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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대중문화와 서브컬처 이슈

왕좌의 게임: 하우스 오브 드래곤 vs 반지의 제왕: 힘의 반지

by 대서즐라 2022.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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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OTT 플랫폼 콘텐츠 시장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되었던 것은 바로 초대형 판타지 대작 시리즈 두 편의 정면대결이었습니다. 그 두 편은 바로 HBO 맥스의 ‘왕좌의 게임: 하우스 오브 드래곤’과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의 ‘반지의 제왕: 힘의 반지’입니다. 가장 성공한 판타지 영화 시리즈인 반지의 제왕과 가장 성공한 판타지 TV 드라마 시리즈인 왕좌의 게임의 프리퀄 작품의 대결. 공교롭게도 두 작품은 방영기간마저 겹쳤습니다. 당연히 전 세계의 수많은 판타지 장르 팬들이 매주 방영되는 두 시리즈의 내용과 완성도를 비교해서 평가하며 온라인에서 활발하게 의견들을 나누었죠.

 

하우스-오브-드래곤-vs-힘의-반지

 

그야말로 ‘세기의 대결’이라고 할만한 빅이슈였지만 승부는 다소 일방적으로 가려졌습니다. ‘하우스 오브 드래곤’의 완승이죠.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HBO 사상 역대급 메가히트를 기록하며 전성기 왕좌의 게임의 영광을 완전히 재현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반면 ‘힘의 반지’는 천문학적인 제작비 이슈가 무색하게 흥행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올리지 못했습니다. 평가 역시 ‘하우스 오브 드래곤’이 시청자들에게 압도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반면 ‘힘의 반지’는 좋은 평가와 함께 비판적인 반응도 많이 나왔습니다.

 

두 작품의 승패를 어느 누가 다르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흥행 결과를 배제하고 순수하게 작품의 재미와 완성도만으로 평가하더라도 물론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그래도 대다수의 시청자들은 하우스 오브 드래곤이 힘의 반지보다 더 재미있고 잘 만든 드라마라는 평가에 동의를 할 것입니다. 저 또한 그렇고요.

 

왕좌의-게임-하우스-오브-드래곤

 

하지만 좀 더 세부적으로 두 작품의 완성도의 ‘격차’를 따지고 들어가면 아마 꽤 다양한 의견층이 분화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S급과 폐급 정도로 극단적으로 격차를 벌이는 평가도 존재할 것이고 그렇게까지 격차가 크지는 않다는 평가도 존재할 것입니다. 저의 경우는 후자에 가깝습니다.

 

하우스 오브 드래곤이 힘의 반지보다 더 재미있고 잘 만든 드라마라는 사실은 동의하지만, 명작이라 평가받는 하우스 오브 드래곤에도 몇 가지 단점들이 있고 반대로 힘의 반지는 안 좋은 평가에 가려진 괜찮은 장점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저는 힘의 반지도 굉장히 훌륭한 드라마라고 생각하고 아주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저는 힘의 반지가 하우스 오브 드래곤과 동시기 방영으로 경쟁하게 된 상황 자체로 큰 피해를 본 것이라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만약 하우스 오브 드래곤과 동시기 방영이 아니었다면 평가나 흥행은 더 양호했을 것입니다. 정확히는, 하우스 오브 드래곤보다 몇 달 정도는 일찍 방영하는 편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반지의-제왕-힘의-반지

 

단순히 완성도의 차이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두 작품의 성향 차이로 인해 힘의 반지가 일방적으로 평가가 깎일 수밖에 없는 대결이었습니다. 그런 쪽(?)으로 명성이 자자한 HBO의 작품답게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매우 잔인하고 선정적이었습니다. 힘의 반지 또한 폭력성에서는 다소 수위 높고 살벌한 장면들이 있기는 했지만 하우스 오브 드래곤에 비하면 애들 장난 수준이었고 선정적인 내용이나 장면은 전혀 없었죠. 그러니까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자극적인 맛을 즐기는 분식집이고 힘의 반지는 고오급 레스토랑.... 아니 이게 아니고.

 

아무튼 힘의 반지 입장에서는 상대가 나빴다, 혹은 그냥 서로 맞지 않는 대결이었던 것입니다. 힘의 반지는 처음부터 굉장히 거창한 기획으로 출발한 시리즈입니다. 최종 5시즌까지 제작한다고 시작부터 못을 땅땅 박았고 역대 최대 제작비 등 작품의 규모가 상당한 이슈가 되었죠. 그 엄청난 제작 규모 치고는 시즌1의 내용은 스케일이 작았다는 것이 많이 나오는 지적 중 하나인데 저는 스케일은 크게 지적할만한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미 2021년에 드니 빌뇌브의 ‘듄’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투입된 초대형 SF 대작이었는데 2시간 30분이 넘는 긴 상영시간에도 내용 전개 자체는 그냥 프롤로그 수준으로 서막만 찔끔 보여주는 정도라서 많은 관객들을 당황하게 만든 영화죠. 하지만 듄은 한편으로 끝나는 영화가 아니고 이후 나오게 될 시리즈에서 거대하고 웅장한 대서사시가 펼쳐질 것을 아니까 1편의 길고 느린 빌드업에도 흥미롭게 몰입할 수 있는 것입니다. 힘의 반지도 마찬가지입니다. 5시즌 중 첫 번째 시즌이니 철저하게 바닥 다지기에 집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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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아드레날린 맥스치로 시작부터 끝까지 질주하는 내용입니다. 물론 하우스 오브 드래곤도 시즌1 내용 자체는 본격적인 전쟁이 벌어지기 전의 빌드업 단계를 다루지만 중간중간에 충격적인 사건과 자극적인 장면들이 계속 등장합니다. 시간대도 빠르게 넘어가고 내용을 쫓아가기가 버겁다는 느낌이 들만큼 많은 사건들이 계속 벌어지죠. 똑같은 빌드업 내용이라도 듄이나 힘의 반지처럼 차근차근 기반을 다져나간다는 느낌이 없습니다. 새로 개발된 초고속 시공법으로 며칠 만에 빌딩 하나 뚝딱 올려버리는 느낌이에요.

 

이런 차이는 근본적으로 두 작품의 내용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긴 합니다. 하우스 오브 드래곤이 시간대를 휙휙 건너뛰면서 많은 사건과 등장인물들의 사연으로 시즌1 내용을 밀도 높게 꽉꽉 채운 것은 원작 내용 자체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하우스 오브 드래곤이 힘의 반지처럼 처음부터 최종 몇 시즌까지 만들겠다고 공표한 건 아니지만 20년, 30년 동안 시리즈를 질질 끌 생각이 아니라면 시즌 1에서 최소 여기까지는 내용 진행을 해야 한다는 기준점은 정해놓았을 것입니다. 시즌1의 전체 내용을 본다면 이 기준점이 제작진들 입장에서는 꽤 타이트하게 느껴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타이트하게 압축된 내용 전개를 시즌1에서 굉장히 잘 풀어냈다는 점이 이 드라마에서 가장 높게 평가받을만한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듯 내용을 쫓아가기 버겁다는 느낌이 없지 않았고 마지막화의 엔딩 장면이 다소 급하게 마무리는 되는 느낌이었던 점 등 확실히 타이트한 빌드업 전개였다는 사실은 드라마 곳곳에서 드러났습니다.

 

하우스-오브-드래곤-등장인물들

 

제작진은 이 길고 복잡한 내용을 시청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집중하지는 않았습니다. 소설을 영상 콘텐츠로 제작할 때의 기본적인 방법론이기는 하지만 특히나 요즘은 유튜브나 나무위키에서 관련 정보를 워낙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그냥 드라마만 보고도 모든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도록 굳이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그보다는 핵심적인 사건들이 영상에서 표현되는 임팩트에 중점을 두는 것이며 그 사건 이면의 세부적인 전개 과정이나 설정은 굳이 몰라도 되고 알고 싶으면 유튜브나 위키를 보면 된다는 것이 요즘 시대에 영상 콘텐츠의 공급자와 수요자가 암묵적으로 합의하고 있는 방식입니다.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빌드업이 복잡하게 전개되는 과정에서도 핵심이 되는 사건들의 강렬한 임팩트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고 이건 이전 작품인 ‘왕좌의 게임’의 성공 공식과도 완전히 동일합니다.

 

힘의 반지는 전혀 사정이 다릅니다. 애초에 힘의 반지는 원작이 없습니다. 실마릴리온 등 여러 원고를 통해서 톨킨 세계관(레젠다리움)의 큰 역사적 흐름은 밝혀져 있지만 세부적인 역사의 전개와 사건들은 비어 있는 구멍이 너무 많고 힘의 반지는 그 비어 있는 구멍들을 거의 오리지널로 창작한 내용으로 채워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하우스 오브 드래곤처럼 수많은 등장인물과 복잡한 내용 전개를 굳이 만들어낼 필요도 없고 5시즌으로 완성할 수 있는 딱 적합한 스토리라인을 창작하면 되는 것입니다.

 

아마존 프라임 드라마 ‘반지의 제왕: 힘의 반지’는 어떤 내용일까? (갈라드리엘이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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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힘의 반지의 내용을 예상하는 포스팅을 썼었지만 애초에 이 드라마가 어떤 내용이 될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했었죠. 시즌1을 통해 마침내 공개된 내용에 실망하는 반응도 있는 편이지만 저는 꽤 괜찮은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가장 마음에 든 것은 호빗, 반지의 제왕의 내용과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만들어서 확실한 프리퀄로서의 정체성을 세우려 한 점입니다. 시즌1의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한 마디로 ‘사우론과 간달프의 이야기’입니다. 호빗과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가장 핵심적인 캐릭터들로 시즌1의 빌드업 서사를 쌓아나간 거예요.

 

그런데 사우론과 간달프의 이야기를 거의 독립적인 에피소드로 분화시켰고 특히 간달프 쪽 에피소드는 전개가 너무 지루했던 것이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단점으로 지적받고 있습니다. 저도 간달프와 털발족의 스토리는 빌드업의 과정으로 보더라도 너무 지루하고 밋밋했다는 데 동의합니다. 캐릭터들은 괜찮았던 것 같은데(특히 호빗의 ‘빌보 배긴스’나 반지의 제왕의 ‘프로도 배긴스’ 포지션이라고 할 수 있는 ‘노리’가 매력 있고 좋았습니다) 내용이 너무 재미없더군요.

 

간달프와-노리

 

반면 사우론 쪽 스토리는 꽤 다이내믹하게 펼쳐졌습니다. 가장 핵심 반전인 사우론의 정체를 마지막까지 철저하게 잘 숨겼고(이 드라마가 내내 안 좋은 평가를 받다가 마지막화에서 평가가 크게 올라간 요인이기도 합니다) 이 드라마의 가장 핵심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누메노르 왕국과 엮여서 아주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전개되었습니다. 전쟁 스케일이 너무 작다는 불만이 나오기는 했는데 작품의 전체적인 내용을 본다면(이후 시즌의 내용까지) 저는 딱 이 정도가 적합했다고 생각합니다. 누메노르 남부 원정대 규모가 딱 300명이었는데(원래 한 척에 100명씩 다섯 척의 원정이었지만 출발 전에 2척이 불에 타버려서 결국 세 척 300명의 규모로 원정하게 되었죠) 이건 영화 ‘300’으로 유명한 ‘테르모필레 전투’의 오마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페르시아 전쟁에서 300명의 전투 이후 시간이 흘러 대규모 그리스 연합군이 페르시아에게 승리하는 것처럼 이후 시즌에서 훨씬 거대한 규모의 누메노르 원정군이 사우론의 세력을 쓰러뜨리는 내용이 나오게 된다는 암시로 볼 수 있는 것이죠. 300명의 원정군을 지휘했던 누메노르 섭정 여왕이 복수를 다짐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고요.

 

원작의 세부적이고 복잡한 내용을 나무위키나 유튜브 정리 영상에서 참고할 수 있는 하우스 오브 드래곤과는 달리 원작이 없는 거의 오리지널 스토리를 보여준 힘의 반지는 그만큼 심플하고 명료한 전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간달프, 사우론에 더해 엘론드와 두린의 이야기까지 분량이 나누어지다 보니 심플한 걸 넘어서서 밋밋하고 지루한 전개를 보여주는 순간도 많았습니다. 반면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복잡한 내용을 타이트하게 전개시키며 매화마다 임팩트 있는 장면들이 몰아쳤고요. 거기에 19금 드라마다운 잔인함과 선정성까지 더해지니 더욱 하우스 오브 드래곤이 자극적이고 재미있게 느껴지고, 힘의 반지는 철저하게 비교가 되면서 밍숭맹숭하다는 느낌만 남게 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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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와 자극성에서 확연하게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처음에 언급했듯 하우스 오브 드래곤에도 단점은 있고, 힘의 반지 또한 안 좋은 평가에 가려진 훌륭한 장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하우스 오브 드래곤의 가장 큰 단점은 바로 작품의 전체적인 집중도가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누구를 응원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겠다는 것이죠.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오히려 이것이 장점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왕좌의 게임’이 한창 방영되던 시절에도 ‘이 드라마는 주인공이 없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왔었죠. 실제로 다양한 인물과 세력들이 때로는 연합하고 때로는 대립하면서 변화무쌍한 세력 구도의 흐름을 보여줬으니까요. 하지만 왕좌의 게임에서 결국 시청자들이 가장 응원할 수밖에 없는 가문은 스타크 가문이고 ‘스타크 가문의 복수’라는 중심 구도는 작품 내내 흔들림 없이 유지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3시즌의 ‘피의 결혼식’ 이후로는 더욱 명확해졌죠.) 그런데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흑색파(라에니라 지지)와 녹색파(아에곤 2세 지지) 중에서 누가 좋은 놈이고 누가 나쁜 놈인지 판단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아니, 애초에 선악의 판단 자체가 성립될 수가 없는 구도의 전쟁입니다.

 

라에니라와-알리센트

 

굳이 말하자면 왕좌의 게임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그래도 왕좌의 게임은 라니스터, 볼튼, 프레이 가문이 사악하고 잔인한 행위를 저지르는 장면을 계속 보여줌으로써 그들에게 복수해야 하는 스타크 가문의 당위성에 시청자들이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게 만들었죠. 그런데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피의 결혼식’이나 서세이가 대셉터를 폭발시켜 버린 것 같은 미친 짓이 아직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잔인하고 비열한 면모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고 존 스노우처럼 전형적인 판타지 주인공스러운 영웅 서사를 보여주는 인물은 없습니다. 까놓고 말해서 인성이나 도덕성보다는 라에니라와 알리센트 중에서 누가 더 이쁜가를 보고 골라야 할 판이에요. 그런데 이것도 고르기 어렵습니다. 둘 다 예쁘거든요.

 

[캐릭터 이야기] 존 스노우 (왕좌의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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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이걸 이 드라마의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오히려 좋아) 그런데 저는 아닙니다.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스포츠 종목이라도 올림픽에서 한국 대표팀을 응원하면서 보면 엄청나게 몰입이 되고 재미가 있듯이 대립이나 전쟁 구도의 내용에서는 확실하게 어느 한쪽의 승리를 바라고 기대하는 심리가 있어야 더 몰입을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저는 시즌1의 초반부 전개까지는 10대 라에니라를 연기한 밀리 알콕이 굉장히 매력 있어서(그런데 배우 나이는 20대 초반이라고 하더군요) 별 고민없이 ‘라에니라 지지!’를 외쳤지만 이후 10년이 흘러 배우가 에마 다시로 교체되고 비호감 이미지가 강한 다에몬과 결혼까지 하면서 상황이 미묘해졌죠. 에마 다시도 카리스마 여왕으로서 괜찮은 비주얼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올리비아 쿡이 연기한 알리센트와 나란히 있으면 왠지 알리센트를 더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생각이 점점 복잡해집니다. 그렇다고 알리센트 쪽에 붙기에는 이쪽은 아에곤 2세가 워낙에 비호감이라 또 선택을 주저하게 되죠. 시즌1의 마지막화 시점에서는 저에게 흑색파와 녹색파 모두 어중간합니다. 살짝 라에니라 쪽으로 기울기는 하는데 기꺼운 심정은 아니에요. 라에니라의 어머니가 아린 가문 출신이고 스타크, 툴리, 아린 가문이 결국 흑색파로 붙기 때문에 왕좌의 게임의 연장선으로서 이 작품을 본다면 역시 결국에는 라에니라 쪽으로 몰입을 하게 될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왕좌의 게임에서 스타크 가문에 몰입하던 것과는 확실히 다르기는 할 겁니다.

 

저에게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분명히 이런 간과할 수 없는 단점이 있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처음에 언급했듯 확실히 이 드라마는 재미있고 전반적으로 밍숭맹숭한 편인 힘의 반지와 비교하면 자극성이 정말 대단합니다. 강하게 임팩트를 남기는 충격적인 장면이나 사건이 많이 등장하고 8화에서 비세리스 1세의 장면은 이 드라마뿐 아니라 왕좌의 게임의 모든 시즌을 통틀어도 최고라고 할 정도로 명장면, 명에피소드였죠.

 

비세리스-1세

 

이렇게 자극적이고 드라마 내내 강렬한 임팩트를 만들어낸 하우스 오브 드래곤에 비해 힘의 반지는 확실히 자극적인 재미가 떨어지고 임팩트가 약합니다. 하지만 하우스 오브 드래곤과 비교해서 그렇다는 것이지 힘의 반지도 매우 재미있고 잘 만든 드라마이며, 특별히 강조할만한 훌륭한 장점들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제가 생각하는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장점은 비주얼입니다. 전쟁의 스케일이 작아서 그 엄청난 제작비를 어디 쓴 거냐는 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누메노르나 린돈 같은 2시대의 대표적인 배경 장소의 시각적인 묘사는 정말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난쟁이 왕국도 대단했고요. 실마릴리온을 읽었거나 2시대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드라마에서 훌륭하게 구현해낸 2시대 주요 배경 장소들의 묘사가 꽤나 감격스럽게 느껴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호빗과 반지의 제왕 이전 시대의 톨킨 세계관을 영상화한다고 했을 때 역시 가장 기대하게 되는 것이 이런 부분이고 힘의 반지가 그 기대치를 충분 그 이상으로 채워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누메노르-원정군

 

또 한 가지 이 드라마의 중요한 장점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호빗, 반지의 제왕과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스토리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건 특히 하우스 오브 드래곤과 비교하면 더욱 눈에 띄는 강점입니다. 시대의 격차로 생각해보면 하우스 오브 드래곤과 왕좌의 게임의 시대 격차보다 힘의 반지와 호빗의 시대 격차가 거의 10배는 될 정도로 크지만 톨킨 세계관에는 수천 년을 살 수 있는 영생의 존재들이 있기 때문에 그 긴 시대 격차에서 스토리상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구성할 수가 있는 것이죠. 힘의 반지의 제작진들이 그 부분을 효과적으로 잘 파고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반지의 제왕, 호빗과 연결되는 재미 요소를 찾을 수가 있거든요. 반면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스타크나 라니스터 가문의 비중이 공기 수준이라 그런 재미는 거의 찾을 수가 없고요.

 

물론 이런 점을 무조건 하우스 오브 드래곤의 약점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죠. 오히려 왕좌의 게임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작품으로 높게 평가받으면서 최종 시즌까지 훌륭한 퀄리티로 마무리한다면 하우스 오브 드래곤이 왕좌의 게임을 뛰어넘는 작품으로 우뚝 서게 될지도 모릅니다. 반면 힘의 반지는 반지의 제왕의 위상 아래 계속 종속될 수밖에 없을 테고요.

 

하지만 어쨌든 반지의 제왕과 왕좌의 게임의 팬인 입장에서 두 작품을 보게 된 상황에서는 ‘프리퀄’로서의 재미를 충실하게 보여주는 것은 역시 힘의 반지입니다. 이 점만은 확실히 이 드라마의 중요한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우론과-갈라드리엘

 

마지막으로 힘의 반지와 하우스 오브 드래곤이 모두 공통적으로 크게 만족스러웠던 부분을 이야기하고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캐스팅입니다. 역시 이런 웅장한 판타지 대작을 만들 때는 각 캐릭터가 가지는 위엄과 분위기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최적의 캐스팅을 이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런 부분에서 두 작품 모두 매우 훌륭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다만 굳이 캐스팅에서도 우열을 가리자면 종합적으로 봤을 때 역시 하우스 오브 드래곤이 더 나았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라에니라와 알리센트의 캐스팅은 10대 시절 배우와 10년 뒤 배우 모두 정말 훌륭했습니다. 그런데 라에니라의 경우 10대 시절을 연기한 밀리 알콕이 굉장히 독특한 매력이 있어서 거의 이 캐릭터에 빠져드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10년 뒤 에마 다시로 배우가 바뀐 후로는 그런 느낌이 약해져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물론 에마 다시도 괜찮기는 하지만 이때는 알리센트를 연기한 올리비아 쿡에게 좀 더 눈이 가게 되더군요.

 

라에니라-밀리-알콕

 

하우스 오브 드래곤에서 최고로 평가받는 캐스팅은 역시 비세리스 1세 역의 패디 콘시딘입니다. 엄청 멋있고 위엄 있는 인물이 아니라 힘겹게 왕관의 무게를 버텨내고 있는 최고 권력자의 나약하고 위태로운 모습을 굉장히 잘 표현했죠. 특히 8화에서 보여준 연기가 너무 대단해서 벌써부터 내년 에미상의 유력 후보로까지 점쳐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다에몬 역의 맷 스미스나 오토 하이타워 역의 리스 이판 등 명성 높은 배우들이 묵직하게 중심을 잡고 작품을 잘 이끌어 나갔고 그 외 수많은 등장인물들 대부분이 역할에 어울리는 외모와 분위기로 작품의 퀄리티를 최상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 훌륭하게 일조했습니다. 타가르옌 다음으로 비중 있는 가문으로 등장하는 벨라리온 가문을 흑인으로 설정해서 PC 논란이 있었지만 이 드라마에 캐스팅된 흑인 배우들과 흑인 혼혈 배우들도 모두 역할에 잘 어울리는 멋지고 아름다운 모습들을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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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인 캐스팅에서는 확실히 하우스 오브 드래곤이 좀 더 나았지만 이 두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캐스팅(캐릭터)을 한 명만 꼽으면 역시 힘의 반지의 주인공 갈라드리엘을 연기한 모피드 클락입니다. 힘의 반지가 방영이 시작된 후 평가가 별로 안 좋을 때도 ‘그래도 갈라드리엘 미모 때문에 본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정말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냥 예쁜 엘프 여자가 아니라 여전사로서 강인한 컨셉을 가지면서도 거기에 어울리는 느낌의 미모를 보여준 것이기에 모피드 클락의 매력이 캐릭터의 완성도와 작품 전체의 몰입도에도 큰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배우의 매력으로 따지면 하우스 오브 드래곤의 10대 라에니라를 연기한 밀리 알콕이 모피드 클락과 대등한 쌍벽을 이룰 만 하지만 밀리 알콕은 시즌1 5화까지만 나오고 더 이상 출연이 없기 때문에 힘의 반지에서 계속 고정 주인공으로 활약할 모피드 클락을 역시 두 드라마의 모든 캐스팅 중 원톱으로 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갈라드리엘-모피드-클락

 

그 외 털발족의 노리 역을 연기한 마켈라 캐브너, 할브란드 역을 연기한 찰리 비커스도 매우 훌륭한 캐스팅이었고 누메노르와 남부인들 캐스팅도 다 좋았습니다. 엘린딜과 이실두르는 제가 생각한 이미지와는 조금 달랐는데 이 드라마의 배우들도 굉장히 잘 어울리긴 하더군요. 흑인 엘프 아론디르 역을 연기한 이스마엘 크루스 코르도바도 굉장히 멋있고 잘 어울렸습니다.

 

그런데 린돈의 요정 주요 인물들이 요정 다운 위엄이나 신비스러움이 다소 부족해서 조금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반지의 제왕과 호빗에서는 고위 신분의 요정들은 대부분 샤프하고 묘하게 중성적인 이미지도 풍겼는데 힘의 반지에서는 일단 요정 대왕인 길갈라드부터가 뭔가 후덕한 아저씨 같은 느낌이고 켈레브림보르는 영생의 요정족임에도 장년의 비주얼로 등장합니다. 엘론드 역시 그리 잘 어울리는 캐스팅은 아니었던 것 같고요.

 

이렇게 요정족 캐스팅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가장 비중 있는 갈라드리엘과 노리, 할브란드, 엘렌딜 같은 캐릭터들이 역할에 잘 어울리는 배우들을 캐스팅해 몰입도 높게 작품을 잘 이끌어갔고 하우스 오브 드래곤과 달리 판타지의 다양한 종족들이 등장하는 톨킨 세계관의 인물 관계를 훌륭하게 구현해냈다고 생각합니다. 힘의 반지와 하우스 오브 드래곤 모두 캐스팅에서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 판타지 대작이 동시기에 방영해서 괜히 민감하게 경쟁이 붙은 상황이긴 한데 두 작품 모두 기대를 충족시키는 완성도로 나왔고(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기대를 뛰어넘었죠) 훌륭하게 첫 시즌의 스타트를 끊었다고 생각합니다. 두 작품이 서로 다른 강점과 매력을 가지고 있으니 민감한 경쟁 구도를 의식하기보다는 두 작품 모두 즐기자는 입장으로 앞으로 이어질 후속 시즌을 기대하고 기다리면 될 것 같습니다. 두 드라마 모두 마지막 시즌까지 훌륭한 퀄리티를 유지해 최고의 판타지 명작 드라마로 잘 완성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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