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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와 영화사이

[만화와 영화사이] 마멀레이드 보이

by 대서즐라 2021.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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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원작영화 리뷰

 

*스포일러가 포함된 리뷰입니다


마멀레이드 보이 ママレード・ボーイ

이유를 모르겠는데 이 영화를 볼 때 정말 아무런 기대를 안 하고 봤습니다. 원작을 엄청 좋아하는데도 불구하고 왜 영화에는 아무런 기대가 없었을까요? 사실 이런 게 바로 편견과 선입견이죠. 일단 영화 포스터가 안 당겼어요. 포스터만 보고 영화의 수준을 쉽게 판단 내리는 나쁜 선입견. 저의 경험 중에서 이런 나쁜 선입견이 작용했던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가 아리무라 카스미의 영화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 였습니다. 포스터, 그리고 제목만 봐도 영화가 참... 하여간 전혀 괜찮은 영화라는 생각이 안 들더군요.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이런 명작이! 


마멀레이드 보이도 포스터가 참 별로였어요. 포스터에 두 주연 배우가 나오는데, 둘 다 전혀 매력 있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네, 영화 뿐만 아니라 배우의 매력까지도 포스터만 보고 성급히 판단을 내리면 안 됩니다. 사실 영화 포스터에는 배우의 외모가 실제와는 다른 느낌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애초에 포스터 한 장 달랑 보고 잘 알지도 못하는 배우를 쉽게 판단내리는 게 성급한 거죠.


네, ‘잘 모르는 배우’. 나름 일본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보는 편인데 두 배우는 좀 생소했어요. 사쿠라이 히나코와 요시자와 료. 물론 요시자와 료는 꽤 유명한 배우이고 저도 출연작을 몇 편 봤지만... 그리 눈 여겨 본 배우는 아니고(엄청 잘생겼다고는 생각합니다) 원래 남배우보다는 여배우 쪽에 관심이 많아서... 그리고 사쿠라이 히나코는 확실히 인지도가 좀 떨어지는 배우입니다. 마멀레이드 보이 출연 당시에 데뷔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고요.

좋아하는 일본 여배우가 많은데 이 영화에 출연하는 여배우들은 전부 생소해서 확실히 이런 캐스팅적인 부분이 저의 기대치를 크게 떨어뜨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원작은 제가 꽤 좋아하거든요. 마멀레이드 보이는 90년대에 꽤 유명했던 순정만화입니다. 꽃보다 남자나 너에게 닿기를 같은 엄청난 히트작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사실 원작을 안다면 영화가 좋은 작품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할 수 있죠. 그런데 저는 영화를 다 보기 전에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사실 원작 만화는 영화로 만들기 좋은 아주 중요한 특성이 하나 있어요.

일본에서 인기를 끈 만화는 대부분 장기 연재를 합니다. 순정만화도 예외는 아니죠. 꽃보다 남자는 단행본 37권으로 완결되었고, 너에게 닿기를은 30권 완결입니다. 그런데 마멀레이드 보이는 이보다 훨씬 짦은, 고작 단행본 8권으로 완결되었습니다. 네, 매우 단순한 특성이지만, 내용이 짧기 때문에 영화화 하기에 그 만큼 수월한 겁니다.


장기 연재작을 영화로 만든다면 많은 내용을 생략하거나 삭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초반부 내용 밖에 담아내지 못하죠. 인기를 끌어서 2편, 3편으로 이어지는 시리즈로 만들지 못하면 중반부나 후반부 내용은 영영 영화로 보지 못하게 됩니다. 중반부나 후반부에 결정적인 내용이나 하이라이트 에피소드가 있다면 이 부분까지 영화로 만들어지지 못했을 경우 아쉬움이 커지게 됩니다.

마멀레이드 보이는 이런 걱정이 없이 완결까지의 내용을 전부 영화 한 편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결말의 반전이 정말 중요한 작품인데 이 결말까지 모두 영화에 담아내지 못했다면 매우 어중간한 작품이 될 뻔했죠. 물론 원작의 내용을 모두 다 영화에 넣은 건 아닙니다. 단행본 8권이 적은 양인 것 같아도 생각보다 내용이 꽤 되거든요.


대부분의 순정만화가 그렇지만 남녀 주인공 한쌍의 로맨스로만 전체 내용을 채우지는 않습니다. 주인공 외에도 다양한 커플들이 등장하죠. 이런 다른 커플들의 이야기나 소소한 에피소드들 여러 개로 구성되는데 이 중 적절하게 추려내서 영화에 담아내야 하는 것이죠.

생각보다 많은 것을 쳐내야 합니다. 단행권 8권 분량이지만 내용이 꽤 많습니다. 등장인물도 생각보다 많고 소소한 사건들이 끊임없이 벌어지며 작품 속 시간의 흐름도 빠르죠. 고교생부터 시작해서 대학생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꽤나 이야기의 호흡이 긴 편이에요. 


원작의 내용을 영화판에서 압축 시킬 때 일반적으로 선택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번 째는 원작에서 되도록 많은 에피소드를 담아내되 하나하나 에피소드의 규모를 축소시키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소수의 에피소드만 추려내고 에피소드 하나하나를 원작만큼 밀도 높게 담아 내는 것이죠. 보통은 두 가지를 절충하게 되는데 그래도 어느 한 쪽으로는 무게가 쏠리게 됩니다. 마멀레이드 보이는 두 번째 방법 쪽으로 쏠리는데 그래서 원작에서 생략된 에피소드가 많은 편이라 이 부분은 확실히 아쉬워요. 대부분 조연들의 이야기입니다. 좋은 작품들이 대부분 그렇듯 매력적인 조연들이 많거든요. 

 

하지만 그런 작은 부분들을 희생한 덕분에 영화는 좋은 완성도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조연들의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역시 주인공 두 명의 메인 스토리가 이 작품의 핵심이고 가장 완성도가 높으니까요. 스토리의 감정선이 다소 복잡하기 때문에 영화에서도 되도록 내용 생략 없이 밀도 높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원작도 읽다 보면 살짝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이 들어요. 행복하다가 우울하다가 행복하다가 우울하다가의 반복인데.. 마지막에 반전이 나오면서 급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좀 뜬금없고 황당무계하다는 느낌도 없지 않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그런 느낌이 전혀 없었습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결말을 알고 봤으니까요... 만약 원작을 모르는 사람이 영화만 보고 이 결말이 어떤 느낌이 들었을지 좀 궁금하긴 합니다. 


결말을 안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더라도 영화의 스토리 감정선을 밀도 높게 잘 다루었고 배우들의 연기도 괜찮았습니다. 특히 배우들이 생각보다 좋더군요. 남주인공에 비해 여주인공 배우가 인지도나 무게감이 떨어지는 편인데 어찌 보면 원작의 설정을 반영한 적절한 캐스팅이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남주인공이 잘생기고 인기인인 반면 여주인공은 비교적 평범하다는 설정이거든요. 가만, 이거 대부분의 순정만화가 이런 설정 아닙니까? 하지만 보통 영화로 만들어 지면 여주인공도 잘나가는 유명 배우를 쓰기 때문에 ‘평범하다’는 설정과는 괴리가 생기게 되죠. 하지만 이 작품에서 여주인공 배우는 그 설정에 어느 정도 맞아서... 아 물론 매력있고 예쁜 배우이긴 합니다. 다만 현재 일본의 톱 여배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범한 설정이 어울린다는 것이죠...


이 영화를 보고 만화 원작 일본 영화들이 가진 근본적인 메리트를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은 성공한 만화를 영화화 하는데 성공한 만화는 기본적으로 내용이 훌륭하다는 것. 그 훌륭한 내용을 잘 살리면 좋은 영화가 나오는 것이고 잘 살리지 못한다면 별로인 영화가 나오는 것이죠. 물론 원작이 있는 작품이라고 꼭 원작에 구속되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원작과 다른 걸 시도하고 결국 원작을 뛰어 넘는다면 그것도 좋은 거니까요. 다만 그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닌지라, 마멀레이드 보이 처럼 원작 내용의 재미를 충실히 살려서 만족스러운 작품을 내놓는 것이 가장 무난하고 좋은 선택으로 여겨집니다. 


대서즐라
대중문화와 서브컬처를 즐기는 라이프
트위터 @dsz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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