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귀 작가의 정신 나간 개그만화 ‘열혈 초등학교’는 제가 살면서 읽은 가장 웃긴 만화 중 하나입니다. 너무너무 제 취향인 개그들이 쏟아져서 만화를 읽다가 숨넘어갈 정도로 데굴데굴 구르며 웃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개성 있고 기발한 아이디어의 개그 캐릭터들이 한가득 등장하는데, 비중 있는 메인급 캐릭터뿐 아니라 한두 화 정도만 짧게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상당히 임팩트 있는 개그를 많이 보여줍니다. 그중에서 저에게 특히 기억에 남았던 캐릭터는 바로 청학동 동자 컨셉의 캐릭터인 ‘이도령’입니다.
열혈 초등학교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이 다 그렇듯이 이도령 또한 속이 시커멓고 폭력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본성 위에 ‘청학동 동자’라는 예의 바르고 잘 교육받은 기믹이 더해지니 완벽한 가식과 위선의 풍자 캐릭터가 됩니다.
이도령은 동급생들에게조차 늘 존댓말을 할 정도로 공손하고 예의 바른 어투를 사용하고 누가 놀리거나 시비를 걸어도 전혀 화를 내지 않고 차분하게 대응하죠. 하지만 이런 예의 바르고 감정을 잘 절제하는 대인배스러운 모습은 그냥 겉모습일 뿐입니다. 속은 그 누구보다도 소인배라서 원한은 절대 잊지 않고 언제나 자기 이익과 만족을 탐욕스럽게 추구합니다.
열혈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 캐릭터들은 대부분 (초등학생 치고는 하드코어한)불량아라고 볼 수 있는데 이도령은 그 정도 수준이 아닙니다. 학생들끼리 폭력 행위로 피바다의 참사가 벌어지는 건 이 만화에서 흔한 일이지만 초등학생이 어른을 상대로 그런 폭력을 벌이는 내용은 많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도령이 새해인사랍시고 동급생의 집에 찾아가서 그 집의 어른에게 다짜고짜 세배를 하고는, 세뱃돈이 적다고 어른을 때려눕히고 지갑에서 돈을 꺼내 가는 상황은 명백한 강도짓입니다. 이 폭력으로 그 어른(동급생 안민석의 아버지)은 목뼈가 부러지는데 거의 살인이나 다름없는 수준이죠.
사실 이런 극단적이고 무절제한 폭력성은 열혈 초등학교라는 만화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이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그 유명한 ‘열혈초등학교, 이 폭력 웹툰을 아십니까’라는 제목의 조선일보 1면 기사까지 나오게 된 것이죠. 저는 이 만화를 굉장히 좋아하는 입장이지만 비판받을 만한 요소가 많은 것은 사실이고 특히 어린 독자들에게는 상당히 유해할 수 있다는 지적에도 어느 정도는 동의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중문화와 서브컬처 마니아들이 그렇듯이 저 또한 창작의 자유를 억압하는 검열과 규제를 극도로 혐오하고 특히나 청소년이나 사회적 약자를 위하는 ‘척’ 하며 여러 규제를 만드는 기득권 위정자들이 정작 이 사회를 썩어 들어가게 만드는 핵심적인 원흉임을 생각하면 열혈 초등학교 같은 작품이 보여주는 과격한 풍자와 해학의 카타르시스도 창작계에는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열혈 초등학교의 임팩트 있는 개그 장면들은 이 만화의 폭력성만큼이나 강렬한 파괴력이 있습니다. 처음에 언급했듯 저는 이 만화를 읽다가 숨넘어가게 웃은 적인 여러 번 있습니다. 그중 가장 확실하게 기억에 남았던 장면은 바로 이도령이 폭력 필살기를 구사하는 순간입니다.
이 필살기의 이름은 ‘공자 가라데’입니다. 설마 공자... 다음으로 ‘가라데’라는 단어가 튀어나올 줄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물론 ‘가라사대’가 ‘가라데’가 되는 건 간단한 언어유희적 변형이지만 청학동 동자 컨셉의 초등학생 위선자 캐릭터에 열혈초등학교라는 과격한 폭력 만화라는 상황이 아니라면 이런 장면은 절대 나올 수가 없겠죠. 정말 의외의 상황에 생각지도 못한 임팩트 있는 한방을 빵 터트려주는 것이 열혈 초등학교가 개그 만화로서 가진 최강의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공자 가라데의 위력이 엄청나서 허벅지를 걷어 차인 김만득은 대퇴골이 박살 났고 안민석의 아버지는 세뱃돈을 적게 준 죄(?)로 목뼈가 부러지고 사경을 헤매게 됩니다. 공자 가라데의 위력만으로도 이도령은 열혈 초등학교 내에서 최상위권의 전투력을 가진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종합적인 전투력에서는 원숭이나 백장미 같은 세계관 최강자 급에는 밀리겠지만 공자 가라데가 상대를 행동불능으로 만드는 거의 일격 필살의 기술이라 어떤 상대라도 이도령을 만만하게 볼 수는 없을 겁니다. 거기에 사악한 인성과 더러운 성질머리까지 더해지면 이도령이야말로 막장 초등학생들이 득실득실한 열혈 초등학교에서도 특히 조심해야 할 인간 폭탄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공자 가라데’라는 언어유희는 사실 풍자적인 성격도 가지고 있습니다. 네티즌들은 한국의 문화계 검열에 대해 ‘유교 탈레반’이라고 비판하는데 ‘공자’라는 유교의 가장 상징적인 인물의 이름을 내걸고 너무도 폭력적인 행위를 저지르는 것은 낡은 가치관으로 행해지는 억압적인 검열에 대한 적나라한 풍자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사실 이도령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유교 탈레반’에 대한 풍자라고도 할 수 있을 테고요.
흔히들 개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귀귀의 만화를 보다 보면 아이디어와 동급으로 개그만화에서 중요한 요소는 ‘용기’인 것 같습니다. 검열과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런 내용과 캐릭터를 당당하게 그리고 표현할 수 있는 용기. 창작계에 ‘아이디어’는 흔하지만 ‘용기’는 생각보다 드물어요. 특히나 유교 탈레반 국가인 한국에서는 갈수록 ‘용기 있는’ 작품을 그리는 작가들이 줄어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열혈 초등학교 같은 작품이 허용될 수 없다면 그 나라의 창작계는 죽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언제나 귀귀와 같은 용기 있는 작가를 응원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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