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칸토: 마법의 세계’는 오랜만에 극장에서 보게 된 디즈니의 뮤지컬 애니메이션입니다. 저에게는 ‘겨울왕국 2’ 이후 2년 만이네요. 엔칸토도 겨울왕국처럼 재미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그러지는 못했습니다. 엔칸토가 겨울왕국 수준의 작품이었다면 지금쯤 난리가 났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본 바로는 겨울왕국 정도의 큰 화제는 되지 못하고 소소한 수준의 관객을 동원하고 내려갈 영화로 보입니다. 물론 이 예상이 틀릴 수도 있고요.
(이 글에는 ‘엔칸토: 마법의 세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실 겨울왕국이 크게 성공한 건 내용보다는(물론 내용도 재미있습니다) 캐릭터가 너무 매력적이고 노래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죠. 이 두 가지 측면에서 엔칸토는 다소 아쉽다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노래 얘기부터 하자면, 완성도는 좋습니다. 좋은 멜로디에 신나는 리듬, 그리고 예전 디즈니 뮤지컬 애니의 노래들과는 차별화되는 장르적인 트렌디함도 있었고요. 그런데 노래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뭔가 저에게는 ‘취향이 아닌’ 느낌도 들었어요. 특히 주인공의 보컬 음색이... 제 취향도 아니지만 대중적으로도 조금은 호불호가 갈릴 듯한? 아무튼 보면서 ‘다시 듣고 싶다’는 생각이 그다지 들지 않는 노래들이었습니다. 뮤지컬 장면에서 화려한 영상 연출은 좋았지만요. 사실 이런 화려한 영상 연출이 이 영화의 최고 강점입니다.
캐릭터에 대해서는... 획일화된 기준을 적용해서는 안 되겠지만 주인공 미라벨이 확실히 엘사나 안나 같은 캐릭터에 비하면 그다지 미형으로 디자인된 캐릭터는 아닙니다. 미라벨이 언니인 이사벨라나 사촌 돌로레스에 비해 외모가 떨어진다는 건 실제 작품 내에서 그려지는 캐릭터의 설정이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딱히 못생겼다는 소리를 듣는 건 아니지만, 미라벨은 너무 아름다운 언니 이사벨라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미라벨의 열등감은 다른 가족들의 장점에 대해서도 다 마찬가지이고 이게 이 작품의 중요한 주제이기도 합니다.
물론 성격적으로는 매력 있습니다. 사실 미라벨 같은 상황에 놓이면 어마어마한 열등감에 짓눌려서 완전히 삐뚤어질 만도 한데 의외로 밝게 잘 생활하는 캐릭터거든요. 사실 가족 전체의 분위기가 그렇고 그런 밝은 가족의 모습 이면에 감춰져 있던 갈등과 앙금들이 드러나며 위기가 생기고 그 위기를 해결해가는 것이 이 작품의 주된 내용입니다.
아무튼 제 관점에서는 크게 매력적이지는 않습니다. 캐릭터와 노래, 거기에 내용과 주제까지도. 그보다는 뭔가 과거 디즈니 애니에서 흔하게 봐왔던 요소들의 짬뽕같이 느껴졌습니다. 미라벨의 성격이 매력적이라고 했지만 사실 이런 건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인공의 전형적인 캐릭터성이고 그 외 이전 디즈니 작품들의 기시감이 너무 많이 느껴졌어요. 우선 미라벨이 언니 이사벨라와 갈등하는 내용은 겨울왕국과 판박이입니다. 두 자매의 성격 차이도 엘사와 안나 자매와 유사하고 언니는 초능력이 있는데 동생은 없는 것 까지 똑같죠.
라틴계 가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디즈니-픽사의 ‘코코’와도 닮았습니다. 특히 삼촌인 브루노의 캐릭터는 코코에 등장하는 헥토르와 굉장히 비슷한 느낌이더군요. 그리고 주인공의 가족들이 때가 되면 특별한 능력을 부여받는데 주인공만 능력을 받지 못하고 붕 뜨게 되는 상황은 ‘소울’에 등장하는 캐릭터 ‘22’의 상황과도 유사합니다. 물론 스스로 원한다는 것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의 차이는 있지만요.
그리고 저는 이 작품의 내용에 그다지 몰입이 되지 않았는데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빌런’이라고 할만한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말했듯 행복해 보이는 가족의 모습 이면에 존재하는 갈등을 파헤치고 그것을 봉합해가는 것이 이 작품의 내용입니다. 이 내용에서 ‘빌런’이 개입될 여지가 없습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가족에 대해 다루는 내용으로서 이 작품이 특별한 주제의식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가족이란 것은 이미 그 자체로 갈등과 위기의 상황들을 내재하고 있기에 딱히 외부적인 갈등의 요인(빌런)이 등장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밝은 분위기의 애니메이션이라 당연히 아주 심도 깊은 영역까지 들어가지는 않지만, 엔칸토는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본질을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확실히 흥미로운 주제의식을 던져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인 미라벨은 가족 중 유일하게 능력을 부여받지 못해 큰 고민에 빠져 있지만, 정작 능력을 부여받고 공동체를 지탱해나가는 다른 가족 구성원들은 말 못 할 부담감과 책임으로 힘들어하고 있었죠.
이런 내용들이 분명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기는 하지만 겨울왕국 같은 대작 모험 애니메이션을 볼 때와 같은 큰 흥분과 감동을 안겨주지는 못합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엔칸토가 겨울왕국보다 더 감동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을 겁니다. 다만 확실히 제 취향에는 크게 만족스럽지 않은 작품이었습니다.
저는 결말도 조금 불만이었습니다. 집이 무너지고 가족들의 마법이 모두 사라져 버렸지만 결국 가족 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마법 없이’ 집을 재건하는 엔딩인데요. 이러고 나서 미라벨이 문의 손잡이를 꽂자 ‘기적’이 일어나며 마법이 다시 부활합니다. 물론 평범하게 생각하면 이런 엔딩이 대중적으로 매우 타당하지만, 저는 ‘슈렉’의 1편 엔딩이 생각나면서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엔딩은 조금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슈렉 1편에서는 오우거의 모습으로 변해버린 피오나 공주가 마지막에 ‘기적’이 발현되며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는 듯하다가.. 그대로 오우거의 모습으로 남아 살아가게 되는 엔딩이었죠. 엔칸토도 마법이 원상복구 되는 게 아니라 ‘이제 마법 같은 거 없어도 가족의 사랑으로 행복하게 살아가겠습니다~’ 라는 엔딩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물론 가장 화려해야 하는 엔딩 장면에서 마법이 빠지면 많이 허전하긴 할 테지만요.
매년 디즈니의 신작 애니메이션이 공개되고 있지만 겨울왕국이나 주토피아 정도의 화제작이 쉽게 나오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극장 흥행이 잘 안 되는 것도 한 이유이긴 할 테지만요. 어서 코로나 상황이 진정되고 다시 한번 전 세계 관객들이 열광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화제작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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