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가 두 편 경쟁 부문에 진출하여 국내에서 큰 화제가 되었던 2022년 제75회 칸영화제가 결국 한국 영화 두 편 모두에 본상 수상이라는 영예를 안겨주며 막을 내렸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은 감독상을 수상했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브로커’는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 송강호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영화제의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은 스웨덴 출신 감독 루벤 외스틀룬드의 ‘슬픔의 삼각형’이 수상했습니다.
박찬욱이 감독상을 받고 송강호가 남우주연상을 받은 사실은 어떤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기도 합니다. 이제는 베니스, 베를린과 함께 ‘3대 영화제’로 묶기에는 칸 영화제의 위상만 압도적으로 높아진 상황이라 사실상 칸 영화제를 세계 영화제의 ‘원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현재 세계 최고의 축구 리그로 평가받는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서 손흥민이 득점왕을 차지한 것처럼 최고의 영화제인 칸 영화제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과 배우가 감독상, 배우상을 받은 것입니다.
특히 송강호의 수상은 의미가 남다릅니다. 박찬욱이야 과거에 감독상은 아니지만 이미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 다음의 2등상인 심사위원대상을 ‘올드보이’로 받았고 ‘박쥐’로도 심사위원상을 받았었죠. 그런데 송강호는 봉준호, 박찬욱, 이창동 등 한국 역사상 최고의 감독들의 작품에 수없이 출연했고 그 출연작들이 국제무대에서 많은 수상을 하는 상황에서도 정작 주연배우로서 굵직한 수상 실적은 그다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언제나 연기에 대한 평가는 최고였지만 이상하게 수상 운은 따르지 않았죠. 그런데 이번에는 한국의 거장 감독이 아닌 일본의 거장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만든 한국 영화에 출연해서 드디어 배우로서 최고의 영예라고 할 수 있는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으니 정말 본인에게도 한국영화계에도 특별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송강호가 브로커에서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칸 영화제가 이번에 송강호라는 배우를 특별히 ‘예우’ 해준 느낌이기도 합니다. 밀양, 박쥐, 기생충 등 칸영화제에서 인정받은 한국 영화들에 가장 많이 출연한 주연 배우를 이번에는 꼭 배우상을 챙겨줘야겠다 라는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뭔가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그런 방향으로의 교감이 오갔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순전히 저의 뇌피셜이긴 하지만요.
아무튼 한국영화는 2019년에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후 2020년과 2021년에 2년 연속 경쟁 부문 진출을 못하다가 2022년에 다시 경쟁 부문에 두 편을 올리고 두 편 모두 수상까지 하는 쾌거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2020년과 2021년에 경쟁 부문에 오르지 못한 것이 뭔가 흐름이 끊어진 느낌이기도 하지만 코로나 시국이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이제 포스트 코로나 시대로 접어들면서 묵혀둔 쟁쟁한 한국 영화들이 공개되기 시작하고 ‘범죄도시 2’가 극장가 한국 영화 흥행을 부활시켰으며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는 칸 영화제에서 함께 수상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야말로 ‘코로나 시국이 종결되자마자’입니다.(사실 종결된 건 아니지만요)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2년 정도 휴식기를 보냈지만 이미 완전히 대세의 흐름을 탄 한국 문화의 파워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면서 단숨에 세계적인 두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케이팝, 영화, 드라마 등 한국의 문화 콘텐츠들은 그동안 세계적인 성과를 꾸준히 쌓아왔고 현재는 완전히 세계적인 대세가 되었습니다. 문화 콘텐츠는 아니지만 스포츠 분야에서는 손흥민이 EPL 득점왕에 오르면서 또 한 번 한국의 위상을 드높여 주었고요.
이렇게 국제무대에서 한국이라는 나라가 대세의 흐름을 타게 된 상황은 코로나 시국을 거치면서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고 계속해서 상승 추세입니다. 특히 오징어 게임이 큰 성공을 거둔 이후로는 글로벌 OTT 플랫폼들이 한국 콘텐츠에 어마어마하게 투자를 늘리기 시작했죠. 드라마뿐 아니라 영화, 예능까지 수준 높은 한국 콘텐츠들은 아시아를 넘어서 전 세계 시청자들의 안방을 공략할 것입니다.
케이팝 아이돌의 기세도 여전합니다. 코로나 시국에 어쩔 수 없이 비대면 무대로 세계의 팬과 만났던 케이팝 아이돌들이 이제는 대면 콘서트 투어를 재개하여 세계 각국을 활발하게 누비고 있습니다. 특히 트와이스는 도쿄돔 3일 연속 공연과 미국에서 케이팝 걸그룹 최초로 단독 스타디움 공연을 하며 걸그룹으로서는 독보적인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스트레이키즈도 어마어마한 규모의 미국 투어가 예정되어있고 하반기에 케이팝 최고의 걸그룹 블랙핑크가 컴백하면 역시 압도적인 규모의 월드 투어를 진행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 외에도 많은 케이팝 아이돌들이 월드 투어를 진행할 예정이라 케이팝의 글로벌한 위상과 실적은 가파르게 상승할 전망입니다.
영화 또한 앞으로 쟁쟁한 기대작들이 쏟아져 나오면 세계적인 성과를 꾸준히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당장 이번 칸영화제에서 공개된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는 올해 어워드 레이스를 이제 막 시작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영화의 평가를 보면 사실 브로커는 추가적인 성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헤어질 결심’은 아카데미 국제영화상에 한국 대표로 출품되면 최종 후보까지는 노려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기생충처럼 압도적인 호평이 쏟아지는 상황은 아니라서 수상까지는 어려울 테지만 박찬욱 감독과 주연배우 탕웨이까지 세계적인 명성이 아주 높기 때문에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는 데도 유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만약 ‘헤어질 결심’이 국제영화상 후보에 오른다면 추가적으로 박찬욱이 감독상 후보에 오르거나 탕웨이가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일까지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는 한국 영화가 중심이 되어서 다른 나라의 명성있는 영화인들이 참여하게 된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더욱 한국 영화계의 위상을 드높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물론 일본 영화로도 세계적인 성과를 많이 냈지만 한국 영화 브로커로 한국 대표 배우 송강호가 수상하게 만드는 쾌거를 거두고 영화 자체도 ‘에큐메니컬상’을 받으면서 확실한 성과를 냈죠. 지금 미이케 다카시도 한국에서 ‘커넥트’라는 드라마를 찍고 있고 일본의 실력 있는 감독이나 배우들이 앞으로 한국으로 꾸준히 진출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저 개인적으로 특히 기대하는 것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함께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양대 거장 감독이라고 할 수 있는 하마구치 류스케의 한국 영화 연출입니다. 하마구치 류스케는 본래 ‘드라이브 마이 카’를 한국 부산에서 찍으려고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무산되었죠. 그래도 드라이브 마이 카에 진대연, 박유림, 안휘태 같은 한국 배우들을 캐스팅해서 좋은 결과를 보여주기도 했기에 하마구치 류스케가 향후 한국과 관련된 작업을 꾸준히 하고 한국 영화까지 연출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을 것 같습니다.
‘헤어질 결심’ 또한 한국 배우가 아니라 탕웨이라는 해외 여배우를 주연으로 캐스팅해 국제적인 면모를 가지게 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탕웨이는 단순히 해외 여배우가 아니라 한국인 감독인 김태용과 결혼해 한국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배우이긴 하지만요. 그래도 한국 문화 콘텐츠의 위상이 높아지면 세계적인 명성의 해외 배우들이 한국 작품에 진출하려는 시도는 계속 늘어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해외 감독에 해외 배우까지 계속 한국으로 몰려든다면... 언젠가 한국이 할리우드 같은 글로벌 문화 산업의 중심지로 성장하는 것도 가능할 것입니다. 저는 진지하게 ‘한국의 할리우드화’를 한국 문화 산업의 목표로 설정하고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원더랜드’와 ‘헤어질 결심’, 탕웨이 본격 한국 활동 시작?
이제 세계 무대에서 한국 문화 콘텐츠가 대세를 탄 흐름이 완전히 만들어졌습니다. 그저 잠깐의 붐이나 반짝 인기가 아니라 내실이 탄탄하게 다져진 콘텐츠 역량으로 만들어낸 흐름이기에 저는 이 흐름이 한국 문화 산업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성장하는 궁극의 목표까지도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절대 쉬운 목표는 아닐 테지만, 한국이 세계 최고의 문화 대국이 될 수 있다는 꿈을 가지고 계속 관심과 응원을 보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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