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에 시작된 이후 20년 이상 연재를 이어오고 있는 일본 만화 역사상 최고 히트작 중 하나인 오다 에이치로 작가의 ‘원피스’가 이제 슬슬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물론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는 해도 느낌상으로는 앞으로 10년은 더 연재할 거 같기는 하지만요. 솔직히 제가 작가라면 이거 더 이상 그리기 싫을 거 같아요. 돈은 후손 몇 대가 펑펑 놀아도 될 만큼 벌었을 텐데 사람 생명력을 갉아먹는 직업인 주간 연재 만화가의 일을 앞으로 몇 년을 더해야 하다니... 그만큼 작품에 대한 책임감과 프로의식이 강하다는 거겠죠. 육다, 칠다, 십다 이렇게 놀림받기도 하지만 정말 존경할만한 작가인 건 틀림없습니다.
원피스는 20년 이상 방대한 이야기를 쌓아 왔고 엄청나게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했습니다. 이 많은 독특하고 개성 있는 캐릭터들 중에서 제가 포스팅을 쓰겠다고 결정한 캐릭터는 바로 주인공 루피와 동 세대의 라이벌인 초신성 해적 유스타스 ‘캡틴’ 키드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초신성이라는 캐릭터들을 등장시킨 것이 이 만화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내용 전개입니다. 매번 같은 패턴으로 강한 적 등장-혈투 끝 승리-더 강한 적 등장-혈투 끝 승리라는 내용 전개를 이어오다가 샤봉디 제도에 돌입하면서 정말 색다른 내용 전개를 보여줍니다. 샤봉디 제도부터 정상전쟁 까지의 내용들이 제가 체감하기로는 원피스라는 만화가 가장 화제성이 컸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만큼 정말 흥미진진하고 색다른 전개들이 계속 이어졌거든요.
샤봉디 제도에서 루피와 동 세대라는 초신성 해적들이 등장합니다. ‘초신성’은 1억이 넘는 현상금이 매겨진 신진 해적들로 루피와 조로를 포함해서 총 11명입니다. 이 중에서 주인공인 루피는 현상금이 2위였습니다. 그리고 1위의 현상금을 기록한 초신성 해적이 바로 유스타스 캡틴 키드입니다.
원피스에서 현상금은 캐릭터의 ‘강함’을 판단하는 지표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절대적인 지표인 것은 아닙니다. 엄청나게 강한데도 현상금은 낮게 책정된 경우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때문에 ‘현상금 무의미론’을 펼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래도 저는 현상금은 매우 중요한 지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키드의 현상금이 주인공인 루피보다 위인 초신성 1위라는 사실에 처음부터 주목을 했습니다. 한꺼번에 여러 명의 새 캐릭터들이 등장했지만 작가가 특별히 ‘이 캐릭터만은 눈여겨봐라’라는 메시지를 준 것 같았죠. 어떤 캐릭터일까? 얼마나 강할까? 능력은 뭘까?
공개된 키드의 능력은 자력을 사용하는 ‘자기자기 열매’입니다. 엑스맨의 매그니토와 흡사한 능력이에요. 매그니토가 엑스맨에 등장하는 수많은 뮤턴트들 중에서도 가장 비중이 큰 메인급 캐릭터임을 생각하면 이 능력 설정만으로도 초신성들 중에서 키드의 비중이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후 전개에서 초신성 캐릭터 중 가장 큰 비중은 ‘트라팔가 로’에게 돌아갔습니다. 로는 펑크하자드와 드레드로자 에피소드의 메인급 캐릭터로 등장하며 주인공 루피와 해적 대 해적으로 동맹을 맺어 많은 활약을 보여줬습니다. 마치 루피의 동료들처럼 과거의 사연도 밝혀지는 등 다른 초신성들과는 차원이 다른 비중을 부여받았죠.
실제로 로가 초신성들 중에서 최고 인기 캐릭터이긴 합니다. 깔끔한 미남형의 캐릭터 디자인에 능력도 뭔가 간지가 나죠. 하지만 저는 로와 키드는 기본적으로 작품에서 부여된 역할 자체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로가 오히려 루피의 조력자로서 활약하는 내용이 많아진다면 결국 루피와 대등한 라이벌의 이미지는 약해지고 맙니다. 그 반면 키드는 루피와 떨어진 곳에서 또 다른 모험을 겪으며 한쪽 팔도 잃고 경험치를 꾸준히 쌓으며 지냈습니다.
그리고 사황 카이도와 대결하게 되는 와노쿠니 편에서 드디어 루피와 키드는 재회합니다. 둘 다 똑같이 사황 카이도에게 물러서지 않고 도전했다가 패배한 후 붙잡힌 신세로서 만나게 되죠.
이때 함께 포로 생활을 하는 묘사를 보면 루피와 키드는 굉장히 닮은 점이 많습니다. 보통 창작물의 라이벌 캐릭터를 ‘거울’에 비유하곤 합니다. 루피와 키드 역시 서로의 거울 상으로서 비슷한 기질과 성향, 능력과 가능성을 지닌 해적왕 레이스의 라이벌 사이인 것입니다.
많은 원피스 독자들 사이에서 ‘루피가 이 만화의 마지막에 대립하게 될 최종보스는 누구일까’가 흥미로운 토론거리로 등장하곤 합니다. 보통은 ‘검은 수염 티치’나 세계 정부의 흑막인 ‘이무’가 많이 거론 되는데 저는 굉장히 마이너한 주장으로서 ‘키드 최종보스론’을 밀고 있습니다. 작품 내 정황이나 근거가 있다기보다는 그냥 제 바람입니다. 검은 수염이나 이무가 최종보스인 건 너무 뻔하잖아요.
뻔하지 않지만 그래도 전개상 설득력이 있고 재미있을 만한 내용은 역시 키드가 성장해서 최종보스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원래 대부분의 창작물에서 이런 성장형 캐릭터를 좋아하거든요. 주인공이 성장하는 스토리는 흔하지만 주인공과 비슷한 위치였던 라이벌도 함께 성장해 최후의 대결 상대가 되는 내용도 창작물에서 가끔 볼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나루토와 사스케가 있죠. 원피스와 나루토가 한때 소년만화의 인기 양대산맥이었던 적이 있으니 마지막 전개도 비슷하게 가면 흥미로운 비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사스케와 키드는 전혀 역할이 다른 캐릭터입니다. 사스케는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 봐도 될 정도로 엄청난 비중을 가진 캐릭터죠. 나루토와의 관계는 거의 로맨스물로까지 보일 정도예요. 그래서 사실 둘의 마지막 대결도 최종보스와의 대결이 아니라 함께 역경을 헤쳐 나온 동반자와의 의기투합 장면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루피와 키드의 관계는 전혀 다르죠. 두 사람은 정말로 순수한 의미의 ‘경쟁상대’ 일뿐이에요. 해적왕이라는 같은 목표를 향한.
솔직히 제 바람대로 될 일은 없겠지만, 제가 바라는 원피스의 후반부 전개를 한 번 적어보겠습니다. 일단 루피가 해군과 세계 정부와 크게 격돌하는 전개는 무조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검은 수염 티치나 샹크스, 혁명군 등과 관련된 스토리가 어떻게 엮일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뭔가 엄청난 스케일로 흥미진진한 대전쟁이 벌어지겠죠. 그리고 여러 초신성들도 참전할 테고요. 하지만 저는 키드만은 이 전쟁에서 빠질 거라 보고 있습니다. 이번 사황 편에서도 루피와 키드가 함께 하는 듯하다가 결국 둘이 갈라져서 루피는 카이도와, 키드는 빅맘과 싸우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키드는 언제나 루피와는 다른 곳에서 다른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루피가 세계 정부를 무너뜨리는 대전쟁을 벌이는 동안 키드는 다른 곳에서 자기만의 해적왕의 길을 걸어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황 체제는 무너질 테고, 세계 정부도 박살 난 시점에 루피는 전 세계 모든 바다를 평정하다시피 한 거대한 존재가 된 키드를 마주하게 됩니다. 네, 루피가 세계 정부와 싸우는 동안 키드는 바다의 나머지 해적과 강자들을 모조리 쓰러뜨리며 세계 최강, 최대의 해적 세력으로 거듭나는 거예요. 그렇게 세계 정부를 쓰러뜨린 루피 vs 모든 바다를 평정한 키드가 해적왕의 자리를 놓고 마지막에 격돌하게 되는 것이죠.
사실 원피스의 후반부를 이런 스토리로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실제로 오다 작가가 이런 내용 전개로 그릴 가능성도 거의 없을 거고요. 하지만 루피가 앞으로 세계 정부나 검은 수염 티치와 싸우는 건 너무 당연히 정해진 내용이라서, 뭔가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벗어나는 특별한 전개, 그러면서도 아주 재미있는 전개를 상상하면 저는 역시 키드와 마지막에 격돌하는 내용이 우선적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제 예상대로 될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그래도 뭔가 후반부에 키드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세계 정부를 무너뜨리는 대전쟁에 키드가 참전할 가능성도 높겠죠. 어떤 내용이든, 루피와 대등한 라이벌로서 키드가 작품을 재미있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해줄 것입니다. 이미 와노쿠니 편에서도 상당히 활약하고 있으니까요.
원피스에 등장하는 캐릭터들 중에서 실제 인류 역사의 유명인에게서 모티브나 이름을 따온 경우가 많습니다. ‘티치’와 ‘키드’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실존 해적들의 이름입니다. 제가 키드를 특별한 캐릭터로 보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이름 때문이기도 합니다. 똑같이 유명한 해적의 이름을 따온 검은 수염 티치가 원피스의 최종 보스 후보이듯이, 키드 역시 최종보스 비슷한 급의 역할이라는 것을 이름으로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과연 마지막을 향해 가는 원피스에서 유스타스 캡틴 키드가 어떤 역할과 활약을 보여줄까요? 더욱 흥미진진해질 원피스의 최종장에서 특히 흥미 깊게 지켜봐야 할 대목인 것 같습니다.
'캐릭터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캐릭터 이야기] 도미닉 토레토 (분노의 질주 시리즈) (2) | 2022.02.10 |
---|---|
[캐릭터 이야기] 죽음 Death (샌드맨) (1) | 2021.11.01 |
[캐릭터 이야기] 조상우 (오징어 게임) (0) | 2021.10.08 |
[캐릭터 이야기] 이도령 (열혈 초등학교) (2) | 2021.09.24 |
[캐릭터 이야기] 목시 Moxxi (보더랜드 시리즈) (0) | 2021.09.1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