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만화와 영화사이

[만화와 영화 사이] 바람의 검심 (와츠키 노부히로 만화 원작 실사 영화 리뷰)

by 대서즐라 2021. 11. 8.
728x90
반응형

만화 원작의 일본 실사 영화들이 수준 떨어지는 일본의 실사 콘텐츠들의 대명사로 취급받는 가운데 그나마 한국에서 평가가 괜찮은 작품이 와츠키 노부히로의 히트 만화를 실사 영화화한 ‘바람의 검심’입니다. 바람의 검심이 잘 만든 만화 원작 실사 영화다? 저는 이 의견에 절반만 동의합니다. 아니, 사실 절반 이하... 그냥 동의하지 않는다는 쪽에 가깝습니다. 저는 만화 원작의 일본 실사 영화를 굉장히 많이 봤고 이 작품들이 대체로 수준이 떨어지는 편이라는 의견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바람의 검심이 제가 본 만화 원작 일본 실사 영화 중에 재미나 완성도에서 상위권으로 꼽을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전반적으로 수준 떨어지기는 하지만 적어도 바람의 검심보다는 재미있고 잘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확실히 일반적인 평가는 좋은 편이고 상업영화로서 때깔도 괜찮긴 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아무리 봐도 바람의 검심은 마냥 좋은 평가를 해주기는 힘든 작품이에요.

 

바람의 검심 포스터

 

(이 글에는 '바람의 검심' 만화와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잘 만들었지만 못 만들었다

 

장점과 단점이 확실하게 존재하는 영화입니다. 장점은 모두가 아는 대로 액션입니다. 이 영화의 액션 장면은 정말 작정하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잘 찍었습니다. 하지만 액션을 제외하고 보면 나머지는 결함 투성이입니다. 영화가 호평을 받는 이유의 90% 이상이 액션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로서는 액션 좀 볼만하다고 나머지 영화의 결함들에 눈감게 되는 현상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액션 영화지만 액션만 잘 찍는다고 다가 아니거든요.

 

 

액션만 잘 찍으면 장땡?

 

솔직히 이 영화의 액션 장면을 보면 감탄이 나오기는 해요. 우와~ 소리가 나오는 장면들의 연속입니다. 저는 바람의 검심 5부작 중에서 유일하게 1편만 극장에서 보고 나머지는 TV나 컴퓨터 모니터로 봤는데요. 액션씬의 완성도는 1편이 제일 떨어지는 편이니까 나머지 작품들도 모두 극장에서 봤다면 이 영화의 액션 장면에 대한 인상이 더욱 강렬하게 남았을 것입니다.

 

액션씬

 

솔직히 냉병기나 마샬아츠 액션의 정점을 보여준 영화들은 90년대 홍콩 무협 영화들입니다. 2000년대 이후에는 가끔 나오는 견자단 영화들이 이런 걸 보여줬고요. 그런데 바람의 검심은 어느 정도는 최고 전성기 시절의 홍콩 무협 영화들의 액션 장면들을 넘어섭니다. 홍콩 액션 영화들의 특징 중 하나가 남발되는 슬로우 모션과 자주 끊어내는 반복 편집, 그리고 당시에는 마냥 멋지다고만 생각했던 와이어 액션입니다. 물론 이런 요소들은 액션 장면을 만들 때 필수이긴 하지만 당시의 홍콩 영화들은 액션 장면에서 ‘영화적 기술’이라는 느낌을 딱히 감추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버젓이 화면에서 ‘이건 실제가 아닌 와이어 액션입니다’하고 광고하는 수준으로 뻔뻔하게 배우들이 연기를 했죠. 사실 좀 더 날 것의 생생한 느낌이 났던 건 그 이전 시대인 80년대의 성룡 영화들입니다. 성룡 영화에서는 연기하는 배우들이 걱정될 정도로 영화적 속임수가 아닌 진짜 맨몸으로 부딪히는 장면들이 나왔고 실제 배우들의 부상이나 사고도 많았다고 합니다. 폴리스 스토리2에서 장만옥이 무너지는 철제 구조물에 머리를 부딪히며 크게 다치는 장면은 매우 유명합니다.

 

아무튼 이런 날것의 액션을 보여주던 성룡 영화의 시대를 지난 후 90년대 홍콩 무협의 전성기 시대에는 화려하지만 속임수와 영화적 기술을 과시하다시피 보여주는 액션이 매우 많았습니다. 하지만 바람의 검심의 액션 장면들은 이런 90년대 홍콩 무협의 냉병기 액션보다는 훨씬 생생하고 실감 나는 느낌을 줍니다. 마치 성룡 영화들처럼요.

 

특히 감탄이 나오는 것은 액션의 ‘스피드’입니다. 바람의 검심의 주인공 히무라 켄신은 '비천어검류'와 ‘신속’이라는 기술로 대표되는 엄청난 속도가 최고의 장기인데 그런 특성을 영화의 액션 장면에서 잘 살리기 위해 많이 연구하고 노력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속도에서 켄신의 라이벌 격 캐릭터인 세타 소지로와의 대결에서는 그야말로 스피드 대결 액션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솔직히 감탄이 나올 만하고, ‘어케 했누’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스피드 대결

 

물론 ‘어케 했누’에 대한 답으로서 이미 영화 촬영 장면과 비하인드 영상들이 인터넷에 많이 공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걸 보면 감탄은 더욱 커지게 됩니다. 진짜 배우들이 개고생했구나, 싶을 정도로 엄청난 훈련과 노력들이 영상에서 고스란히 나오거든요. 이것도 뭔가 성룡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비하인드 장면 같은 느낌입니다.

 

주인공인 사토 타케루가 역시 가장 고생했습니다. 특히 5부작 중 4편과 5편을 촬영한 시점은 사토 타케루의 나이가 서른 언저리였는데, 더 젊을 때 찍었던 1,2,3편보다는 훨씬 힘들게 촬영을 했을 것 같습니다. 실제 영화 내용도 4,5편이 주인공 히무라 켄신에게 매우 절망적이고 가혹하기 때문에 영화에서 사토 타케루의 액션이 더 고생스러워 보이고 힘겨워 보이기도 했습니다.

 

일단 이렇게 액션을 잘 찍은 것에 대해서는 인정해줄 수밖에 없습니다. 감독과 배우와 스텝들까지 다 잘했어요. 정말 죽을 고생을 하면서 찍었다는 것이 느껴지고 그 고생 끝에 훌륭한 결과물을 내놓은 것은 확실히 박수를 쳐줄 만합니다.

 

일대다수 대결

 

하지만 처음부터 계속 언급했듯 아무리 액션 영화라도 액션 장면만이 전부인 건 아닙니다. 오히려 액션이 최고 강점인 영화라도 액션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액션 외적인 부분에 더욱 공을 들여야 합니다. 액션 장면이 단지 보는 재미뿐 아니라 그 안에 담겨 있는 서사와 감정선까지 잘 살렸을 때 마음 깊은 감흥까지도 느끼게 되거든요. 바람의 검심은 아쉽게도 그런 감흥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무너진 서사와 감정선

 

제가 바람의 검심 실사 영화에 품은 불만의 원인을 일차적으로 얘기하자면 바로 ‘각색의 문제’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히트 만화들은 그 인기를 바탕으로 장기 연재를 했고(연재 기간이 길수록 작가와 출판사는 더 많은 돈을 버니까요) 때문에 기본적으로 내용이 아주 길고 방대합니다. 이 긴 내용을 하나도 빠짐없이 실사 작품에 담는 것은 절대 불가능까지는 아니어도 현실적으로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때문에 영화의 분량에 맞춰서 내용을 각색하는 것 까지는 필연적입니다.

 

그런데 바람의 검심은 히트 소년 만화 치고는 연재 기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습니다. 주간 연재로 대략 5년 정도 연재를 했고 완결편까지 단행본 권수는 28권입니다. 물론 28권도 충분히 긴 내용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나루토 72권, 은혼 77권, 그리고 100권을 넘긴 원피스 같은 경우와 비교하면 확실히 상대적으로는 짧다고 볼 수 있는 분량이에요.

 

바람의 검심 만화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로 무려 다섯 편이나 제작되었습니다. 단행본 24권 분량인 우라사와 나오키의 ‘20세기 소년’은 영화로 3부작이 제작되었는데요. 원작 만화를 읽은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24권 치고는 굉장히 방대하게 느껴지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런 방대한 내용을 시작부터 끝까지 영화 3부작에 꾸역꾸역 집어넣었어요. 20세기 소년의 실사 영화가 그렇게 평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저는 일단 그 방대한 원작의 내용을 대체로 원작에 충실한 방향으로 실사 영화에 고스란히 담아냈다는 점은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저와는 다른 입장인 의견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저는 원작 내용에 충실한 실사화를 좋아합니다. 원작의 팬으로서 원작을 좋아하게 된 이유(내용과 캐릭터의 매력)가 실사 작품에서도 그대로 살아 있기를 바라는 거죠.

 

[만화가 이야기] 우라사와 나오키 浦沢直樹

 

[만화가 이야기] 우라사와 나오키 浦沢直樹

우라사와 나오키 浦沢直樹 당연한 얘기지만 여러 편의 히트작을 배출한 유명 인기 만화가들은 대부분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유명한 만화가들에 대해 굉장하다, 

dszl.tistory.com

 

24권 분량인 20세기 소년은 3부작 영화로 원작 내용을 잘 담아냈는데, 28권 분량인 바람의 검심은 무려 다섯 편의 영화로 만들었는데 원작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각색을 해버렸습니다. 아주 동떨어진 건 아니고 그런대로 큰 흐름은 따라가는 편이지만 중요한 전개와 내용들은 대부분 원작과는 전혀 다른 오리지널 전개로 진행됩니다.

 

뭐랄까, 이 각색된 내용을 보면 두 가지 단어만 떠오릅니다. ‘과도함’과 ‘불필요함’. 솔직히 의미도 없고 목적도 없는 각색 작업이라고 밖에 생각이 안 듭니다. 그냥 원작 내용에 연연하지 않고 캐릭터와 인물 구도, 배경 설정만 따와서는 고집스럽게 완전히 새로운 내용으로 탈바꿈시켜 버린 거예요. 앞 문장에서 저는 ‘고집스럽게’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진짜 그냥 원작과는 다르게 만들어야지 라는 목적만을 가지고 이런 각색을 했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습니다. 의미도 목적도 없는, 그저 고집인 거죠.

 

그렇게 완성된 내용이 원작만큼 재미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렇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원작의 발끝도 못 따라갑니다. 원작의 재미있는 내용과 임팩트 있는 장면을 다 날려버리면서 새롭게 구상한 내용과 전개들은 비틀거리는 서사, 무너진 감정선으로 간단히 말해 총체적 난국인 수준입니다. 그나마 마지막 편 ‘더 비기닝(추억편)’ 정도가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역시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예요.

 

추억편

 

서사도 문제지만 가장 심각한 건 감정선입니다. 바람의 검심은 마냥 악당과 주인공이 싸우는 내용이 아니라 수백 명을 죽인 살인자로서의 과거를 짊어지고 있는 주인공이 불살을 맹세하고 주위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상당히 비장한 분위기의 시대극입니다. 물론 소년 만화이니만큼 개그적인 내용도 많고 밝은 분위기가 제법 나고 있지만 심금을 울리는 슬프고 비장한 장면이나 대사도 굉장히 많아요. 이런 원작의 명대사, 명장면들이 실사에서 거의 나오지 않는 데다 나오더라도 원작의 느낌을 전혀 살리지 못했습니다.

 

물론 만화와 영화는 표현 방식이 전혀 다른 매체이기 때문에 같은 장면, 같은 대사라도 전혀 느낌이 다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까지 원작의 느낌을 전혀 살리지 못한 건 전적으로 감독의 연출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은 원작에서 가장 유명한 명대사가 있습니다.

 

“검은 흉기, 검술은 살인술. 아무리 멋진 미사여구나 대의명분으로 치장해도 그게 진실이지. 아가씨가 하는 말(사람을 살리는 검)은 한 번도 자기 손을 더럽혀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말하는 꿈같은 소리에 불과해. 하지만 난 그런 진실보다도 아가씨가 말하는 꿈같은 소리가 더 맘에 드는군.”

 

명대사

 

아가씨(여주인공 카미야 카오루)가 꿈같은 소리를 말한다고 디스한 다음, 그 말에 카오루가 낙담하고 있을 때 방긋 웃으며 하지만 난 그런 꿈같은 소리가 맘에 든다고 말하는, 켄신의 캐릭터성과 이 작품의 주제 전체를 잘 대변해주는 명대사입니다.

 

그런데 이 장면은 실사 영화에서 보면, 그냥 한숨만 나옵니다. 대사의 의도와 반전, 맥락을 하나도 살리지 못하고 그저 국어책 읽는 듯한 장면이 되고 말았죠. 사토 타케루가 국어책 읽는 발연기를 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전적으로 감독이 연출을 잘못한 거예요.

 

이 외에도 무수히 많습니다. 연출을 못했다 정도가 아니라 그냥 연출을 안 한 거 같은 장면들. 이거 영화라고 만든 거 맞아? 싶은 장면들이 정말 많아요. 액션을 아무리 잘 찍어 봐야 이렇게 대사의 맥락이나 감정선을 살리는 기본적인 연출조차도 시도를 안 하는 영화라서, 전체적인 완성도에서는 도저히 좋은 평가를 해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켄신과 아오시

 

이 영화는 1편부터 5편까지 전부 오오토모 케이시라는 감독이 연출했습니다. 이 감독이 만든 작품 중에서 ‘3월의 라이온’은 제가 아주 좋아합니다. 하지만 좋아하긴 해도 감독의 연출이 뛰어나다는 생각은 그다지 들지 않는 영화입니다. 3월의 라이온은 원작 내용을 크게 각색하지 않았고 싱크로 높은 배우들을 캐스팅해 원작 캐릭터들의 매력도 잘 살렸습니다. 연출이 별 볼일 없는 건 동일하지만 바람의 검심과는 다른 선택을 함으로써 저도 아주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으로 완성된 거예요. 바람의 검심은 액션 말고는 모든 것이 총체적 난국입니다. 각색과 연출에 더해서 만화 원작 실사 영화에서 특히 중요한 요소인 캐릭터마저도 너무도 실망스러웠습니다.

 

[만화와 영화사이] 3월의 라이온

 

[만화와 영화사이] 3월의 라이온

만화원작영화 리뷰 3월의 라이온 3月のライオン March Comes in Like a Lion ‘3월의 라이온’은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실사 영화 중에서도 제가 거의 가장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특이한 점은

dszl.tistory.com

 

 

 

캐스팅은 애매하고 캐릭터성도 노답

 

일단 먼저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요. 제가 바람의 검심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바로 ‘묘진 야히코’입니다. 원작 만화와 실사 영화를 모두 본 사람이라면, 이것만으로도 제가 이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한 방에 이해가 될 것입니다.

 

실사 영화에서 야히코의 비중이 공기예요! 물론 야히코가 원작 만화에서 인기 캐릭터이긴 해도 비슷한 급의 인기 캐릭터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실사로 그 느낌을 살리기 어려운 ‘성장형 소년 검사 캐릭터’의 비중을 축소해버린 것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선택인 건 아닙니다.

 

묘진 야히코

 

공기가 된 야히코와는 달리 원작과 비교해서 비중이 가장 떡상한 캐릭터는 사이토 하지메입니다. 사이토 하지메는 영화 다섯 편 중 무려 세 편(1편, 2편, 4편)에서 첫 장면에 등장합니다. 거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 보일 정도예요.

 

사이토 하지메가 원작에서 인기 최상위의 캐릭터이기도 하고 필살기 ‘아돌’도 실사 영화로 표현하기가 상대적으로 편하기 때문에(아주 단순하지만 강력한 기술) 영화에서 상당한 비중을 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주인공인 켄신만큼이나 실사 영화에서 공을 들인 캐릭터입니다.

 

히무라 켄신과 사이토 하지메가 실사 판에서 가장 평가가 좋은 캐릭터입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사토 타케루의 히무라 켄신은 모든 실사화된 만화 캐릭터 중에 최고라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다만 원작과의 싱크로는 잘 모르겠어요. 최고, 완벽이라는 표현까지 쓰기에는 조금 애매한 구석이 있달까. 한 싱크로 80%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사토 타케루

 

사이토 하지메는 일단 켄신 다음으로 괜찮았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마찬가지로 좀 애매한 면이 있습니다. 특히 원작의 캐릭터 디자인을 보면 길쭉하고 호리호리한 체형에 날카롭게 째진 눈이 상징적인 캐릭터거든요. 실사 배우는 에구치 요스케인데, 솔직히 원작 캐릭터와 닮았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사실 원작 캐릭터의 과도하게 째진 눈의 날카로운 인상은 지극히 만화적인 디자인이고 이걸 실사로 표현하면 대충 에구치 요스케의 사이토 하지메 같은 느낌이 적절한 것이다, 라는 생각도 들기는 하는데요. 그래도 정말 원작 비슷한 느낌의 외모가 현실에도 있을 것 같아서...  물론 연기력이나 배우의 지명도 같은 부분도 생각을 해야 하니 무슨 ‘닮은꼴 찾기’ 대회처럼 닮은 배우만 찾는다고 능사는 아니지만요.

 

사이토 하지메

 

애매한 면이 있긴 하지만 히무라 켄신과 사이토 하지메까지는 상당히 괜찮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명 제가 아주 마음에 들었던 캐릭터가 있는데 바로 아오이 유우가 연기한 다카니 메구미입니다. 솔직히 원작과의 싱크로로 보면 메구미가 최고입니다. 저는 처음에 메구미 역으로 아이오 유우가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다지 안 어울리는데~’ 라고 생각을 했는데요. 영화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만화책에서 그대로 튀어나온 것 같은 비주얼!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 만으로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원작의 느낌을 살리다니! 아오이 유우도 참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인 것 같습니다.

 

다카니 메구미

 

자, 여기까지. 실사 영화에서 그나마 괜찮았던 배우들이에요. 하지만 이 외에 다른 배우들은.... 글쎄요, 이건 배우의 문제라기보다는 역시 엉터리 각색에 의해 원작 캐릭터의 매력과 느낌을 전혀 살리지 못한 게 근본적인 문제라고 해야겠죠.

 

일단 최악은 말할 것도 없이 사가라 사노스케입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바람의 검심 연재 당시에 실시한 캐릭터 인기 순위에서 1,2,3위는 거의 고정적이었습니다. 1위는 히무라 켄신, 2위는 사가라 사노스케, 3위는 사이토 하지메. 사노스케는 너무너무 중요한 캐릭터이기 때문에 당연히 야히코처럼 실사 영화에서 공기화 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공기화는 아니더라도 원작에 비해서 상당히 안습인 캐릭터가 되었습니다.

 

사가라 사노스케

 

실사판 사가라 사노스케의 캐릭터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무뇌 고릴라’입니다. 이게 은혼의 곤도 국장 같은 개그 느낌의 무뇌 고릴라가 아니라 그냥 진짜 아무 생각 없이 소리나 바락바락 지르고 다 때려 부수고 다니는 바보 머슬이에요. 물론 원작의 사노스케도 단순하고 무대뽀인 무투파 캐릭터이긴 하지만 외형은 의외로 샤프한 편이고 감정적인 깊이도 있거든요. 특히 켄신과의 우정이 이 작품의 전체 감정선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실사판에서는 그런 게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싸움 실력 역시 원작처럼 간류전과 시시오전에서 간부 한 명 맡아서 쓰러뜨리긴 하지만 그냥 개싸움입니다. 액션에 공을 들인 영화인데 사노스케의 액션 장면은 꼴 보기 싫을 정도예요. 캐릭터, 서사, 감정선 다 무너지고 액션마저 꼴 보기 싫으니 그냥 이 영화 최악의 캐릭터가 된 거죠. 캐스팅도 별로고 그냥 모든 면에서 이보다 더 나쁠 수가 없는 만화 캐릭터 실사화가 되었습니다.

 

메구미를 제외한 여자 캐릭터들도 대체로 애매하거나, 나쁩니다. 일단 가장 비중이 큰 여주인공 카미야 카오루 역의 타케이 에미. 사실 1편을 볼 때까지만 해도 캐스팅도, 캐릭터 묘사도 아주 좋다고 생각했었는데요. 5편까지 다 보고 나니 역시 ‘애매함’과 ‘나쁨’ 사이의 어딘가로 내려가는 느낌입니다. 사실 원작에서도 카오루는 그렇게 완성도 높은 캐릭터가 아닙니다. 여주인공 치고는 독자 인기 순위도 낮은 편이었고 여러모로 어중간한 역할의 캐릭터예요. 서사가 다 박살난 실사 판에서는 더더욱 역할이 없이 붕 뜬 캐릭터가 되었고요. 타케이 에미의 캐스팅 자체는 그냥 무난한 것 같지만 딱히 싱크로가 높지도 않고 이렇다 할 장점도 없는 것 같습니다.

 

카미야 카오루

 

이 작품의 주요 여자 캐릭터는 네 명입니다. 카오루, 메구미, 미사오, 토모에. 그런데 이 배우들의 캐스팅을 보면 메구미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신중한 고민 없이 그냥 당대의 인기 여배우를 되는대로 캐스팅한 느낌입니다. 타케이 에미, 츠치야 타오, 아리무라 카스미. 전부 영화 촬영 시점 기준 잘 나가는 대세 여배우들입니다. 타케이 에미까지는 그러려니 해도 츠치야 타오와 아리무라 카스미는 원작 캐릭터와의 싱크로도 전혀 안 맞았습니다.

 

다만 츠치야 타오는 싱크로는 안 맞지만 생각보다 괜찮았습니다. 원작에서 야히코가 하던 역할을 영화에서 미사오가 하는데 생각보다 츠치야 타오가 너무 잘하더군요. 액션도 박진감 넘치게 힘이 있고 여자 실력자라는 느낌을 꽤 잘 내고 있어서 놀랐습니다. 사실 미사오가 이 정도까지 활약하는 게 원작과는 전혀 딴판인 내용이지만 이 작품에서 원작과 달라진 부분 중 그나마 괜찮았던 게 미사오의 활약입니다. 다만 저로서는 이게 원래 야히코가 했어야 할 활약인데 미사오에게 빼앗긴 것 같아서 마냥 좋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너무 남자들 판인 영화에서 여자 캐릭터의 활약 비중을 높이려는 의도였다면 나름 좋은 선택인 것 같기는 합니다.

 

마키마치 미사오

 

[배우 이야기] 츠치야 타오 土屋太鳳

 

[배우 이야기] 츠치야 타오 土屋太鳳

츠치야 타오 土屋太鳳 츠치야 타오는 현재 일본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20대 여배우 중 한 명입니다. 저는 자주 써오던 ‘인기 있는’ 이라든가 ‘핫한’ 이라는 표현 대

dszl.tistory.com

 

아리무라 카스미가 연기한 토모에는 사가라 사노스케와 함께 이 영화 최악이라고 할만한 캐릭터입니다. 아리무라 카스미는 제가 좋아하는 배우이기는 한데 ‘아마짱’으로 라이징 한 이후 대세 배우가 되어 너무 많은 작품들에 닥치는 대로 출연하고 있고 그중에서는 이 배우의 매력과 장점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단점만이 부각되는 안타까운 배역도 많았거든요. 지난번 ‘가족의 색깔’ 리뷰 포스팅에서 쓴 내용이지만 때로는 이 배우가 인형처럼 보일 때가 있는데 바람의 검심의 토모에도 인형 같은 느낌의 캐릭터이지만 아리무라 카스미의 이미지와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인형 느낌이라도 전혀 반대예요. 분야는 같아도 장르가 다르달까. 결국 아리무라 카스미의 토모에는 이 영화 최악의 장면을 만들어내고야 맙니다. 바로 토모에가 켄신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방패막이 되어 목숨을 잃는 장면입니다.

 

토모에

 

가족의 색깔 – 훈훈하지만 비현실적인 판타지

 

가족의 색깔 – 훈훈하지만 비현실적인 판타지

원래 이런 스타일의 잔잔하고 훈훈한 내용의 일본 영화를 좋아합니다. 한때 악착같이 이런 영화들만 찾아봤던 적이 있어요. 요즘도 많이 보고요. 특히 고바야시 사토미의 작품들이 좋았죠. ‘카

dszl.tistory.com

 

이 장면에서 아리무라 카스미의 그 고장 난 인형 같은 얼굴이 저의 뇌리에서 잊혀지질 않습니다. 아리무라 카스미의 배우 인생 사상 최악의 한 컷일 거예요. 심지어 이 최악의 장면이 과거 회상 씬으로 영화에서 최소한 두 번은 나옵니다. 감독은 도대체 뭔 생각으로 이 컷을 오케이 한 걸까요?

 

아리무라 카스미

 

그런데 토모에가 죽는 장면은 원작에서도 뭔가 어설픈 상황이긴 해요. 토모에의 죽음에 대해서는 켄신이 스스로 ‘내 손에 죽었다’고 밝히면서 그 사연에 대한 궁금증이 시작되는데, 일단 ‘켄신이 토모에를 죽였다’라는 충격적인 떡밥을 던져 놓고는 그 진상에 대해 작가가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그럴듯한 해답이 안 나와서 저렇게 어설픈 장면이 탄생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원작 내용이 어설프기 때문에 각색을 하려면 바로 이런 부분을 각색을 해야죠. 그런데 꼭 이런 어설픈 부분만 원작 그대로 연출하고 거기에 원작보다 더 최악의 장면으로 만들어버렸으니 정말 난감하다고 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반응형

 

악역들은 어떨까요? 1편의 우도 진에는 그럭저럭 괜찮았습니다. 시시오 마코토의 경우는 후지와라 타츠야가 연기했는데, 이 배우 특유의 과장된 연기가 시시오의 광기를 표현하는 데 어느 정도 잘 맞아떨어지긴 했다는 느낌이지만 시시오 편 각색이 워낙에 엉망이라 캐릭터 역시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후지와라 타츠야 특유의 아무 때고 내뱉는 거친 발성과 과한 감정 연기 역시 보다 보면 거북해지고요. 그리고 시시오의 부하인 십본도는 세타 소지로를 제외하면 그냥 개판입니다. 카미키 류노스케의 세타 소지로만 그나마 괜찮았어요. 싱크로도 좋고 연기와 액션 모두 만족스럽더군요.

 

시시오 마코토

 

유키시로 에니시는 아라타 맛켄유가 연기했는데 이 캐스팅도 츠치야 타오나 아리무라 카스미처럼 그냥 당대의 인기 배우를 되는대로 캐스팅한 느낌입니다. 정말 살벌한 광기의 느낌이 나던 원작의 에니시와는 달리 캐릭터가 살짝 말랑해졌는데 사실 인벌 편은 각색에서부터 원작의 충격적인 전개와 감정선을 상당히 죽여버렸기 때문에 에니시 캐릭터도 거기에 맞게 다소 절제된 캐릭터로 표현된 것 같습니다. 물론 아라타 맛켄유의 순둥순둥한 외모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을 거고요. 인벌 편도 시시오 편 못지않게 총체적 난국이라 캐릭터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캐릭터 디자인이 독특해서 비주얼 적으로는 원작 비슷한 느낌을 어찌어찌 내기는 했습니다.

 

유키시로 에니시

 

그리고 추억 편에서 뜬금 켄신과 신선조 오키타 소지의 대결 장면을 넣었는데 취지는 좋았지만 캐스팅이 좀 아쉬웠습니다. 무라카미 니지로... 요즘 주목할만한 젊은 배우이긴 한데 오키타 소지 역으로는 좀 깨는 캐스팅이었어요. 게다가 헤어스타일도 이상하게 하고 나와가지고는..

 

오키타 소지

 

영화에서 가장 안습이었던 캐릭터 묘사는 보스급이 아닌 간부급 적 캐릭터 묘사입니다. 안습을 넘어서 그냥 웃기는 수준인데 십본도도 심각했지만 인벌 편 캐릭터들은 무슨 수준 낮은 마이너 전대물의 악당들처럼 나오더군요. 그 와중에 액션은 열심히 찍었는데 캐릭터 묘사가 전대물 수준이다 보니 최상급 액션 장면들도 그냥 싸 보이는 효과가...

 

그런데 캐스팅이나 캐릭터의 외형 묘사보다 더 심각한 건 원작에 나오는 캐릭터의 감정선과 사연들이 영화에서는 엄청 얄팍하게 대충 그려진다는 점입니다. 연출을 아예 안 한 수준의 국어책 낭독은 끝없이 이어지고요. 제대로 몰입되지도 않고 오글거리는 장면들의 연속이에요.

 

728x90

 

종합하면 서사와 감정선 연출을 버리다시피 한 전개로 만화 원작 실사 영화에 있어서 중요한 캐릭터의 매력도 거의 살리지 못했습니다. 사실 이 작품의 캐릭터는 사토 타케루의 히무라 켄신 혼자서만 열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주인공 캐릭터가 어느 정도 중심이 잡혀 있기에 이 영화가 액션씬 외에는 전반적으로 부족한 점이 많은데도 그나마 평가에서 선방할 수 있는 거겠죠. 열심히 준비하고 촬영한 액션 장면들과 사토 타케루의 열연이 사실상 이 영화를 살린 것입니다.

 

사토 타케루의 열연

 

 

바람의 검심의 실사 영화 시리즈는 흥행으로 보면 굉장히 성공한 시리즈입니다. 저는 이 포스팅으로 꽤 혹평을 했지만 만화 원작 일본 실사 영화 중에서 대체로 평이 좋은 영화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 영화에 대한 개개인의 평이 어떠하든 만화 원작 실사 영화화의 모범적인 예시로서 꼽히는 일만은 없었으면 합니다. 저는 단언하고 싶습니다. 만화 원작 실사 영화를 이런 식으로 만들면 안 된다고. 바람의 검심은 잘 만든 액션 영화일 수는 있지만 잘 만든 만화 원작 실사 영화는 아닙니다. 그것이 이 영화에 대해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입니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