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범죄도시 2 개봉 관련 인터뷰에서 주연배우 마동석이 이 시리즈를 8편까지 구상 중이라는 생각을 밝혔습니다. 사실 당장 다음 편 제작 소식이 궁금하지 까마득하게 먼 일인 8편 시리즈 구상 운운은 좀 와닿지 않는 얘기이긴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인터뷰의 내용을 보고 큰 기대와 흥분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유를 단순하게 말하자면 충분히 실현 가능성이 있고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정말 재미있는 아이디어와 내용들이 쏟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불모지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한국 영화계에 프랜차이즈 영화 제작은 그다지 활성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물론 프랜차이즈 영화가 많고 적고를 기준으로 그 나라 영화 산업의 질이나 수준을 가늠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매년 쏟아져 나오는 할리우드 대작 프랜차이즈 영화들에 대해 ‘지겨운 사골이다’, ‘속편 영화밖에 없느냐’ 하는 반응이 나오는 걸 보면 프랜차이즈 영화들이 너무 많아도 대중들은 그다지 좋지 않은 인식을 가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공한 대형 프랜차이즈 몇 작품들이 영화 산업 전반을 크게 활성화하는 순기능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사실 할리우드를 지금과 같은 초거대 문화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성장시킨 것은 프랜차이즈 영화들의 역할이 굉장히 컸죠. 마블의 히어로 영화들과 스타워즈, 쥬라기 공원, 분노의 질주 등 초대형 프랜차이즈 영화들로 어마어마한 자본이 움직이고 산업에 활기가 도는 것입니다.
한국이 이제 점점 문화 산업의 강국으로 거듭나고 있는데 이쯤 되면 한국 영화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시리즈도 나와줘야 합니다. 물론 그동안 한국 영화에 시리즈로 제작된 영화들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3편 정도까지가 한계였고 4편 이상의 시리즈로 이어진 건 ‘가문의 영광’ 시리즈를 비롯해서 소수에 불과합니다.
무엇보다 한국 영화는 시리즈로 만들더라도 후속작에서 질을 유지시키는 것을 잘 하지 못했습니다. 대부분 1편이 가장 성공하고 평가도 좋았고, 운 좋게 2편까지도 인정은 받았다 쳐도 3편부터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죠.
절대적인 법칙은 아니지만 프랜차이즈 영화가 성공하려면 우선 1편은 반드시 성공해야 하고, 그 다음 나오는 2편이 1편보다 더 평가가 좋고(아니면 최소한 동급) 흥행도 더 크게 해야 합니다. 2편의 성과에 따라서 장기 시리즈로 이어나갈 동력이 생기는 거예요. 그런데 한국 영화 중에서 2편이 1편보다 나았던 경우는 거의 찾기가 힘듭니다. 2편이 망하거나 어중간한 결과를 냈을 때 3편에서는 더욱 무너지는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범죄도시의 경우 2편이 굉장히 잘 나왔고 반응도 좋지만 1편을 뛰어넘는다고 확실하게 말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래도 어중간한 결과는 결코 아니고 그 엄청난 성공작이었던 1편과 최소 동급의 성과는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범죄도시가 장기 시리즈를 이어갈 동력을 충분히 갖추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범죄도시는 장기 시리즈를 위한 더욱 중요한 조건도 갖추고 있습니다. 바로 주인공 마석도의 확고한 캐릭터성입니다.
이런 유형의 강렬한 캐릭터가 한국 영화계에 등장했던 적은 거의 없습니다. 이건 아마 배우 마동석의 힘이 절대적이라고 해야 겠죠. 사실상 마동석이라는 배우가 등장함으로써 한국형 형사물 주인공 캐릭터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가 완성될 수 있었던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동석이 한국 영화계에 강렬한 임팩트를 만들어낸 것이 꽤 오래전인데, 이 배우의 이미지에 특화된 다양한 영화들이 나왔었지만 가장 완성형인 ‘범죄도시’의 마석도가 나오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린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마동석이라는 배우를 보고 있으면 그냥 번득이며 떠오르는 게 범죄도시 같은 영화잖아요. 그런데 뭔가 형사보다는 이상한 건달 같은 역을 많이 하면서 돌아온 느낌이 있었죠.
저는 이것이 그 동안 한국 영화 계에서 형사 영화보다는 조폭물이 훨씬 많이 제작되었던 것이 이유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형사를 주인공으로 한 프랜차이즈 영화들이 과거에 있기는 했습니다. 투캅스와 공공의 적. 둘 다 강우석 감독의 작품이죠. 그런데 강우석의 시대가 저물고 이런 형사 영화도 한국 영화계에서 자리를 잃어갔죠. 그 대신 조폭과 깡패 영화들이 판을 치기 시작했고...
아무튼 마동석도 조폭이나 건달 같은 나쁜 캐릭터 역할을 많이 하다가, 드디어 범죄도시의 마석도라는 캐릭터를 만나게 됩니다. 이 캐릭터는 정말.. 최고입니다. 세계 영화계로 보자면 마블의 히어로들이 지구를 지킨다고 깝치고(?) 있는데, 마석도가 당장 그들의 싸움에 끼어들어도 전혀 꿇릴 것 같지가 않습니다. 실제로 마동석은 이터널스의 길가메시 역을 맡으면서 MCU에 진출하기도 했고요.
앞에서 투캅스와 공공의 적 이야기를 했는데, 이 두 작품의 주인공과 마석도를 비교해봐도 왜 범죄도시가 3편 이상의 시리즈로 치고 나갈 힘을 품은 프랜차이즈인지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투캅스와 공공의 적은 그래도 한국 영화 역사에서는 성공한 프랜차이즈 영화로 꼽히지만 딱 시리즈 3편까지만 만들어지는 게 한계였습니다. 물론 범죄도시도 3편 이후 4편, 5편까지 무조건 나올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투캅스와 공공의 적이 맞닥뜨렸던 한계점은 마동석이라면 충분히 돌파할 수 있을 거라는 느낌이 듭니다.
저는 꼭 범죄도시가 3편 이상으로 시리즈가 계속 나오고 이번에 마동석이 인터뷰에서 밝힌 구상대로 8편까지 나오는 대형 프랜차이즈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동석 스스로도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고 아마 많은 사람들이 쉽게 상상할 수 있을 테지만, 마석도를 중심으로 8편까지 다룰만한 정말 흥미롭고 다양한 아이디어가 넘쳐납니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이 시리즈가 매 작품마다 다른 유형의 악과 싸우는 구도를 그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할리우드 작품, 예를 들어 존 맥클레인(브루스 윌리스)의 다이하드 시리즈와 이단 헌트(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를 생각해봅시다. 굉장히 성공한 프랜차이즈 영화들이지만 이 작품들도 어떤 한계점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매번 비슷한 악당과 스토리 유형을 보여주었다는 점이죠.
존 맥클레인은 늘 테러 조직과 싸웁니다. 이단 헌트는 맨날 첩보 액션만 하고요. 미션 임파서블의 1편과 가장 최신작을 비교해봐도 싸우는 적이나 내용 전개 패턴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석도는? 물론 1편과 2편의 적을 비교해보면 각각의 개성이 있지만 크게 차이가 나는 유형은 아닙니다. 하지만 원래 2편까지는 비슷한 흐름을 가지고 가는 것이 맞고 앞으로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정말 별의 별 유형의 적들이 다 등장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일단 가장 기대하는 것은 마석도보다 피지컬이 더 강한 괴물 빌런의 등장입니다. 무적인 줄 알았던 주인공을 1대 1로 능가하는 적이 출연하는 것은 히어로 장르에서 큰 임팩트를 만들어낼 때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되는 방법이죠.
그리고 피지컬과는 정반대의 두뇌파 빌런이 등장하는 것도 좋습니다. 브루스 윌리스의 다이하드도 4편에서 이런 비슷한 시도를 한 적이 있죠.
더 나아가서는 테러 조직과 싸우거나, 해외의 거대한 범죄 조직과 전쟁을 벌이는 내용까지도 나아갈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아주 그냥 지구의 운명을 건 엄청난 싸움까지도 벌이게 될 수 있겠죠.
이렇게 쓰고 보니 딱 생각나는 시리즈가 있습니다. 네, 포스팅의 제목에서 언급한 ‘분노의 질주 시리즈’입니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주인공 도미닉 토레토(빈 디젤)는 1편에서는 운전 좀 하는 동네 양아치 대장으로 등장하다가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능력치가 올라가더니 최신 시리즈에서는 이미 지구 최강 수준의 히어로가 되어 버렸죠.
[캐릭터 이야기] 도미닉 토레토 (분노의 질주 시리즈)
범죄도시가 꼭 이런 방향으로 이야기가 확장될 거라고 예상하거나 기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만약 이 시리즈가 8편까지 나오게 된다면, 분노의 질주 시리즈처럼 1편과 8편의 느낌이 전혀 다른 작품으로 나오기를 기대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경우에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지만, 대체로 이런 상업 액션 프랜차이즈는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더더더 커지고 거대해져야 계속 흥미로운 작품이 나오게 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도미닉 토레토 정도의 말도 안되는 활약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마석도를 ‘싸움 실력’으로 인류 최강급으로 올리는 정도는 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 과정 자체도 굉장히 재미있을 겁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1대 1로 마석도가 패배하는 내용들이 중간에 나오기도 하고, 그러다가 결국 더 강해져서 아무도 이길 수 없는 진정한 무적의 존재로까지 거듭나는 거죠.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거대해지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예로 들고 싶은 작품은 브라질 영화인 ‘엘리트 스쿼드’입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역시 엄청난 능력치를 가지고 많은 공을 세운 경찰 특수 부대 요원인데, 2편에서 뜬금 특수 부대 은퇴를 하고 경찰 본부의 관료로 진출해 버립니다. 그리고 부패 정치인 같은 더욱 거대한 악과 싸우게 되는 거죠. 양복 입고 데스트 워크 하는 방향으로 전환했지만 그래도 하이라이트 장면에서는 역시 제대로 액션도 보여주고요.
범죄도시가 8편까지 나오고 점점 마석도가 마주하는 사건의 스케일이 커진다면, 마석도는 도미닉 토레토 같은 제도권 밖의 히어로가 아니라 경찰 신분이기에 제도권 안에서 훨씬 거대한 존재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스케일이 되어버린 분노의 질주보다는 엘리트 스쿼드 2의 주인공 같은 행보가 현실적으로 마석도가 보여줄 수 있는 거물의 행보일 겁니다.
물론 분노의 질주고 아니고 엘리트 스쿼드도 아닌 범죄도시 만의 새로운 길을 찾아 나간다면 그것도 좋습니다. 말했듯이 너무 훌륭한 재료가 갖추어져 있고 흥미로운 아이디어는 넘쳐납니다. 한국 영화 역사에 없었던 어마어마한 프랜차이즈 시리즈의 탄생! 아니 마석도의 캐릭터성을 본다면 이런 프랜차이즈 영화는 세계 영화계에도 없었을 겁니다. 범죄도시의 프랜차이즈화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어서 언젠가 극장에서 범죄도시 8편을 보게 될 날이 꼭 오기를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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