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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이야기

[캐릭터 이야기] 목완청 (천룡팔부)

by 대서즐라 2022.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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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룡팔부는 신필 김용의 대표작 중에서도 가장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입니다. 어떤 작품까지 김용의 ‘대표작’ 범주에 포함할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사조삼부곡(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과 함께 김용 작품 중에서도 가장 분량이 방대한 3대 대작인 소오강호, 녹정기, 천룡팔부까지 포함해서 대표작으로 분류합니다. 이 여섯 대표작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녹정기이고, 그다음이 사조삼부곡이며 소오강호와 천룡팔부는 하위권입니다. 소오강호와 천룡팔부는 우열을 가리기가 애매한데 책을 읽을 당시에는 천룡팔부가 꽤 지루하게 느껴졌지만 나중에 내용을 곱씹어 보면 그래도 소오강호보다는 천룡팔부가 좀 더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다고 느끼게 됩니다.

 

바로 앞 문장에서 말했듯이 천룡팔부는 읽을 당시에 꽤 지루했습니다. 김용 소설을 읽으면서 유일하게 지루함을 느낀 것이 천룡팔부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면 도대체 어떤 부분이 지루했던 건지 좀 의아하기는 합니다. 사실 천룡팔부의 내용은 전체적으로 굉장히 흥미로운데 너무 많은 인물과 사건들이 등장하다 보니 처음에 읽을 때는 정리가 안되는 느낌이라서 몰입하기 힘들었습니다. 일단 단독 주인공이 아니라 단예, 소봉, 허죽이라는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하고 사조영웅전이나 의천도룡기처럼 주인공이 태어나기 전의 시점에서 작품이 시작해 차근차근 내용을 전개시키는 게 아니라 주인공들이 장성한 시점에서 시작해서 과거 출생의 비밀을 풀어나가는 전개이다 보니 내용이 굉장히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천룡팔부

 

이렇게 내용과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가 복잡하다 보니 여자 주인공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보통 곽정-황용, 양과-소용녀처럼 남자 주인공과 맺어지는 파트너가 여자 주인공인데, 이 작품에서는 그런 인물 관계가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습니다. 소봉과 허죽의 경우는 명확한 파트너가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소봉이 사랑하는 여인인 ‘아주’는 작품의 중간 즈음에 죽어 버립니다.(소봉의 스토리는 굉장히 비극적입니다) 그리고 아주의 동생인 아자라는 캐릭터가 등장해 소봉 옆에 붙어 다니는데 이 여자는 악역입니다. 아무리 비중이 있고 역할상 임팩트가 있어도 여주인공 포지션에 넣기는 불가능한 캐릭터죠. 허죽은 한 명의 여인과 맺어지고 죽지도 않지만 문제는 이 캐릭터는 비중이 거의 없습니다. 저는 이름도 기억이 안 납니다.(‘서하의 공주’로 등장하는데 작중 이름이 언급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사실 허죽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세 명의 주인공 중에서 메인 스토리가 가장 늦게 등장하고 인기도 떨어지는 캐릭터라서 주인공인데도 뭔가 주인공스럽지 않은 느낌이기도 합니다.

 

천룡팔부에서 그나마 여자 주인공의 느낌에 가장 가까운 캐릭터는 아주, 왕어언, 목완청입니다. 소봉은 아주를 향한 일편단심이고 단예가 여러 명의 여인과 엮이는데 그중에서 가장 비중이 큰 것이 왕어언과 목완청입니다. 그런데 이 둘 중에서 좀 더 비중이 큰 건 왕어언입니다. 왕어언은 이 작품뿐 아니라 김용의 모든 소설을 통틀어서도 신조협려의 소용녀와 함께 미모 순위 1,2위를 다투는 캐릭터이고 중국 여배우 유역비가 전성기 시절에 소용녀(신조협려 2006)와 왕어언(천룡팔부 2003)을 모두 연기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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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상 넘버원 미녀인 데다 유역비의 전성기 시절 대표 배역이기도 했으니 왕어언을 천룡팔부에서 가장 비중 있는 여자 주인공 캐릭터로 볼 수도 있으나 실상은 단예와 왕어언의 관계가 뭔가 애매합니다. 단예가 왕어언의 미모에 반해서 미친 듯이 사랑하는 것은 맞지만 정작 왕어언은 다른 사람(모용복)을 사랑하는 삼각관계 구도거든요. 뭐 여주인공이 처음에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다가 점점 주인공에게 넘어오는 전개는 흔하게 있지만 왕어언의 경우는 거의 작품이 끝날 때까지 주인공에게 무관심하다가 결말에서 갑자기 주인공을 선택해버립니다. 제가 읽은 판본에서는 이러고 끝났는데 나중에 개정본(김용 작품 중에서는 출간된 후에도 내용을 추가하거나 변경해서 개정본을 내놓은 작품들이 있고 천룡팔부도 그중 하나입니다)에서는 결국 왕어언이 단예를 떠나서 모용복에게 돌아가는 내용이 추가되었다고 하더군요. 이런 결말이니 아무리 넘버원 미모에 전성기 유역비의 대표 배역이면 뭐합니까. 이런 캐릭터를 여주인공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목완청과 아주가 남는데 아주는 너무 일찍 죽어버려서... 결국 천룡팔부의 모든 여자 캐릭터 중에서 가장 여자 주인공이라는 포지션에 어울리는 캐릭터는 목완청인 거죠. 이런 단순한 소거법이라니.

 

목완청

 

소거법으로 따질 거 없이 목완청 자체가 비중이나 매력에서 확고한 여자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면 문제없는 건데 이게 또 그렇지도 않습니다. 물론 매력은 충분합니다. 제가 천룡팔부의 캐릭터들 중에서도 굳이 목완청을 주제로 포스팅을 쓰는 것도 이 캐릭터가 엄청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비중입니다. 천룡팔부의 세 주인공은 메인 스토리가 단예가 가장 처음에 나오고 그다음이 소봉, 그 다음이 허죽입니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봤을 때 소봉의 비중이 가장 크고 단예의 메인 스토리는 약간 소봉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까지의(세 주인공 중에서 진짜 ‘본격적인’ 주인공 느낌이 나는 것도 소봉입니다) 프롤로그 느낌입니다. 그 프롤로그 느낌인 구간에서 목완청은 ‘일부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캐릭터 정도의 비중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하는 캐릭터입니다. 이 캐릭터를 좀 더 비중 있게 다루었다면 다른 김용 소설의 대표 여주인공들(황용, 소용녀, 임영영 등)처럼 천룡팔부를 대표하는 여자 주인공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을 수 있었을 텐데요. 하지만 실상은 천룡팔부를 읽어본 독자들에게 설문을 한다면 이 작품의 대표 여자 캐릭터로 아주와 왕어언을 이기기는 어려울 테고 어쩌면 아자나 천산동모에게까지 밀릴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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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완청은 일종의 ‘초반 캐릭터의 비극’에 해당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반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아무리 좋은 활약을 보여봤자 후반에 제대로 비중을 챙겨주지 않으면 애매한 캐릭터로 잊혀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아자나 천산동모 같은 캐릭터가 목완청이 거의 비중이 없어지는 후반부에 맹활약하는 캐릭터들이거든요.

 

그나마 비중이 있던 초반에 목완청이 엄청난 임팩트와 매력을 보여주었기에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목완청은 단예와 엮여서 굉장히 임팩트 있는 두 가지 장면을 만들어 냅니다. 첫 번째는 말할 것도 없이 ‘아내 선언’입니다. 목완청은 늘 얼굴을 가리고 다니면서 자기 얼굴을 처음으로 본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맹세를 했는데 못생겼지만 무공은 강한 악당에게 얼굴을 보이게 될 것 같은 상황이 되자 냅다 옆에 있는 (잘생긴)단예에게 얼굴을 보여주고는 ‘난 이제 당신 아내입니다’하고 선언해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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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예 입장에서는 이게 뭔 뜬금없는 상황인가 싶죠. 게다가 둘이 처음 만났을 때부터 (김용 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여자 캐릭터들이 그렇듯이)단예에게 험악하게 굴고 구타까지 하는 등 그다지 좋지 않은 분위기였거든요. 상황 자체를 보면 목완청 입장에서는 도저히 저 악당과 결혼할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마침 옆에 있던 단예를 선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문제는 단예가 김용 소설 전체를 통틀어서 최고 수준의 미남이라는 것입니다. ‘본의 아니게’ 궁지에 몰려서 단예와의 결혼을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처럼 보여야 하는데 단예가 너무 미남이다 보니 그냥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노리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드는 거죠.

 

그런데 단예도 미남이지만 목완청도 상당한 미녀입니다. 소설을 읽을 때도 흥미진진했는데 드라마 ‘천룡팔부 2003’에서는 목완청을 연기한 배우 ‘장흔’이 너무 아름다워서 이 장면의 임팩트가 정말 엄청났습니다. 천룡팔부 2003에서는 왕어언 역을 연기한 유역비의 전성기 비주얼을 볼 수 있는데 장흔이 그런 유역비와 비교해도 꿇리지 않을 만큼 목완청 역으로서 어마어마한 비주얼을 보여줍니다. 특히 얼굴을 보여주면서 ‘아내 선언’을 하는 장면의 임팩트만큼은 제가 본 무협 드라마 속 여자 캐릭터 장면 중에서도 최고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장흔-천룡팔부-2003

 

또 하나의 임팩트 있는 장면은 소위 말하는 ‘노루표 무협지’에서 흔하게 나오는 장면인 최음제 장면입니다. 김용 소설은 야한 장면이 거의 없는 편인데 극히 드물게 이런 노루표 무협지 스러운 장면이 등장합니다.(물론 묘사의 수위는 별거 없습니다.) 녹정기에서 건녕공주의 SM 플레이가 가장 유명하고 천룡팔부에서 단예와 목완청이 최음제를 먹은 상태로 단둘이 밀실에 갇히게 되는 장면도 무협지에서 굉장히 흔하게 등장하는 상황이죠. 한국의 대표 무협 만화인 ‘열혈강호’에서도 주인공 한비광과 담화린이 이런 비슷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무협지에서 남녀의 ‘야한 상황’의 가장 대표적인 클리셰라고 할 수 있는 이런 장면을 김용 소설의 그 많은 남녀 캐릭터들 중에서도 단예와 목완청이 겪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어떤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목완청이 초반에 등장해서 순조롭게 매력적인 모습과 임팩트를 보여 주었으니 여주인공으로서의 자질은 충분히 갖추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후에 비중이 공기가 되어버리는 바람에 ‘초반 캐릭터의 비극’이라는 안타까운 사례 중 하나가 되고 말았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천룡팔부는 읽을 당시에는 너무 내용 정리가 안돼서 지루하게 느껴졌지만 다 읽고 내용을 정리해보면 ‘도대체 어디가 지루했던 거지’라는 의문이 들만큼 수많은 등장인물과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매우 흥미진진하고 매력 있습니다. 역대 최고의 무협 소설 작가인 김용의 ‘대표작’으로 충분히 꼽힐 수 있는 작품이에요. 하지만 확실히 읽을 당시는 지루함을 느꼈다는 점과 목완청 같은 매력적인 여자 캐릭터를 김용 소설의 대표적인 여자 캐릭터들(황용, 소용녀 등)과 동급의 위상으로 끌어올리지 못한 부분은 역시 지적할만한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천룡팔부가 김용의 대표작 중에서도 가장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이 된 것도 ‘확고한 여주인공의 부재’가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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