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무슨 영화지? 정말 좋아하는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연출. 그리고 요즘 너무 좋아하는 두 여배우 토마신 맥켄지와 안야 테일러조이가 출연. 이 영화는 그냥 닥치고 봐야겠다, 라고 생각은 했지만요. 제목을 봐도 일단 뭔 내용인지 알 수가 없고, 스틸컷과 포스터를 봐도 모르겠고, 예고편을 봤을 때도 여전히 무슨 내용의 영화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봐야 합니다. 에드가 라이트, 토마신 맥켄지, 안야 테일러조이인데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 ‘알 수 없음’이 극장에 앉아 영화를 보기 시작한 이후에도 해소되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중반까지의 정체성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모호함’입니다. 소재의 모호함, 플롯의 모호함, 장르의 모호함. 이 모호함이 영화의 마지막까지 이어진다면 화장실 가서 뒤처리를 제대로 안 하고 나온 듯한 찝찝함을 가진 채로 극장을 나서게 되죠. 그런데 이 영화는! 중반까지의 모호함은 완벽한 구조를 쌓아 올리기 위한 설계였던 것! 마지막에 가서 이렇게까지 명확하게 플롯과 장르의 실체를 완성해서 보여준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너무 확실하게 드러나 버리는 장르적 실체에 뒤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마저 들어요. 모호함 덩어리로 쌓아 올린 완벽하게 분명한 실체라니. 이러한 역설을 통해 정교하게 설계된 이 영화의 구조가 놀랍기만 합니다. 역시 예전부터 수 천 번 확신했던 사실이지만 에드가 라이트는 천재입니다.
사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봤다면 영화를 볼 때 혼란이 조금은 덜 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시놉시스조차도 안 읽었지만, 사실 이 영화에 대한 가장 결정적인 정보는 바로 ‘장르’입니다. 사실 저 같은 영화광들을 더욱 반응하게 만들려면 그저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신작’이 아니라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호러 신작’이라는 홍보가 훨씬 효과가 좋거든요. 정작 이 영화의 모호함 자체는 ‘도대체 장르가 뭐지?’라는 의문에 있는데도 그걸 홍보에서 이미 까고 시작할 수밖에 없는 거죠.
하지만 되려 이렇게 장르를 드러낸 것이 효과적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것은 영화를 보면서 반전을 한 번 더 경험하게 되는 효과입니다. 저는 이 영화가 호러 장르라는 걸 알고 봤음에도, 영화의 중반까지 내내 장르에 대해 의심을 품었고 어느 지점에서는 급기야 ‘아아.. 호러라고 홍보했지만 사실은 호러가 아니었구나’ 라는 확신마저 품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호러인 줄 알고 봤는데 호러가 아니었다’ 라는 1차 반전, 그런데 ‘계속 보니 역시 호러 였구나’ 라는 2차 반전으로 이중의 반전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죠.
저는 진짜 확신했어요. 이 영화는 호러가 아니라고. 중반부가 지나가고 유령들이 무서운 형상으로 계속 등장하고 있는데 저는 머릿속으로 계속 ‘이건 호러가 아니야, 호러가 아니야..’라는 생각을 되뇌었습니다. 호러 장르가 아닌데도 유령이 나오는 영화는 많습니다. 호러 장르가 아닌 데도 무서운 장면이나 연출이 나오는 영화도 많죠. 결국 호러라는 장르를 구성하는 결정적인 재료는 영화의 내용입니다. 영화의 내용이 모호한 상태로 존재했기에 이것은 호러 영화가 아니라는 생각이 중후반부까지 계속 저의 의식을 지배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러다 보니 영화의 무서운 장면들에 대한 저의 반응이 스스로 재미있었습니다. 어라? 좀 치네? 호러도 아닌 주제에 꽤 놀래키네? 이 장면은 나름 소름이 돋네? 이제 와서는 이 영화를 보며 극장에 앉아 있는 저 자신에게 ‘넌 도대체 무슨 영화를 보고 있는 거니?’ 라고 놀리고 싶은 심경이네요.
이런 독특한 영화가 나오면 평론가들이나 블로거들의 리뷰에서 이 작품과 비슷한 느낌 혹은 인상을 준 여러 영화들이 거론되는데요. 저는 이 영화의 전체 구조에서 세 가지 장르의 변주를 느끼게 되었고 각각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영화들이 있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장르는 딱히 특정 작품이라기보다는 그냥 아르젠토 풍이라고 하면 될 것 같고, 첫 번째와 두 번째 장르에서는 딱 한 작품씩 떠올랐는데 바로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블랙 스완’과 기예르모 델 토로의 ‘판의 미로’입니다.
이렇게 확실한 비교 예를 들게 되니 이 영화가 가진 모호함을 좀 더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라스트 나잇 인 소호, 블랙 스완, 판의 미로까지 전부 은근히 비슷한 느낌의 영화들입니다. 아르젠토의 서스페리아나 페노미나 역시 비슷한 느낌의 작품으로 묶을 수 있을 테고요. 다만 블랙 스완과 판의 미로는 호러 장르로 구분되는 영화는 아닙니다. 그런데 호러 영화를 본다는 각오(?)가 없이 안일하게 보다가는 으악 하면서 식겁하는 순간을 꽤 경험하는 영화들이기도 합니다.
결국 무한한 수의 색을 가진 무지개를 우리가 편의대로 일곱 가지 색으로 규정하는 것처럼 장르 또한 원래는 명확한 범주나 경계가 없는 것을 우리가 편의대로 규정 내린 것에 불과합니다. 블랙 스완, 판의 미로,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모두 비슷한 느낌의 영화들이지만 사소하게 구분되는 특성들을 대표로 삼아 편의대로 장르를 구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라스트 나잇 인 소호의 초반부는 블랙 스완과 같은 심리 스릴러 드라마 장르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토마신 맥켄지가 연기한 주인공 엘리는 정신병을 앓던 엄마가 자살을 한 아픈 과거가 있고 본인 또한 죽은 엄마의 환영을 목격하는 등 정신병적인 징후를 보이고 있습니다. 엘리는 순박한 시골 소녀로 살아왔지만 디자이너라는 꿈을 위해 런던의 패션 학교에 입학하게 되고 처음 겪어 보는 난잡한 대도시 젊은이들의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채 엄청난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받게 됩니다. 예술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한 도전과 주위와 잘 어울리지 못하는 상황, 엄마와 관련된 정신병적 징후의 요인 등 여러 면에서 엘리는 블랙 스완의 주인공 니나와 닮았습니다.
결국 엘리는 난잡한 생활을 하는 동기들과 어울려 지내기를 포기하고 기숙사를 나와 소호 거리의 한 낡은 원룸 건물에 입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내게 된 첫날밤에 1960년대 소호 거리에 살았던 샌디라는 여자의 꿈을 꾸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는 모호함의 바닷속으로 깊이 잠겨 듭니다.
엘리가 겪게 되는 현실과 환상의 모호한 풍경들이 스크린을 지배하게 되면서 영화는 델 토로의 ‘판의 미로’와 같은 음울한 판타지 장르의 느낌을 풍기게 됩니다. 처음에는 주인공이 이러한 환상들에 몽롱한 호기심과 (다소 복잡한 의미의)만족감을 느끼며 빠져들지만 점점 환상의 상황들에 대한 몰입이 심해지고 급기야 환상 속에서 끔찍한 일들까지 벌어지며 통제할 수 없는 단계로까지 나아가는 것은 이 영화와 판의 미로가 공통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장르적 전개입니다.
판의 미로는 이러한 모호함을 영화의 마지막까지 유지시킵니다. 주인공 오필리아가 보고 겪게 되는 판타지의 상황들이 실제 오필리아에게 일어나는 일인지, 아니면 그저 오필리아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상상인 건지, 그저 꿈인 건지 마지막까지 결론을 내려주지 않죠. 엄밀히 말하면 그것이 실제인지 아닌지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결국 그 환상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건 오필리아 한 명뿐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후반부에 돌입하면 모호함을 걷어내고 분명한 호러 장르로서의 실체를 드러냅니다. 주인공이 보는 환상(유령)의 정체가 무엇인지,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인지 사건의 인과 관계가 너무도 명확하게 드러나 버립니다. 이 내용은 명백히 호러 장르의 텍스트입니다.
이 구조가 굉장히 놀랍습니다. 관객은 이 영화를 보면서 마치 샤이닝의 한 장면처럼 안개 자욱한 미로를 헤매는 느낌을 받지만, 어느 순간 안개가 걷히고 영화의 구조가 실체를 드러내면 그동안 미로를 헤맨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짜여진 장르의 코스대로 안전한 이끌림을 받아 영화의 결말에 도달하게 되었음을 알게 되죠.
네, 이 영화의 결말에서 제가 느낀 것은 ‘안전함’의 카타르시스였습니다. 불안과 혼돈이 싹 사라지고 모든 것이 튼튼하고 정교한 구조 위에 세워져 있음을 깨달았을 때 느끼게 된 안도감은 완전한 정화의 쾌감 그 자체였죠.
모호함으로 정교한 구조를 쌓아 올리는 이 역설적인 작업을 완벽히 해낼 수 있었던 건 역시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천재적인 연출 감각 덕분입니다. 언제나 에드가 라이트가 공을 들이는 음악의 역할도 매우 컸고 편집과 리듬감도 일품이죠. 시대극 적인 면모가 있고 장소의 전환으로 메타포와 주제에 변주를 주기 때문에 미술도 굉장히 중요한데 이런 시각적인 요소들도 가히 완벽했습니다.
영화는 사방을 채워 넣은 모호함 속에서 마음껏 과감한 변주를 부리고 이것은 ‘반전’이라는 형태로 혼란에 빠진 관객의 집중력을 꾸준히 환기시킵니다. 이 영화의 반전들은 엄청 놀랍고 충격적이지는 않지만 거의 아름답다고까지 표현해야 할 정도로 완성도 높게 설계되었습니다.
잘 설계된 반전에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있습니다. 우선 많은 복선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많은 복선이 존재함에도 반전이 드러나는 순간까지 관객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게 중요하죠. 그냥 지나쳐버린 많은 복선들이 관객의 뇌리 한구석에는 남아야 하고 반전이 실체를 드러낸 순간에 비로소 관객이 이전의 복선을 떠올리며 납득하게 되는 것이 반전이 효과를 발휘하는 최고의 형태입니다. 이 영화가 딱 그런 반전을 보여줍니다. 물론 복선이 충분히 깔려 있기에 어느 정도 눈치가 빠른 사람은 알아챌 수도 있겠지만요. 하지만 반전 자체가 굉장히 많고 강약의 차도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쉬운 반전 몇 개를 눈치채고 안도하는 순간 또 뒤통수 때리는 전개가 바로 튀어나오는 식이죠. 이 영화의 스토리 전개 흐름을 완벽하게 다 읽어낸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재미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온통 모호함으로 채워져 있지만 어려운 작가주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난해함과 복잡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모호함 속에서도 관객이 어디를 보고 무엇을 느껴야 할지 확실하게 이끌어주는 영화입니다. 관객은 불안함과 혼란 속에서도 절대 길을 잃지 않고 감독이 설계한 구조대로 완벽하게 영화의 장르적 재미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두 주연 배우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토마신 맥켄지와 안야 테일러조이는 요즘 그야말로 최고로 핫한 젊은 여배우들인데, 이들이 그저 핫하다는 이유만으로 캐스팅된 게 아니라 영화의 시나리오와 캐릭터 자체가 완벽하게 이 배우들에게 맞춰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처음부터 이 두 배우들의 외모와 이미지를 보고 캐릭터와 시나리오를 구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캐릭터와 시나리오에 너무 완벽하게 들어맞았기 때문에 좋았던 것도 있지만, 그냥 두 배우가 너무 아름답게 나와서 그것만으로도 영화를 넋 놓고 볼 수밖에 없더군요. 환상적이고 몽롱한 느낌의 장면들이 많아서 좀 과장하면 두 배우의 영상 화보집으로 생각될 정도로 비주얼이 폭발하는 장면이 많았습니다. 원래 좋아하는 배우들이기 때문에 기대는 했지만, 그 기대를 월등히 뛰어넘어 버렸습니다.
[배우 이야기] 안야 테일러조이 Anya Taylor-Joy
몇 달 전에 본 ‘듄’도 그랬지만 올해는 엄청 많이 기대한 영화들의 성공 타율이 매우 좋습니다. 기대를 많이 하면 그만큼 실망한 경우가 더 많았기에 드물게 기대를 뛰어넘는 이런 결과물을 만나게 되면 그 기쁨은 말할 수 없이 큽니다. 2021년이 다 가기 전에 이만큼 만족스러운 경험을 또 할 수 있을까요? 기대작들이 몇 편 남아 있는데 부디 ‘라스트 나잇 인 소호’처럼 그 작품들도 기대를 뛰어넘어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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