
이 같은 상황들로 봤을 때 드라이브 마이 카가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의 천재성이 빛나는 정말 훌륭한 작품성과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2년 전 기생충과 같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의 성과를 이루기는 매우 버거워 보입니다. 물론 아주 유력한 국제영화상 수상을 이루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성과입니다. 그리고 꼭 수상을 못하더라도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혹은 각색상) 등 주요 부문의 후보에 오를 가능성은 충분히 있고 특히 작품상이나 감독상의 후보에 오른다면 그 자체로 상당한 화제가 되긴 할 겁니다.
우선은 국제영화상 외 주요 부문 후보에 오르게 되는지를 지켜봐야겠죠.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후보 발표는 2022년 2월 8일입니다. 그리고 시상식이 열리는 날짜는 2022년 3월 27일입니다.
만약 국제영화상 외에 다른 부문에서도 후보에 오른다면 당연히 수상의 가능성도 생기긴 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봤을 때 설령 후보에 오르더라도 수상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작품상과 감독상은 파워 오브 도그와 제인 캠피온이 너무 유력한 상황이고, 그나마 각본상 혹은 각색상인데... 드라이브 마이 카가 2021년 칸 영화제에서는 각본상을 받았었죠. 하지만 원작 소설이 있기 때문에 각색상이 별도로 있는 시상식에서는 각색상 후보에 오를 가능성이 높고, 아카데미 각색상 후보에 오른다면 또다시 파워 오브 도그의 제인 캠피온이 막강한 경쟁상대가 됩니다. 그래도 그나마 작품상과 감독상보다는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상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니시지마 히데토시가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를 수 있을지도 관심사입니다. 니시지마 히데토시는 보스턴 비평가 협회상과 전미 비평가 협회상에서 드라이브 마이 카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하지만 훨씬 더 많은 수상을 한 윌 스미스, 앤드류 가필드, 베네딕트 컴버배치 같은 배우들이 있어서 니시지마 히데토시는 후보에 오를 가능성조차도 극히 낮은 상황입니다. 하지만 후보에 오르기만 해도 동아시아 남자 배우로는 매우 드문 업적이기에 꽤 화제가 될 듯합니다.
이 포스팅의 첫 문단에서 저는 하마구치 류스케에 대해 ‘혜성처럼 등장한’이라는 표현이라는 썼는데 1978년생으로 확실히 젊은 축에 드는 감독이지만 사실 데뷔는 꽤 오래전에 한 감독입니다. 데뷔 후 여러 작품을 찍었지만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다가 2015년에 개봉한 ‘해피 아워’부터 유명해지기 시작했고 2018년의 ‘아사코’로 비로소 큰 명성을 얻었죠. 드라이브 마이 카를 보면 확실히 하마구치 류스케가 현재 일본뿐 아니라 아시아를 대표할만한 거장 감독 중 하나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게 되지만 뭐랄까, 이 감독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거장이자 천재이면서도 수많은 상을 받고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서는 것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듭니다.
상은 그저 상일뿐이죠. 아카데미 같은 큰 상을 받거나 혹은 받지 못한다고 해서 하마구치 류스케 같은 독특한 예술가의 ‘정신’에 어떤 영향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리고 그의 영화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관점도 마찬가지일 거고요. 대부분의 거장 감독들이 그렇지만 하마구치 류스케의 작품은 특히나 자기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려는 ‘뚝심’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해피 아워의 워크숍 장면이나 낭독회 장면 같은 걸 보면 이런 감독의 뚝심에 관객이 경악할 정도입니다. 정말 대단한 감독입니다.
매년 그렇지만 올해도 훌륭한 영화들이 많아서 아카데미 시상식이 참 기대되고 궁금하면서도 동시에 결과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도 들고 있습니다. 후보에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영화들이 다 훌륭한 영화들이니까요. 그래도 아시아 영화인 드라이브 마이 카가 국제영화상 뿐 아니라 주요 부문 후보에도 올라서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 시상식인 아카데미의 글로벌한 분위기를 확실히 만들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확실히 전 세계 영화팬들의 축제와도 같은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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