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라사와 기요시 감독의 스릴러 영화 ‘크리피: 일가족 연쇄 실종사건’은 제목만 봐서는 감독의 정체성에 딱 어울리는 영화입니다. 구로사와 기요시가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었지만 ‘절망 3부작(큐어, 회로, 절규)’으로 대표되는 호러영화들이 가장 유명하고 그의 호러·스릴러 작품들의 특징을 요약하는 단어로 ‘크리피’가 아주 적절하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는 본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크리피는 최근에 한국에서도 딱히 번역이 되지 않은 채 외래어로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 단어입니다. 포털 사이트의 사전에 검색해보니 “1. 오싹하게 하는, 으스스한 / 2. 기이한” 이라는 의미로 해석되는데 사실 딱 들어맞는 한국어 표현이 마땅히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크리피하다’ 라는 표현으로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거겠죠. 저로서는 이 단어의 가장 적합한 한국어 의미로 ‘섬뜩하다’와 ‘기괴하다’가 당장 떠오르는데요. 둘을 합쳐서 ‘섬뜩기괴’로 번역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예전에 ‘츤데레’의 번역으로 ‘새침부끄’라는 말도 안되는 단어가 떠돌다가 별로 호응도 못 받고 사라진 사례가 있어서 이런 식의 어거지 단어 창조는 확실히 무리수인 것 같네요.
구로사와 기요시의 호러 영화들이 ‘크리피’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에 적절한 예시가 되어줄 듯 합니다. 그리고 ‘크리피: 일가족 연쇄 실종사건’은 제목 자체가 크리피니까 그런 의도에 더욱 부합하는 작품이 될 수 있겠죠.
확실히 제목대로 이 영화는 크리피합니다. 섬뜩기괴해요. 하지만 절망 3부작과 비교하면 솔직히 크리피한 느낌은 조금 약한 편입니다. 귀신도 안 나오고 아무래도 원작 소설이 있는 작품을 영화화한 케이스다 보니 온전히 구로사와 기요시의 특성만이 존재하는 작품은 아니게 되었죠.
대중의 평가는 다소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습니다. 평론가들은 대체로 호평이고요. 저는 상당히 재미있게 봤습니다. 다만 확실히 절망 3부작에 비해서는 떨어진다는 느낌입니다. 귀신이 나오지 않고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독특한 스타일의 범죄자(연쇄 살인마)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큐어’가 가장 닮은 작품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저에게는 구로사와 기요시 최고의 걸작이 큐어이기에 두 작품을 비교하면 아무래도 크리피가 다소 부족한 작품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영화를 볼 때 원작 소설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서점에서 구경하다가 우연히 크리피 라는 제목의 책이 있는 걸 발견하고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마에카와 유타카 라는 작가가 쓴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책을 읽을까 말까 얼마간 고민하다가 결국 전자책으로 결제해서 읽었는데요.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는 내용이라서 상당히 놀랐습니다.
저는 이 책의 내용이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다’고 했습니다. 영화를 봐서 내용을 알고 있는데 새삼스레? 아니아니. 영화와 책의 내용이 상당히 달랐습니다. 영화의 내용도 충분히 흥미롭고 신선하다고 생각했는데, 책의 내용은 영화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깊이가 있더군요. 영화는 사실 굉장히 독특하고 기괴한(크리피한) 살인마에 대해 다루지만 주요 설정들이 너무 얼렁뚱땅이고 개연성이 무너지는 내용들이 꽤 있거든요.(이 영화에 대한 혹평들의 가장 큰 이유들입니다.) 그런데 소설은 그런 부실한 설정과 개연성들이 탄탄하게 짜맞추어져 있고 굉장히 치밀하고 섬세하며 박진감 넘치는 내용 전개를 보여줍니다.
‘옆집 남자의 공포’라는 기본적인 내용은 동일합니다. 옆집에 사는 수수께끼 같은 남자 니시노. 아내와 딸과 함께 살고 있지만 아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어느날 딸이 충격적인 고백을 합니다. “그 남자는 우리 아빠가 아니에요”
섬뜩하면서도 흥미가 동하는 미스터리입니다. 진짜 아빠는 어디로 간 것일까? 니시노라는 남자는 도대체 어떻게 해서 남의 집에 들어가 아빠(가장)의 자리를 대신하며 한 가정을 지배하게 된 것일까?
붕괴하는 현대 사회의 구조를 흥미롭게 탐구하는 구로사와 기요시의 작품 성향에 딱 맞는 소재와 내용입니다. ‘가족’과 ‘이웃’이라는 현대 사회의 공동체를 이루는 기본 단위. 그 근간이 완전히 뒤흔들리며 현대 사회의 구조 자체가 붕괴하는 공포를 다루는 데 이만한 소재가 없죠.
구로사와 기요시가 카가와 테루유키 라는 명배우를 통해 표현한 ‘이웃남자’ 니시노는 크리피 라는 단어를 완벽하게 형상화한 존재입니다. 물론 겉모습은 멀쩡합니다. 하지만 표정과 행동, 말투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분위기까지... 카가와 테루유키는 그야말로 온몸으로 크리피 라는 단어의 느낌을 완벽하게 표현하는 열연을 펼쳐 보입니다.
구로사와 기요시 특유의 암울하고 혼란스러운 분위기와 전개는 상당한 흡입력으로 영화에 빠져들게 만듭니다. 다만 미스터리의 진상은 조금은 맥이 빠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전하고자 하는 주제와 메세지는 강렬하고, 배우들의 연기와 그들이 표현하는 캐릭터는 생생하지만 이 작품의 핵심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던 미스터리는 그다지 공을 들인 느낌이 없습니다.
영화에서 설정한 굉장히 편리한 진상은 니시노가 사용하는 이상한 약물입니다. 주사를 이용해서 대상에게 주입하게 되는데 도대체 이 약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일단은 신체가 마비되어 쓰러진 후 추가적인 처치들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면 차츰 노예나 아이티의 좀비처럼 니시노에게 완전히 길들여져 복종하는 존재가 되거든요. 솔직히 개연성도 떨어지고 너무 얼렁뚱땅인 설정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카가와 테루유키가 연기한 니시노 캐릭터의 크리피함은 정말 생생하게 살아 있고 영화의 몰입도도 상당하지만 역시 깊이 따지고 들면 미스터리를 다루는 허술한 방식이 큰 아쉬움을 남기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이제 소설을 읽게 되면 더욱 아쉬움은 커집니다.
허술하고 편리한 미스터리의 진상으로 아쉬움을 남긴 영화와는 달리 원작 소설의 니시노 캐릭터에 대한 설정은 훨씬 치밀하고 탄탄합니다. 도대체 영문을 알 수 없는 존재였던 영화 속 니시노와는 달리 소설에서는 이 캐릭터에 대한 진상이 꽤 낱낱이 밝혀지거든요.
영화와 소설에 기본적으로 같은 이름의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주요 설정들이 달라진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일단 주인공 다가쿠라는 소설에서는 범죄심리학 전공의 교수로 등장하는데 영화에서는 형사로 일하다가 안 좋은 사건을 겪은 후 형사를 그만두고 대학에서 강사 생활을 하는 걸로 나옵니다. 전공은 동일하게 범죄심리학이고요.
그리고 영화에서 노가미라는 이름의 후배 형사가 등장하는데 이 캐릭터가 원작 소설에서 상당히 중요한 캐릭터이고 영화에서는 설정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영화에서는 주인공 다가쿠라와 어느 정도 연배 차이가 있는 젊은 형사 후배로 등장하지만 소설에서는 다가쿠라가 30년 만에 만나게 된 고등학교 동창으로 등장합니다. 직업은 영화와 마찬가지로 형사입니다. 하지만 히가시데 마사히로가 연기한 영화의 노가미와는 전혀 딴판인 인물이에요.
영화의 노가미는 히노 시에서 일어난 일가족 행방불명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는 형사로 등장합니다. 노가미는 범죄심리학 연구의 일환으로 히노 시 사건을 조사하던 옛 선배 다가쿠라에게 찾아와 사건에 대한 의견을 묻고 협조를 요청합니다. 이후 조사를 진행하며 사건과 관련이 있는 주소를 하나 찾게 되는데 그 주소가 바로 다가쿠라의 옆집이었고 노가미는 이 집에 홀로 방문하여 니시노를 만납니다. 그리고 니시노에게 살해당하죠.
소설에서 노가미는 이보다 훨씬 복잡한 사연을 가진 캐릭터입니다. 우선 처음부터 노가미는 니시노와 아는 사이였습니다. 아는 사이 정도가 아니라 가족입니다. 이복 형제 관계예요. 노가미의 아버지는 재혼을 했는데, 이혼한 전처와의 사이에서 아들 하나와 딸 하나가 태어났고 재혼한 아내에게서는 노가미가 태어났죠. 전처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바로 니시노입니다. 니시노는 물론 훔친 이름이고 진짜 이름은 야지마 요시오입니다.
사실 영화에서 벌어진 사건들과 유사한 내용들이 책의 중간까지는 진행됩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책의 내용의 딱 절반만을 영화로 만든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책에서 그 다음 절반의 내용에 굉장히 충격적인 진상들이 밝혀지는데, 영화는 이런 내용을 전혀 다루지 않고 ‘옆집 남자의 공포’라는 앞부분의 상황에만 온전히 집중을 한 것입니다. 소설의 복잡한 진상을 단순화 해버리고 거의 폭주하는 듯 하면서도 허무한 전개로 뒷내용을 말끔하게 종결해버렸죠. 하지만 소설에는 훨씬 방대하고 복잡한 후반부 내용이 남아 있습니다.
옆집 남자 니시노가 끔찍한 범죄자이자 살인마라는 사실이 드러난 후, 영화는 바로 이야기의 결착까지 질주하지만 소설에서는 그대로 니시노가 도주해 버리는 바람에 새롭게 니시노를 추적하는 이야기로 전개가 전환됩니다. 범죄자인 니시노를 법의 심판을 받게 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니시노가 도주하면서 납치해 데리고 간 옆집 딸 미오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노가미는 영화와 마찬가지로 이미 사망한 상태인데, 다가쿠라는 노가미의 이혼한 전처로부터 노가미가 썼다는 편지를 건내 받게 되고 이 편지의 내용을 통해 도망친 니시노, 진짜 이름 야지마 요시오의 무시무시한 실체가 밝혀지게 됩니다.
노가미는 편지에서 자신의 이복형인 야지마를 ‘악의 화신’으로 표현합니다. 야지마는 굉장히 흥미롭고 독특한 유형의 범죄자 캐릭터입니다. 머리가 좋고 욕망이 강하며 사이코패스 성향이 있는 것은 흔한 설정인데, 범죄의 유형과 방식이 굉장히 독특합니다. 바로 타인을 지배하는 방식으로 범죄를 계획하고 진행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흔히 하는 말로 가스라이팅 범죄죠. 하지만 야지마는 실생활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가스라이팅 유형과는 차원이 다른 치밀하고 계획적인 방식으로 대상의 정신을 지배합니다. 이를 위해 따로 심리학 공부까지 치밀하게 했을 정도예요.
야지마가 어떻게 이런 끔찍한 범죄자가 되었는지는 그 과정이 제법 흥미롭습니다. 야지마는 머리도 좋고 키도 180이 넘는 데다 외모도 나쁘지 않습니다. 집도 엄청 부자는 아니지만 아버지가 대형 은행에 다녀서 대체로 유복하게 자랐습니다. 중학교 때까지는 성적도 학교에서 1,2등을 할 정도였고 조금 나이 차가 나는 동생들에게도 듬직한 오빠이자 형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생 때부터 공부를 소홀히 하기 시작하고 가족들에게도 점점 공격적인 행동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가장 충격적인 건 어느 순간부터 여동생인 유키에게 성적인 욕망을 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야지마가 대학생이고 유키가 중학생이던 시기에 야지마는 유키에게 본격적으로 손을 뻗치기 시작했고 결국 유키는 부모님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하지만 그 후 벌어진 일이 놀라운데 야지마는 자신을 추궁하는 아버지를 무자비한 폭행으로 제압한 후 결국 눈물 흘리며 빌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이 시점부터 야지마는 완전히 집안을 지배하는 폭군이 되어 버리죠.
야지마가 무자비한 악인으로 각성하게 되는 이 과정은 우리가 ‘악의 본성’이라고 이해하는 것의 구체적인 실체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만듭니다. 앞에서 정리한 대로 야지마는 머리와 외모, 가정환경에서 대체로 좋은 조건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입니다. 하지만 재벌가 자녀들 처럼 이 사회의 천룡인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면 결국 본인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노력해서 이루어야 하는 과정들이 있습니다. 보통은 그 노력이란 ‘공부’죠. 야지마는 머리가 좋아서 중학교까지는 성적이 좋았지만 고등학교 때부터는 공부에 소홀해지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사람에겐 기본적으로 적성과 관심사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마 사춘기를 지나면서 야지마는 공부보다는 다른 방향의 적성과 관심사에 눈을 뜨고 자신의 욕망 실현도 이쪽 방법을 이용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된 듯 합니다. 바로 남을 속이고 세뇌하고 지배하는 방식입니다.
머리가 좋으니 정상적으로 공부해서 정상적으로 번듯한 사회인이 되는 길도 있는데 굳이 이렇게 범죄로 빠질 수 있는 길을 선택한 거예요. 앞 문단에서 제가 적성과 관심사라고 표현했지만 (환경적으로 큰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범죄의 길로 빠지게 되는 원인은 사실 단순히 적성이라기 보다는 좀 더 복잡한 심리적 요인이 작용하는 것이라고 봐야겠죠. 다만 억지로 일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개념으로 끼워 맞추자면 ‘적성 비슷한 무언가’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악의 본성’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죠. 적어도 그 양태 중 하나라고요.
사실 ‘공부가 싫다’라는 심리는 누구나가 쉽게 이해할 수 있잖아요. 딱히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일단 공부를 하고 적당히 대학에 가고 적당히 취직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야지마는 그런 평범한 길을 선택하지 않고 내가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길을 심지어 그것이 범죄임에도 과감히 선택을 한 것입니다. 물론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적인 성향에 따른 희박한 윤리의식 또한 큰 영향을 미쳤을 테고요.
사실 환경적인 요인도 아주 없지는 않은 게 야지마의 아버지는 자주 바람의 피고 다니며 밖으로 나돌면서 가정에 소홀한 편이었고 때문에 자식에 대한 엄한 훈육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나이 차이가 어느 정도 있는 동생이 2명 있으니 그들과의 관계에서 권위적이고 지배적인 대인 관계의 의식을 키워내기도 했을 테고요.
야지마는 대학생 때부터 동아리 회비를 횡령하는 등의 사기 행각을 벌이다가 졸업 후 얼마간은 평범하게 취직해서 일했지만 이내 그만두고 투자 회사 같은 것을 설립해서 본격적인 금융 사기 범죄의 길로 뛰어듭니다. 주로 남을 속이고 돈을 등쳐먹는 방식의 범죄였지만 점점 범죄의 방식은 대담해지고 야지마의 욕망도 갈수록 커지게 돼요. 결국 돈을 등쳐먹는 정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인생 자체를 빼앗고 지배하는 수준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살인까지 불사하게 되고요.
야지마는 평생을 이런 범죄를 벌이며 살아왔기 때문에 그 수법은 정말 교묘하면서 치밀합니다. 말 그대로 숙련된 전문가의 수법이에요. 야지마가 도주한 후 다가쿠라는 노가미의 편지 내용을 바탕으로 야지마의 지난 행적을 추적하고 분석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다가쿠라 또한 야미자의 표적이 되었으며 야지마가 다가쿠라를 궁지로 몰기 위한 여러 치밀한 계획들을 진행하고 있었음이 드러나자 다가쿠라는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야지마의 계획들에서 역으로 단서를 찾아 다가쿠라는 결국 야지마를 찾아낼 실마리를 발견하게 되는데요. 하지만 이것이 또 끔찍한 비극으로 이어지며 작품은 더욱 흥미진진한 내용으로 전개됩니다.
작품의 최후반부로 가면 또 다시 놀라운 반전이 드러납니다. 알고 보니 노가미의 편지는 노가미가 쓴 것이 아니었습니다. 거기에 노가미를 죽인 범인 또한 야지마가 아니었습니다. 야지마 뿐 아니라 노가미에게도 숨겨진 진실이 있었고 이 내용을 포함해서 야지마 추적의 최종 결과와 실종된 옆집 딸 미오의 행방, 노가미를 죽인 진짜 범인의 정체까지 정말 흥미진진한 내용들이 작품의 최후반부에 몰아치듯이 그 실체를 드러냅니다. 진짜 끝내주게 재미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저는, ‘이거 영화로 다시 만들어!! 아니면 드라마라도!!’ 라고 속으로 절규하듯 외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구로사와 기요시가 만든 영화도 분명 재미있고 잘 만든 작품입니다. 하지만 원작 소설 후반부의 저런 흥미진진한 내용들이 영화에서는 다 날아가 버렸다는 사실은 정말 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구로사와 기요시 특유의 장르적 재미와 분위기를 살리고, 이웃과 가족의 불확실성에만 집중해서 농도 깊게 주제를 표현한 영화의 방향성은 물론 그 자체로 가치가 있습니다만, 원작이 가진 미스터리 소설로의 재미를 잘 살린 방향으로 만들었어도 상당히 좋은 작품이 나왔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사실 소설 내용이 꽤 길기 때문에 영화 한 편에 모두 담는 것은 어려워보이긴 하는데, 언젠가 원작의 모든 내용을 다 담은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면 정말 좋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조금은 가져보게 되네요. 아마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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