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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 이게 그 정도로 나쁜가?

by 대서즐라 2022.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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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은 야한 영화를 보기에 좋은 장소는 아닙니다. 넷플릭스 등 OTT 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영화계와 영화관 산업 전반에 많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저는 그 변화 중 하나로 앞으로 영화관에서 야한 영화를 보기 힘들어질 거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사실 수년 전부터 넷플릭스나 HBO 등 소위 안방용 콘텐츠들의 히트작들에게서는 뚜렷한 특징 하나가 발견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영화관에서 히트하는 콘텐츠들에 비해 표현 수위가 강하다는 것이죠.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 공전의 히트작 ‘오징어 게임’만 봐도... 잔인한 폭력 묘사와 뜬금없는 야한 장면까지... 안방용 콘텐츠의 전형을 보여주었죠.

 

처음에 언급했듯 영화관은 야한 콘텐츠를 보기에 적합한 장소가 아닙니다. 보통 이런 건 안방에서 보는 거죠. 좀 더 사적이고 은밀한 공간에서 관람하기 적합한 콘텐츠입니다. 그래서 제가 평도 아주 좋지 않은 장철수 감독의 신작 19금 ‘야한’ 영화인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굳이 극장에서 보기로 결심한 이유에는 앞으로 이런 영화는 극장에서 보기는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앞으로 대부분의 야한 영화는 OTT로 빠지고 영화관에서 야한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굉장히 귀한 경험이 될 수도 있는 거예요. 물론 어느 정도는 과장입니다. 사실 원래부터 극장용으로 제작되는 국산 19금 야한 상업영화는 편수 자체가 적은 편이고, OTT 시대든 아니든 계속 극장에서는 가뭄에 콩 나듯 드문드문 볼 수 있었으니까요. 아무리 OTT 대세 시대가 되더라도 이런 영화들이 극장에서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겁니다. 아마도.

 

인민을-위해-복무하라-포스터

 

(이 글에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같은 영화가 이런 시국에 극장에 개봉하는 자체는 별난 일이기는 합니다. 그냥 3류 에로 영화도 아니고 나름대로 제작비가 들어간 제대로 만든 상업영화인데, 극장 수익으로 제작비를 건지는 건 불가능해 보이거든요. 물론 처음부터 그런 목표로 개봉하지는 않았을 테고, 극장 상영은 차후 스트리밍이나 다운로드 등 2차 시장을 겨냥해서 영화의 이름값을 높일 프로모션의 일환도 되는 거겠죠.

 

이 영화는 개봉 전부터 화제성은 꽤 있었던 편입니다.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아니라 원작이 있는 작품인데, 이 원작 소설이 꽤 비범한 작품이거든요. 사실 저는 원작을 읽지는 않았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읽으려고 했는데, 어떻게 시간이 나지 않아서 그냥 포기하고 영화만 봤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니 왜 원작 소설이 중국에서 금서로 지정되고 시끄러운 논란에 휩싸였는지 알 수 있겠더군요. 더불어 작가인 옌롄커가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군 중 하나로 꾸준히 거론되는 이유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위의 문단이 이 영화에 대한 저의 감상을 요약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꽤 인상적이었어요. 이런 내용이라면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될만하다!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냥 야한 콘텐츠 만들려는 목적으로 마구 만든 영화는 확실히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개봉 전 시사회에서부터 언론의 영화 기자들과 평론가들에게 혹평의 융단폭격을 맞았습니다. 물론 제가 이런 기자들과 평론가들의 의견에 크게 반발하며 적극적으로 이 영화를 옹호하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저는 이런 혹평의 반응들을 충분히 접한 후 영화를 보러 갔고, 영화를 다 보고는 단순하게 ‘이게 그 정도로 나쁜가?’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무광과-수련의-사랑

 

물론 훌륭하게 잘 만든 영화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혹평하는 전문가들의 리뷰에서 본 원색적인 비난의 표현들이 마땅하다고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장철수 감독이 이름 없는 감독도 아니고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과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만든 나름 명성이 있는 메이저 감독이잖아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도 충분히 메이저 영화의 퀄리티를 보여줍니다. 1970년대 북한을 모티브로 한 가상의 사회주의 국가가 배경인 작품인데 소품이나 미술 등 꽤 완성도가 높고 눈여겨볼만한 영화적 요소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문제는 영화의 내용인데.... 이 영화를 혹평하는 리뷰들의 대부분의 요지는 원작에 담긴 체제 비판적인 요소가 많이 흐릿해졌고 눈요기 노출과 정사 장면만 남은 아쉬운 결과물이라는 것인데,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캐릭터가 열렬하게 금지된 정사에 빠져드는 두 주인공이 아니라 조성하가 연기한 사단장 캐릭터였습니다. 두 주인공인 연우진과 지안에 비해 출연 비중은 떨어지지만 조성하의 사단장 캐릭터는 등장하는 모든 장면들이 다 인상적이었어요. 연기도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고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작품 전체가 사회주의 지배 권력의 명분과 권위에 대한 비판과 조롱의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국가는 평등의 가치를 이상으로 내세우는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실상은 철저히 계급구조가 나누어진 신분제 사회이고 사회 구성원은 모두 그저 ‘남보다 위로 올라가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대로 계급 사회에서 위로 올라가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인민을 위해 열심히 복무하는 것’이 아니라 아첨과 정치질, 공작질로 ‘위에 잘 보여서’ 연줄과 기회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사단장은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군부대의 최고 권력자이고, 주인공 무광이 목표로 하는 간부로의 진급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단장의 권력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만이 유일한 길입니다.

 

그런데 사단장에게는 무광과 나이 차이가 고작 네 살 밖에 나지 않는 수련이라는 이름의 젊고 아름다운 아내가 있습니다. 무광은 사단장의 마음에 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지만, 사단장이 중요한 임무로 한 달 동안이나 다른 지역으로 떠나 있게 되자 이제는 무광의 꿈을 좌우할 인물이 사단장의 아내인 수련이 되었습니다. 젊고 잘생긴 무광을 일찌감치 주시하고 있던 수련은 사단장이 떠나자마자 바로 행동에 나서고, 처음에는 사단장에 대한 두려움으로 거부하던 무광도 수련의 결심에 따라 자기 목표가 좌우될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인민을 위해, 아니 수련을 위해 열심히 ‘복무’하게 됩니다.

 

무광을-유혹하는-수련

 

두 사람이 열렬하게 사랑을 나누는 장면들이 이 영화의 메인 파트(야한 장면)이지만, 저는 사단장의 돌아온 후의 내용 전개가 훨씬 흥미로웠습니다. 말했듯이 저에게는 사단장이 가장 인상 깊은 캐릭터였거든요. 저는 이 영화가 꽤 재미있고 스릴 있다고 느꼈습니다. 독재 권력이 지배하는 엄격한 권위주의 계급제 사회에서, 말단 병사가 부대 내 최고 권력자를 엿 먹이는 짓거리를 뒤에서 열심히 저지르고 있는데, 당연히 그 끝은 파멸일 거라는 예상이 자연스럽게 그려집니다. 하지만 영화는 예상과는 다른 전개를 보여주죠.

 

수련과 무광의 은밀한 관계는 부대 내의 다른 병사와 간부들도 어느 정도는 눈치를 챌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실제로 목격한 병사도 있었고요. 사단장은 부재하고 무광과 수련 단 둘만 있는 관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사실 뻔하게 그려질 수밖에 없죠. 하지만 부대 내 누군가에 의한 폭로나 고자질은 끝내 일어나지 않습니다. 폭로나 고자질로 누군가는 공을 세울 수도 있지만, 반대로 이 불미스러운 사태의 책임을 부대 전체가 뒤집어쓰게 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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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단장도 같은 선택을 합니다. 사단장은 돌아오자마자 수련이 저질러 놓은 충격적인 행위들 때문에 자기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두 알게 되지만, 끝내 행동에 나서지 않습니다. 뛰어난 사격실력을 가진 사단장은 멀리서 무광을 향해 총구를 겨누지만, 결국은 총구를 돌려 다른 방향으로 총을 난사합니다. 그가 난사한 것은 그동안 군생활을 하며 받은 훈장들이었습니다.(사실 사단장이 총을 쏜 대상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좀 애매합니다. 하여간 뭔가 훈장이나 체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물건이었던 것 같습니다.)

 

알고 보니 전쟁 영웅이고 강철 같은 군인의 표상과도 같던 사단장이 사실은 가정의 작은 행복조차도 이룰 수가 없는 나약한 인간이었던 것이죠. 수많은 부상을 당하며 전쟁 영웅이 되었지만 그 부상(사타구니 쪽)의 영향으로 사단장은 성불구가 된 것입니다. 거기에 사단장이라는 부대 내 최고 권력의 지위도 중앙의 권력에서는 밀려난 변두리의 자리일 뿐이었습니다.

 

사단장-조성하

 

저는 이 사단장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책에는 사단장의 사연과 심리가 더 상세히 담겨 있을까요? 사단장도 이 작품의 다른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위로 올라가기 위한 목표만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인간입니다. 그는 아내를 얻고 자식을 낳아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는 것도 위로 오르기 위해 사회적 평판을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여겼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수련을 임신시킨 무광이 사단장에게는 증오의 대상이면서도 정상적인 가정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조건 하나를 해결해준 고마운 존재일 수도 있는 것이죠.

 

이 작품의 결말에서 무광과 사단장은 모두 본인이 원하던 목표를 이룹니다. 물론 그 과정은 ‘인민을 위해 복무한다’라는 숭고한 과업과는 거리가 멀었죠. 무광은 사단장의 아내와 부정한 사랑을 나눔으로써, 사단장은 자신을 믿고 따르던 부하들을 배신함으로써 각자 목표로 했던 바를 이룹니다. 썩은 체제하에서 썩은 방법으로 위로 올라간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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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의 이상 아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숭고한 명분을 내세우는 것도 사실은 독재 권력의 유지와 인민의 삶을 억업하고 착취하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수단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원작 소설이 중국에서 왜 금서로 지정되었는지 잘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이 영화에 대한 혹평으로 원작의 체제 비판적인 요소가 흐릿해진 점을 꼽는 리뷰가 많은데, 저는 이 작품에 담긴 핵심 주제가 영화의 내용으로도 충분히 와닿았습니다.

 

오히려 제가 혹평한다면 ‘야한 영화’로서의 면모입니다. 뭔가 야한 장면이 많이 나오기는 하는데 실상은 그다지 야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여주인공 수련 역을 연기한 배우 지안에 대해서도 혹평이 많은데요. 저도 여주인공의 연기력이 아쉽게 느껴졌고, 연출에 있어서도 정사 장면이나 노출 장면에서 관능적인 표현들이 너무 부족하고 느껴졌습니다. 화제가 된 체모 노출 장면은 거의 스치듯이 지나가서 매의 눈으로 보지 않는다면 눈치채기도 힘들 정도입니다. 그냥 ‘야하다’거나, ‘체모 노출’ 같은 자극적인 요소는 관객을 끌기 위한 낚시로까지 느껴질 정도예요.

 

수련-역의-배우-지한

 

저는 그래서 이 영화를 향해 나오고 있는 그저 무의미한 벗기기 영화라는 식이 혹평에 대해서는 감독이 꽤 억울한 심경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꽤 많은 분량의)정사 장면들은 제가 볼 때는 모두 작품의 주제와 내러티브를 위해 필요한 장면들이고, 오히려 감독이 최대한 야하지 않게 찍으려 했다는 느낌도 받았거든요. 그런데 겨우 이 정도의 장면들로도 여배우의 인권이라든지 성인지감수성 운운하는 말까지 나오는 걸 보면 이런 표현들에 대해 불편해하는 기준이 최근에 너무 빡빡해진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최근에 넷플릭스의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도 1화에 나온 여학생에 대한 괴롭힘 장면에 대해 비슷한 반응이 나왔었죠. 애초에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작품이고 중요부위 노출도 없는 장면인데도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건 너무 과한 검열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감독이나 제작사가 음흉한 기획 의도로 정사 장면이 많이 나오는 야한 거 한번 찍어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결코 아닙니다. 원작을 읽지는 않았지만 독재 권력이 지배하는 권위주의 사회를 비판하고 조롱하는 작품의 주제는 충분히 잘 담겨 있고 상업영화로서의 전반적인 완성도도 그리 부족하지 않습니다. 영화를 향한 원색적인 혹평과 비난이 감독 입장에서는 억울하게 느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라도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그 정도로 나쁜 영화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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