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괴담’의 리뷰 포스팅을 쓰면서 제목에 ‘호러퀸’이라는 단어를 넣은 것은 제가 조금은 억지를 부린 것입니다. 10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단편 옴니버스 호러영화인데, 이중 여자 아이돌이 등장하는 에피소드는 절반도 되지 않거든요. 프로듀스 48에 출연했던 솔로 가수 ‘알렉사(알렉스 크리스틴)’까지 여자 아이돌로 포함하면 딱 절반이고요.
여자 아이돌 뿐 아니라 남자 아이돌도 많이 등장하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보통 호러 장르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보인 여자 배우를 칭하는 ‘호러퀸’이라는 표현이 있는 반면, 남자 배우에게는 그런 표현이 없습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확실히 호러라는 장르는 남자 배우보다는 여자 배우들이 좀 더 인상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장르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서울괴담’에서도 대부분 여배우들이 더 기억에 남았습니다. 물론 이건 제가 평소에 남자 아이돌보다는 여자 아이돌에 더 관심이 많기 때문이긴 하지만요.
리뷰의 제목은 그냥 장난처럼 적은 것이지만, 그래도 가볍게 이 영화에 출연한 여자 아이돌 중에서 누가 가장 ‘호러퀸’이라는 칭호에 어울렸는가를 얘기해 보겠습니다. 솔로 가수인 알렉스를 포함해서 오마이걸의 아린, 우주소녀의 엑시, 설아, 러블리즈의 서지수까지 총 다섯 명이 출연하는데요.(물론 아이돌이나 가수 출신이 아닌 여배우들도 많이 출연하고요) 솔직히 말하면 굳이 우열을 가리고 싶지 않을만큼 다 괜찮았어요. 그래도 그나마 가장 기억에 남았던 배우를 꼽자면 오마이걸의 아린과 러블리즈의 서지수입니다.
물론 이건 배우 자체의 매력이나 역량보다는 에피소드의 내용과 캐릭터의 영향으로 갈린 평가입니다. 아린과 이수민이 출연한 ‘혼숨’이 확실히 여배우들 보는 맛이 가장 좋은 에피소드였고 서지수는 ‘얼굴도둑’이라는 에피소드를 그냥 혼자서 다 이끌어갑니다. 에피소드 분량은 유독 짧은 느낌이었지만 서지수의 캐릭터는 꽤나 강렬했어요. 그런데 아린과 서지수 외에 엑시, 설아, 알렉사 전부 다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 아이돌들이 다 괜찮아 보였던 건 제가 평소에 여자 아이돌에 관심이 많아서 대체로 이들에게 호의적인 입장이었던 것이 이유인 건 아닙니다. 사실 이 영화에 출연한 아이돌들 대부분은 지금까지 연기 활동을 그렇게 많이 하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돌 출신이지만 이미 배우로서도 ‘검증된’ 인물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영화를 볼 때 기대치는 현저히 낮았습니다. 다만 그렇게 기대치가 낮았던 점을 감안하더라도 전반적으로 연기들이 나쁘지 않은 느낌이었습니다. 여자 아이돌 뿐 아니라 남자 아이돌까지. 그냥 출연한 모든 배우들이 다 괜찮은 연기를 보여줍니다.
그리 대단한 연기를 보여줄 것도 없는 단편 에피소드인 것도 있지만, 그냥 감독이 안정적으로 영화를 잘 찍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독이 방향성을 제대로 잡고 연기지도를 잘했기에 대부분 연기 경력이 적은 아이돌 출신 배우들임에도 무난하게 나쁘지 않은 연기들을 보여줄 수 있었던 거겠죠. 감독의 연기지도가 엉망이면 명배우라도 발연기를 보여줄 수가 있습니다.
이 영화의 감독은 홍원기입니다. 영화감독이 아니라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이 영화가 극장용 상업 장편 영화 데뷔작인 셈인데, 사실 단편 모음의 옴니버스 영화라서 장편 데뷔작이라고 하기는 애매합니다.
서울괴담은 원래는 넷플릭스의 호러 단편 시리즈인 ‘도시괴담’의 시즌2로 기획되었던 콘텐츠입니다. 애초에 OTT 시리즈였지 극장용 장편영화가 아니었던 거예요. 넷플릭스 시리즈로 공개될 예정이었던 콘텐츠가 극장용 영화로 개봉하게 된 사정의 구체적인 내막은 저로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사실 그런 사정보다 더 궁금한 건 출연 배우들의 대부분을 아이돌들로 채워 넣게 된 사정입니다.
10개나 되는 단편을 제작해야 하니 일단 배우들이 많이 필요한 상황이고, A급 배우를 쓸 만큼 규모가 큰 영화도 아니니 대부분 신인이나 지명도가 다소 부족한 배우를 써야 하는데 여기서 아이돌을 대거 기용하는 것으로 화제성도 만들고 출연 배우 머릿수도 채우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짐작됩니다. 아이돌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홍원기를 감독으로 발탁한 것인지, 홍원기가 감독이라서 아이돌을 많이 기용한 것인지 인과관계의 순서는 모르겠지만요. 아무튼 홍원기는 누구보다도 아이돌들의 연기와 퍼포먼스(때로는 둘은 같은 의미죠)를 카메라에 많이 담아본 감독이니 이 기획에는 아주 적합한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여자 아이돌들 외에 남자 아이돌도 인피니트 출신의 이호원, 비투비의 이민혁, 몬스타엑스의 셔누, 더 보이즈의 주학년, 골든차일드의 봉재현까지 다섯 명이 출연합니다. 즉, 이 영화에는 아이돌(혹은 솔로가수) 출신의 배우가 여자 다섯, 남자 다섯으로 총 열 명이 출연하는데, 이 열 명의 배우가 열 개의 에피소드에 한 명 씩 배치되어 있는 건 아닙니다. 마지막 에피소드인 ‘방탈출’에 주학년, 봉재현, 알렉사가 함께 출연하고 나머지 일곱 명은 각각 일곱 에피소드의 주인공을 맡았습니다. 우주소녀 엑시만은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 느낌의 캐릭터지만. 그런데 내용이 짧은 단편이라서 주연이나 조연이나 분량 차이는 크지 않습니다.
아이돌이 출연하지 않는 에피소드는 첫 번째 에피소드인 ‘터널’과 두 번째 에피소드인 ‘빨간 옷’입니다. 이 에피소드는 각각 1981년생 배우 김도윤과 1996년생 배우 이열음이 주연을 맡았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아이돌 뿐 아니라 이 영화에 출연한 모든 배우들이 괜찮은 연기와 캐릭터를 보여줍니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봐서 영화 자체의 만듦새는 제법 만족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영화의 포털 사이트 평점은 매우 낮습니다.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은 만듦새인데도 평점이 엄청 낮은 것은, 겨우 10분짜리 단편을 모아놓은 영화의 근본적인 한계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호러 영화로서 별로 무섭지도 않고요.
애초에 OTT용 단편 시리즈로 기획된 콘텐츠입니다. 사실 제대로 극장용 옴니버스 호러 영화를 만든다면 10분짜리 단편 10개는 엄청난 무리수입니다. 옴니버스 호러영화 중 아주 유명한 작품인 ‘V/H/S’ 시리즈를 보면 영화 한 편에 에피소드가 5~6개 정도 들어 있습니다. 평균적으로 에피소드 하나당 15~20분 정도 분량을 할당할 수 있고 특히 메인급으로 공을 들인 에피소드는 그 이상의 긴 분량으로 꽤나 본격적인 세계관과 서사를 그릴 수도 있습니다. 10분짜리 단편들로는 이런 밀도 높은 호러 서사를 만들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물론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만약 10분짜리 내용으로도 엄청난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소재와 세계관이라면, 이걸로 본격적인 장편 호러를 만들 욕심이 더 생기지 않을까요? 실제로 ‘마마’나 ‘라이트 아웃’같은 인상적인 호러 단편이 장편 영화로 다시 만들어진 사례들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그저 단편 에피소드를 묶은 것과 제대로 장편 옴니버스 호러를 만드는 작업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보통 제대로 만든 옴니버스 작품들은 다양한 에피소드를 하나로 묶어주는 테마가 존재합니다. 혹은 에피소드 전체를 하나로 엮게 만드는 기반 서사가 존재하기도 하고요. 14세기 문학인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가 보통 이런 유의 옴니버스 스토리 형식의 대표적인 예시이자 원형으로 꼽히죠. 캔터베리 이야기는 여관에 모인 여행자들이 서로 누가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가를 두고 내기를 하게 된 상황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등장하는 형식입니다. 그리고 옴니버스 호러 무비의 대표작인 ‘V/H/S’는 어떤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발견한 비디오테이프(VHS)를 하나씩 틀어보게 되면서 에피소드가 펼쳐지는 형식이고요.
서울괴담은 이런 기반 서사나 테마가 없죠. 영화의 제목이 ‘서울괴담’이라서 뭔가 서울이라는 도시(장소)와 관련된 제대로 된 테마가 등장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것도 전혀 없고요. 한 명의 감독이 만들어서 모든 에피소드의 연출 스타일이 비슷하긴 하지만 이건 오히려 옴니버스 영화로서는 단점입니다. 유명한 옴니버스 호러 영화들은 같은 테마를 바탕으로 다양한 감독들의 개성적인 연출을 보는 재미가 일품이거든요.
서울괴담에 보여주는 10개의 에피소드는 소재와 아이디어가 꽤 다양한 편입니다. 그런데 연출 스타일이 획일적이고 호러 장르로서의 방향성도 전부 비슷비슷합니다. 소재나 세부 장르가 다른데도 무서운 장면이나 이미지들은 에피소드마다 차별점이 그다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몇몇 에피소드의 소재는 굉장히 아깝기도 합니다. 특히 ‘층간소음’이라는 에피소드가 소재와 스토리는 아주 흥미로웠는데 결말을 그냥 되는대로 마무리한 느낌이라 너무 아쉬웠습니다. 그 외에도 제대로 장편 호러 영화로 만들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은 소재가 몇 개 있습니다.
사실 배우들의 연기를 비롯해 전반적인 만듦새는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에피소드 1~2개 정도만 특별히 공을 들여서 임팩트를 제대로 주었으면 전체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을만한 영화가 나왔을지도 모릅니다. 이 영화는 매 에피소드마다 너무 짧은 분량이라는 한계와 더불어 15세 관람가라는 상영 등급의 한계도 가지고 있습니다. 보통 옴니버스 호러의 경우 에피소드마다 표현 수위에서도 완급조절이 이루어집니다. 즉, 에피소드 한두 개 정도는 정말 무지막지한 표현 수위의 작품도 있어야 호러 옴니버스물로서 재미가 살아난다는 것이죠. 그래서 보통은 19금 등급으로 나오게 되고요. 그런데 서울괴담은 15세 관람가 등급이라 표현 수위가 엄청 높은 에피소드가 등장할 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치충’이 수위가 가장 센 편인데 여기서도 뭔가 특수효과가 어중간해요. 사실 이 영화의 전반적인 만듦새가 나쁘지 않다고 했지만 CG나 특수효과는 확실히 저예산인 티가 날 정도로 부실한 편입니다. 무난하게 배우들이 연기로 초중반 서사를 이끌어 갈 때는 볼만한데, 클라이막스에서 어설픈 CG와 특수효과가 등장하면서 몰입이 확 깨지는 에피소드가 많았습니다.
정리하면 ‘서울괴담’은 연기나 전반적인 만듦새는 나쁘지 않은데(물론 기대치가 낮았던 것도 감안해야 합니다) 제대로 만든 옴니버스가 아닌 한 명의 감독이 만든 10분짜리 단편 모음이라는 근본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아쉬운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꽤 흥미로운 소재와 스토리가 있었고 (저만의 관심사이지만)여자 아이돌들의 호러퀸 대전을 보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종합적으로 저에게는 극장을 나서면서 그다지 나쁜 기분은(돈 아깝다던가) 들지 않았던 영화입니다.
10개의 에피소드의 내용과 소감을 간단하게 정리하고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터널
차사고로 사람을 죽게 한 운전자가 트렁크에 시체를 싣고 가다가 터널에서 트렁크 속 시체의 귀신을 마주하게 되는 내용입니다. 배우 김도윤이 주연을 맡았습니다. 영화의 첫 시작으로서 꽤 괜찮은 퀄리티를 보여주는 에피소드입니다.
빨간 옷
학창 시절 왕따 당한 소녀(의 귀신)의 복수극입니다. 배우 이열음이 주연을 맡았습니다. 서울괴담이 전체적으로 별로 무섭지 않지만 그나마 이 에피소드가 가장 무서웠습니다. 거의 유일하게 제법 효과 있는(허를 찌르는) 점프스케어가 있기도 하고요.
치충
치과가 배경인 기생충 감염 소재의 에피소드입니다. 인피니트 출신의 이호원이 주연을 맡았습니다. 치과가 배경이라서 섬뜩하고 잔인한 장면이 꽤 나옵니다. 소재가 흥미로운데 마지막은 흔한 좀비물로 귀결된 건 아쉽습니다.
혼숨
한 여고생이 ‘나홀로 숨바꼭질’로 죽은 친구의 혼을 불러내는 강령술 소재의 에피소드입니다. 오마이걸 아린과 배우 이수민이 주연입니다. 두 주인공이 단짝 친구를 넘어서 동성애 커플 관계로 등장해 좋은 연기와 케미를 보여줍니다. 다만 평범한 강령술이 아닌 ‘나홀로 숨바꼭질’을 소재로 한 것치고는 특별히 흥미로운 내용 전개를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층간소음
제목은 층간소음이지만 실상은 ‘벽간소음’에 대한 내용입니다. 배우 정원찬과 우주소녀 엑시가 출연했습니다. 소재와 스토리는 10개의 에피소드 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는데, 마지막 수습을 되는 대로 해버린 느낌이라 너무 아쉬웠습니다.
중고가구
홀로 사는 여성이 무료나눔으로 받은 중고가구(장롱)로 인해 끔찍한 일을 겪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우주소녀 설아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전개가 뻔히 예상이 되지만 그래도 내용 자체는 꽤 재미있는 편입니다.
혼인
딸리는 스펙에도 불구하고 좋은 회사에 입사한 신입 사원이 회사 측의 함정에 걸려 시체와 결혼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비투비의 이민혁과 배우 이영진이 주연을 맡았습니다. 오들오들 떨면서 시체(귀신)와 결혼하는 장면이 섬뜩하면서 웃기기도 한데, 작정하고 코믹 호러의 느낌으로 갔으면 좀 더 임팩트가 남지 않았을까 합니다.
얼굴도둑
외모에 집착하고 SNS에 중독된 한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러블리즈 출신의 서지수가 섬뜩한 연기로 혼자서 작품 전체를 이끌어 갑니다. 내용이 짧지만 서지수의 연기와 캐릭터는 굉장히 강렬했습니다.
마네킹
이토 준지 풍의 기괴한 분위기를 풍기는 마네킹 괴담입니다. 몬스타엑스의 셔누와 배우 오륭이 출연했습니다. 소재와 스토리만 보면 훨씬 무섭고 섬뜩하게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생각보다 연출이 세지 않아서 아쉬웠습니다.
방탈출
방탈출과 악마숭배를 결합한 내용입니다. 더 보이즈의 주학년, 골든차일드의 봉재현, 솔로 가수 알렉사가 출연했습니다. 10개 에피소드 중에서 장편 영화로 만들기에 가장 적합한 소재와 스토리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방대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은데 분량이 너무 짧아서 결말을 대충 마무리해버렸습니다. 이 내용을 장편 영화로 제대로 만들면 꽤 볼만한 호러 영화가 나올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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