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우즈’는 1990년대에 연재했던 학원 액션물 장르의 명작 만화입니다. 크로우즈가 완결된 후 시간이 지나서 ‘워스트’라는 후속작이 나왔고 ‘크로우즈 제로’라는 영화 시리즈도 히트하는 등 파생 콘텐츠가 꾸준히 제작되고 있습니다. 학원 장르답게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흐름을 보여주는데, 이번 포스팅에서 소개할 캐릭터인 ‘하나자와 사부로’는 크로우즈의 주인공 세대와 워스트의 주인공 세대의 사이에 정확하게 낀 세대의 중요 등장인물입니다. 쉽게 설명해서 하나자와 사부로(이름보다는 별명인 ‘제튼’으로 더 많이 불리죠)는 크로우즈의 주인공의 2년 후배고, 워스트의 주인공의 2년 선배입니다. 각 작품의 주인공 세대와 1년 동안을 후배이거나 선배인 모습으로 함께 보내는 모습이 등장하는 캐릭터인 거죠.
주인공은 아니지만 제튼이 크로우즈와 워스트라는 작품의 중요 등장인물인 이유는 자기 세대에서는 최강자인 캐릭터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같은 지역에 ‘사천왕’이라고 대등하게 묶이는 세명이 더 있지만(킹죠, 다케다 코세이, 나카지마 신스케) 스즈란 고교 내에서는 제튼이 명실상부한 학년 최강입니다.
물론 다른 학년에 보우야 하루미치(크로우즈의 주인공)와 하나키 구리코라는 인외의 괴수들이 있어서 스즈란 전체의 통합 최강이 되지는 못했지만요. 그래도 보우야가 학교를 떠나고(졸업을 못하고 유급을 한 상태였는데 결국 학교를 그만둬버렸죠) 1학년으로 막 들어온 하나키 구리코가 실체를 드러내기 전까지는 표면적으로는 스즈란의 최강자로 인식되었던 짧은 기간이 있기는 했죠. 얼마 뒤 하나키 구리코에게 패배하면서 곧 종결되고 말았지만.
크로우즈부터 이 작품을 주욱 읽어보면 사실 이 시리즈의 매력적인 세계관은 크로우즈의 거의 최후반부에, 정확하게는 워스트라는 후속작에 와서야 제대로 정립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크로우즈까지는 세계관 설정이 온전하지 못해서 몇 가지 구멍들이 보이는데 가장 결정적인 것은 보우야와 제튼 세대 사이의 공백이죠. 야스나 사가와 같은 캐릭터들이 있기는 하지만 제대로 된 실력자가 없는데 이건 그냥 단순하게 내용 구성상의 허점으로 봐야 합니다. 반도와 린다만 세대가 졸업하고 보우야 세대가 3학년에 되었을 때 1학년 신입생들의 도전 에피소드를 밀어 넣으면서 그 사이의 2학년은 완전히 붕 떠버린 거죠.
학원물에서 신입생의 도전 에피소드는 늘 있습니다. 한국의 대표 학원 액션 만화인 ‘짱’에서도 김대섭, 손학교가 1학년 때 선배에게 도전하는 신입생 그룹의 리더 역할을 맡았었죠. 짱에서는 주인공인 현상태가 나충기, 칠대성왕을 물리친 이후에도 2학년 1학기인 시점이라서 적절한 타이밍에 김대섭의 도전 에피소드를 넣을 수 있었는데(사실 김대섭과는 싸우지도 않고 김대섭의 형인 김인섭과의 싸움이 메인 스토리였지만요) 크로우즈에서는 보우야가 2학년 때 난리 칠 거 다 치고 3학년에 올라간 시점에 신입생 에피소드가 나오면서 전체 세계관 구성이 구멍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공백 세대를 대충 묻어버리고 제튼 세대를 상당히 공을 들여서 캐릭터들을 완성했는데 결국 이 시점부터 크로우즈-워스트 사가의 전체적인 세계관 구성이 뼈대를 완성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린다만, 보우야 하루미치, 하나키 구리코, 쿠즈가미 다츠오, 에비스 코이치(비스코) 같은 먼치킨급 강자를 배출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제튼 세대는 굉장히 멋집니다. 스즈란 내에서만 보더라도 제튼, 가토 히데요시, 이와시로 군지, 마사, 요네자키 같은 쟁쟁한 실력자들이 있고 토아루 시 전체에서는 사천왕의 위세가 정말 엄청납니다. 보우야 세대에도 불독, 쿠노 류신, 비토 다츠야라는 사천왕이라 불린 인물들이 있지만 저는 제튼 세대의 사천왕이 더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보우야를 제외하고 보면 평균 실력으로는 제튼 세대가 더 강하기도 한 것 같아요. 제튼과 동급의 강자로 인정받는 ‘킹죠’에 대해서 ‘호센 역사상 최강의 사나이’라는 평판이 나오는 것도 그냥 하는 얘기는 아닌 것 같거든요.
앞에서 말했듯이 이 세대는 크로우즈-워스트 세계관의 ‘뼈대’를 완성한 세대입니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중요 등장인물로서 이 작품의 독특한 세계관을 튼튼하게 잘 지탱했습니다.
사실 이 작품의 세계관은 거의 이세계라고 해도 될 정도거든요. 크로우즈 때는 그래도 정상적인 학교 생활 모습이 조금은 있었는데 워스트부터는 학교에 선생이라고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호센에서 교사가 등장해서 학생들을 야단치는-물론 들은 채도 안하지만-장면이 나오기는 했는데 스즈란에 교사가 등장하는 장면이 워스트에서 있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없거든요.) 학생들이 그냥 조폭 같은 꼴로 학교에서 담배 뻑뻑 피고 다니는 세계관이니까요. 학교에 와서 정상적인 수업은 받지도 않는 것 같고 그나마 수업 장면이라고 나온 게 체육 시간에 운동하는 장면 정도고요.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극단적인 세계관의 비현실성이 학원 액션 장르의 만화가 가지고 있는 잠재적 위험성에 대한 방어막 역할도 어느 정도는 해준 것 같습니다. 거의 판타지나 다름없는 세계관에 전혀 고등학생처럼 안 보이는 등장인물들이 학원 액션 장르랍시고 싸움질을 해대니 이런 게 청소년에게 유해한 영향을 미칠 거라고 크게 우려하지도 못하겠죠. 뭐 실제로 어느 정도로 유해할지는 알 수 없지만요.
아무튼 주인공의 주변 인물로서 제튼 세대가 확고하게 세계관의 뼈대를 지탱함으로써 작품의 스토리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완성도 높은 흐름을 보여줄 수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제튼은 졸업을 한 후에도 꾸준히 등장하는데, 기존의 스즈란 학생의 졸업 후 모습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대학 입시 재수생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졸업이 다가올 즈음에 제튼은 요네자키에게 ‘교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말하죠. 그냥 교사가 아니라 스즈란의 교사가 되는 것이 제튼의 꿈입니다.
막 나가는 싸움꾼들 투성이인 만화이지만 의외로 인품이나 가치관이 똑바로 박힌 캐릭터가 많이 등장하는데, 그중에서도 제튼은 독보적으로 훌륭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제튼의 캐릭터성은 미숙했던 1학년 시절부터 꾸준히 성장하면서 쌓여온 것이라 또 다른 주인공의 서사로도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교사가 되겠다는 제튼의 꿈은 아주 매력적인 새로운 스토리의 소재입니다. 그래서 ‘제튼선생’이라는 새로운 외전 작품이 결국 나왔습니다.
‘제튼선생’은 현재 나무위키에 항목도 없고 크로우즈 사가의 팬들이 아니라면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만화인데요. 아마 작가도 크로우즈, 워스트의 작가가 아닌 다른 작가가 그리는 것 같고요. 그림체는 대충 비슷하긴 하지만.
그런데 모 게시판에 번역되어 올라온 걸 보고 있는데 저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이 만화가 좀 심상치 않습니다. 이런 비슷한 내용으로 GTO라는 메가히트 만화가 있는데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인기를 끌 만한 포텐이 있어 보여요. 물론 실제로 GTO 정도의 히트 만화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고 그냥 기존 크로우즈와 워스트의 팬층 정도만 열광하고 그칠 가능성이 훨씬 높기는 하지만요.
GTO의 오니즈카(영길이)도 매력적인 캐릭터이지만 제튼도 이 작품에서 교사로서 활약하는 모습이 정말 재미있고 매력적입니다. GTO라는 너무 비슷한 작품이 있기 때문에 차별화하는 것이 중요했을 텐데, 크로우즈의 독특한 세계관을 이어가면서 제튼의 탄탄한 캐릭터성을 내세워 GTO와는 또 다른 매력의 흥미로운 열혈 교사물의 전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니즈카도 싸움에서는 거의 세계관 최강자 급의 설정이지만 제튼 또한 학원 액션 만화의 강자로서 활약해온 캐릭터라서 철없는 학생들을 제압할 때의 포스와 박력이 엄청납니다. 거기에 오니즈카와는 달리 자기가 가르치는 과목(역사)에 대한 교사로서의 제대로 된 지식도 갖추고 있고요.
그리고 GTO의 전작인 ‘상남 이인조’와 비교해서 크로우즈와 워스트에는 이 새로운 외전 작품에 써먹을만한 풍성한 재료가 더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일단 제튼과 같은 세대의 사천왕이었던 ‘킹죠’가 등장해서 레귤러 조연으로 꾸준히 얼굴을 보이고 있고요. 그 외에 크로우즈와 워스트의 등장인물이 추가적으로 등장한다면 더욱 흥미진진한 내용이 전개될 것 같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제튼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실사 작품으로 보고 싶은 바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만들어진 크로우즈의 실사 작품에는 주로 실사판의 오리지널 캐릭터를 새롭게 만들어서 주요 인물로 내세웠고 만화의 등장인물들은 비중이 낮았죠. 이제 와서 크로우즈와 워스트라는 만화 자체를 실사화하지는 않을 것 같고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면 제튼선생이 GTO 같은 드라마로 제작되는 것인데... 아마 가능성은 낮겠지만 만들어지면 정말 기쁠 것 같아요.
사실 크로우즈에 대한 포스팅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처음에는 워스트의 주인공인 ‘츠키시마 하나’에 대해 쓰려고 했거든요. 츠키시마 하나는 뭔가 주인공 치고는 인기가 떨어지는 캐릭터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저는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제튼선생을 너무 재미있게 봐서 결국 하나자와 사부로/제튼의 포스팅을 쓰게 되었습니다. 사실 크로우즈와 워스트가 워낙에 매력적인 캐릭터가 많이 나오는 만화라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 한 명을 꼽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도 제튼이 이 만화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중요한 캐릭터 중 하나라는 사실은 틀림없습니다. 제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제튼선생’도 더 많이 알려지고 국내에 꼭 정발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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