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의 걸그룹 오디션 ‘방과후 설렘’의 첫 화가 방영되었습니다. 시청률은 닐슨 전국 집계 기준 1부 1.3%, 2부 1.9%가 나왔습니다. 공중파 주말 프라임 타임 예능으로는 아주 저조한 시청률입니다. 하지만 방영 당시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어느 정도 반응이 있었고 앞으로 이 오디션이 성공할 포텐을 조금은 보여준 첫화였다고 생각합니다.
차별화된 방식의 오디션
프로듀스 조작 사태의 영향도 있고 그동안 여러 방송사에서 수많은 아이돌 오디션이 진행되었으니 이제 단물 다 빠졌다, 아이돌 오디션 지겹다, 식상하다는 반응이 꽤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방과후 설렘의 첫 방송이 특히 주력했던 것은 기존 아이돌 오디션과의 차별성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우선 가장 중요한 합격/탈락을 나누는 선발 시스템이 굉장히 독특했죠. 기존 아이돌 오디션이 일반적으로 선택하던 방식인 100% 시청자 투표 방식이 아닙니다. 현재 네이버와 리얼라이브 앱에서 투표가 진행 중이긴 하지만 첫 화에서 방영된 입학시험은 시청자 투표가 아닌 무대가 공연된 현장에서 일반인 비대면 평가단이 1차 심사를 하고 4인의 전문가 심사단이 2차 심사를 하는 방식으로 합격과 탈락을 결정지었습니다. 물론 앞으로 시청자 투표도 어떤 식으로든 반영이 될 테고 입학시험 이후 본 경연에 들어가면 또다시 선발 방식이 변경될지도 모르지만 100% 시청자 투표 방식이 아닌 다양한 조합에 의해 결과가 나오는 방식은 유지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1화에서 나온 입학시험 선발 방식이 생각보다 잔인해서 조금 논란이 생기고 있는데요. 가장 놀라운 건 경연의 방청객으로 참가자들의 가족(주로 부모님)을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가족 방청객들은 참가자들의 무대를 직접 눈앞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대형 스크린을 통해서만 보다가 일반인 비대면 평가단의 1차 심사로 75% 이상의 득표를 획득한 경우에만 무대의 문이 열리면서 직접 무대를 볼 수 있게 됩니다. 즉, 1차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기껏 방청까지 하러 온 가족들에게 참가자들이 무대를 직접 보여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좀 잔인한 방식이긴 하지만 서바이벌 오디션 방송이 이러는 게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적당한 비판을 감수하며 화제성을 끌어모으려는 계산도 있다고 봐야겠죠. 그리고 프리퀄 방송인 ‘오은영의 등교전 망설임’ 때부터 느꼈던 건데 확실히 이번 오디션은 시청자들의 ‘측은지심’을 자극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사실 그동안 아이돌 오디션에 소위 말하는 ‘과몰입’을 하는 팬층의 유형을 보면 그 팬심의 기저에 측은지심이 작용한 경우가 상당히 많았거든요. 특히나 이번 방과후 설렘은 기존의 걸그룹 수요층에서 확장된 더욱 다양한 대상층을 공략하려 하고 있어 보편적인 감성과 측은지심의 코드로 나아가려는 방향성을 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방과후 설렘’의 색다른 시도 – ‘엄마’ 세대가 타겟? (등교전 망설임)
선발 방식도 그렇지만 첫 화의 내용과 전반적인 방송의 진행 과정 자체도 기존 아이돌 오디션들과 뚜렷한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통 1~2화 방송분에 나오는 무대들은 일종의 ‘탐색전’ 같은 성격으로 탈락/합격의 목적이 아닌 참가자를 ‘소개’하는 취지의 내용이 그려지는데 방과후 설렘은 냅다 1화부터 ‘입학시험’이라는 이름의 경연 무대로 엄격한 심사를 받게 하고 그 결과 탈락자까지 나와버렸습니다. 전체 83명의 참가자 중에서 입학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 인원수는 40명입니다. 즉 시작하자마자 참가자 중 절반을 쳐내버리는 과감한 진행인 것입니다.
달리 본다면 입학시험에 통과한 40명이 남는 시점부터 본 게임의 시작이고 현재 방송 초반의 진행 내용은 ‘예선전’의 연장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아이돌 오디션은 100명 정도의 다인원 참가자의 ‘규모’ 자체로 화제성을 끌어올리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이기에 방과후 설렘 또한 83명이라는 충분히 방대한 규모의 참가자로 기존 오디션들과 비슷한 구색을 갖추고 출발했지만, 어디까지나 구색일 뿐이었고 실질적으로 본 게임은 40명부터 시작인, 다른 오디션들과 비교해 훨씬 줄어든 참가자로 진행되는 것이 이 오디션의 실체인 것입니다.
참가자도 줄었지만 최종 데뷔조의 인원수도 겨우 7명입니다! 이건 상당한 파격입니다. 엠넷의 프로듀스 시리즈는 내내 최종 데뷔 멤버 수가 10명 이상이었고 최근 걸스 플래닛 999는 데뷔 멤버가 9명이었습니다. 그에 반해 방과후 설렘이 최종 데뷔 멤버가 고작 7명인 것은 파격적으로 줄어든 인원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입학시험 통과자부터 실질적인 참가자로 본다면 참가자는 40명에 최종 데뷔 멤버는 7명이라는, 다른 오디션과 비교해 명백히 ‘소수정예’를 선발하는 오디션인 것입니다.
100% 시청자 투표 방식이 아닌 점. 참가자와 최종 데뷔 멤버의 수를 현격히 줄인 점. 이 두 가지가 방과후 설렘이 확실하게 보여준 다른 아이돌 오디션과의 차별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단지 다르기만 하다고 전부가 아니라 이런 차별화된 방식을 통해서 오디션 진행 양상이 어떻게 달라질지, 최종 데뷔 멤버의 결과는 또 어떨지 그 영향과 의미까지 생각을 해봐야겠죠.
저로서는 일단 ‘매우 흥미롭다’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 케이팝 산업은 많은 변화와 성장의 과정에 있고 특히 앞으로 벌어질 4세대 걸그룹들의 경쟁은 과거의 걸그룹 판도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양상들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MBC의 새로운 오디션 방과후 설렘이 기존의 아이돌 오디션의 방식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선봉장 역할을 하며 새로운 방식을 보여준 것은 확실히 주목할만한 행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최종 결과까지 새로울 것인가는 마지막까지 가봐야 알 수 있겠지만요. 최소한 아이돌 오디션에 대한 식상한 느낌을 줄이고 새로운 무언가를 기대하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을 듯합니다.
남초 커뮤니티의 반응을 끌어낼 수 있을까?
시청률이 저조한 것은 모든 아이돌 오디션의 공통된 특징입니다. 하지만 아이돌 오디션 중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엠넷의 프로듀스 시리즈는 시청률은 낮았어도 인터넷 화제성이 엄청났고 특히 걸그룹에 대한 관심도가 높은 몇몇 인터넷 남초 커뮤니티에서 열광적인 반응이 있었습니다. 프로듀스가 방영하는 시간에 해당 커뮤니티의 게시판은 관련 글로 완전히 도배가 되는 수준이었죠.
남초 커뮤니티가 걸그룹 오디션의 모든 수요층을 대변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커뮤니티 언급량은 국내 팬덤의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하나의 지표이기도 하고요. 엠넷의 걸스 플래닛 999는 방영 당시에 커뮤니티에서는 반응이 아예 없다시피 했습니다. 엠넷이 가진 프로듀스 조작 사태의 원죄 때문인지 거의 볼드모트 급으로 언급 금지가 되다시피 하는 분위기였고 또 다른 결정적인 이유로는 반중 정서의 영향도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방과후 설렘은 이런 부정적 인식의 요인이 없기 때문에 커뮤니티 유저들이 부담 없이 언급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었고 실제로 첫화 방영 당시에 꽤 많은 관련 글이 올라오며 적어도 걸스 플래닛 999보다는 반응이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 정도 반응은 프로듀스 시리즈의 전성기에 비하면 새발의 피입니다. 하지만 아직 첫화 방영이었다는 점, 그리고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이 대체로 방송이 재미있고 참가자들이 마음에 든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주였다는 점 등 향후 이 오디션에 대한 반응이 더욱 커질 수 있는 포텐은 충분히 엿보였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커뮤니티의 반응이 회차를 진행하면서 점점 커질지 줄어들지는 현시점에서는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새로운 예능이 시작하면 첫화는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는 반응이 나와주다가 이후 화제성과 흥미가 식어버리며 반응이 줄어드는 경우가 더 흔하긴 하거든요. 차별화된 선발 방식과 참가자들의 신선한 매력으로 초반 관심을 끄는 것은 비교적 수월하지만 이후 방송의 재미와 신선함이 꾸준히 유지되어야 반응을 더욱 키울 수 있습니다.
사실 첫화의 내용을 보면 참가자들 한 명 한 명의 사연을 너무 부각시키느라 진행도 더디고 조금 늘어지는 부분이 있었으며 전문가 심사단 4인의 멘트도 다른 오디션에 비해 상대적으로 재미가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전소연 정도가 과감히 할 말 다하는 성향으로 어느 정도 방송의 재미를 끌어올려주긴 했지만요.
그리고 경연 곡들이 너무 걸크러시 위주로 선정되는 것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요즘 케이팝 걸그룹의 컨셉 주류가 완전히 걸크러시 판이 되어서 벌써부터 식상한 복제품들이 난무하는 느낌인데 오디션에서만큼은 좀 더 다양한 걸그룹의 컨셉들을 경연에서 보여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방과후 설렘은 참가자들이나 심사단의 성향도 그렇고 경연 곡의 선정도 그렇고 너무 틀에 맞춰서 빡빡하게 진행된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아이돌 오디션 방송을 성공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MBC의 방과후 설렘은 참신하고 색다른 시도들과 엄선된 참가자들의 매력으로 분명 성공할 포텐을 가진 오디션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미 걸그룹 오디션에 대한 관심을 접어버린 사람들의 마음을 간단히 되돌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나마 걸스 플래닛 999 때보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지만 정말로 ‘성공한 오디션’이라는 결과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보다 몇 배는 더한 폭발적인 반응이 나와야만 하죠.
포텐은 있습니다. 그러나 쉽지도 않습니다. 과연 방과후 설렘은 성공한 걸그룹 오디션이 될 수 있을까요? 이 흥미로운 오디션이 앞으로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 저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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