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원작영화 리뷰
3월의 라이온 3月のライオン March Comes in Like a Lion
‘3월의 라이온’은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실사 영화 중에서도 제가 거의 가장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특이한 점은 보통은 원작 만화의 엄청난 팬이라서 실사 영화도 흥미롭게 보게 되는데, 이 작품의 경우는 제가 딱히 원작의 팬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물론 읽기는 다 읽었죠, 다 읽었는데. 별로 마음이 가는 작품은 아니에요.
제가 ‘3월의 라이온’을 읽은 이유는 ‘허니와 클로버’의 작가인 우미노 치카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허니와 클로버’는 꽤 좋아합니다. 전권 소장하고 있고요. 심지어 허니와 클로버의 영화도 엄청 좋아합니다. 꽤 오래전에 나온 영화이고 희한하게 평이 별로 안 좋은데, 그래도 저는 엄청 좋아합니다. 거의 취향저격! 수준으로 영화의 모든 면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3월의 라이온은 허니와 클로버에 비해서 좀 더 성숙한 느낌의 작품이죠. 주요 등장인물의 연령대는 3월의 라이온이 허니와 클로버보다 더 어린데도 정신연령은 완전 반대입니다. 특정 캐릭터 한둘이 그런 게 아니라 전반적으로 모든 캐릭터들이 그래요. 물론 서로 처해있는 상황이나 환경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허니와 클로버는 미대생들의 이야기입니다. 물론 대학생들도 진로나 취업 등 그 나름대로 진지한 고민도 하고 삶의 애환 같은 것도 있겠죠. 그런데 사실 대학생들이 주요 캐릭터로 등장하는 서브컬쳐 작품들은 대체로 분위기가 밝은 편입니다. 단순하게 ‘밝다’고 표현하기는 좀 그렇고 뭔가 많이 풀어진(?) 분위기죠. 이런 분위기의 대표적인 작품이 ‘그랑블루’고요. 여기서는 그냥 술만 퍼마시고 있지만.
하여간 뭔가 나사 빠진 생활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서브컬쳐 속의 대학생들은. 허니와 클로버는 물론 그랑블루 보다는 훨씬 낫지만, 주역 5인방 중에 3명은 확실히 정신연령이 어려 보입니다. 타케모토, 하구미, 모리타는 확실히 그렇죠. 야마다와 마야마가 어느 정도 균형을 잡아 주지만 이 둘도 그렇게 어른스럽지는...
반면 3월의 라이온은 어떻습니까. 3월의 라이온의 주인공 키리야마 레이는 사회인입니다. 프로 쇼기 기사 라는 버젓한 직업을 가지고 있고 자취를 하면서 스스로의 힘으로 먹고 사는 어엿한 사회인이죠. 그런데 나이는 어려서 아직 고등학생이고 학교를 다닙니다. 기본적으로 어둡고 소심한 성격의 캐릭터입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와 여동생이 교통사고로 죽어서 고아가 되었어요.
주인공 설정부터가 이렇다 보니 전반적으로 작품의 분위기가 어둡습니다. 아, 어둡다는 건 허니와 클로버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겁니다. 객관적인 기준으로 놓고 보면 오히려 밝은 분위기의 작품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저울추가 정중앙에서 밝은 쪽으로 아주 조금 기울어진 정도지만요. 사실 본질은 어두운 내용인데 억지로 밝은 척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레이를 허니와 클로버의 주인공 타케모토와 1대1로 비교를 하면(물론 허니와 클로버는 3월의 라이온 처럼 원톱 주인공을 내세우는 작품은 아닙니다. 주역 캐릭터 5명이 있고 타케모토는 그 중 하나이지만 그래도 비중을 따지자면 1~2 순위에 들어가는 캐릭터이긴 합니다.) 작품의 성향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타케모토도 조금 소심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밝고 즐겁게 요란벅적한 대학 생활에 보내는 캐릭터입니다. 무엇보다 타케모토의 로맨스는 만화의 첫 화에서 시작됩니다. 하구미를 처음 만난 순간 한눈에 반해버리죠. 그런데 레이는? 3월의 라이온의 여주인공은 히나타입니다. 그런데 처음 등장할 때 히나타는 중학생이에요. 고등학생에 사회인인 레이에게 적당한 연애대상이라는 느낌은 안 들죠. 거의 가족같은 사이라서 처음에는 그냥 여동생 포지션의 캐릭터로 보입니다.
허니와 클로버가 시작부터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에게 한눈에 반하는 등 연애 요소가 내용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반면(대학생들의 이야기니 뭐 당연한 거죠), 3월의 라이온은 연애 요소의 비중이 정말 없어요. 주인공에게 적합한 연애 대상 자체가 보이지가 않습니다. 또 그러면서도 막상 엮으려고 하면 어떤 캐릭터와도 엮을 수 있을 거 같은 복잡한 관계성을 보여줍니다. 물론 가장 유력한 건 처음부터 히나타였고 결국 히나타와 맺어지긴 하지만, 쿄코나 아카리 또한 가능한 대상 범주 안에 있었거든요.
하여간 만화가 뭔가 애매하고 미묘하고 복잡해요. 그래서 읽다 보면 잘 집중이 안 됩니다. 물론 이 만화의 평가가 나쁜 건 아니에요. 애니화도 되고 영화도 나왔으니 충분히 히트했다고 볼 수 있죠. 허니와 클로버 보다 더 잘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같은 작가의 작품인데도 허니와 클로버와는 많이 다릅니다. 다만 영화는! 처음에 언급했듯이 이 작품의 실사 영화는 제가 엄청 재미있게 봤습니다. 이게 좀 희한하긴 한데, 당연한 얘기지만 장기 연재 만화를 실사 영화로 만든다면 내용이나 설정이 추가되는 것은 없고 오히려 원작에서 삭제하는 부분이 많아집니다. 원작에서 크게 좋아하는 내용이나 캐릭터가 없고 영화는 원작에서 추가된 요소가 없으니 영화 역시 딱히 좋을 게 없어야 하는데.... 이게 감상이 전혀 달라지더란 말이죠.
물론 딱히 의문 가질 것도 없이 명쾌하고 단순한 해답이 있습니다. 같은 내용이라도 어떤 매체를 통해 보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를 수 있다는 것. 그림과 글로 볼 때는 그저 그랬는데 실사로 보니까 재미있는 내용도 있더라는 것. 그리고 애초에 원작과 영화가 완전히 같지가 않습니다. 새로 추가된 요소는 없지만 원작에서 쳐낸 부분이 많은데 이렇게 함으로서 내용이 깔끔하게 정리가 되고 중심 캐릭터와 스토리가 살아나게 된 거죠.
그런데 이렇게 쓰고 보니 원작 만화에 대해서는 본의 아니게 자꾸 악평이 되는 것 같은데... 사실 허니와 클로버에 비해 아쉬웠던 것이지 저도 나름 재미있게 읽은 작품입니다. 꽤 히트한 만화이고 ‘이 만화가 대단하다!’ 순위에도 여러 번 오를 만큼 평가도 좋아요. 다소 산만한 스토리 전개 방식은 원래 이 작가의 개성인 거고요. 애초에 허니와 클로버만 해도 주인공이 5명이나 등장하는 만화였으니... 그리고 영화판이 재미있었던 것도 원작이 좋은 내용이었으니 가능한 거였다고 볼 수 있겠죠.
그리고 딱히 영화를 엄청 잘 만든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원작의 내용과 캐릭터 자체가 좋았던 것과, 캐스팅 빨(?)을 기가 막히게 받은 결과물이라고 보거든요. 네,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이 바로 캐스팅입니다. 제가 본 모든 일본 만화 실사 영화 중에서 캐스팅으로는 이 영화가 단연 최고입니다.
일단 쟁쟁한 배우들이 잔뜩 출연하는, 소위 말하는 초호화 캐스팅입니다. 그런데 이 배우들이 그냥 호화롭기만 한 게 아니라 원작 캐릭터들과 싱크로까지 높아요. 이 정도면 애초에 작가가 일본의 유명 배우들을 모티브로 삼아서 캐릭터를 디자인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입니다.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런데 이 싱크로가 엄청 높은 캐릭터들은 대부분 조연들이에요. 조연들 캐스팅에 이 정도로 공을 들이는 것도 별난 일인데, 사실 원작 만화 자체가 조연들의 캐릭터성이 강렬한 편이거든요. 네, 제가 원작에 대한 평가로 뭔가 산만하고 집중이 안 된다, 라고 했는데 그냥 이게 원래 이 작가의 특징인 것 같습니다. 소수의 주역 캐릭터에 집중하기 보다는 다양한 주변 인물들의 스토리와 캐릭터성에 하나하나 공을 들이는 거죠. 그러다 보니 전개가 산만한 느낌도 드는 거고요.
그런데 영화판은 내용을 축소하다보니 당연히 원작 만큼 조연 캐릭터에게 많은 비중을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조연 캐릭터들의 존재감이 원작 만화 못지않게 엄청나요! 바로 배우들의 무게감 때문이죠. 처음부터 이런 의도였던 걸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냥 싱크로만 보고 캐스팅 했는데 우연히도(!) 그 중 다수가 무게감 있는 유명 배우들이었고 그들이 조연 캐릭터들에게 원작 같은 강렬한 캐릭터성을 완성시켜 준 게 조금은 얻어걸린 효과라는 느낌이 듭니다. 물론 저의 추측일 뿐입니다.
만화 원작 작품인데도 프로 쇼기 기사들의 이야기라서 나이가 중년인 조연 캐릭터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영화에서도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유명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기 때문에 그 무게감이 정말 엄청납니다. 사사키 쿠라노스케, 이토 히데아키, 토요카와 에츠시, 거기에 카세 료 까지... 이 중에서 사사키 쿠라노스케와 이토 히데아키는 원작 캐릭터와 싱크로가 미친 수준이에요. 단지 싱크로가 높은 정도가 아니라 어찌나 카리스마가 넘치던지.... 저는 거의 원작 초월이라는 느낌까지 받았습니다. 이 두 사람은 조연 중에서도 비중이 제법 크기 때문에 영화 전체에 상당한 몰입감을 불어넣어 줍니다.
개인적으로 소야 명인 역으로 카세 료가 캐스팅된 건 좀 의외였습니다. 원작의 캐릭터 디자인은 성인도 아니고 그냥 고등학생 정도로 보입니다. 물론 캐릭터 설정상의 나이는 30대 초반입니다. 그런데 비주얼이 정말 고등학생 정도라서 원작과 싱크로를 고려하면 젊은 배우가 연기하는 편이 나았을 거 같은데요. 카세 료는 나이가 40대 인데 사실 30대 시절까지는 20대로도 보이는 외모였지만 이제는 슬슬 자기 나이로 보이는 외모가 되었거든요. 그러고 보니 허니와 클로버 영화판에도 카세 료가 출연했었죠. 30대의 나이에 20대 대학생인 마야마를 연기했는데 정말 완벽했습니다. 사실 허니와 클로버에서 제일 괜찮았던 캐스팅이 바로 카세 료 였어요.(이 영화도 캐스팅이 정말 좋았습니다.)
카세 료가 연기한 소야 명인은 당연히 원작의 고등학생 같은 느낌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이건 또 이거대로 괜찮습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저는 사실 원작보다 더 좋았습니다. 또 다시 원작 초월! 사실 원작 캐릭터의 설정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영화판 비주얼이 더욱 어울립니다. 프로 쇼기 기사 중 1인자, 즉 세계관 최강자 역할이거든요. 물론 이런 두뇌 스포츠의 챔피언은 최근에는 점점 나이가 어려지는 추세입니다. 실제 일본의 쇼기 최강자가 몇 살인지 모르겠는데 아마 카세 료 보다 더 어린 나이일 가능성도 높겠죠. 아니면 정말 젊은 사람이라서 원작 만화처럼 고등학생 정도의 외모로 보이는 사람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막연하게 쇼기 최장자의 이미지를 그려보라면 3월의 라이온에서 카세 료가 보여준 이미지가 딱 적합한 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원작처럼 어려보이지 않을 뿐 싱크로도 은근히 괜찮아요. 그 묘하고 신비로운 분위기! 원래 카세 료 라는 배우 자체가 그런 분위기가 있거든요. 어찌보면 소야 명인은 굉장히 만화적인 캐릭터인데 실사에서 카세 료가 연기하니 정말로 이런 인물이 실제로 있을 것만 같은 설득력이 부여되더군요. 때문에 원작과 미친 싱크로를 자랑했던 사사키 쿠라노스케와 이토 히데아키 보다도 오히려 카세 료의 캐스팅이 이 영화에서 두 번째 ‘신의 한수’로 보이더군요.
‘두 번째 신의 한 수’. 네, 놀랍게도 첫 번째가 따로 있습니다. 이 영화에는 카세 료, 사사키 쿠라노스케, 이토 히데아키를 뛰어 넘는 최고의 신의 한수 캐스팅이 있어요. 그건 바로 쿄코 역을 연기한 아리무라 카스미 입니다!
아리무라 카스미는 이 영화에서 최고의 신의 한수 캐스팅임은 물론이거니와 제가 본 모든 만화 원작 일본 영화 중에서 최고의 캐스팅 중 하나입니다. 쿄코는 독특하고 강렬한 캐릭터입니다. 이 작품의 히로인은 히나타인데 사실 레이와 히나타의 연애 스토리가 서서히 윤곽이 잡히기 시작하는 건 작품의 중반 이후입니다. 애초에 등장 당시에 히나타의 나이가 고작 중2이고 초반에 등장 비중이 크지도 않아요. 그래서 초반에는 다른 히로인 후보들이 부각되는데 바로 아카리와 쿄코입니다.
히나타, 아카리, 쿄코는 모두 레이와 ‘유사 가족’의 관계로 엮여 있습니다. 히나타와 아카리는 자매인데 이 자매와 레이는 서로를 ‘가족처럼’ 느끼는 관계입니다. 그리고 레이와 쿄코는 실제 ‘가족으로’ 살아온 관계입니다. 하지만 진짜 가족은 아닙니다. 레이는 부모가 사고로 죽은 후에 아버지의 친구인 코다의 집에 거두어지는데 정식 입양은 아니지만 친자식 처럼 대우를 받고 레이도 코다 부부를 부모로 여기며 살게 됩니다. 그 집에는 딸과 아들이 있었고 레이는 그들과도 형제로 지내게 되고요. 그 딸이 바로 쿄코입니다. 레이보다 4살이 많기 때문에 누나입니다.
자, 4살 연상이고, 같은 핏줄인 것도 아니고 법적인 가족도 아니지만 실질적으로는 가족(남매) 관계로 어릴 때부터 한집에서 함께 자라온 여성. 쿄코가 히로인이라면, 히로인 설정으로는 정말 범상치가 않습니다. 거기에 이 둘의 사이도 정말 평범하지가 않아요. 애정과 증오와 죄책감이 뒤섞인... 하여간 질풍노도와도 같은 관계입니다. 쿄코의 성격 자체도 엄청 세고요.
그런데 원작 만화를 보면서도 이 캐릭터가 그다지 기억에 남지 않았습니다.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복잡할 것도 없이 그냥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역으로만 보일 수도 있을 거예요. 애초에 등장 자체가 적은 편이고 캐릭터 디자인도 왠지 크게 공들인 느낌이 아니거든요. 주인공에게 못되게 구는데도 묘하게 끌리는 느낌이 드는 캐릭터여야 하는데 일단 제가 느끼기에는 그런 게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리무라 카스미가 연기한 실사판 쿄코는!
그야말로 최고의 원작 초월! 쿄코가 이렇게 매력적인 캐릭터였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선을 확 사로잡습니다. 사실 아리무라 카스미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이 영화에서 만큼은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나오더군요. 솔직히 영화를 보고 쿄코라는 캐릭터에 너무 빠져 버려서, 이 캐릭터를 다시 보려고 만화를 처음부터 다시 정주행할 정도였어요. 영화로 캐릭터의 매력을 확실히 각인한 상태다 보니, 만화로 다시 볼 때도 처음 볼 때와는 달리 캐릭터의 매력이 느껴지더군요. 그래도 역시 영화로 볼 때만은 못합니다. 아리무라 카스미의 그 퇴폐적이고 시크한 연기!
솔직히 아리무라 카스미의 기존 이미지를 생각하면 쿄코 같이 다크 포스 낭낭한 캐릭터를 이렇게 찰떡같이 소화한 게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원작의 느낌과는 조금 다르긴 합니다. 원작과의 싱크로를 생각하면 조금은 미스 캐스팅인 거죠.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원작과는 다른, 원작보다 더 매력적인 캐릭터로 승화시켜 버렸어요. 실사화에 이런 묘미도 있어야죠. 원작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원작을 벗어나서 새로운 느낌을 만들어 내는 거요.
이렇게 조연 캐스팅이 빛을 발하는 영화이지만, 주인공 레이나 히나타 캐스팅도 아주 좋습니다. 레이 역을 연기한 카미키 류노스케는 원작과 싱크로도 괜찮은 편이고 연기를 아주 잘합니다. 그리고 쿄코와 있을 때 케미가 아주 좋았습니다. 아리무라 카스미의 쿄코가 특히 매력적으로 보였던 게 레이를 연기한 카미키 류노스케가 쿄코의 도발적인 행동을 잘 접수(?)해준 덕이 크다고 생각해요. 프로레슬링 경기에서도 기술을 쓰는 쪽도 중요하지만 당하는 쪽이 그 기술을 찰지게(?) 잘 접수하는 것도 중요하죠. 아리무라 카스미의 퇴폐적이고 도발적인 연기와 카미키 류노스케의 쭈굴이 연기의 케미가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볼거리였습니다. 원작에서는 4살 차이인데 연기한 배우는 나이가 동갑이라서 원작보다 좀 더 이성 관계의 긴장이 잘 살아났던 것 같아요.
반면 원작의 히로인인 히나타는 카미키 류노스케 보다 9살이나 어린 2003년생 배우 키요하라 카야가 연기했습니다. 쟁쟁한 명성을 가진 다른 출연진들에 비해 아직은 유망주 수준인 배우이지만 이 영화에서 정말 좋은 연기를 보여주더군요. 외모도 매력적이고요. 이 영화에서 보여준 포텐셜을 봤을 때 앞으로가 기대되는 배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영화에서 화제가 된 또 다른 캐스팅은 니카이도 역을 연기한 소메타니 쇼타입니다. 원작에서 뚱보인 캐릭터인데 날씬한 체형인 소메타니 쇼타가 굳이 뚱보 분장을 하고 연기를 했습니다. 안 그래도 캐스팅이 쟁쟁한 영화인데 굳이 소메타니 쇼타까지 뚱보 분장을 시키고 출연할 필요가 있을까 싶긴 한데요. 뚱뚱한 체형의 젊은 배우 중에 딱 맞는 배우를 찾지 못한 걸 수도 있고 뭔가 다른 사정 때문일 수도 있겠죠. 아무튼 원래부터 연기 잘하기로 유명한 배우라서 작품의 감초 캐릭터라 할 수 있는 니카이도 역을 정말 잘 소화하더군요. 뚱보 분장도 그다지 어색하지 않았고요.
캐스팅 얘기를 매우 길게 했는데 이 정도로 좋은 배우들이 매력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면 그것만으로 영화를 보는 재미는 차고 넘치게 됩니다. 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이 영화는 내용도 훌륭해요. 원래 원작부터가 좋은 내용이고, 원작의 단점(내지는 개성)이라고 할 수 있었던 산만한 내용 전개를 잘 다듬고 정리해서 영화 두 편 분량에 깔끔하게 담아 냈습니다. 뭐 영화화에서는 당연한 선택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레이의 쇼기 시합에 중점을 둔 것도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토 히데아키가 연기한 고토와의 대결을 작품의 하이라이트로서 매우 긴장감 넘치게 그려 냈습니다. 솔직히 저는 원작 만화에서 쇼기 파트가 조금 지루한 편이었는데(이 작품이 허니와 클로버보다 별로였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영화에서는 연출을 잘 해서 아주 긴장감 넘치고 흥미롭게 쇼기 대국을 보여줘서 더욱 재미있게 영화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일본 만화 원작의 실사 영화들은 대체로 평이 안 좋습니다. 하지만 ‘3월의 라이온’처럼 좋은 작품도 꾸준히 나오기 때문에 계속 기대를 가지고 이런 작품들을 찾아보게 되는 것 같아요. 사실 판타지나 SF 같은 장르가 아니고 이런 현대 배경의 일상적인 소재를 다루는 만화라면 영화화를 해도 그렇게 완성도가 떨어질 일은 없습니다. 대단한 걸작을 만드는 건 힘들지라도 원작 만화의 검증된 좋은 내용이 있고 캐릭터와 어울리는 좋은 배우들을 잘 캐스팅하면 충분히 볼 만한 작품으로 나올 수가 있거든요. 3월의 라이온의 경우는 캐스팅에서 거의 치트키를 쓴 수준이었고 원작의 산만한 내용을 잘 다듬은 덕분에 아주 훌륭한 작품으로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모범 사례를 잘 참고해서 앞으로도 만화 원작으로 좋은 영화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대서즐라
대중문화와 서브컬처를 즐기는 라이프
트위터 @dsz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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