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메이크영화 리뷰
*스포일러가 포함된 리뷰입니다
리틀 포레스트 Little Forest リトル・フォレスト
리틀 포레스트는 원작 만화가 있는 작품입니다. 원작이 있는 작품을 2개 국가 이상에서 영화화한 경우 보통 리메이크라고 하지는 않죠. 하나의 원작을 각각 영화화한 것일 뿐. 하지만 일본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없었다면 한국에서 이 작품이 영화로 제작될 일도 없었을 것이기에 사실상 리메이크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어떻게 보더라도 한국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일본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영향을 받아 제작된 작품이니까요.
그런데 원작 만화를 읽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일본판 리틀 포레스트는 원작 만화를 정말 충실하게 그대로 실사화한 작품입니다. 등장하는 요리부터 해서 대사와 주요 장면들까지 만화책에 나오는 걸 그대로 실사로 옮겨 놓았죠. 하지만 같은 장면과 대사, 내용이라도 만화책 지면으로 읽는 것과 실사 영상으로 보는 것은 당연히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거기에 영화는 훌륭한 완성도를 보여주고 시골의 풍경과 정성 들인 요리를 담아낸 영상미는 보는 눈을 즐겁게 합니다. 영화로 만들어짐으로써 만화책이 담고 있는 재미와 가치가 더욱 상승하게 된 것이죠. 영화로 만들어진 ‘리틀 포레스트’는 더욱 유명해졌고 한국에도 팬이 생겼으며 결국 한국영화로까지 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는 일본판 리틀 포레스트와 많은 점이 다릅니다. 일본판 리틀포레스트는 주인공이 시골에 살면서 대부분 자급자족한 재료들로 정성 들여 요리해 먹는 모습만을 오롯이 집중해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것 외에 이렇다 할 서사라는 게 없어요. 물론 주인공에게도 삶의 행적이 있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있으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작품 속에서 온전한 형태를 이룬 채 다루어지지 않아요. 있긴 있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도 없고 결과적으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종의 맥거핀인 셈이죠.
주인공의 서사 자체가 불분명한 맥거핀으로 존재한다는 건 일반적으로 영화에서는 성립되기 어렵죠. 아마 영화의 오리지널 각본으로 이런 내용을 쓰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다 읽고 나서 ‘그래서 이게 무슨 내용인 건데?’ ‘그래서 주인공이 어떻게 되었는데?’ 라는 반응이 나올 만한 각본일 테니까요. 일본이 아니라면 이런 영화를 만들 나라는 거의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해외 영화를 쉽게 접할 수가 있고 문화 분야의 국가 장벽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시대이지만 그래도 각 나라 문화 콘텐츠들은 그 나라 만의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리메이크 작품이 흥미로운 이유가 여기에서 발생합니다. 한국영화에는 한국영화스러운 특성이 있고 일본영화에는 일본영화스러운 특성이 있는데 그런 특성들이 다른 나라 영화로 리메이크 되었을 때 어떻게 표현될 것인가. 즉, 일본영화를 리메이크한 한국영화는 다른 한국영화들과는 다른 독특한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저는 리틀 포레스트가 한국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놀라고 신기했습니다. 일본영화 중 독특한 영화가 많은데 리틀 포레스트는 그 중에서도 특히 더 독특한 영화였거든요. 정말 오로지 일본이니까 가능한 영화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는데 이걸 한국영화로 만든다고? 궁금증이 커질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가 공개되었습니다. 결과물은 제 예상과 달랐습니다. 예상과 달랐다라기 보다는 저는 애초에 ‘어떻게 나올 거 같다’ 라는 예상 자체를 못했습니다. 일본영화와 똑같이 나올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였지만 이걸 어떻게 변형을 할지 예상이 안 되더군요. 일단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에 대한 저의 감상은, 일본판과는 매우 다르고 무척 흥미로운 부분도 있지만 실망스러운 부분도 있다는 것입니다. 전반적으로는 꽤 호의적인 평가를 해주고 싶은 영화입니다.
하지만 일단 크게 실망한 부분이 확실히 있습니다. 그것은 원작과 너무 다른 영화로 나와버렸다는 것입니다. 리메이크를 하든 원작이 있는 작품을 영화로 만들든 무조건 원작과 똑같이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심지어는 왜 판권 계약을 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원작과 아주 많이 동떨어진 작품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죠. 예를 들어 ‘월드워Z’ 같은 작품.
하지만 원작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런 결과물에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원작과 다르지만 그 나름대로 재미있는 작품이라도, 일단 원작과 다른 점에는 실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특히 원작에서 정말 좋아했던 요소들이 사라져 버렸다면 더욱 그럴 테고요.
리틀 포레스트를 감독한 임순례 감독의 인터뷰를 읽었는데요. 원작과 어떤 식으로 다른 방향성을 추구하게 되었는가를 상세히 밝힌 인터뷰였죠. 감독마다 본인의 창작자로서의 성향과 스타일이 있으니 작품에 그런 부분이 자연스럽게 반영된 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저는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가 일본판과 이렇게 극명하게 달라지게 된 데는 좀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영화 제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흥행’입니다. 일본영화를 보다 보면 한국영화와 비교해서 가장 많이 하게 되는 생각이 이것입니다. ‘이런 종류의 영화는 한국에서는 흥행이 안 될 거 같아 절대 만들어질 수 없겠구나’. 네, 한국이라면 절대 흥행이 안 될 거 같은 내용과 스타일의 영화가 일본에서는 정말 많이 제작됩니다.
일본에서는 이런 영화들이 흥행이 잘 되기 때문일까요? 딱히 그렇지는 않아요. 일본의 극장 박스오피스 흥행 환경과 한국의 극장 박스오피스 흥행 환경은 많이 다릅니다. 일단 일본은 한국만큼 영화를 많이 보는 나라가 아닙니다. 정확히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많이 보는 나라가 아닙니다. 일본의 인구수는 한국의 2배 이상 많습니다. 그런데 연간 영화관 총 관객 수는 한국이 일본보다 더 많습니다. 물론 코로나 시대 이전 기준으로요.
인구수가 절반 이하인 나라가 연간 극장 관객 수는 더 많다는 건 그만큼 1인당 극장 영화 관람 편수가 한국이 일본보다 훨씬 많다는 의미죠. 한국인이 영화관에 많이 가는 건 유명한 사실입니다. 1인당 연간 영화관 관람 횟수가 세계 모든 나라 통틀어서 1~2위를 다투는 수준이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국민들이 영화관에 많이 가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영화 산업은 그리 고수익 산업이 아닙니다.
‘열정 페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영화 산업 종사자들에게 충분한 임금이 주어지지 않는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영화 한 편이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평균적으로 극장에서 200~400만 정도의 관객 동원을 해야 하고 그보다 더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의 경우 손익분기점이 그 배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매년 제작되는 한국영화 중 그 정도의 흥행을 거두는 영화는 소수에 불과하죠. 영화 산업의 연간 총 수익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해가 자주 있을 정도로 한국에서 영화 사업으로 수익을 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현실이다 보니 영화 제작에 있어서도 흥행을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론을 그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죠. 이게 바로 흔히 말하는 ‘뻔한 흥행공식’입니다. 이런 뻔한 공식을 벗어날 경우 흥행의 가능성이 불분명해지기에 그런 모험적인 시도를 하기가 어려워지고 영화의 장르와 내용, 소재 등이 점점 획일화 되어 가는 것이죠. 한국 누리꾼들이 어떤 사건이나 이슈가 생길 때마다 (뻔하게 예상되는)‘가상 캐스팅’, ‘가상 시나리오’ 같은 게시글을 올리고 노는 것도 이런 현실이 반영된 것입니다.(또경영 필수!)
그런데 한국보다 영화관 관객 수가 훨씬 적은 일본은 한국과는 상황이 달라요. 일본 영화표 값이 한국보다 비싸기 때문에 관객 수는 적어도 연간 총 매출액은 일본이 한국보다 높습니다. 사실 영화 뿐 아니라 대부분의 문화 산업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 다음의 3위의 규모를 자랑하는 게 일본의 문화 소비 시장입니다. 거기에 극장이 아닌 2차 시장의 규모가 한국보다 훨씬 큽니다. 즉 극장에서 크게 히트하지 않더라도 2차 시장에서 만회할 길이 열려 있고 초대박 히트는 잘 나오지 않더라도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갖추어져 있는 것이죠.
물론 최근 코로나 시대의 영향과 넷플릭스 같은 OTT 산업의 급성장으로 영화 산업의 구조가 급변하고 있고 이로 인해 한국의 영화 산업도 큰 변화가 생길 거라는 예상이 많습니다. 뻔한 흥행 공식만을 좇는 획일화된 영화 산업이 아닌 다양한 스타일과 소재의 영화들이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는 영화 산업으로 탈바꿈 하기를 많은 국내 영화 팬들이 기대하고 있죠. 확실히 넥플릭스 등 해외 자본과 플랫폼이 들어오면서 영화 산업 뿐 아니라 모든 분야의 문화 콘텐츠들의 다양성이 확장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있습니다. 아주 좋은 일이죠.
하지만 몇 년 전 리틀 포레스트가 개봉할 때의 상황은 지금과 달랐습니다. 만약 리틀 포레스트가 지금 시점에 넷플릭스 같은 OTT 플랫폼으로 공개 되었다면 원작과 비슷한 방향으로 제작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리틀 포레스트가 개봉한 2018년에 넥플릭스는 이미 한국 시장에 진출에 있었지만 지금처럼 영향력이 크지는 않았고 리플 포레스트의 개봉 시기가 아닌 제작 확정 시기를 생각해 보면 더욱 그 영향은 없었다고 볼 수 있겠죠. 당시(라고 해봤자 불과 몇 년 전이지만)에는 정말로 한국영화로서는 닥치고 극장개봉, 그리고 흥행, 이라는 선택지 외에는 생각할 수가 없는 시대였으니까요.
그렇게 해서 일본판과는 전혀 다른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가 만들어집니다. 우선 한국에서 흥행을 노리는 상업영화라면 절대 용납될 수가 없는 일본판의 특성을 지워버립니다. 바로 ‘맥거핀화된 서사’입니다. 맥거핀이 아닌 온전한 서사가 있어야지 한국에서는 상업영화로 성립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마치 흐릿한 안개와도 같았던 일본판 주인공의 사연과 인생 스토리가 한국판에서는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도록 각색됩니다.
물론 그렇다고 거창한 스토리가 갖추어진 건 아니에요. 스토리에 빈 곳이 많았던 일본판에 일종의 ‘공백 보완 효과’ 정도로 뻔하게 그려지는 빈 곳을 채운 것 뿐이죠. 하지만 이 정도 각색만으로도 원작과 굉장히 큰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그냥 영화를 감상하는 느낌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주인공의 행보와 스토리의 진행을 의식하게 된다는 것만으로도 일본판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영화가 돼버리는 거죠.
예를 들어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외 다른 캐릭터들과의 관계 묘사가 그렇습니다.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에게는 ‘주변 사람들’이 있어요. 쉽게 말해서 ‘왕래하는 동네 사람들’이죠. 그 중 주인공과 동세대의 젊은이가 2명 있습니다. 이들과 주인공은 당연히 친구입니다. 한 명은 여자이고 한 명은 남자예요. 학생 시절부터 알던 사이이기 때문에 현재도 세 명은 친한 관계를 이루고 있으며 종종 셋이 함께 어울립니다. 하지만 이 3인방의 관계 묘사는 일본판과 한국판에서 극명하게 차이가 있습니다.
일단 일본판에서는 이 친구 2명의 비중이 별로 없습니다. 일본판은 요리의 이름이 제목으로 붙은 에피소드 형식으로 내용이 전개되는데, 다른 등장인물 없이 주인공이 단독으로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상당히 많습니다. 다른 등장인물이 나오더라도 지나가다 인사 정도 하는 장면이거나, 주인공이 단독 장면에서 하는 생각이나 행동에 대한 계기가 되는 대화 몇 마디를 나누는 상대역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네, 일본판에서는 비중 있는 조연 자체가 없어요. 애초에 영화에 내용도 없고, 조연 캐릭터가 할 역할도 없는 것이죠.
하지만 한국판에서는 어떻게든 상업영화로서 내용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연히 이 2명의 비중이 엄청나게 큽니다. 주인공 못지않게 영화의 핵심 요소예요. 그리고 여자 2명과 남자 1명으로 이루어진 젊은이 3인방이 등장한다면... 당연히 ‘그 스토리’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죠. 바로 연애 스토리... 그리고 삼각관계입니다.
사실 이런 부분은 한국판이 오히려 정상인 것 같아요. 사실 영화에 내용이 있냐, 없냐를 따지자면 있는 쪽이 정상인 게 당연하잖아요. 하지만 리틀 포레스트는 오히려 내용이 없기 때문에 더 흥미로운 작품이었고 저를 비롯한 이 작품의 팬들도 바로 그 점에 매력을 느꼈던 것이거든요.
아무튼 젊은 남녀 3인방이 등장하고 거기서 연애 스토리가 발생하는 건 한국영화에서는 너무 자연스러운 선택입니다. 장르가 공포나 액션이라서 3인방이 서로를 죽인다거나 대결 한다든가 할 게 아니라면 평범한 현대 젊은이들의 평범한 삶을 다룬 내용에서는 그러는 게 자연스럽죠.
하지만 한국판이긴 해도 이 작품은 역시 ‘리틀 포레스트’입니다. 원작과 완전히 무관하게 만들 거라면 판권료를 지불한 의미가 없죠. 그래서 연애 스토리와 삼각관계가 등장하긴 해도 다른 한국 영화들과는 전혀 다릅니다. 이 연애 스토리가 별로 심각하거나 진지하지가 않아요. 결국 영화 내내 누구랑 누가 맺어진다는 내용도 없고요. 이 점에서 아이러니 하게도 오히려 일본판이 진도를 더 나간 셈이 되었습니다. 일본판에서는 최후에 이 3인방 중의 2명이 결혼해서 맺어지게 되거든요. 물론 주인공이 아닌 주인공의 친구 2명이 맺어집니다. 주인공은 다른 배우자를 가지게 되고요.
사실 한국판에서도 연애 스토리는 진기주가 연기한 ‘은숙’이 혼자 복치고 장구치고 다하는 겁니다. 은숙은 류준열이 연기한 ‘재하’를 짝사랑 하고 있고 재하와 가까운 ‘혜원’(주인공)을 견제하고 있죠. 은숙이 보여주는 이런 모습 외에는 3인방에게서 명확하게 드러나는 연애 감정이 없어요. 미묘한 뉘앙스가 풍기는 정도지 구체적으로 표현되지는 않죠. 은숙의 짝사랑과 주인공에 대한 견제도 그다지 진지한 느낌이 없고요.
즉,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가 보여주는 영화로서의 스토리는 모두 ‘메인’이 아닌 말 그대로 겉절이 라는 느낌입니다. 사실상 한국판도 메인이라고 할만한 스토리는 없는 셈이에요. 다만 일본판은 메인 뿐 아니라 겉절이 스토리 조차 없으니까 한국판과 큰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는 거고요.
사실 한국판과 일본판의 차이를 방향성의 차이로 보기도 하지만 단순히 영화를 구성하는 특정한 요소가 대체되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영화에 메인이 될만한 내용이 없습니다. 없지만... ‘없으면 군생활 끝나나?’ 메인 스토리가 없으면 그 대신 뭐라도 있어야 영화의 러닝타임을 채우잖아요. 그걸 한국판에서는 자잘한 겉절이 에피소드들로 채워 넣은 겁니다. 그러면 일본판은? 모두가 아는 대로 일본판을 채워 넣은 요소는 바로 ‘요리’입니다.
한국판에서도 요리 장면이 나오기는 합니다. 김태리가 연기한 주인공 혜원은 일본판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요리 실력이 뛰어나고 한 끼의 식사를 정성 들여 요리해 맛있게 먹는 모습을 계속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일본판 주인공과는 큰 차이가 있어요. 하시모토 아이가 연기한 일본판 주인공 ‘이치코’는 대부분의 요리 재료를 자급해서 얻습니다. 그녀가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 재료를 획득하는 과정이 영화에서 꽤 자세하게 그려져요. 그리고 요리 과정의 묘사도 일본판에서 더욱 상세하게 그려집니다. 영화가 아니라 요리 정보 프로그램이나 요리 전문 유튜브 채널에서 볼 법한 연출을 보여주기도 하고요.
네, 일본판 리틀 포레스트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요리입니다. 정확히는 ‘음식’이죠. ‘먹는다’는 것은 인간이 삶에서 필수적으로 해야만 하는 활동입니다. 이런 동적인 활동 자체가 어떤 면에서는 삶 그 자체로 정의될 수 있으므로 ‘먹는다’는 활동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중요하고 일상적인 삶의 행위인 셈이며 그 중심에 언제나 요리와 음식이 있는 것입니다. 아마 일본판 리틀 포레스트를 보고 이런 느낌(감상)을 받은 사람이 많을 거예요. 명백히 그런 의도와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니까요.
한국판 리틀포레스트에서 특히 아쉽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한국판 에서도 요리 장면과 식사 장면이 많이 나오거든요. 말할 것도 없이 이 작품이 ‘리틀 포레스트’이기 때문입니다. 요리와 먹는 장면 없이는 절대로 리틀 포레스트일 수가 없습니다. 리틀 포레스트가 아닌 다른 작품인 것이지. 결국 요리와 음식 장면을 넣을 수 밖에 없는데, 그럴 거면 일본판 처럼 요리 정보 프로그램 수준의 상세한 묘사는 아니더라도 좀 더 비중 있게 요리와 음식 장면을 그려냈어도 좋았을 거란 말이죠. 즉, 한국판에서는 요리 장면과 식사 장면이 그다지 자세하게 묘사되지가 않아요. 나오기는 많이 나옵니다. 하지만 뭔가 겉핥기 느낌으로 대충 때우는 느낌입니다. 그냥 ‘리틀 포레스트’이기 때문에 요리와 음식 장면을 의무적으로 넣은 느낌? 심지어는 ‘이 영화에 요리와 음식 장면이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결코 이것들이 이 영화의 핵심인 건 아니니 오해하지 마세요’ 하고 호소라도 하는 것 같아요. ‘요리와 음식 따위가 상업영화의 주역이 될 수는 없다! 적어도 한국영화에서는! 무조건 중요한 건 인물과 그들의 스토리다!’
사실 요리와 음식 장면을 좀 더 상세하게 그려낼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것은 역시 한국영화계에서 일반적으로 통용(‘용인’보다는 이쪽이 적절한 표현이겠죠)되는 상업영화의 모습이 아니게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겠죠. 음식보다는 사람. 요리보다는 이야기. 아마 임순례 감독도 그런 방향이 정상적으로 영화를 연출한다는 감각으로 받아들였을 테고요.
즉, 일본판 리틀 포레스트와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의 결정적인 차이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런 겁니다. ‘음식과 사람’에 대한 영화가 ‘사람과 사람’에 대한 영화로 바뀐 거라고. 정말, 정말, 정말 큰 변화죠. 원작을 좋아했던 팬으로서는 당연히 실망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가 나쁜 건 아니에요. 앞에서 언급했지만 저는 이 영화에 대해서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꽤 좋아하는 영화예요. 가장 좋아하는 요소는 등장인물 3인방의 케미입니다. 김태리, 진기주, 류준열 모두 좋아하는 배우이고 세 배우의 케미가 정말 좋았거든요. 일본판도 배우들이 좋기는 하지만 주인공 외 2명의 비중이 한국판보다 현저히 떨어지고 그다지 인물 간의 케미를 살리는 내용이나 연출은 없습니다. 두 작품이 각자 다른 장점을 가진 셈이죠.
무엇보다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는 일본만화 원작에 사실상 일본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니만큼 다른 한국 영화들과는 다른 독특한 느낌이 있습니다. 리틀 포레스트는 독특한 일본영화들 중에서도 특히 더 독특한 작품이었으니까요. 그런 작품의 한국판 리메이크니 한국 영화 같지 않은 색다른 느낌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리고 결과적으로 좋은 작품으로 완성되었습니다. 결국 리틀 포레스트의 한국판 제작은 매우 좋은 기획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서즐라
대중문화와 서브컬처를 즐기는 라이프
트위터 @dsz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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