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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이야기

[캐릭터 이야기] 소용녀 (신조협려)

by 대서즐라 2021.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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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 무협 소설의 특징 중 하나는 거의 연애 소설이라고까지 느껴질 정도로 남녀 주인공의 연애 스토리의 비중이 크고 완성도도 높지만 정작 작품의 메인 스토리에서는 여자 주인공이 별다른 역할을 못 하는 들러리 수준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남자 주인공에 비해 여자 주인공의 활약이나 비중이 굉장히 적어요. 대부분 무공도 약한 편이고 남자 주인공과 연애하는 것 말고는 별달리 하는 일도 없죠. 하지만 사조영웅전의 황용과 신조협려의 소용녀는 예외입니다. 황용과 소용녀는 단연 김용 소설의 여자 주인공 중에서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캐릭터인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캐릭터 자체의 매력도 있지만 다른 작품의 여자 주인공과는 달리 이 두 사람은 남자 주인공 못지않은 비중과 활약을 작품 안에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이 두 캐릭터 중에서 신조협려의 여주인공 소용녀의 이야기를 다루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신조협려 여주인공 소용녀

 

(이 글에는 소설 ‘신조협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용 작품 속 최고의 미녀 캐릭터

 

김용의 작품 속에는 많은 미녀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말이 별 의미가 없는 것이, 대중문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주요 캐릭터들은 대부분이 미남 미녀이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단순해요. 그래야 대중들이 좋아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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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래도 널리고 널린 미녀들 중에서 ‘작중 최고 미녀’라는 공식 설정이 붙어 있는 캐릭터는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역시 김용 작품뿐 아니라 대부분의 (많은 미녀들이 등장하는)대중문화 작품들의 공통된 특성이에요. 소용녀는 신조협려에 등장하는 여자 캐릭터 중에서 최고의 미녀로 설정된 캐릭터입니다. 물론 김용의 다른 작품들 역시 각 작품들 마다 ‘최고 미녀’로 공인되거나 행간으로 추정할 수 있는 캐릭터들이 등장하긴 합니다. 그래서 이런 작중 최고 미녀들을 모아 놓으면 이 중에서 최고는 누구인가? 라는 의문이 독자들 사이에서 흥미로운 이슈가 되곤 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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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녀는 신조협려 뿐 아니라 김용의 다른 작품들을 모두 포함해서도 최고 미녀로 자주 꼽히는 캐릭터입니다. 김용 소설의 여자 캐릭터들은 대부분 실존 인물도 아니고, 그저 문장으로 묘사되어 창조된 캐릭터라서 이런 설정의 명확한 우열을 가리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입니다. 아니, 실제로 존재하는 인간이라 하더라도 누가 가장 예쁜가 라는 판단은 사람에 따라 다를 거예요. 명확한 답이 존재할 수 없는 질문. 그래도 대부분의 김용 소설 팬들은 소용녀를 김용 작품 속 최고의 미녀로 꼽는데 크게 반대하지 않습니다.

 

김용 소설 최고의 미녀 소용녀

 

소용녀와 대등한 수준의 미녀로 꼽히는 대표적인 캐릭터는 천룡팔부의 왕어언입니다. 그리고 녹정기의 진원원, 월녀검의 서시, 서검은구록의 향향공주 같이 중국사에 실존했던 경국지색의 미녀들도 김용의 작품에 등장하는데(김용 작품에는 실제 역사의 인물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런 캐릭터들도 작중 미모에 대한 묘사와 평가가 소용녀와 왕어언 못지않습니다.

 

다만 그래도 많은 김용 소설 팬들이 소용녀를 최고의 미녀로 꼽는 것은, 역시 이 캐릭터가 가진 본질적인 ‘인기빨’이 작용한 것이라고 봐야겠죠. 그야말로 김용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여자 주인공 캐릭터 중에서 작중 스토리에서 가장 비중이 크고, 온갖 우여곡절과 다양한 사연들을 보여주는 캐릭터니까요.(물론 김용 작품들 중에서는 아예 여자 캐릭터가 주역으로 등장하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월녀검, 원앙도, 백마소서풍인데, 문제는 이 작품들 모두 내용이 엄청 짧은 단편이라서 작품의 인지도도 낮고 주인공들이 소용녀 만한 사연과 활약을 보여주지도 못합니다.)

 

소용녀는 무협 장르에서 ‘절세 미녀’의 상징과도 같은 캐릭터라, 김용 소설이 실사 드라마로 많이 제작되는 중화권에서는 많은 미녀 여배우들이 가장 동경하면서도 ‘독이 든 성배’처럼 느끼기도 하는 역할입니다. 무협 드라마의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될만한 여배우는 당연히 모두 예쁘지만, 소용녀의 절세미녀 느낌을 내는 것은 아무리 예쁜 여배우라도 쉬운 도전은 아니거든요.

 

유역비

 

지금까지 많은 여배우들이 소용녀를 연기했지만 역시 최고로 평가받는 것은 2006년판 신조협려의 유역비입니다. 이 드라마에서 유역비는 소용녀 역할을 완벽 그 이상으로 소화하며 절세미녀를 넘어선 여신 같은 비주얼을 보여줍니다. 재미있는 건 김용 소설에서 소용녀와 쌍벽을 이루는 절세미녀로 평가받는 천룡팔부의 왕어언 역시 유역비가 연기한 2003년판이 최고라고 평가받는다는 것입니다. 김용 소설 속 최고의 절세미녀 두 명을 연기해 둘 다 최고라고 평가를 받은 것만으로도 유역비라는 배우는 중화권 여배우들 중에서 불멸의 업적을 달성한 것이라고 평가할 만합니다. 확실히 전성기 시절 유역비가 정말 대단하긴 했던 것 같습니다.

 

좀 오바하자면 유역비는 이것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예요. 소설 속 문장의 묘사로면 존재하던 완벽한 절세미녀 소용녀를 전성기 시절 최고의 미모를 뽐내던 유역비의 모습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게 만들었으니까요. 그것도 어떤 이의도 제기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소용녀의 모습으로요.

 

 

 

사조삼부곡 최강의 여성 고수

 

앞에서 말한 대로 김용 작품 속에서 여성 캐릭터의 활약이나 비중은 남성 캐릭터에 비해 현저히 떨어집니다. 여자 주인공이라 하더라도 대부분 무공 실력도 별 볼 일 없고 남자 주인공의 들러리 역할이나 하는 수준이에요. 하지만 소용녀는 다릅니다. 소용녀의 무공은 사조삼부곡(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에 등장하는 모든 여자 캐릭터 중에서 최강이라고 할만한 수준이며, 그런 뛰어난 무공 실력을 바탕으로 작품 안에서 빼어난 활약을 많이 보여줍니다.

 

소용녀의 무공은 ‘준 오절급’으로 평가받습니다. ‘오절급’은 김용 소설에서 대체로 세계관 최강자급 라인에 해당하는 고수들을 의미합니다. ‘천하오절’에서 따온 표현인데 말 그대로 천하에서 가장 강한 다섯 명을 ‘화산논검’이라는 작중의 큰 이벤트를 통해 선정한 것이죠. 1대 천하오절은 왕중양, 구양봉, 홍칠공, 단지흥, 황약사입니다. 2대 천하오절은 주백통, 곽정, 양과, 일등대사(단지흥), 황약사입니다. 그런데 천하오절로 선정되지는 않았어도 이들과 대등한 수준의 고수가 등장하는데 신조협려의 메인 빌런 캐릭터인 금륜법왕이 대표적이고, 왕중양을 패배시켰다는 임조영과 철장수상표 구천인 또한 오절급과 대등 혹은 근접한 수준의 고수입니다. 의천도룡기 시대에는 장무기와 장삼봉이 있고요. 그리고 소용녀 또한 오절급과 완전히 대등한 수준은 아니더라도 거의 근접한 수준이기에 ‘준 오절급’의 고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최강 여자 고수 소용녀

 

앞 문단에서 언급한 캐릭터 중 ‘왕중양을 패배시킨 임조영’도 여성 캐릭터인데요. 임조영은 작품 내에서 이미 사망한 과거의 인물로 회상으로만 등장할 뿐이라 실제 어느 정도 수준의 고수인지는 김용 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왕중양과 대등하다고 평가받기는 하지만 사실 왕중양이 진심으로 임조영을 꺾기 위해 대결한 적은 없기 때문에 판단 내리기가 참 애매해요. 하지만 대체로 오절급이 맞고, 아무리 낮게 평가해도 소용녀와는 동급이면 동급이지 약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대세이긴 합니다.

 

그리고 의천도룡기에 나오는 ‘황삼미녀’도 상당한 고수로 평가받는 여자 캐릭터입니다. 이 캐릭터도 어느 정도 수준의 고수인지 명확하지 않은데, 역시 오절급이거나 그보다 조금 아래로 평가하는 의견이 많습니다. 저는 대충 소용녀와 비슷한 급이라고 판단합니다. 참고로 황삼미녀는 이름도 안 나오고 정체가 불분명하지만 성이 양 씨이고 소용녀의 문파인 고묘파와 관련이 있는 인물이라서 양과와 소용녀의 후손인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캐릭터입니다.

 

임조영과 황삼미녀가 있어서 소용녀를 단독으로 ‘사조삼부곡 최강 여고수’라고 말하기는 애매하지만, 임조영은 과거의 인물로 실제 작품의 시점에는 등장하지 않고 황삼미녀도 거의 비중이 없는 캐릭터이기에 대체로 사조삼부곡의 최강 여고수는 소용녀라는 인식이 자리 잡혀 있습니다.

 

소용녀는 임조영이 창조한 고묘파 무공을 기초로 하여 구음진경의 탄탄한 내공 수련까지 더해진 완성형 고수입니다. 특히 옥녀소심검법이라는 절기가 최강의 무기인데 이 검법은 본래 두 사람이 합심하여 구사해야(쌍검합벽) 완전한 위력이 발휘되는 검법입니다. 때문에 처음에는 양과와 함께 구사해서 오절급인 금륜법왕과 대등하게 싸우기도 했었는데요. 그런데 양과와 떨어지게 된 상황에서 우연히 만난 주백통으로부터 (사조삼부곡 최강의 사기 무공인)쌍수호박을 전수받게 되어 원래 2명이 구사하던 옥녀소심검법을 소용녀 혼자서 양손에 검을 들고 구사할 수 있게 되면서 이때부터 단독 실력으로도 오절급에 필적하는 경지에 오르게 됩니다.

 

소용녀의 옥녀소심검법

 

쌍수호박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사조삼부곡 최강의 사기 무공인데 주백통이 이 무공을 만들고 곽정과 소용녀에게 전수해서 딱 이 세 명만 쌍수호박을 구사합니다. 곽정의 경우는 항룡장과 공명권을 동시에 구사하는 식으로 활용하는데 애초에 2인 합동 구사가 정석인 소용녀의 옥녀소심검법이 쌍수호박과 가장 궁합이 잘 맞는 무공입니다. 쌍수호박+옥녀소심검법이 그야말로 절묘하게 소용녀를 최강급 고수로 만들어주는 완벽한 공식이 되어버린 거죠.

 

이런 소용녀의 위력은 김용군협전(의천도룡기 외전)이라는 게임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이 게임에서 쌍수호박이 정말 사기 무공인데 주백통과 곽정도 무시무시하지만 소용녀는 플레이어가 파티(동료)로 삼을 수 있는 캐릭터라서 초반에 소용녀를 빠르게 얻는 루트로 진행하면 정말 쉽게 게임 진행이 가능합니다. 쌍수호박의 위력이 정말 엄청나거든요.

 

의천도룡기 외전

 

아무튼 이렇게 사조삼부곡에서 여자 캐릭터 중 최강의 무공 실력을 보여주는 소용녀이지만 김용 소설 전체를 놓고 보면 모든 여자 캐릭터 중 최강급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천룡팔부에 나오는 소요파 여자들이 있으니까요. 천룡팔부와 사조삼부곡의 무공 수준 차이 또한 김용 소설 팬들이 활발하게 토론하는 주제 중 하나인데요. 대체로 최강급 반열에 오르게 된 고수들 사이에는 거의 수준 차이가 없다고 얘기하긴 하지만, 그래도 천룡팔부와 사조삼부곡에 묘사되는 무공의 수위를 본다면 분명 천룡팔부가 좀 더 강해 보이긴 하거든요. 물론 곽정이나 양과 같은 인물들이 천룡팔부의 시대로 가더라도 소요파의 천산동모나 이추수 같은 최강급 여자 고수들에게 질 것 같지는 않지만 소용녀는 확실히 이들보다는 약해 보입니다. 그리고 단편인 ‘월녀검’의 주인공 아청 또한 그 실력을 확실히 가늠하기 어려운 상당한 여성 고수고요.

 

그래도 역시 소용녀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사연들이 다른 여성 고수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포스와 매력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사실 소용녀 하면 절세 미녀 설정에 백옥 같은 피부와 천연계인 성격까지... 좀 여리여리하고 가냘픈 히로인의 이미지가 있거든요. 그런데 알고 보면 무공 실력은 작중 최강급 수준이니 이런 면에서 느껴지는 갭모에가 상당한 수준인 겁니다. 천룡팔부의 천산동모, 이추수, 그리고 다른 작가의 작품으로 고룡의 절대쌍교에 나오는 요월궁주 같은 최강급 여성 고수 캐릭터들은 여리여리한 이미지는 고사하고 그냥 괴물 같은 존재들로 그려지잖아요. 반면 소용녀는 김용 소설 전체에서 최고로 평가받는 절세미인에 완벽에 가까운 히로인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서 뛰어난 무공 실력이 더욱 반전 매력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비극의 NTR – 강간당한 히로인

 

사실 소용녀는 최고의 절세미녀이며 최강급 여성고수라는 이미지와 함께 매우 비극적인 멜로드라마의 히로인이라는 이미지도 가지고 있습니다. 김용 소설 전체를 통틀어서 이것보다 더 충격적인 내용 전개는 없을 거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소용녀는 작품 내에서 강간을 당합니다.

 

강간당하는 소용녀

 

사실 폭력과 무법이 난무하는 대중문화 작품의 내용에서 여성 캐릭터가 강간이라는 충격적인 범죄의 희생양이 되는 것은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닙니다. 조연급 캐릭터에게는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일이고, 주인공이 그런 일을 당하는 경우도 많아요. 심지어 여성 작가들이 그린 순정만화에서도 이런 전개는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심각한 범죄이지만, 창작물에서는 보는 이의 멘탈을 쥐고 흔들며 내용에 몰입하게 만드는 전개로 상당히 자주 활용됩니다.

 

특히나 법을 무시하는 폭력이 메인 소재가 되는 무협 장르에서는 강간은 정말 흔한 내용입니다. 서로 죽고 죽이는 폭력이 당연하게 벌어지는 세계에서 악당에게 신체적으로 제압당한 여자 캐릭터는 언제나 강간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죠. 그런데 이런 내용으로 굉장히 수위가 높은 무협지들도 많지만 김용의 작품은 무협지 중에서는 수위가 굉장히 약한 편이에요. 야한 내용이 거의 없습니다. 그나마 녹정기에서 건녕공주와 위소보의 SM 플레이 정도가 가장 수위가 센 편이었죠.

 

그래도 무협지 세계관의 특성상 강간이나 강간 미수의 상황이 꽤 나오기는 합니다. 소용녀의 경우도 그렇고 신조협려의 남자 주인공인 양과 또한 강간의 결과로 태어난 아이거든요. 물론 양과의 출생에 대한 내용은(신조협려가 아닌 사조영웅전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개정판에서 수정이 되기는 했습니다. 원래는 양과의 아버지인 양강이 진남금을 강간해서 양과가 태어났다는 내용이었는데, 개정판에서는 진남금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삭제되고 양과의 어머니가 목염자로 바뀌었죠. 목염자와 양강은 혼인은 올리지 않았지만 서로 깊이 사랑하는 연인 사이였기에 양과가 강간에 의해 태어난 아이라는 비극적인 설정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김용 소설은 개정판이 많이 나오며 여러 번 내용이 수정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독자에게 가장 충격을 주었던 소용녀가 강간당하는 내용을 수정하려는 시도는 없었을까요? 아마 그런 시도는 없었을 것 같습니다. 독자들이 피눈물 흘리며 읽게 되는 내용이지만 이러한 비극이 발생하는 것이 작품 전체의 내용과 소용녀의 캐릭터성에 있어서도 굉장히 중요한 전개이기 때문에 독자와 작가 모두 이 내용이 수정되는 것은 바라지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비극의 히로인

 

다만 소용녀를 강간한 범인의 설정은 바뀌었습니다. 설정이라기보다는 이름만 바뀌었죠. 윤지평이라는 이름의 인물이었는데 개정판에서 이름이 견지병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도 욕을 많이 먹고 독자들에게 미움을 받는 캐릭터라서 그에 걸맞는 굴욕적인 이름으로 바꾼 셈이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윤지평이 역사의 실존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사조삼부곡에 칭기즈칸을 비롯한 실제 역사의 인물이 많이 등장하는데 왕중양, 구처기 같은 전진교 인물들도 대부분 실존인물이고 윤지평 역시 구처기의 제자로서 전진교의 6대 조사를 지낸 실존인물입니다. 이런 역사의 실존인물을 엄청나게 욕을 먹을 캐릭터로 만들어 놓았기에 당연히 후손들이 큰 항의를 했고, 이에 개정판에서 이름을 바꾸게 된 것입니다.

 

소용녀가 강간당하는 상황은, 물론 강간은 무조건 나쁜 것이지만, 그래도 최악 중의 최악이라고 생각될 정도의 끔찍한 상황으로 묘사된 것은 아닙니다. 일단 소용녀 자신은 강간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안 했습니다. 당시에 소용녀는 점혈 당해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 눈까지 가려져 있었는데, 자신을 덮치는 남자를 양과라고 착각해버리거든요. 물론 어떤 사이에서든 동의 없는 성관계는 범죄이지만, 소용녀는 양과를 사랑하고 있었기에 양과가 자신을 덮치고 있다고 착각해버린 그 상황을 아주 기쁘게 받아들였어요.

 

소용녀의 비극

 

소용녀는 자기가 견지병에게 강간당했다는 진실을 한참 뒤에야 알게 되는데, 큰 충격을 받고 혼란에 빠지지만 결국 견지병에게 복수를 하지 못합니다. 무공 실력이 엄청나기 때문에 소용녀가 마음만 먹으면 견지병은 죽은 목숨이지만, 소용녀는 끝내 견지병을 죽이지는 않아요. 이유는 견지병이 소용녀를 강간한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작품 내에서 선인으로 설정되어 있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소오강호의 악불군 처럼 겉으로만 군자인 척하는 위선자인 것도 아닙니다. 소용녀를 강간한 내용만 빼버린다면 작품 내에서 완벽하게 선역인 인물이 견지병입니다. 즉, 기본적으로는 올바른 심성을 가지고 있지만 소용녀의 미모에 이성을 잃을 정도로 빠져버린 상황에서 순간의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게 된 거예요. 그 후 내내 이 일을 후회하며 죄책감을 느끼고 살다가, 속죄하는 마음으로 소용녀를 여러 번 구해주기도 하고(소용녀가 견지병을 죽이지 못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끝에는 결국 속죄의 의미로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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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정말로 완벽하게 바른 인간이었다면 애초에 강간도 안 했을 테고, 설령 소용녀의 압도적인 미모에 순간 이성을 잃고 범죄를 저질렀더라도 이성을 되찾은 시점에 바로 소용녀에게 모든 죄를 고백하고 자결을 하는 게 맞았겠죠. 하지만 그런 전개로는 신조협려라는 비극적인 로맨스 스토리의 핵심이 되는 재료로서의 역할을 해주지 못합니다. 안타깝고 혐오스럽긴 하지만 결국은 신조협려라는 훌륭한 작품을 완성하는데 필요한 전개였던 거예요.

 

말했듯이 신조협려는 참 비극적인 내용입니다. 여자 주인공은 강간당하고 남자 주인공은 한쪽 팔이 잘려서 외팔이가 됩니다. 그리고 무려 16년의 세월을 만나지 못하고 서로 생사도 모른 채 떨어져 지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마지막은 결국 해피엔딩입니다. 정말 엄청나게 많은 우여곡절과 풍파 속에 수차례 죽을 위기를 겪으면서도 서로를 향한 마음으로 힘든 시간들을 버텨냈고 결국 기적적으로 다시 만나게 된 후 양양성 전투에 함께 참전하여 몽고 황제 몽케를 죽이는 큰 공을 세우고 강호 역사에 길이 남을 ‘신조협려’의 전설을 이룩하게 됩니다.

 

양과와 소용녀의 사랑

 

양과와 소용녀가 김용 작품뿐 아니라 무협 장르 전체를 통틀어서 최고의 남녀 주인공으로 꼽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사조영웅전의 주인공인 곽정과 황용도 최고의 남녀 주인공이지만, 대체로 정석적이고 모범적인 스토리를 보여주는 곽정, 황용과는 달리 온갖 비극과 우여곡절을 겪으며 끝내 전설적인 사랑의 이야기를 완성시킨 양과와 소용녀가 더 큰 임팩트로 다가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애초에 신조협려의 작품 주제 자체가 ‘정’(초코파이 나눠 먹는 그거 말고 남녀 간의 사랑)이니까요.

 

問世間 情爲何物 直敎生死相許

세상 사람들에게 묻노니, 정이란 무엇이길래 생사를 가름하는가?

 

그리고 여주인공인 소용녀는 그야말로 완벽한 무협지 히로인입니다. 부모 없고 갈 곳도 없는 어린 양과를 거두어 돌봐주는 스승이자 누나 같은 역할(사제물, 연상물)로 시작된 소용녀의 사랑은 수많은 비극과 오해, 엇갈림을 겪으면서도 지고지순한 순애로 완성됩니다. 절세미녀, 최강의 여성 고수, 연인 양과를 향한 뜨거운 순애까지... 이보다 완벽한 캐릭터성과 스토리를 보여주는 무협지 여주인공은 달리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소용녀가 최고의 여주인공으로 오랜 세월 동안 많은 무협지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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