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원작영화 리뷰
허니와 클로버 ハチミとクローバー
허니와 클로버는 원작 만화도 유명하고 영화도 나온지 꽤 된 작품이라 본 사람도 많고 꽤 알려져 있습니다. 본 사람이 많으니 평가도 많이 이루어졌는데, 생각보다 호불호가 좀 갈리더군요. 저로서는 좀 의외인데 저는 원작도 엄청 좋아하는 입장이지만 영화도 진짜 최고였거든요.
원작 만화는 단행본 총 10권 분량으로 생각보다 짧습니다. 집에 단행본을 전권 소장 중이긴 한데 지금 생각해봐도 ‘이게 고작 10권 밖에 안되는 내용이었나?’ 하고 놀라게 되네요. 솔직히 만화에 별 내용이 없어요. 그런데 또 막상 읽어보면 10권 보다는 훨씬 긴 내용으로 느껴집니다. 모순적이죠.
별 내용이 없게 느껴지면서 동시에 내용이 길게 느껴질 수가 있을까요? 모순처럼 보이지만 실은 가능한 일입니다. 사실 별 내용 없이 길게 연재하는 작품들이 꽤 있거든요. 물론 허니와 클로버는 그렇게 길게 연재한 작품은 아닙니다. 단행본 10권 짜리라 금방 읽을 거 같지만 생각보다 빨리 읽히는 작품은 아니에요. 우미노 치카 작품의 특징입니다. 한 페이지 안에 정말 많은 것들을 담아내거든요. 어떤 페이지는 마치 숨은그림찾기 하듯이 페이지에 그려진 모든 요소들을 꼼꼼히 살펴봐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별 내용이 없는 것 같지만 실은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담고 있는 만화인 거죠.
등장인물이 많습니다. 그냥 등장인물이 아니라 ‘주역급 등장인물’이 많다는 의미입니다. 주인공이 무려 다섯 명입니다. 그 다섯 명은 타케모토, 하구미, 모리타, 마야마, 야마다 입니다. 여기에 하나모토 교수까지 넣어서 주인공을 여섯 명으로 보기도 합니다만.. 제가 볼 때 하나모토 교수도 주인공을 넣는 건 무리가 아닐까 합니다. 다만 작품의 결말 때문에 조금은 여지가 있긴 하지만요.
미대생들의 이야기입니다. 이것만으로 ‘별 내용이 없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바로 이해가 될 겁니다. 그냥 대학생들이 학창 시절 보내는 얘기거든요. 대학생들 나오는 만화의 일반적인 특징인데, 뭔가 작품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풀어져(?) 있고 확 몰입되는 심각한 내용 전개가 그다지 없어요.
허니와 클로버는 순정만화입니다. 순정만화라면 보통은 연애 스토리가 메인이 되죠, 되어야 하죠. 그런데 이 만화는 딱히 그렇지도 않습니다. 만화의 첫 화에서 주인공인 타케모토가 하구미를 보고 한눈에 사랑에 빠집니다. 평범한 순정만화라면 이 두 사람이 남녀 주인공이고 여러 사건들을 겪으면서 맺어지는 스토리로 전개가 되겠지만, 이 만화의 방향성은 전혀 달라요.
무엇보다도 주인공이 다섯 명이니까요. 하나의 목표(골)를 향해 달려 나가는 스토리가 될 수가 없습니다. 인물들 간에 연애 라인이 잡혀 있기는 한데, 이게 어떤 결과로 나아갈지도 종잡을 수가 없죠. 때로는 독자가 원하고 기대하는 방향을 작가가 의도적으로 비켜 간다는 느낌도 듭니다. 뻔한 건 하지 않겠다, 절대로 너희(독자)의 예상대로는 하지 않겠다. 진짜예요. 이 만화를 읽으면서 작가가 이런 고집을 부린다고 느낀 독자가 많습니다.
결정타는 역시 결말이죠. 허니와 클로버의 결말에 대해서는 비판이 굉장히 많죠. 작가가 오로지 의외성만을 추구하다 보면 이런 망한 결말이 나온다고요. 허니와 클로버의 결말 때문에 작가의 최신작 ‘3월의 라이온’에 대해서도 걱정하는 독자들이 많아요. 저도 이번에는 좀 참아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로지 예상을 벗어나기 위한 목적으로 ‘누구도 바라지 않는 결말’을 만들어버리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입니까.
영화판에서 원작의 결말까지 나오지 않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결말은 고사하고 원작의 내용을 거의 다루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애초에 별 내용이 없이 개성 있는 다섯 명의 미대생들의 생활을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요. 물론 원작이 아주 내용이 없는 건 아니고, 후반에 가서는 몇 가지 큰 진전이나 결과 같은 것이 생기기는 하지만 이 내용들이 크게 재미있거나 만족스럽지는 않아요. 그러니 이 내용들이 영화에 나오지 않았다고 아쉬울 건 없죠. 사실 영화가 나름대로 결말을 내긴 하는데, 최선은 아니지만 깔끔하고 무난한 결말이라 원작보다 오히려 나은 선택으로 보이기도 합니다.(좋아해-고마워. 어쩌라고?)
2006년에 나온 영화입니다. 때문에 최근 만화 원작 영화가 많이 제작되고 있는 일본영화계 트렌드와는 무관한 작품입니다. 최근 많이 나오는 만화 원작 일본 영화들 보다는 2000년대 초중반 많이 나오던 고바야시 사토미 류의 힐링영화들과 오히려 비슷한 느낌이 많은 영화예요. 비슷한 시기에 나왔던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같은 작품과도 닮았고요. 이 시기에 이런 유의 작품이 유행처럼 나오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내용보다는 캐릭터 중심의 작품이라고 볼 수 있죠. 애초에 원작부터가 그렇습니다. 영화에서 이 매력 있고 개성 있는 캐릭터들이 살아나려면 역시 배우들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 영화를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당연히 캐스팅도 아주 좋아합니다.
타케모토의 사쿠라이 쇼, 하구미의 아오이 유우는 베스트라고 생각합니다. 사쿠라이 쇼는 적당히 찌질하고 적당히 소심하고 적당히 인싸인 평범한 대학생 역할을 아주 잘했습니다. 아오이 유우는 이 영화에서 비주얼이 폭발합니다. 그야말로 그녀의 최전성기 비주얼을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다만 원작의 캐릭터 디자인과는 다소 괴리가 있습니다. 애초에 원작에서 하구미 디자인 자체가 너무 만화적이거든요. 설정상 키가 몇인지 모르겠어요. 150도 안 될 거 같은데. 모리타가 하구미를 처음 봤을 때 사람이 아니라 숲에 사는 요정 취급을 할 정도니까요.
아오이 유우도 하구미 역할을 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을 거 같습니다. 하구미 같은 만화적인 캐릭터를 실사로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다행히 결과물은 최선입니다. 아오이 유우는 대단한 배우예요.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다만 그림 천재 캐릭터인 하구미가 그림에 굉장한 재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는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건 배우가 아니라 감독의 문제겠죠. 감독 입장에서는 누가 보더라도 ‘우와 이 아이는 그림의 천재구나’ 하는 느낌을 주는 것이 이 캐릭터의 묘사에서 특별히 중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사실 이런 부분이 원작 만화보다는 영화에서만 특별히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인데 이걸 대충 넘겨 버린 점이 무척 아쉽습니다.
모리타는 캐스팅이 좋은지 나쁜지 모르겠어요. 어떤 면에서 모리타도 하구미 못지않게 만화적인 캐릭터입니다. 그래서 하구미와 마찬가지로 실사화를 하면 만화와는 느낌이 많이 달라지게 되죠. 그런데 하구미와는 달리 실사의 모리타는 확신이 안 서네요. 지금 곰곰히 다시 생각 중인데 역시 잘 안 어울리는 캐스팅이었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어집니다. 이세야 유스케가 좋은 배우이긴 하지만 모리타 역을 연기하기에는 너무 인상이 강합니다. 모리타도 하구미 처럼 미술 천재인데, 전형적인 괴짜 천재이고 어딘가 나사가 한두 개 빠진 느낌이거든요. 물론 이세야 유스케도 그런 캐릭터를 연기(표현)한 건 맞지만 배우의 외모가 너무 똑 부러지게 생겨서... 나사 빠진 채 엉망인 생활을 하고 있는 모리타와는 좀 안 맞는 느낌이었습니다.
야마다 역의 세키 메구미는 무난하게 좋은 캐스팅이었습니다. 하구미가 대사가 적은 편이라 거의 작품을 이끌어 가는 여배우가 세키 메구미입니다. 쟁쟁한 배우들 틈바구니에서 강단 있게 잘하더군요. 상대 배역이 무려 카세 료 거든요. 두 배우의 나이 차이가 무려 11살 입니다. 카세 료의 마야마는 이 영화의 베스트 캐스팅입니다. 배우가 당시 30대 인데도 대학생 역할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비주얼이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카세 료의 훈남 대학생 포스가 정말 엄청납니다. 저런 외모로 단 하루라도 살아봤으면 좋겠다, 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또 하나 이 영화에서 괜찮았던 캐스팅은 하나모토 교수 역의 사카이 마사토 입니다. 사카이 마사토는 카세 료와 나이가 한 살 밖에 차이가 안 납니다. 그런데 한 명은 교수, 한 명은 대학생 역으로 출연을 했습니다. 뭐 하나모토가 교수치고는 좀 젊은 편이긴 합니다. 영화에서 하나모토는 원작에 비해 별 비중이 없는데, 그래도 사카이 마사토가 원작 처럼 헐랭(?)하고 학생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교수 역을 정말 잘 표현해 냈더군요. 역시 대배우는 대배우입니다.
말했듯이 이 영화는 고바야시 사토미 류의 일본식 힐링영화에 가까운 작품이에요. 카세 료가 출연해서 더 그런 느낌이 강한 것도 있습니다.(카세 료는 고바야시 사토미 영화에 자주 출연한 배우니까요) 내용에 크게 집중하지 않아도 되고 그냥 조금은 한가하고 조금은 치열한 대학생들의... ‘청춘의 낭만’을 즐기는 기분으로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물론 요즘 대학생들의 현실과는 많이 다른 것 같지만요. 요즘은 대학은 물론이거니와 어디에도 낭만 따위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현실이니까 더욱 이런 영화들이 보고 싶어지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참 좋은 영화입니다.
대서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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