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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과 리메이크사이

[원작과 리메이크사이] 베테랑 / 대인물

by 대서즐라 2021.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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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메이크영화 리뷰

베테랑 / 대인물 大人物

류승완 감독의 2015년작 베테랑은 무려 1341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초대박 히트작입니다. 2015년 여름의 한국 극장가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원래 7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의 여름 휴가철 시즌이 일 년 중 가장 많은 관객이 극장을 찾는 최대의 성수기 시즌이고 이 시기에 천만 관객 영화가 많이 나오기도 했지만, 2015년에는 최초로 이 시기에 두 편의 영화가 천만 관객을 돌파한, 소위 ‘쌍천만’ 신화가 이루어진 해이기 때문입니다. 베테랑 보다 2주 앞서 개봉한 최동훈 감독의 ‘암살’이 먼저 천만 축포를 쏘았고, 그 후 베테랑이 그 바통을 이어 받았죠.

두 영화 중에서 더 대단한 흥행을 한 건 베테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흥행 성적 자체가 1270만 명의 암살 보다 1341만 명의 베테랑이 더 높기도 하지만, 예상 흥행의 기대치나 흥행 환경에서 암살이 베테랑보다 더 유리한 영화였기 때문입니다.

두 영화가 2주 간격으로 개봉일이 확정되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암살이 더 높은 흥행을 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개봉 시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다지 의식하지 않고 있는데 사실 한국 극장가에서 흥행을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인이 개봉 시기입니다. 성수기에 개봉하느냐 비수기에 개봉하느냐에 따라 예상되는 흥행의 기대치가 전혀 달라지게 됩니다. 물론 배급사 입장에서도 관객이 많이 몰리는 성수기에 가장 흥행 기대치가 높은 대작을 내놓기 때문에 이런 점까지 함께 작용하여 개봉 시기에 따른 흥행 결과의 차가 더욱 극명하게 갈리는 것입니다.


아무튼 한국 극장가에서 최대 성수기는 역시 여름 휴가철 시즌인데, 베테랑 이전까지는 여름 성수기 시기에 개봉해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는 모두 7월 말이 개봉일이었습니다. 이 시기가 장마가 끝나고 더위가 맹위를 떨치면서 본격적인 휴가시즌이 시작되는 시기입니다. 즉 여름 성수기의 시작 지점인 셈이죠. 이 시작 지점에 냉큼 극장가를 선점해서 8월 초까지 이어지는 성수기 시즌의 단물(?)을 단기간에 빨아먹고 천만 관객 돌파를 이루어내는 전략이 대형 배급사들의 여름 성수기 공략의 특징입니다. 2015년 이전까지는 모두 7월 말에 개봉한 영화들만 여름 성수기 흥행 제왕에 오르고 천만 관객 돌파를 했기 때문에 이것은 확고하게 정해진 공식으로 여겨졌습니다. 천만 관객 돌파를 노리는 대작이라면 무조건 7월 말 개봉. 이 시기를 포기하는 건 천만 관객을 포기하는 것.

그런데 베테랑은 한국 최대 배급사 CJ의 여름 텐트폴 영화입니다. CJ의 여름 텐트폴 영화는 무조건 천만 관객을 노리는 대작 영화입니다. 당연히 7월 말로 개봉일을 잡을 줄 알았는데, 정작 확정된 개봉일이 8월 5일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물론 7월 말과 8월 5일이 그렇게 시기적으로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천만 관객을 노릴 수 있는 개봉 시기라고는 할 수 있지만, 8월에 개봉해서 천만 영화가 된 사례가 이전에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확실히 모험적인 시도라고 보였습니다.

사실 CJ 입장에서는 자기들의 베테랑도 상당한 대작이었지만 경쟁작인 쇼박스의 ‘암살’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밀린다는 판단이었던 것 같습니다. 류승완도 흥행 감독이지만 암살의 최동훈 감독은 당시 한국 영화계 최고의 흥행 감독이었고 배우들 라인업도 암살 쪽이 좀 더 쟁쟁한 느낌이었거든요. 그래서 정면 승부를 피하는 방향으로 갔던 것이고 영화에 충분한 자신감이 있으니 한국 박스오피스 사상 유례없는 쌍천만도 가능하지 않겠나 하고 판단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결과적으로 맞는 판단이 되었죠.

암살


앞 문단에 언급한 대로 ‘영화에 자신이 있어서’ CJ가 그런 판단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베테랑은 재미있고 완성도 높은 영화입니다. 천만 관객의 히트작이 될 자질을 충분히 갖춘 작품. 

베테랑을 만든 감독은 류승완입니다. 사실 류승완 감독은 물론 데뷔작부터 명성을 떨치긴 했지만 한국 영화계에서는 대중적인 감독이라기 보다는 마니아 취향이라고 평가받는 감독이었습니다. 폭력적이고 과격한 영화를 많이 만들었고 뭔가 영화가 조금은 극단적인 성향을 보이죠. 절제가 없다고나 할까. 조금 밝은 분위기의 작품에선 굉장히 요란벅적하고 유머러스한 성향을 보여주기도 하고요. 해외의 닮은 감독이라면 에드가 라이트를 꼽을 수 있겠네요.

그러다가 2010년작 ‘부당거래’부터 어느 정도 대중적인 노선의 상업영화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한국 영화계에서 유독 튀어 보였던 그의 영화가 조금은 덜 튀어 보이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작품의 규모가 커지면서 아무래도 제작비 등 책임의 정도도 커지다 보니(감독 본인이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이면서 더 성숙한 태도를 가지게 되기도 했을 테고) 절제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 듯 합니다. 그 후 2013년에 블록버스터 영화 ‘베를린’을 만들어 700만 관객의 히트를 하고 대중적인 흥행 감독으로 입지를 굳히게 됩니다.(사실 베를린도 설 연휴 대목에 천만 관객을 노리고 개봉한 영화라 700만이 큰 성공이라고 하긴 어렵긴 합니다. 제작비도 높은 영화고...)

부당거래


그리고 베를린 다음으로 만든 작품이 바로 베테랑입니다. 처음에 언급한 대로 이 영화는 무려 1341만 관객을 동원한 초대박 히트작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류승완이 만든 영화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류승완 감독 특유의 개성이 이 영화에도 잘 살아 있습니다. 대작 블록버스터이지만 류승완 감독 스타일의 한 편의 요란벅적한 소란극 스러운 작품이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류승완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서 비로소 자신의 개성과 스타일을 대중적인 방향성에 알맞게 녹여내는 법을 완성했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천만 관객을 동원한 대중적인 히트작은 남녀노소 누가 봐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인 경우가 많죠. 베테랑은 특히 더 그렇습니다. 아주 명쾌한 권선징악의 스토리와 시원시원한 사이다 전개.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의 아주 단순한 해답을 명확하게 제시해주는 작품이죠. 

사실 베테랑과 아주 닮은 작품이 예전에 있었습니다. 바로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입니다. 2002년 개봉작으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었음에도 당시 3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큰 히트를 기록한 작품입니다. 이 영화에 설경구가 연기한 강철중이라는 형사가 등장합니다. 무식한 무대뽀 스타일의 형사로 딱히 정의롭지도 올바르지도 않은 독특한 스타일의 형사입니다. 하지만 나쁜 놈들을 두들겨 패는 건 잘합니다. 강철중이 남긴 유명한 명대사가 있죠.

“형이 돈이 없다, 그래서 패고, 말 안 듣는다, 그래서 패고, 어떤 새끼는 얼굴이 기분 나뻐, 그래서 패고. 그렇게 형한테 맞은 애들이 4열 종대 앉아 번호로 연병장 두 바퀴다”

공공의 적


강철중은 과거 복싱 선수 출신으로 아시안 게임 은메달을 따고 특채로 형사가 된 인물입니다. 그래서 싸움을 잘해요. 수틀리면 닥치는 대로 패버리는 인간이죠. 경찰보다는 깡패에 어울리는 인물.

공공의 적 이전에 유명했던 형사 영화가 또 있는데 역시 강우석 감독이 만든 투캅스입니다. 투캅스에 나오는 형사들도 정의롭거나 바른 모습과는 거리가 멉니다. 투캅스와 공공의 적을 통해 강우석 감독이 제시한 이런 유형의 ‘불량경찰’들은 한국 대중문화에 등장하는 형사 캐릭터의 표준이 된 듯한 느낌도 듭니다. 사실 형사라는 직업이 꽤나 거친 직업이기 때문에 범죄자를 위압할 수 있는 터프함이 어느 정도 필요한 자질인 게 사실이기도 하고요. 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에서 나온 묘사대로 과거에는 공직에 부패와 타락이 만연해 있어서 한국영화 속 불량경찰의 모습도 어느 정도 현실적인 고증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투캅스와 공공의 적의 흥행으로 알 수 있듯이 이런 거친 형사 캐릭터들은 한국 관객들에게 꽤나 사랑을 받았습니다. 결코 ‘좋은 인간’이라고는 할 수 없는 이 캐릭터들이 관객들에게 사랑 받고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이들이 영화 속에서 정말 나쁜 인간들을 속 시원하게 응징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 불량경찰 캐릭터들은 ‘적이 되면 무섭고 혐오스럽지만 우리 편이라면 누구보다 든든한 인물’인 것입니다. 

투캅스


사실 형사 영화가 성공하는데 매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악역 캐릭터입니다. 완성도 높은 악역은 관객의 분노와 긴장을 유발하고 그 악역을 응징할 주인공에게 몰입하게 만들며 최종적으로 악역이 응징당하고 분노와 긴장이 해소되면 관객은 아주 큰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됩니다. 권선징악 스토리의 단순한 구조이지만 그렇기에 아주 단순한 몇 가지 핵심 요소의 완성도가 이야기의 전체 완성도를 결정짓는 것입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역시 악역이고요.

공공의 적 1편에서 이성재가 연기한 조규환은 한국 영화 사상 최고의 악역 캐릭터 중 하나로 꼽힙니다. 조규환은 사이코패스 캐릭터 입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해치고 심지어 살인 하는 것 조차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며, 그 대상이 친부모일지라도 예외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인면수심의 천하의 몹쓸놈이 영화의 마지막에 주인공 강철중에게 처절하게 응징을 당하죠. 조규환이 강철중에게 응징당할 때 관객이 최고의 재미와 만족을 느끼는 것은 그만큼 조규환이 완성도 높은 악역으로서 관객에게 어마어마한 분노의 혐오를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공공의 적


공공의 적이 나온 1년 뒤에 개봉한 ‘와일드카드’ 라는 영화에도 상당히 인상적인 악역이 등장합니다. 와일드카드는 투캅스나 공공의 적 만큼 유명하지는 않아도 한국 형사 영화의 명작으로 꼽히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에는 양아치 뻑치기 일당이 등장하는데 조규환 만큼은 아니어도 상당히 막장스럽고 사이코패스적인 면모를 보여줍니다. 공공의 적이 조규환과 강철중의 개인 대 개인의 대결이라면 와일드카드는 양아치 일당과 형사팀이 벌이는 집단과 집단의 대결이죠. 이 영화도 공공의 적과 마찬가지로 양아치 일당의 막장 범죄 행각으로 관객의 분노를 고조시킨 후 형사들이 이들을 응징하는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전개로 단순하지만 큰 재미를 선사합니다.

와일드카드


류승완의 베테랑도 이런 권선징악 형사물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큰 차이가 있다면 공공의 적과 와일드카드는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이고 베테랑은 15세 관람가 영화라는 점입니다. 수위가 그 만큼 약하다는 건데 그 수위 라는 건 바로 악당이 저지르는 범죄의 수위입니다.

베테랑의 악역 캐릭터는 유아인이 연기한 조태오입니다. 조태오는 공공의 적의 조규환이나 와일드카드의 뻑치기 일당 만큼 막장인 범죄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비교 대상이 저런 역대급 인간말종들이라 그렇지 조태오도 충분히 심각한 수준의 악당이죠. 영화에서 조태오가 저지르는 악행은 마약, 폭력, 갑질 등인데, 사실 조태오에 대한 묘사를 보면 영화에 나오는 악행들은 그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느끼게 만듭니다.


15세 관람가이기 때문에 범죄 묘사의 수위가 높지 없지만, 조태오 라는 인간의 얼마나 인성이 파탄 난 인간쓰레기인지를 다양한 상황과 영화적 장치들을 통해 보여주기 때문에 관객이 이 캐릭터에게 느끼는 분노와 혐오는 공공의 적이나 와일드카드와 비교해도 크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또한 관객이 조태오에게 분노를 느끼는 지점은 단순히 그가 저지르는 범죄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어마어마한 부를 가진 재벌의 지위를 이용해서 그런 부를 누리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깔아뭉게고 사회의 법과 질서를 무시하는 안하무인적 행태를 보이는 것이 관객이 조태오에게 분노와 혐오를 느끼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특히 땅콩회항이나 매값 사건 등 현실에 재벌들이 저지르는 사회적 물의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관객은 더욱 조태오의 캐릭터를 현실감 있게 느끼는 것입니다.

유아인이 정말 연기를 잘 했습니다. 캐릭터를 완벽하게 살렸죠. 그야말로 ‘밉살스럽다’라는 표현 그 자체가 된 듯한 어마어마한 캐릭터성을 보여줍니다. “어이가 없네” 같은 최고의 명대사를 남기기도 했고요. 조태오는 한국 영화 사상 최고의 악역 캐릭터 중 하나로 꼽힐만한 캐릭터입니다. 그리고 베테랑의 1300만 대히트의 일등공신이기도 하고요.

베테랑은 공공의 적이나 와일드카드와 같은 형사물입니다. 그런데 공공의 적은 강철중이라는 형사 한 명의 활약을 그리고 와일드카드는 형사 팀의 활약을 그리는데 베테랑는 딱 그 중간입니다. 베테랑의 주인공 서도철 형사는 기본적으로 팀으로 활동하는 인물입니다.(사실 이게 정상입니다. 강철중이 워낙 비정상인 케이스인 거고..) 하지만 조태오 사건에 있어서 서도철의 팀원들은 큰 비중이 없는 조력자 역할이고 사실상 서도철 형사 혼자서 거의 모든 수사를 다 합니다. 그래서 작품 자체도 와일드카드 보다는 공공의 적에 더 가까운 느낌입니다. 사실 공공의 적도 2편에서 재벌이 악역으로 등장했고 1편의 조규환도 재벌은 아니지만 잘나가는 펀드 매니저로 사회적 엘리트 계층이었죠.


황정민이 연기한 서도철 형사도 설경구가 연기한 강철중 형사와 꽤나 닮은 캐릭터입니다. 물론 강철중 보다는 훨씬 정상적인 형사입니다. 규율도 비교적 잘 준수하고 조직 생활도 모나지 않게 하고 있으며 거칠고 폭력적인 면이 있긴 하지만 강철중에 비하면 훨씬 절제된 캐릭터입니다. 하지만 조태오와 그 부하들에게 거칠게 욕설을 내뱉는 모습이나 폭력으로 상대를 위압하는 모습을 보면 역시 ‘경찰인지 깡패인지 헷갈리는’ 한국 영화 속 불량경찰 캐릭터의 면모도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런 종류의 거친 형사 캐릭터는 강철중을 기본 모티브로 삼고 거기에 필요한 수정과 수위 조절을 해서 만들어지는 게 거의 한국 영화계의 공식일 겁니다. 서도철이 딱 ‘강철중을 수위 조절한 캐릭터’ 그 자체예요. ‘보급형 강철중’이라고 표현해도 적절할 것 같네요.

‘보급형’이라는 표현은 사실 이 캐릭터가 그다지 강렬하지 않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강철중과 비교하면 ‘수위 조절’을 했으니까 당연히 캐릭터성이 약할 수밖에 없고, 악역인 조태오와 비교해도 뭔가 인상적인 부분이 적습니다. 황정민이 연기는 잘합니다. 하지만 이 배역에 맞는 최고의 캐스팅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황정민이 악역이든 선역이든 구분 없이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마스크이긴 하지만 부당거래, 신세계, 아수라 같이 악당이나 범죄자로 등장했던 영화에서 특히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줬거든요. 서도철 같은 캐릭터는 황정민에게 아주 어울리는 캐릭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아수라


베테랑은 공공의 적이나 와일드카드와 비교해서 수위 조절이 된 작품이라 마지막의 ‘응징’도 기대보다는 약한 느낌이고 뭔가 관객의 감정을 요동치게 만드는 요소는 확실히 부족한 느낌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 수위 조절 덕분에 이 영화가 1300만 명이 넘는 초대박 히트를 달성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죠. 사실 공공의 적이나 와일드카드 같은 강렬한 형사물을 수위 조절 없이 그대로 계승한 작품은 2017년에 개봉한 ‘범죄도시’입니다. 이 영화도 강렬한 악역과 그보다 더 강렬한 마동석의 형사 캐릭터로 큰 인기를 끌며 추석 성수기 극장가의 승자가 되어 최종 680만 명을 동원하는 대박을 터트립니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수위 센 영화들은 최대 성수기인 여름 시즌에 가족 단위 관객들을 타겟으로 하는 텐트폴 영화로 개봉할 수는 없습니다. 2020년까지 한국 극장가 역사상 27편의 천만 관객 영화가 나왔지만 이 중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는 단 한 편도 없으니까요.

범죄도시


그리고 이 수위 조절이 없었다면 중국에서 리메이크 될 일도 없었을 겁니다. 네, 베테랑은 한국에서 초대박 히트를 이룬 후 중국과 판권 계약이 되어 정식으로 중국에서 리메이크 되었습니다. 바로 2019년에 개봉한 ‘대인물’이라는 작품입니다. 

사실 중국에서는 할리우드 영화가 개봉할 때도 한자 제목으로 바꿔서 개봉하기 때문에(예를 들어 어벤져스가 ‘복수자연맹’으로 개봉) 중국에서 리메이크 하는 영화의 제목도 한자식으로 바꿀 것은 당연히 예상되는 일이었습니다. 한국 제목은 베테랑, 중국 제목은 대인물. 이게 적절한 번역인건지... 아니, 엄밀히 말하면 한국 제목을 번역한 것은 아니고, 중국 제작사에서 영화의 내용에 맞는 적합한 제목을 새로 지은 것이죠. ‘대인물’이라는 단어는 한국에서 쓰지 않기 때문에 낯선 느낌이 들지만 의미는 바로 이해가 됩니다. 사실 한국어 표현으로 큰 인물, 큰 사람이라고 하면 바로 의미는 와닿을 테니까요.(다만 영화 제목으로는 적합하지 않겠지만요)


‘대인물’이 베테랑과 비슷한 맥락의 제목이라고는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뉘앙스가 좀 차이가 있죠. 영화를 보면 베테랑은 주인공인 서도철 형사 뿐 아니라 그가 속한 팀과 상관까지 모두 포함하는 의미로 파악됩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서도철이 팀으로 움직이긴 하지만 조태오 건의 수사 대부분은 그가 단독으로 진행하고 팀원들은 별로 비중이 없습니다. 다만 비중이 크지 않아도 나름대로 존재감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있고 서도철의 상관들은 확실히 베테랑 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무게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와 달리 중국판의 제목 ‘대인물’은 주인공 한 명만을 지칭하는 표현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영화의 내용에 더 부합하는 것은 중국판 제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판은 한국판과 내용이 거의 동일한데, 말했듯이 다른 팀원들은 별로 비중이 없고 주인공 형사 한 명이 영화의 거의 모든 내용을 이끌어 가기 때문에 그 한 명에게 초점을 맞춘 ‘대인물’이라는 제목이 베테랑 보다는 영화의 성격을 더 잘 반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베테랑이라는 제목은 영화의 내용을 생각했을 때 그렇게 확 와닿는 제목은 아닙니다. 한국 상업 영화들이 2~4 음절 정도의 짧고 임팩트 있는 한 단어 제목을 선호하는 편이라 베테랑도 그러한 범주에 있는 적당히 폼나는 단어를 제목으로 고른 느낌이에요. 

중국판 제목인 ‘대인물’이 지칭하는 주인공 캐릭터의 이름은 ‘쑨다셩’입니다. 제목과 마찬가지로 저는 이 주인공 캐릭터도 한국판의 서도철보다 중국판이 낫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쑨다셩 형사의 외모는 한국판의 서도철 형사과 그다지 닮지 않았습니다. 사실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외모의 한국 영화 속 형사 캐릭터가 있습니다. 바로 와일드카드에서 양동근이 연기한 방제수 형사입니다. 사실 머리카락이 짧은 점을 빼면 그렇게 닮은 외모는 아니지만 뭔가 분위기가 비슷해요. 대인물이 베테랑을 리메이크한 영화이므로 영화의 내용도 같고 당연히 형사 캐릭터도 동일한 역할이기 때문에 쑨다셩에게서 서도철의 모습이 겹쳐 보여야 하는데, 전혀 다른 내용인 와일드카드의 방제수가 겹쳐 보이는 게 좀 신기했습니다. 

와일드카드


사실 쑨다셩과 서도철의 성격 묘사에서 미묘하게 차이가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건 각본이 아니라 배우의 연기 스타일에 따른 차이인 것 같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 황정민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캐릭터는 대부분 악역이었고 저는 확실히 이 배우가 선역 보다는 악역 쪽에 더 어울리는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베테랑에서도 서도철 형사가 선역이긴 하지만 뭔가 묘하게 건달처럼 건들거리는 면이 있고 황정민이 악역을 연기할 때와 유사한 느낌을 내는 순간이 한 번씩 보입니다. 그 반면 쑨다셩을 연기한 배우 ‘왕첸웬’은 조금 단순무식해 보이는 면이 있어도 매우 올곧은 선역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어요. 이런 느낌이 와일드카드의 방제수 형사와 매우 닮았습니다. 

베테랑은 단순한 권선징악 스토리의 영화입니다. 정말 단순하게 직선주행 하는 영화죠. 그래서 주인공인 형사 캐릭터도 올곧게 직선주행 하는 캐릭터성이 딱 적합한 것입니다. 물론 한국판의 서도철도 각본 상으로는 그런 캐릭터가 맞습니다. 하지만 황정민의 건들거리는 스타일 보다는 역시 중국판 왕첸웬의 우직한 스타일의 연기가 더 이 캐릭터에 찰떡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은 한국판보다 중국판이 낫다고 했지만, 그래도 영화 전체로 보자면 역시 한국판의 우위라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이런 권선징악 스토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악역 캐릭터입니다. 이 악역 캐릭터를 비교하면 한국판과 중국판의 차이가 넘사벽입니다.

당연히 한국판 조태오가 우위라는 얘기이고요. 중국판의 악역 ‘자오타이’는 조태오에 한참 미치지 못합니다.


자오타이는 ‘포패이’ 라는 배우가 연기했습니다. 단언컨대 미스캐스팅이에요. 사실 이 배우가 출연한 다른 영화는 본 게 없어서 본래 어떤 이미지를 가진 배우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일단 대인물에 나온 모습만으로만 본다면 한국판의 유아인과는 전혀 딴판인 느낌이고, 이런 역할에 잘 어울린다는 인상도 아닙니다.

누가 봐도 삐까번쩍 귀하게 자란 재벌 도련님 느낌이 나는 유아인의 조태오와는 달리, 포패이의 자오타이는 ‘왕자와 거지’처럼 평범한 사람이 옷만 바꿔 입고 재벌인 척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것이 원래 배우들의 본질이기는 하죠. 작품 속에서 실제 자신이 아닌 캐릭터의 옷을 입고 그 캐릭터가 된 것처럼 연기하는 것. 하지만 그 캐릭터의 옷을 입고 진짜 그 캐릭터가 된 것 같은 느낌을 줘야 좋은 캐스팅인 건데, 자오타이의 포패이는 그런 면에서는 아주 미스캐스팅인 셈이죠. 너무 배우에 대한 악평이 되는 것 같은데 실제 제가 느낀 게 이랬습니다. 재벌 같지가 않아요.

최소한 헤어스타일이라도 다르게 했다면 그나마 나았을 거 같은데요. 투블럭인데, 무슨 김정은 처럼 옆뒷머리를 하얗게 밀고는 가발 얹어 놓은 것 같은 머리를 하고 나오더군요. 제가 알기로 중국 남자들이 이런 헤어스타일은 잘 하지 않는다는 것 같던데... 자오타이와 같은 가문의 경쟁상대(정확히 어떤 관계인지는 언급되지 않습니다. 같은 성씨이니 아마 한국판과 동일한 설정인 이복형제인 것 같습니다.)가 잠깐 등장하는데 이 캐릭터는 훨씬 멀끔한 외모와 헤어스타일을 하고 나오죠.


자오타이는 재벌 회장의 자식이지만 중대한 컴플렉스 요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판에서는 둘째 부인의 자식이라고 언급되는데 중국판에서는 한국 정식 자막을 보면 ‘첩의 자식’이라고 나오더군요. 제가 알기로는 중국도 ‘첩’은 불법인 나라입니다. 그렇기에 실제로는 정부이지만 사실상 첩이나 다름 없는 관계로 여러 명의 여자를 만나는 ‘얼나이’라는 문화가 중국 상류층에 존재한다고 하던데요. 자오타이가 말한 첩이 얼나이를 말하는 것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네요.

아무튼 가문의 다른 후계자(이복형제)들에 비해 열등감을 느끼는 입장이라는 것이 한국판과 중국판의 동일한 설정인데, 그런 컴플렉스 요소를 피상적으로 드러내 보이기 위한 의도가 자오타이의 외모에도 반영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확신은 못하겠습니다. 포패이가 정말 그런 의도로 선택된 배우인 것인지. 사실 배우가 캐스팅 되는 사연에는 여러가지 뒷 이야기들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특히나 중국의 엔터 산업은 뒤가 구리기로(?) 유명해서... 이게 보통 여배우들에 대한 얘기이지만 남배우 쪽 사정이 어떤지는 또 알 수 없는 일이니까요. 헤어스타일도.. 저것이 정말 당시에 젊은 층에 유행하던 멋진 헤어스타일이었을 수도 있는 거고요...(영화 개봉연도가 2019년이고 제작시기는 2018년 즈음이니 고작 2,3년 전이지만, 요즘 유행이란 것은 워낙 빠르게 변하다 보니까...)

하지만 제가 판단하기에는 역시 의도적인 선택이라는 쪽으로 기울어집니다. 사실 형사 캐릭터도 그렇지만 중국판이 뭔가 한국판에 비해 좀 더 뚜렷하게 영화의 주제와 방향성을 드러내려 한 것처럼 보여요. 형사 캐릭터의 올곧음과 정의로움을 한국판에 비해 더욱 강조하고, 악역 캐릭터의 찌질함과 열등감을 더욱 피상적으로 선명하게 드러내려고 한 것이죠. 어찌보면 지나치게 노골적이며 동시에 세련되지 못한 방식이지만, 전체적으로 최근 만들어지는 중국 영화들이 그런 추세인 것 같더라고요. 중국의 거의 모든 창작 활동은 엄격하게 관의 통제를 받고 있으니 다소 획일화되고 단순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사실 베테랑이 중국에서 리메이크 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가지긴 했습니다. 중국이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긴 했지만 한국이나 미국 같은 평범한 자본주의 국가와는 체제와 시스템 상으로 많은 차이가 있는 나라니까요. 특히나 베테랑은 사회 비판적인 성향의 작품이라 이런 작품들이 중국에서는 엄격히 통제되고 검열된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거든요. 

중국도 양극화 문제가 심각한 나라입니다. 이런 양극화의 폐해로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불만이 국가의 체제와 지배층에 대한 불만으로 번진다면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는 충분히 경계할 만 할텐데.. 그럼에도 대인물 같은 영화가 허용이 되는 것을 보면 오히려 이런 사회적 불만들을 적당히 해소하고 국가에 해가 되지 않는 방향으로 우회시키는 전략을 공산당이 효율적으로 구사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뭔가 국가 운영(인민 통제)의 기술에 있어서는 확실히 탄탄한 노하우를 가진 나라가 중국이니까요.

베테랑은 공공의 적과 와일드카드 같은 권선징악 형사물을 계승하면서도 여름 성수기를 노린 15세 관람가 텐트폴 영화로 개봉하게 되어 많은 부분이 기존 한국 영화 형사물에 비해 순화되어 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베테랑을 리메이크한 중국영화 대인물은 거기서 더욱더 순화된 버전이 되었고 한국판이 가진 많은 매력들이 약해지거나 없어졌죠. 특히 역대급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한국판의 악역 캐릭터와 비교해서 중국판의 악역 캐릭터는 많이 아쉬운 편이며 이로 인해 영화 전체의 재미와 몰입감도 한국판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인 형사 캐릭터는 오히려 한국판보다 더 작품의 내용과 주제에 부합할 수 있는 캐릭터가 되었고 이런 단순한 권선징악 스토리에는 의외로 중국판의 우직한 스타일이 좀 더 잘 맞는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원작 내용을 거의 각색하지 않은 충실한 리메이크 이고 전체적인 영화의 만듦새도 괜찮은 편이라 이 정도면 꽤나 성공적인 리메이크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실제로 중국 박스오피스에서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니까요.


대서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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