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제 블로그 포스팅에서 아리무라 카스미(有村架純)에 대한 언급을 여러 번 한 적이 있습니다. 블로그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리뷰 포스팅을 올린 작품이 많지 않은데 그중에서 아리무라 카스미의 출연작이 네 편이나 됩니다. 올해만 아리무라 카스미 주연의 영화를 극장에서 두 편 봤습니다. 그리고 드라마도 두 편을 봤어요. 아리무라 카스미가 아마짱으로 라이징한 것이 8년 전입니다. 그때 대세 배우가 된 이후로 8년 동안 정말 열심히 활동했습니다. 수많은 드라마, 영화에 출연했고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를 연기했습니다. 저는 드라마는 많이 보는 편이 아니지만(아무래도 영화보다는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요) 영화는 많이 보고 아리무라 카스미가 출연한 영화는 제가 본 것만 두 자리 수가 넘어갑니다. 제가 안 본 영화까지 합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나죠. 8년 동안 이렇게 많은 작품들에 출연했습니다. 굉장한 배우입니다. 이 정도면 나름 일본 여배우로서 한 획을 그었다고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확히 어떤 의미의 획인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런데 이렇게 많은 작품에 출연했음에도 뭔가 뚜렷이 대중들의 인식에 각인된 대표작이라고 할만한 작품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냥 여전히 아마짱이 아리무라 카스미의 대표작인 것 같아요. 드라마는 많이 보지 않지만 그래도 꽤 유명한 ‘언젠가 이 사랑을 떠올리면 분명 울어버릴 것 같아’와 ‘그리고, 살아간다’는 봤는데요. 역시 아마짱에 비하면 이 두 작품을 대표작이라고 하기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제가 본 두 자리 수가 넘는 아리무라 카스미의 영화 중에서는 솔직히 엄청 재미있게 본 영화도 있습니다. 예컨대 누군가 저에게 아리무라 카스미의 작품을 하나만 추천해달라고 하면 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를 추천할 것입니다. 제가 본 아리무라 카스미의 모든 작품 중에서 이 작품이 압도적인 원탑입니다. 그다음은 우미노 치카의 만화 원작을 영화화한 ‘3월의 라이온’인데 아리무라 카스미가 엄청 매력적으로 나오지만 주연이 아니라 조연인 점이 다소 아쉽습니다. 올해 극장에서 본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도 아주 좋은 작품이고 적극 추천하고 싶은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런 좋은 작품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리무라 카스미의 어마어마한(양적으로) 커리어가 저에게는 그다지 빛나게 보이지 않습니다. 뭔가 거대한 화제작이나, 엄청나게 작품성을 인정받은 명작이 보이지 않는 것이죠. 스탯은 대단하지만 우승 트로피가 없는 정상급 운동선수 같은 상황이랄까.
물론 저의 주관적인 생각이에요. 제가 일본 영화나 배우들에 대한 포스팅을 많이 쓰지만 일본에 사는 것도 아니고 일본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라서 일본 연예계의 상황과 일반의 평판에 대해 완벽하게 알지는 못하니까요. 그리고 원래 이런 이야기들은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의견을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조금 까는 듯한 내용이 될 때는 더욱 주의를 해야겠죠. ‘그저 주관적인 생각일 뿐입니다’하고.
저는 아리무라 카스미라는 배우를 좋아하는 걸까요, 싫어하는 걸까요? 물론 절대 싫어하는 건 아닐 겁니다. 싫어하는 배우의 작품을 이 정도로 많이 챙겨본 것도 이상하잖아요. 예전에는 그저 예쁘고 선하고 성실해 보이는 인상이 좋았습니다. 요즘은 여러 출연작들에서 이 배우의 단점이 자꾸 눈에 들어옵니다. 너무 교과서적이고, 연기하는 인형 같은 느낌이 종종 들어요. 정말 단지 저의 주관적인 인상일 뿐인지도 모릅니다. 다만 저는 아리무라 카스미가 좀 더 생생한 날것의 표현을 보여주는 연기를 보고 싶을 뿐입니다. 예를 들어 니카이도 후미가 소노 시온의 ‘두더지’에서 보여준 그런 연기요. 특별히 그런 연기나 작품들을 선호하는 건 아니지만, 아리무라 카스미에 한해서는 그런 연기를 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한국인 입장에서는 일본 영화계가 굉장히 수준 떨어진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지만(국뽕이 아니라 한국 영화의 수준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나름 세계적인 명성이 있는 일본의 영화감독도 많습니다. 봉준호의 기생충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그 바로 전 해에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어느 가족’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았었죠. 그 외 소노 시온, 이와이 슌지, 야구치 시노부, 요시다 다이하치, 나카시마 테츠야, 미이케 다카시, 우에다 신이치로, 이상일 등 명성과 실력 모두 갖춘 뛰어난 영화감독들이 일본에도 많습니다. 그런데 아리무라 카스미는 이런 실력 있는 감독의 영화에는 그다지 출연한 적이 없어요. 그나마 도이 노부히로와 유키사다 이사오의 작품 정도가 뭐...
아리무라 카스미 입장에서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같은 거장 감독의 영화에 당연히 출연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겁니다. 아니면 소노 시온이나 나카시마 테츠야라도. 배우라면 당연한 욕심이죠. 아리무라 카스미와 비슷한 시기에(1~2년 정도 뒤에) 라이징 했던 히로세 스즈는 벌써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에 두 번이나 출연했습니다. 그리고 황금종려상을 받은 ‘어느 가족’에는 마츠오카 마유가 출연했고요. 둘 다 아리무라 카스미보다 어린 나이입니다. 히로세 스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뿐 아니라 이상일, 미이케 다카시, 이와이 슌지의 영화에도 출연했죠. 아리무라 카스미도 히로세 스즈 못지않은 대세 배우로 동시기에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지만 저 쟁쟁한 감독들은 아리무라 카스미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아리무라 카스미가 최고의 대세 여배우로 오래 왕성하게 활동했지만 커리어에 거장 급의 수준 높은 감독들의 작품이 거의 없는 것은 분명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가 뭔지 구체적으로 분석해서 포스팅에 쓰고 싶지는 않아요. 그냥 막연하게 ‘배우로서의 한계’라고만 표현하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히로세 스즈 같은 일본 최고 여배우와 비교를 하는 건 너무 기준이 높기는 합니다. 둘 다 대세 배우이고 왕성하게 활동하는 건 동일하지만, 그래도 두 배우 사이에 명확한 차이는 있습니다.
이건 단순히 저의 주관적인 인상인데요. 히로세 스즈는 뭐랄까, 정상의 자리에서 마음껏 하고 싶은 역할을 고르는 느낌입니다. 물론 히로세 스즈도 시시한 영화에서 별로 매력도 장점도 없는 역할을 연기한 적은 많지만요. 다만 늘 본인이 선택하고 능동적으로 즐겁게 커리어를 쌓아가는 느낌이 들어요. 반면 아리무라 카스미는 아마짱으로 라이징한 후 뭔가 ‘과분한 인기에 보답하겠습니다~’ 라는 느낌으로 닥치는 대로 열심히 앞만 보고 활동하는 느낌입니다. 들어오는 배역은 마다하지 않고 어떤 작품에서든 마냥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그만큼 성실하고 노력하는 인상을 주고는 있지만, 저로서는 아리무라 카스미가 더 대단한 배우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이런 이미지를 조금은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람의 검심의 토모에 같은 역할은 아리무라 카스미에게 절대 어울리지 않는 배역이었죠. 저도 아리무라 카스미의 커리어에서 최악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자체가 별로란 게 아니라(물론 그다지 좋은 작품도 아닙니다) 배역이 너무 어울리지 않았어요. 물론 바람의 검심은 굉장히 성공한 프렌차이즈고 토모에 역이라면 여배우들이 충분히 욕심을 낼 만한 배역이긴 합니다. 정말 업계 최고 수준의 대배우가 아니라면 이런 배역을 거부하기는 어려울 거예요. 그런데 아리무라 카스미는 지금 일본 최고의 여배우 중 한 명입니다. 좀 더 그에 걸맞는 행보와 선택들을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만화와 영화 사이] 바람의 검심 (와츠키 노부히로 만화 원작 실사 영화 리뷰)
아리무라 카스미는 1993년 생이고 한국 나이로는 30대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하마베 미나미나 모리 나나 같은 2000년대생 여배우들이 이제 대세 자리를 물려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리무라 카스미도 이제는 새로운 차원의 여배우로 도약해나가야 할 시점입니다. 어린 티를 벗고 완전히 성인 연기자로 자리를 굳히면서 예전과 같은 착하고, 성실하고, 교과서적인 이미지를 차츰 벗어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본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같은 영화는 아주 좋았습니다. 확실히 경력이 쌓이고 나이가 들수록 더 성숙하고 무게감 있는 분위기가 생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드라마 아마짱의 1화 첫 장면에서, 우악스럽게 군중들을 밀쳐내며 도쿄로 가는 열차에 당차게 몸을 싣는 아리무라 카스미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물론 드라마 내용에서는 결국 도쿄에서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아리무라 카스미는 그 후 승승장구하는 삶을 걸어왔습니다. 당연히 재능도 매력도 있는 배우입니다. 하지만 재능과 매력보다는 노력으로 정상까지 올라간 ‘뚝심의 여배우’라는 것이 아리무라 카스미에 대해 제가 가지고 있는 인상입니다.
사실 이런 표현은 굉장한 칭찬입니다. 대개 노력과 성실함을 갖춘 타입은 롱런할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아리무라 카스미도 정상에서 충분히 롱런할 수 있는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변화와 성장은 필수입니다. 물론 저는 앞으로 아리무라 카스미가 충분히 변화와 성장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저 기대하며 그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릴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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