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설과 영화사이

[소설과 영화 사이] 인어가 잠든 집 (히가시노 게이고 원작)

by 대서즐라 2022. 2. 4.
728x90
반응형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 소설을 실사 영화로 제작한 ‘인어가 잠든 집’은 원래는 2021년 10월에 국내 개봉 예정작으로 영화 정보 사이트에 등록되었던 영화입니다. 정확히 2021년 10월 7일에 개봉한다고 기사도 올라왔었습니다. 왠지 흥미가 동하는 영화라서 저는 별 고민 없이 리디북스 전자책으로 원작 소설을 구입해서 읽었습니다. 이전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전혀 읽은 적이 없다가 이 시기에 세 작품을 몰아서 읽었는데요. ‘라플라스의 마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인어가 잠든 집’을 읽었고 이 중 가장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은 책이 인어가 잠든 집입니다.

 

책을 다 읽고 영화 개봉일을 기다렸는데 2021년 10월 7일이 다가와도 어떤 상영관에서도 예매가 열리지 않더군요.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 홈페이지에 분명 10월 7일 개봉 예정작으로 올라 있었기에 영화관 고객센터에 문의도 해보았지만 소식을 알 수는 없었습니다. 극장 개봉을 안 할거면 다운로드나 스트리밍으로라도 풀리든가... 하며 잊어갈 무렵에 이 영화가 다시 개봉 예정작으로 영화 정보 사이트에 올라온 걸 확인했습니다. 새로운 개봉일은 2022년 설 연휴를 앞둔 1월 28일. 이번에는 그 날짜가 되어 예정대로 극장에 개봉했고 저는 참 오래 기다린 영화를 마침내 극장에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어가-잠든-집

 

(스포일러가 포함된 리뷰입니다.)

 

영화를 본 날은 설날 하루 전이었는데 오전 시간대에 극장이 있는 번화가는 아주 한산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러 상영관에 들어가니 생각보다 관객이 꽤 있더군요. 코로나 시국이 된 이후로 극장에 관객이 많이 있는 광경은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박스오피스 1위를 하는 영화를 보러 가도 관객이 10명도 채 되지 않는 상영관에서 보게 되는 경우가 매우 흔합니다. ‘인어가 잠든 집’을 보러 간 상영관에는 얼추 봐도 관객이 10명은 넘어 보였기에 생각보다 관객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 영화가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오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애초에 상영관이 너무 적고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 대다수는 저처럼 원래부터 이 (전혀 유명하지 않은)영화를 기다려온 사람들일 테니까요. 확인해보니 제가 영화를 본 날 이 영화의 전국 관객수는 고작 497명이고 박스오피스 순위는 14위에 올랐네요.

 

제가 이 영화를 엄청 기다리고 엄청 기대한 것처럼 얘기를 했는데 기다린 건 맞지만 그다지 기대를 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일본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이기에 세계적인 유명 감독과 제 취향에 확실히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감독의 작품이 아니라면 큰 기대를 품을 만한 일본 영화는 아주 드물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원작을 엄청 좋아한다면 모를까, 그런 경우도 아니었고요. 앞에서 원작 소설을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었다고 했지만 라플라스의 마녀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나았던 것이지 엄청 높게 평가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좋은 작품인 것은 사실입니다.

 

[소설과 영화 사이] 라플라스의 마녀 (히가시노 게이고 원작 실사화 작품 리뷰)

 

[소설과 영화 사이] 라플라스의 마녀 (히가시노 게이고 원작 실사화 작품 리뷰)

최근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세 편을 몰아서 읽었습니다. 이전에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전혀 읽은 게 없었어요. 특별히 이 작가의 작품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세 편을 몰아서

dszl.tistory.com

 

아무튼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는 꽤 만족스럽게 볼 수 있었습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예상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사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영화로 볼 때도 비슷하게 느꼈는데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정말 못 만든 영화입니다. 완성도가 아주 엉망이에요. 그런데도 희한하게 소설을 볼 때보다 더한 뭉클한 감동을 영화를 보면서 느꼈습니다. 영화를 이렇게나 엉터리로 만들었는데도 이 정도 감동을 느끼게 된다는 건 그만큼 원작 내용이 좋다는 방증인 것이겠죠. 그런데 또 신기하게도 정작 원작 소설을 읽을 때는 그냥저냥 시큰둥한 감상이었단 말이죠.

 

영화 ‘인어가 잠든 집’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처럼 영화를 엉터리로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엄청 잘 만든 것도 아닙니다. 전반적으로 평범하고 무난한 완성도이며 몇몇 장면에서 돋보이는 연출도 있기는 했습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과 비교해서 가장 나았던 점은 캐스팅입니다. 좋은 원작을 실사화할 때 원작 캐릭터의 개성과 매력을 잘 살릴 수 있는 배우를 완벽하게 캐스팅하기만 해도 완성도의 반 이상은 먹고 들어가는 겁니다. 인어가 잠든 집은 이 부분에서 분명히 합격점을 받을만합니다.(반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원작의 느낌을 살리지 못한 아쉬운 캐스팅이 많았죠.)

 

인어가-잠든-집-소설-표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과 마찬가지로 인어가 잠든 집 역시 영화로 보니 소설을 읽을 때보다 훨씬 더 원작 내용의 절절한 감정이 깊게 와닿았습니다. 극장에 눈물을 훌쩍이는 소리도 꽤 들렸고 저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습니다.

 

말했듯이 엄청 잘 만든 영화는 아닙니다. 잘 만든 영화와 못 만든 영화를 가르는 기준점에서 아주 살짝 위로 올라간 정도예요. 영화 감상은 사람에 따라 달라지니 저와 달리 기준점 아래로 평가하는 사람도 꽤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연출도 많았지만 아쉬운 연출도 꽤 있었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원작에서 내용이 각색된 부분도 꽤 있고요.

 

카오루코와-미즈호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츠츠미 유키히코입니다. 무려 1980년대에 데뷔한 굉장히 오래된 경력의 원로 감독입니다.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많은 작품을 연출했습니다. 이 중 드라마 작품인 ‘트릭’과 ‘케이조쿠 스펙’이 유명합니다. 영화로는 우라사와 나오키의 걸작 만화 ‘20세기 소년’의 실사 영화 3부작을 만들었고 비교적 최근작 중 제가 인상 깊게 본 작품은 시드니 루멧의 고전 걸작을 오마주한 영화 ‘12명의 죽고 싶은 아이들’입니다. 제가 본 이 감독의 작품들은 아주 잘 만든 건 아니지만 대부분 그런대로 볼만했습니다. 전반적으로 완성도가 훌륭한 건 아닌데 그냥 뭔가 재미있게 보게 되더라고요.

 

특히 원작이 있는 작품의 경우 감독이 원작의 재미와 주제를 온전하게 잘 살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별한 기교를 부리지도 않고 그야말로 우직한 방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입니다. 20세기 소년은 원작의 방대한 내용을 거의 대부분 실사 영화에 온전히 담아낸 작업이 놀라웠습니다. 물론 영화도 3부작의 방대한 분량으로 만들긴 했지만요.

 

인어가 잠든 집도 원작에서 삭제되거나 각색된 내용이 일부 있지만 거의 온전하게 원작의 내용과 주제를 영화에 잘 담아냈습니다. 가장 크게 각색된 내용은 심장 이식 수술이 필요한 아이의 에피소드입니다. 영화에서는 이 에피소드에 남자 주인공인 카즈마사가 관여하게 되는데 소설은 반대로 여자 주인공인 카오루코가 관여하게 됩니다. 그리고 소설에는 서술 트릭이 있어서 아주 놀라운 반전도 담고 있는 에피소드입니다.

 

병실의-카오루코

 

반전을 대놓고 스포일러 하자면(소설 내용의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으시면 이 문단과 바로 아래 문단은 건너뛰시기 바랍니다) 소설에는 신죠 후사코라는 이름의 교사가 꽤 비중 있는 역할로 등장하는데 이 인물이 심장 이식 수술이 필요한 아이(이름은 유키노입니다)의 에피소드에 관여하게 됩니다. 그런데 나중에 놀라운 반전이 드러나는데 스스로를 교사인 신죠 후사코라고 소개한 이 인물의 정체는 알고 보니 이 소설의 주인공인 카오루코였습니다. 다른 사람의 이름을 사용해서 캐릭터의 정체를 착각하게 만드는 방식은 소설에서만 가능한 아주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트릭입니다. 물론 영화에서는 관객이 인물의 얼굴도 다 볼 수가 있기 때문에 저는 이 반전 내용을 영화에서 어떻게 수정할지가 무척 궁금했습니다. 영화에서도 굳이 속임수를 쓴다면 인물의 얼굴이 보이지 않게 카메라 구도를 잡는 방법을 쓸 수도 있을 텐데 그래도 목소리나 체형 등 감추기 어려운 요소들이 너무 많습니다. 게다가 얼굴을 안 보여주는 이유도 관객은 뻔히 눈치를 챌 테니 반전도 효과를 발휘할 수 없을 테고요.

 

결국 영화에서는 이 내용을 수정하고 카오루코가 아닌 카즈마사가 유키노의 에피소드에 관여하게 만듭니다. 에피소드의 내용 전개도 좀 더 심플해졌고요. 하지만 이런 각색은 아주 타당하면서도 괜찮았습니다. 단지 소설처럼 서술 트릭을 쓸 수 없기 때문에 억지로 각색한 것이 아니라, 유키노에 관여하는 인물을 카오루코에서 카즈마사로 변경한 것만으로도 영화의 전체 내용과 방향성이 말끔하게 정리된 면도 있거든요. 소설에서는 카오루코가 유키노의 에피소드에 관여하는 내용이 훨씬 복잡한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일단 영화에서 아예 캐릭터가 삭제되다시피 한 신죠 후사코는 소설에서 은근히 비중이 크면서 많은 함의를 품고 있는 캐릭터입니다.(영화에서도 미즈호가 특수학교에 입학한 사실이 언급되고 교사로 보이는 인물도 잠깐 등장하지만 거의 비중이 없습니다.) 거기에 카오루코가 작품 내에서 누구보다도 미즈호의 생명에 집착하면서도 동시에 유키노의 이식 수술을 위한 모금활동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는 상황도 굉장히 복잡한 캐릭터의 심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본명이 아닌 미즈호의 담당 교사인 신죠 후사코의 이름을 사용한 것도 단순히 신분을 감추기 위한 의도만은 아니었고요.

 

유키노의 에피소드에서 캐릭터의 심경과 작품의 전체적인 주제가 굉장히 복잡한 영역까지 나아가는데, 영화에서는 이 에피소드를 카즈마사가 연관되는 내용으로 바꿈으로써 주제와 인물의 감정선을 훨씬 덜 복잡하게 정리한 셈이 되었습니다. 이런 각색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좀 더 쉽게 영화에 몰입하게 만드는데 도움이 됩니다. 더 나아가서는 영화를 본 후 소설까지 읽어보는 것을 더 의미 있게 만들어주기도 하고요.

 

유키노의 에피소드를 제외하고는 크게 각색된 내용이 없이 소설의 내용을 온전하게 잘 담아냈습니다. 하지만 또 하나의 결정적인 소설과 영화의 차이가 존재하는데 바로 주인공인 카오루코의 캐릭터입니다. 물론 소설과 영화에서 카오루코의 성격이나 행적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아주 미묘한 차이가 분명히 발견되고, 저는 이것이 꽤 결정적인 영화와 소설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노하라-료코-카오루코

 

그 차이의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바로 캐스팅입니다. 영화를 본 대부분의 관객들은 시노하라 료코가 좋은 캐스팅이었고 이 영화에서 카오루코 역할로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었다고 평가할 것입니다. 그냥 추측이 아니라 인터넷에 올라온 네티즌들의 리뷰나 단평들에서 실제로 이런 평가를 많이 봤습니다. 하지만 저는 카오루코 역할로 시노하라 료코가 그다지 어울리는 캐스팅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주요 인물들은 소설의 이미지에 찰떡같이 어울렸던 데 반해(특히 니시지마 히데토시와 사카구치 켄타로) 시노하라 료코는 원작 캐릭터와 느낌이 꽤 달랐습니다.

 

영화의 각색이나 감독의 연기지도도 영향이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시노하라 료코라는 배우의 이미지 때문입니다. 정말 교과서적인 ‘모성’과 ‘엄마’의 이미지를 너무 완벽하게 품고 있는 배우거든요. 하지만 소설에서 카오루코는 ‘엄마’의 모습과 함께 ‘여자’의 모습도 보여주는 캐릭터입니다. 소설에서 프롤로그가 끝난 후 나오는 첫 번째 챕터의 첫 장면이 카오루코가 애인 관계가 되기 직전의 남성과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장면입니다. 이혼을 앞둔 유부녀인 여성이 썸 타는 관계의 남성과 서로 호감을 주고받으며 야릇하고 미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장면이 소설의 초반부에 나옵니다. 영화의 카오루코라면 이런 장면은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사카구치 켄타로가 연기한 호시노와 카오루코의 관계성도 소설과는 미묘하게 차이가 있습니다. 호시노가 미즈호의 일 때문에 카오루코의 집에 자주 방문하여 애인인 마오로부터 바람피우는 것으로 오해받게 되는 상황도 소설에서는 카오루코와 호시노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분위기 때문에 꽤나 본격적인 삼각관계 치정극의 분위기가 납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런 분위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반응형

 

이렇게 다소 복잡한 면모가 있었던 소설의 카오루코 캐릭터를 영화에서는 더 이해와 몰입이 잘되는 캐릭터로 바꾸기 위해서 시노하라 료코로 캐스팅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확실히 작품의 주제를 전하는 데는 효과적인 변화였겠지만 이 때문에 카오루코의 캐릭터가 다소 도구화되고 작위적인 느낌도 들게 되었습니다. 분명한 건 저의 감상에서는 소설의 카오루코 캐릭터가 더 흥미롭고 매력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영화에서 시노하라 료코가 연기한 카오루코의 캐릭터가 나빴다는 것은 아닙니다. 원작과 같은 복잡한 면모는 사라졌지만 그만큼 단순하게 주제를 전달하고 작품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훌륭하게 해냅니다. 시노하라 료코의 연기와 캐릭터가 별로였다면 이 작품이 결코 저에게 이 정도로 만족스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니시미자-히데토시

 

소설에서 카오루코가 관여했던 유키노의 에피소드를 영화에서는 카즈마사가 관여하는 내용으로 바뀐 만큼 영화의 카즈마사는 소설에 비해 비중이 좀 더 늘어났습니다. 두 캐릭터의 비중은 소설에는 명백히 카오루코에게 무게가 쏠려 있지만 영화에서는 어느 정도는 밸런스를 맞춘 느낌입니다. 니시지마 히데토시는 요즘 보는 작품마다 최고의 연기만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고뇌에 찬 (잘생긴)중년남성’을 연기하는 데 있어서 그야말로 현존 최고의 배우라고 해도 될 것 같아요.

 

세 명의 아역 배우들도 좋은 연기를 보여줍니다. 특히 미즈호 역의 배우 이나가키 쿠루미는 영화에서 출연 비중은 아주 높은데도 대부분의 장면에서 눈을 감고 꼼짝 않고 있는 모습만 연기했죠. 그렇지만 몇몇 장면에서 굉장히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미즈호의 연기는 두 가지 장면이 크게 기억에 남았는데, 첫 번째 장면은 카즈마사에서 선물을 받은 후 호시노의 기계 장치 조작에 의해 얼굴 근육을 움직여 미소를 짓는 장면입니다. 굉장히 아름답고 귀여우면서도, 동시에 섬뜩한 느낌이 드는 미소였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입니다. 이나가키 쿠루미가 표정 연기도 아주 잘했고, 이에 대해 섬뜩한 느낌을 받는 카즈마사의 반응까지 전체적으로 감독의 연출과 연기지도가 매우 훌륭한 장면이었습니다.

 

두 번째 장면은 소설을 읽은 입장에서 제가 영화를 보며 특히 기대를 했던 장면인데, 바로 카오루코의 꿈에서 미즈호가 작별인사를 하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은 소설을 읽을 때도 굉장히 좋았고, 영화도 제법 만족스럽게 연출을 잘했습니다. 시노하라 료코와 이나가키 쿠루미의 연기도 괜찮았고요. 다만 대화 상황과 장면들이 소설을 읽으며 제가 상상한 것과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어서 그 부분은 조금 미묘하게 느껴졌습니다. 사실 제가 상상한 장면대로 연출되었더라도 영화보다 더 나았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영화의 장면이 마음에 들면서도 ‘뭔가 좀 달라...’라는 생각은 들더라고요.

 

미즈호-쿠루미

 

사카구치 켄타로와 카와에이 리나도 좋은 캐스팅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사카구치 켄타로가 출연한 모든 작품 중에서 이 작품에서의 캐릭터와 연기가 가장 느낌이 좋았습니다. 너무 찰떡같이 어울리는 역할이었고, 연기도 정말 잘하더군요. 카와에이 리나와 커플로 나오는데 두 배우를 그대로 아주 상큼한 로맨스 영화의 남녀 주인공으로 캐스팅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케미가 아주 좋은 커플이었는데 영화 내용이 심각하게 전개되면서 케미가 죽어버리는 것이 조금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728x90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라플라스의 마녀’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보다는 좀 더 명확하게 ‘히가시노 게이고 풍’이라고 느껴졌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세 편밖에 안 읽었지만 ‘용의자 X의 헌신’이나 ‘백야행’ 등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실사화 작품들은 여러 편 봤거든요. 소설이 아닌 실사 작품으로만 봤었던 히가시노 게이고 원작의 작품들이 가지는 그 독특한 느낌이란 것이 있습니다. ‘인어가 잠든 집’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들과는 다소 이질적인 분위기의 작품인데도 영화는 유명한 히가시노 게이고 원작 작품들과 묘하게 분위기가 닮아 있더군요. 뭔가 영화의 도입부부터 ‘히가시노 게이고 풍이네’ 라는 느낌이 강하게 왔습니다.

 

확실히 정말 대단한 작가입니다. 소재와 주제를 선택하는 폭이 아주 넓은 작가인데 동시에 작품에서 주제를 다루는 깊이도 대단합니다. 인어가 잠든 집이 담고 있는 주제는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생각해볼 수 있지만 동시에 명확한 답을 내리기는 어려운 주제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답을 내리기 어려운 주제에 대해서 깊이와 함께 절묘한 균형감각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뇌사와 장기기증. ‘생명’과 ‘삶’의 정의. 작품을 본 사람들 간에 끝없는 대화거리를 던져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카구치-켄타로-니시지마-히데토시-시노하라-료코

 

정말 좋은 영화였지만, 국내 극장에서 이 작품을 본 관객들에 한해서는 아주 큰 불만 한 가지가 존재할 듯합니다. 바로 자막 문제입니다. 자막에 대해서는 주로 엉터리 오역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인어가 잠든 집의 자막은 그 정도가 아닙니다. 오역은 기본에 비문과 오타까지 있었습니다. 뭔가 자막을 급하게 대충 만든 후 검수도 안 한 것 같더군요. 특히 정말 최악이었던 자막이 있는데 바로 미즈호가 카오루코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장면에서 나왔습니다. 원래는 ‘난 정말 행복했어’라는 대사인데 이걸 ‘난 운이 좋은 아이야’라고 번역했더군요. 엄마가 사랑으로 보살펴줘서 그동안 행복했다 라는 아주 감동적인 대사인데 이걸 운이 좋다라고 번역하는 건 도대체 어떤 의도인 건지... 물론 오역 하나로 이 장면의 감동이 다 날아가버린 건 아니지만(소설의 대사를 아는 데다 ‘행복했어’라는 일본어 정도는 알아들으니까요) 좋은 장면에서 옥에 티가 된 것만은 분명합니다. 나중에 인터넷 다운로드나 스트리밍으로 공개될 때는 이 자막이 꼭 수정되었으면 좋겠습니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